칭찬의 기술
사랑의 기술 중에 책망의 기술에 이어 이번에는 칭찬의 기술에 관해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칭찬은 책망과 함께 중요한 사랑의 기술에 속합니다. 이 글을 올리는 것은 제가 잘 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잘 하고 싶어서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조건적인 칭찬은 독이 된다
때와 목적을 잃어버린 칭찬은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를 키울 때 무조건적인 칭찬으로 키운 아이는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모르며 자랄 것입니다. 앞의 글에서 언급한 책망과 칭찬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칭찬을 해야 한다면 왜 해야 하는지 이유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칭찬해야 할 때 칭찬해야 합니다. 시기가 적절해야 합니다. 성경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시기를 놓치면 나쁜 것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자기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되리라."(잠27:14)
결과보다 과정을 칭찬하라
어떤 결과를 놓고 칭찬하는 것은 올바른 칭찬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칭찬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결과를 내었을 때 그 결과를 얻기까지 과정을 칭찬해야 합니다. 결과 때문에 칭찬하는 것보다 좋은 과정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칭찬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칭찬하라
예수님께서 요한계시록 2, 3장에서 교회들을 칭찬하실 때의 말씀을 보면 매우 구체적으로 칭찬하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추상적으로 칭찬하기 보다 구체적으로 칭찬해야 합니다. 가능하면 칭찬해야 할 항목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는 것이 좋습니다. 구체적으로 칭찬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세히 관찰해야 하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즉흥적인 칭찬보다는 오랜 시간 관찰하고 준비된 칭찬이 훨씬 더 좋습니다.
버릇처럼 칭찬하지 말라.
칭찬을 너무 쉽게 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왜냐면 마음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도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잠27:6) 습관적인 칭찬은 칭찬이 아니라 아첨인 것입니다. 칭찬과 아부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칭찬은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숨겨진 장점을 알게 하는 것이고, 아첨은 나에 대해 누구나 알고 있는 장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참된 친구는 숨은 허물 뿐만 아니라 숨은 장점까지도 알게 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버릇처럼 칭찬하는 사람은 제대로 칭찬하지 않는 것입니다.
칭찬에 인색하지 말라
한국인과 같이 유교문화에서 자라서 체면치레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칭찬에 인색한 경향이 있습니다. 칭찬을 한다고 하더라도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 어색한 경우도 많습니다. 처음엔 실수를 하더라도 칭찬하는 법을 연습해야 합니다. 그리고 칭찬을 해야 할 때는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감정적으로 과도하게 칭찬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감정적인 칭찬보다는 이성적인 칭찬이 더욱 효과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칭찬하실 때는 감정적으로 칭찬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구체적으로 나열하면서 조목조목 칭찬하셨습니다.
비교하며 칭찬하지 말라
우리가 책망할 때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책망하는 것은 올바른 책망이 아니라고 했듯이 칭찬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칭찬하는 것 역시 올바른 칭찬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은 이것도 못하는데 너는 이것도 잘 한다"는 식으로 칭찬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칭찬과 책망에 있어서 비교의식은 금물입니다.
공개적으로 칭찬하라
할 수만 있으면 여러 사람이 보는 데서 공개적으로 칭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좋은 학교, 좋은 교사의 특징이 바로 그것입니다. 가능하면 사소한 것이라도 공개적으로 칭찬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칭찬해주되 구체적으로, 시기적절하게, 공개적으로, 그리고 사소한 것이라고 칭찬해주어야 합니다. 저의 큰 딸이 다니는 이곳 고등학교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주은이가 플롯 레벨 테스트에 통과했다는 통지서가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레벨이 고급 단계도 아니고 그저 중간 단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무슨 큰 콩쿠르에서 입상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그것을 가지고 전체 학생이 보는 가운데서 거창하게 수여식을 가지게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것도 겨우 중간 단계의 레벨 테스트에 패스한 것뿐인데 그것을 다른 모든 학생들이 지켜보는 데서 받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주은이는 혼자서 열심히 플롯을 잘도 연습하고 또 즐기고 있습니다.
보상을 주며 칭찬하라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충성된 종들을 칭찬하는 임금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임금은 칭찬하면서 말로만 하지 않습니다. 칭찬하면서 구체적인 보상을 내리고 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상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음도 상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기뻐하며 인내하는 까닭도 하나님이 주실 상 때문입니다. 칭찬을 할 때 아주 작은 보상이라도 주면서 칭찬하는 것이 말로만 칭찬하는 것보다 더 좋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하실 때에도 "열린 문"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진심으로 칭찬하라
칭찬할 때는 건성으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칭찬할 때는 진심으로 해야 합니다. 칭찬할 때는 마음을 다하여 해야 합니다. 마음이 전달되는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칭찬을 받는 사람이 칭찬하는 사람의 마음을 느끼게 칭찬해야 합니다. 진심으로 하지 않을 바에는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것이 더 낫습니다.
