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묵상

가난에 대하여 II

등불지기 2013. 1. 22. 18:09

 

 

 

(앞의 글에 이어서 빈곤의 문제, 특히 심리적 빈곤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고 재정을 다스려나갈 것인지에 대해 글을 올려봅니다.)

 

 

 

받으려면 주어라 give to be given

 

광야학교spiritual wild life에서 배운 것 중에 하나가 재정적인 돌파구financial breakthrough를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와 간구에 후하게 반응하시는 분이시지만 먼저 우리의 믿음을 보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필요와 소원이 생겼을 때에 그것을 채워달라고 간구하면 언제나 믿음의 카드를 내밀어야 했습니다. YWAM 간사로 섬길 때였습니다. 큰 아이를 King’s kids라는 프로그램에 넣기를 원했습니다. 강의와 공동생활 그리고 해외전도여행까지 경비가 2백만원이 넘었습니다. 한 달 후원비가 30여만원인 저의 생활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모든 필요에 영광 가운데 넉넉하게 채워주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함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큰 아이가 그 프로그램에서 훈련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들었지만 문제는 어떻게 재정적인 필요를 채우는가였습니다. 기도하던 중에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젊은 간사님이 큰 아이 등록비로 쓰라고 하면서 5만원을 플로잉flowing(YWAM에서는 후원을 재정을 흘려보낸다는 의미로서 플로잉이라고 합니다)해주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제부터 차곡차곡 모아야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제 마음속에 이것을 다시 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5만원을 포기하나 거기서 거기였습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그것을 다시 다른 어려운 간사님께 흘려보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이후로 신기한 방법으로 재정이 잘 모아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무사히 해외로 전도여행을 보내는 것까지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YWAM 간사들의 삶에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중요한 원리는 이것입니다. 받으려면 먼저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필요와 소원을 아뢰며 채워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카드를 먼저 내밀어야 합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회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6;38)

 

농부의 마음을 가지라 Have the mind of farmers

 

선교지에 있으면서도 저는 동일한 원리를 삶속에 적용함으로서 많은 혜택과 응답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심을 때는 아깝고, 버리는 것 같고, 손해 보는 것 같지만, 그리고 심고 나서도 당장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아 괜히 그랬나 싶을 때도 있지만 나의 하나님께서는 3060100배의 결실로 후하게 갚아주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교훈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인내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준다고 곧바로 넘치게 받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신실하게 이루어지지만 그 과정 속에 우리의 믿음의 씨뿌림이 있어야 하고 또한 결실할 때까지 길이 참고 기다리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분명 믿음으로 심었는데 당장 하나님께서 반응하지 않는다고 조급하거나 불평하지 않아야 합니다. 심는 때가 있고 또한 심은 것을 거둘 때가 있는 것입니다. 심을 때도 내가 결정하지 않고 거둘 때도 내가 결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126:5,6)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6:9)

 

구제와 후원을 생활화하라 loving to support

 

후원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선교사도 늘 후원만 받으며 살 순 없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또 다른 사람을 후원할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에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1:19)는 약속의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의 말씀 이전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놓치면 안 됩니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분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4:15-18) 선교사로서 처음 파송받아 나올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정착금도 없었으니 더 그랬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전셋집 2천만원이 있었지만 선교지로 나올 때 모두 부모님께 드리고 나왔습니다. 선교지에 정착할 때 많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재정적으로 필요한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선교지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후원을 해준 교회가 있었고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결코 잊지 못합니다. 어려울 때 돕는 자가 진정한 친구라는 말이 맞습니다. 그들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저를 후원해주었던 저의 진정한 친구들입니다. 그들이 나중에 후원을 중지하더라도 그들이 저의 친구임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주님 앞에 서게 되면 그들의 이름을 주님 앞에 하나씩 나열할 것입니다. 선교지에서 저의 가족이 저녁마다 모여 예배를 드리는데 그때 마다 꼭 후원교회들과 후원자들을 떠올리며 주님 앞에 간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저희 아이들도 한국에 있는 후원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재정적인 빚은 아닐지라도 사랑의 빚입니다. 사랑의 빚은 기도에 대한 부담감으로 이어집니다. 혹시 누가 아프다든지 사업이 잘못 되었다든지 하는 소식이 들려오면 모두 제가 기도를 못해서 생긴 것같이 여겨집니다. 그러나 누가 잘 된다든지, 후원하는 청년이 좋은 사람 만나 결혼했다든지, 회사에서 승진했다든지, 사업이 잘 된다든지 하는 소식을 듣게 되면 모두 내 일처럼 기쁘고 얼마나 감사한지 덩실 덩실 춤을 추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와 같이 또 내가 누군가를 후원할 수 있다면 얼마나 큰 복일까요? 나를 참된 친구로 여겨주는 그런 친구들이 많은 사람이 진정한 부자가 아닐까요?

