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제자훈련 다시 생각해야 한다!!
들어가는 말
제가 블로그를 시작할 때 올린 글이 [한국교회 제자훈련에 대한 재조명]이었습니다. 이 글에서 제가 쓴 것은 예수님의 제자훈련과 현대교회 안에서의 제자훈련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비교하고 아프리카에서 이루어지는 흑인 목회자들의 제자훈련에 대해서 소개하였습니다.
이번에 제가 쓰려고 하는 것은 좀 더 노골적으로 교회 안에서 제자훈련하는 운동에 대해 반대한다는 말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도 선교지에 나오기 전에 한국교회를 20년 교역자로 섬길 때 제자훈련사역을 그 어느 누구보다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선교지에 나와 있어보니 한국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제자훈련 운동]은 건강한 교회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더욱 견고해지고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성경이 보여주고 있는 제자훈련의 모습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앞서 올린 글에서 밝혔기 때문에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둘째, 예수님이 보여주신 제자훈련은 건물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제자훈련이란 교실에서가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직접 선택하셨고,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권능과 지혜를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스승을 보고 따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삶의 자리에서 떠나 있습니다. 스승이 본을 보여주는 것은 없고 과제를 주는 것으로 제자훈련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셋째, 선교적인 맥락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이 말하는 제자훈련의 기본정신은 선교적인 차원을 떠나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주도적으로 제자를 부르셨고 제자들을 세우셨고 그들에게 권능을 부여하셨고 그들을 파송하셨고 나중에는 그들을 떠나가셨습니다. 그러나 현대교회의 제자훈련운동은 선교적인 맥락을 떠나 목회자의 자기사람만들기나 제직훈련 혹은 단순한 성경공부모임과 같은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목회자는 제자훈련에 참가할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모집하고, 그들에게 능력을 부여하기보다는 그들에게 지식을 부여하는 헬라식 교육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들을 파송하기 보다는 붙잡고 있으며, 그들을 떠나기보다는 그들 곁에 머물고 있으려고 합니다.
넷째, 교회 안에 차별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닮는 제자를 양성한다는 비전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목회자의 ‘서클’ 안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과 들어오는 사람으로 교회는 나뉘어지게 됩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제자훈련을 목회의 비전으로 삼고 시작하지만 10년이 넘게 되면 고민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에 대한 것입니다. 제자훈련을 중요한 사역으로 시작하면서 제자훈련 그룹 안에 들어오지 못하는, 혹은 들어오기를 어려워하는 부류를 보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제자훈련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사람의 본성을 보면서 회의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에 ‘아웃사이더’는 더욱 더 제자훈련그룹에 냉소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섯째, 지성주의 영성운동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사에서 영성운동은 언제나 지성주의와 반지성주의 사이에서 변증법적으로 반응하며 흘러왔습니다. 현대교회에서 시행하는 제자훈련운동은 지성주의적 영성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공부의 형태를 띠고, 많은 독서 과제, 암송과제가 있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모든 교인들을 지성주의적 영성운동으로 몰아가면 반지성주의적 영성을 추구하는 교인들은 입지가 좁아지기 때문에 교회 밖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목회자는 지성주의적 그리스도인과 반지성주의적 그리스도인들 모두를 품고 서로 하나가 되게 해야만 합니다.
위와 같은 이유들로 저는 한국교회 안에서 제자훈련 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담대하게 주장하는 바입니다. 그러면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로서 어떻게 교인들을 양육하고 훈련하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이에 대해 저는 다음과 같이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첫째, 제자훈련이 아니라 제직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집사가 되는 기준, 장로가 되는 기준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고 있습니다. 한 교회의 집사로서 혹은 장로로서 필요한 훈련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어떤 훈련과정을 거쳤다고 해서 반드시 직분을 임명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직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이 어떤 공부나 훈련을 통해 갖추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둘째, 제자훈련이 아니라 목회자훈련이어야 합니다.
목회자는 목회자를 길러내어야 합니다. 다음 세대를 이끌 차세대 목회자를 양성하는 일에 교회나 목회자가 특별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매우 환영받을 일이고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목회자들이 교회 내에서 시행하는 ‘제자훈련’은 목회자 훈련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을 키우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자기 사람 훈련입니다. 목회자가 물러날 때 그 자리를 누가 대체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를 이끌 지도자는 누가 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제자훈련이 아니라 목회자 훈련 프로그램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제자훈련이 아니라 다양한 성경공부모임을 개발해야 합니다.
제가 제자훈련을 반대한다고 해서 모든 지성주의적 영성운동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성경공부모임이 개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교인들에게 다양한 성경공부모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주는 것은 목회자로서 매우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제자훈련은 지양하되 다양한 성경공부모임은 지향해야 합니다.
넷째, 제자훈련은 선교지에서의 사역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건물 안에서 이루어지는 제자훈련은 헬라식 제자훈련입니다. 저는 교실에서의 제자훈련을 반대하지만 선교지에서 제자훈련은 중요한 선교의 모델로 회복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선교사가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한다든지 혹은 현지인들을 붙들고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대신 선교지에서 선교사는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현지인들을 기도하는 가운데 불러 모으고 그들을 일정 기간 동안 훈련한 뒤 위임하고 그들을 떠나가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제자훈련의 모델은 교회 안에서가 아니라 교회 밖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고, 목회적 상황이 아니라 선교적 상황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제자훈련은 삶의 자리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제자훈련을 할 때 ‘스승’은 ‘제자들’에게 독서, 묵상, 혹은 봉사와 같은 과제를 주고 암송을 시키고 공부를 시킵니다. 얼마나 숙제를 잘 내주고 잘 점검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이러한 훈련에서 간과되기 쉬운 것이 바로 ‘삶의 자리’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스승은 시범을 보여주어야 하고 제자들은 보고 따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또 귀신들을 쫓아내시면서 그들에게 권능을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또 대중에게 가르치고 설교하시면서 가르치는 법을 보고 따라하게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성경적인 제자훈련은 시범, 현시, 실습, 그리고 파송, 위임, 떠나감이란 요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 내에서의 제자훈련은 시범보다는 과제물, 현시보다는 가르침, 공동실습보다는 숙제, 기도와 능력보다는 책과 지식, 파송과 위임보다는 제직으로 임명하고 봉사하게 함, 떠나감보다는 곁에 머무는 모습이 아닙니까?
나가는 말
20년을 한국교회에서 교역자로 섬기면서 제자훈련을 중요한 사역으로 여기고 열심히 했지만 제 마음속에는 늘 공허함과 아쉬움과 한계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교지에 나와보니 비로소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성경을 다시 살펴보니 제자훈련은 선교사에게 요구되는 사역의 모델이었던 것입니다. 목회자에게 요구되는 사역의 모델은 제자훈련이 아니라 ‘가르침과 설교’ 그리고 ‘돌봄과 카운슬링’을 통해 그리스도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목회자들에게 ‘제자훈련’을 그만두고 ‘목양사역’에 집중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김광락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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