칭찬하기 전에 생각하라
책망하기 전에도 생각해야 하듯 칭찬하기 전에도 생각해야 합니다. 즉흥적인 칭찬보다는 계획되고 준비된 칭찬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칭찬하기 전에 무엇을 칭찬해야 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왜 칭찬을 해야 하는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칭찬해야 할지 기획해야 합니다. 칭찬이 어려운 이유는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칭찬을 굳이 준비까지 해야 하느냐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준비된 칭찬이 즉흥적인 칭찬보다 훨씬 낫습니다.
"잘 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임금이 충성된 종들을 "잘 했다"라고 칭찬합니다. 원어에는 한 음절입니다. 그러나 그 짧은 말 속에 칭찬의 기술이 담겨 있다고 봅니다. 감정을 가지고 칭찬할 때는 짧을수록 힘이 있습니다. 권위 있는 칭찬입니다. 이 칭찬 한 마디에 그 동안 수고와 노력이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습니다. 요즘 제 아이들이 시험을 치르는 기간입니다. 시험을 치른 아이들에게는 그냥 "잘 했다"라고 해주면 됩니다. 아내가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잘 했어요"라는 말 한 마디면 충분합니다. "수고 많았어요" "잘 했어요" "고생 했어요"라는 말은 평범한 칭찬 같지만 권위자의 입에서 나올 때는 그 어떤 칭찬보다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스킨십으로 칭찬하기
부모가 자식을 칭찬할 때는 여러 말보다 한번 안아주는 것이 제일 좋은 칭찬일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상사가 수고한 직원의 손을 꼭 붙잡아주는 것 자체가 큰 칭찬일 수 있습니다. 동성일 때 스킨십으로 칭찬을 해주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능력을 칭찬하지 말고 노력을 칭찬하라
"너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라고 칭찬하지 말고 "그 동안 정말 수고많았어"라고 칭찬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능력을 칭찬하면 교만해지기 쉬울테니까요. 그러나 노력을 칭찬하면 더욱 열심히 분발할 것입니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칭찬해야 하고, 능력이 아닌 노력을 칭찬해야 아름답습니다.
자신이 모르는 부분을 칭찬하라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어떤 잠재성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리고 누군가 자신에게 숨겨진 보물을 발견해서 자신에게 알려주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감추어진 보물을 찾아내려면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하고, 그를 오래 관찰해야 하고, 그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나의 장점이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장점을 찾아내어서 내게 말해줄 수 있는 친구가 정말 좋은 친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단하는 칭찬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느니라."(잠27:21)
모든 보물은 가공과 정련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처럼 사람도 책망과 칭찬의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또 성숙하게 됩니다. 과감하게 깎아낼 것은 깎아버리고 태워버릴 것은 태워버리는 과정을 통해 사람은 원석에서 보석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책망이 버려야 할 것 혹은 태워져야 할 것에 초점이 있다면 칭찬은 반대로 더욱 붙잡아야 할 것 혹은 연마해야 할 것에 초점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책망과 칭찬 모두 사람을 연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젊은 사역자 디모데에게 보내어진 사도 바울의 편지 디모데전후서를 보면 바울이 디모데를 칭찬으로 연단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딤전1:2; 2:18) 이것은 바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딤전6:11) 또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숨겨진 보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1:5)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나게 하노니"(딤후1:6) 칭찬은 보배를 더욱 보배 되게 하는 것이고, 책망은 보배를 더욱 보배 되게 하기 위해 깎아버릴 것은 과감히 깎고 태울 것은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칭찬과 책망의 기술에 능한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예수님처럼요...^^
김광락 선교사 올림
P.S.
제가 글쓰기를 좋아하긴 해도 제가 쓰는 글은 대부분 무겁고 건조하며 재미도 없는 편입니다.
예전에 어떤 분이 제 블로그를 평가하기를 글이 너무 길어서 읽기 힘들다고 하더군요..
사실 맞습니다. 요즘 글이 길면 사람들이 즐겨 읽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중적인 글쓰기를 잘 못하는 것에 대해 저의 한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목사요 선교사니 어쩔 수 없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제 글을 좋아하신다면
제가 기꺼이 박수를 쳐드립니다. ^^
여러분은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요 생각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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