 

부요한 삶이란 What is an abundant life?

 

자신의 자산가치가 100억이나 1조원이 된다고 한들 그가 죽을 때 가져가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어쩌면 인생은 공평한 것입니다. 만일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불공평한 것이겠지요. 그러나 죽을 때 가져가는 것이 있습니다. 어려울 때 내가 도와준 친구들의 이름은 가져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내가 도와준 그 친구들은 나를 변호할 것이고 나의 자랑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자산가치가 아무리 천문학적인 가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내 편이 되어줄 친구들이 하나도 없다면 그는 정말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부요한 삶abundant life이란 어려울 때 나를 떠나지 않는 친구가 많은 사람입니다. 내가 파산했어도 내 곁을 지키며 머물러 줄 수 있는 친구들이 많은 사람입니다. 내가 파산해도, 내가 가진 모든 물질이 다 사라져버린다 해도 내 곁에 머물러 줄 수 있는 그런 친구를 내가 물질을 가지고 있을 때 만들어놓아야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16:9)

 

빈곤의 쇠사슬을 끊는 방법이 있다! Way to break the financial bondage

 

첫째,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아무리 재정적으로 곤궁하여도 피할 길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길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길을 내시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둘째, 사람에게 투자하십시오. 영원한 친구를 얻는 일에 재물을 심으십시오. 내가 파산하여도 내 곁에서 나를 변호할 사람을 만드십시오. 부자에겐 친구가 많습니다. 그러나 재물이 다 없어지면 친구들은 다 떠나갈 것입니다. 재물이 다 없어지더라도 떠나가지 않는 친구를 만드려면 어려울 때 도와주는 것입니다. 내가 죽을 때 한 푼도 가져갈 수 없지만 내가 후원한 친구들의 이름은 가져갈 수 있습니다.

셋째, 구제하면서 금식하십시오. 특히 빚이란 쇠사슬을 끊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효과적입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58:6-9) 이 말씀이 필요한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특히 빚과 소송의 덫에 걸린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말씀대로 순종해보십시오.

넷째, 심리적 부요함을 먼저 회복하십시오. 1천억대의 자산가라 할지라도 재정적으로 수동적으로 끌려다니는 사람보다는 자산이 없는 것 같지만 재정적으로 능동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더욱 부요합니다. 생활의 반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의 변화, 사고방식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심리적 빈곤에서 심리적 부요함으로 먼저 나아가는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영적전쟁이 일어나는 곳은 내 마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섯째,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가지십시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10:35) So do not throw away your confidence; it will berichly rewarded. 다른 사람의 필요와 소원에 맞추지 말고 자신의 필요와 소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필요와 소원에 하나님께 그 영광 가운데 풍성한 대로 채우시는 은혜로 반응하시는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눈물로 뿌린 씨앗에 대해 때가 되면 그 영광 가운데 풍성한 대로 거두게 하시는 은혜로 반응하실 분임을 신뢰해야 합니다. 내가 믿음으로 뿌렸기 때문에 이런 담대함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위하여 for the good fight of faith

 

제가 YWAM3년간 몸담고 있었을 때에 배운 용어가 재정싸움이란 단어입니다. 재정싸움은 또 다른 차원의 영적전투spiritual warfare인데, 내 삶의 주도권을 재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쥐고 주관하시도록 하는 거룩한 싸움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6:24)고 말씀하셨습니다. 빈곤의 문제는 일종의 전쟁과 같습니다. 누가 내 주인인지 결정하는 문제입니다. 내 삶속에서 누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지에 대한 치열한 갈등입니다. 내 필요needs와 소원wants그 영광 가운데 풍성한 대로 채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 재정에 관한 주권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통과 아픔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그리스도인은 단기선교를 가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못한다고 말합니다. 혹은 주의 일을 하고 싶은데 돈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자신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돈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노출하고 있습니다. “돈 때문에 선한 일을 못한다는 말은 돈이 선한 일을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다는 뜻입니다. , 다시 말해서 내 삶의 주도권은 하나님이 아니라 돈이 쥐고 있다는 말입니다. 재정싸움이란 내 삶의 주도권을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 쥐고 계시도록 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재정싸움에서 승리한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재정이 부족할지라도 나는 믿음으로 할 것입니다.” “그 일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에 비록 재정이 있어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하나님이 아니라 돈을 섬기고 있습니다. 하는 말을 보면 알 수 있고, 그 삶을 보면 하나님이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통치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보다는 돈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정싸움을 돕기 위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 What God is doing for us

 

우리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행사하려는 재정에 대해 우리가 전쟁을 선포하고 믿음으로 승리를 쟁취하도록 하기 위해 우리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재정을 쥐고 있는 줄 알았는데 재정이 나를 쥐고 지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는 일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돈을 섬기고, 따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진리의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는 일입니다. 또 한 가지 일은 내가 하나님처럼 신뢰했던 돈에 대해 실망 내지 환멸을 느끼게 하시는 일입니다. 재정이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언젠고 재정은 나를 배신하고 떠나갈 신뢰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일입니다. 이와같이 재정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면서부터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23:4,5) 하나님께서 내 삶속에서 이런 일을 행하실 때 그 동안 삶의 안식처와 주권을 내어주었던 재정에 대해 선전포고를 할 때입니다.

 

재정에 관해 [성품묵상]을 하라 Meditate on the financial principles of the Bible

 

묵상에는 네 가지 영역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성품묵상]입니다. 이 성품묵상은 자신의 생각과 생활을 변화시키는 매우 강력한 방법입니다. 특히 재정에 관해 올바른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갖기를 원한다면 이렇게 해보십시오. 성경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눈으로 빠르게 훑어 내려가면서 재정에 관한 상황이나 말씀을 만나게 되면 성경에 표시를 하고 노트에다가 기록하기 시작하십시오. 묵상노트에 장절과 본문을 손으로 기록한 다음 멈추어 생각해보십시오. 이 본문에서 재정에 관한 하나님의 성품과 원칙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혹시 느낀 것이 있다면 간단하게 기록해보십시오. 이런 식으로 성경을 쭈욱 읽어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좀더 단기간에 하고 싶다면 잠엄과 전도서만을 가지고 이렇게 묵상해보십시오. 이런 방식의 묵상은 반드시 내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에 큰 변화와 열매를 가져오게 할 것입니다. 재정에 관한 좋은 경건서적도 많이 있으나 이 방법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9:8)

 

받으며 살 것인가, 주면서 살 것인가?

내 삶의 주도권은 돈이 쥐고 있는가, 하나님이 쥐고 계시는가?

재정싸움에서 승리하기를 기원하며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

 

 

 

P.S.

 

제가 어릴 적 교회에서 신앙생활할 때 재정에 관해 들은 말씀이라곤 [십일조]에 대한 것뿐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재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어떻게 다루어야 하고,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구원'이나 '믿음'에 대한 가르침보다 '재정'에 관한 가르침이 훨씬 더 많고 또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말씀이 많은 것을 모고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교회에서 가르치고 설교하는 것이 실생활과는 상관이 없는 뜬구름 잡는 식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이제라도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서 실제적으로 가르치고 적용케 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은 실제적인 삶의 영역에서의 싸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또한 가장 실제적인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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