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설교

변증설교(5)-성경은 하나님의 책인가?

등불지기 2012. 2. 19. 19:54

 

성경은 하나님의 책인가?

 

본문: 요5:39,40

 

지난 시간 저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대해서 여러분과 함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맹신이 아니라 확신입니다. 맹신과 확신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무조건 믿으라고 해서 믿는 믿음이 아니라 분명한 증거와 확고한 심증을 근거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믿음인 것입니다. 만약 억지로 강요해서 믿는 것이라면 결코 참된 믿음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증거를 토대로 믿는 것이 될 때 참된 믿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맹신과 확신의 차이는 먼저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에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모든 믿음의 원칙입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믿을지 믿지 않을지를 결정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합니까? 먼저 믿을만한 지에 대한 신뢰할만한 정보를 수집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을 알아갈 때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맹신과 확신의 차이는 경험에 있습니다. 단순한 정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개인적으로 경험할 때 비로소 지식이 됩니다. 정보와 지식의 차이는 바로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인 것입니다. 세 번째 차이는 결과적인 것인데 시련을 통과하느냐의 차이입니다. 참된 지식은 시련을 통과함으로써 지혜로 발전합니다. 참된 기독교 신앙은 시련과 고난의 풀무를 통과할 때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살펴볼 영역은 우리가 다 가지고 있는 성경책에 관한 것입니다. 이 책이 과연 하나님의 책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세례문답을 했는데 그때 문답을 하시던 목사님께서 제게 “네가 구원받은 증거가 무엇인가?”라고 물어보신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어린 제겐 너무 충격적인 질문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성경에 대해서도 똑같이 물어야 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책이요, 하나님의 말씀이란 사실을 믿는다면 그 증거가 무엇인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신앙은 결코 풀무불을 통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신앙의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는다면 시련이란 불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매우 단순한 진리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성경이 하나님의 책이란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저는 증거가 필요 없습니다. 그냥 믿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나요?”라고 대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시련이 오기 전에는 증거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단이 등장하고, 거짓교사들이 출현하고, 세상이 온갖 철학과 교묘한 말들로 거짓말을 지어내어서 믿음을 무너뜨리려고 공격해올 때는 문제가 달라집니다.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내 믿음은 원수의 공격 앞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책인가? 그 증거가 무엇인가? 먼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고백에 대해서 짚고 넘어갑시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바르트란 신학자가 그런 식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책이 곧 하나님의 책이고, 이 책만이 하나님의 책이라고 믿습니다. 이 책의 어떤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다른 내용은 인간의 말씀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책 외에 다른 어떤 ‘은혜로운 책’도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없다고 믿습니다. 제가 그렇게 확신하는 증거는 이것입니다. 첫째, 성경책이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때 세상의 어느 책도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책은 없습니다. 어느 종교에나 ‘경전’이라고 하는 책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전 스스로 하나님의 책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장하고 있느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는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대표적인 구절만 예로 들어볼까요?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22:18,19절)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성경에는 스스로 하나님의 책이라고 주장하는 말씀들로 충만합니다. 다른 어떤 책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권위와 위엄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내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직간접적으로 주장하는 증거들이 내용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경이 하나님의 책이라는 것을 증명해준다고 믿습니다.

둘째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이유는 성경을 잘 읽어보면 성경 66권이 서로 일관성이 있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기록된 기간은 무려 1500년간이 넘습니다. 그리고 서경을 기록한 저자만도 40여명이 넘습니다. 각기 다른 시대와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쓴 책들이 서로 서로 통일성이 있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나름대로 경전이라고 주장하는 책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좋은 내용을 기록한 책들이 있습니다. 삼강오륜과 같이 사람들에게 윤리적인 교훈을 주는 책들도 있습니다. 무슬림이 믿고 있는 경전은 코란경입니다. 이외에도 많은 ‘경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십시오. 모두 한 사람이 한 시대에 기록한 책입니다. 성경과 같이 수천 년에 걸쳐서 수십 명의 저자들이 기록한 책은 오직 성경뿐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성경은 서로 놀라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성경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아주 강력한 증거입니다. 성경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진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역시 이 부분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경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39절) 성경의 일관된 주제, 하나의 핵심축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의 중심축은 바로 메시아인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 외에 어느 책에도 온 세상의 구주에 대해서 증거하는 책이 있다는 것을 들어보셨습니까? 성경보다 더욱 강력하게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에 대해서 전하는 책이 있습니까?

셋째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이유는 예언의 성취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언과 성취의 책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경은 탁월한 책입니다. 성경 말고 다른 어떤 책에서도 예언과 성취를 다루지 않습니다. 물론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같이 종말에 대해서 예고하는 책들이 있습니다. 동양에도 그런 책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성취된 증거들이 없습니다. 있다고 해도 그것은 매우 추상적이어서 입증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세요. 하나님은 앞으로 하실 일들에 대해서 미리 예고하시고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예고하신 대로 성취하신 일들은 성경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민족의 흥망성쇠에 대해서 수없이 많은 말씀들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나라와 도시에 대한 예언만 해도 1,500개가 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예언은 매우 구체적입니다. 그리고 성취되었음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것도 조작한 것이 아니냐고 비판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한 사람이 이 모든 책을 기록했다면 충분히 그러한 비판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저마다 다른 시대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다른 장소에서 기록한 책들의 모음이 바로 성경이란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렇다면 이 책이 매우 특별한 책이란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책이 신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신화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대학교에 다닐 때 신화에 대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진짜 신화가 무엇인지 알면 결코 성경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신화와 성경이 무엇이 다른지는 신화를 읽어보고 난 다음 성경을 읽고 서로 함께 비교를 해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책을 신화라고 비판하는 사람은 신화가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는 사람입니다. 제가 볼 때 신화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성경이 신화가 아니라고 주장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신화와 성경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가장 대표적인 차이는 사실성의 차이입니다. 신화는 역사적인 사실성이 없습니다. 신화를 읽어보세요. 그리스 신화를 예를 들어봅시다. 신화는 구체적인 지명과 인명과 연대기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역사적인 사실을 추정해내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물과 장소와 시간에 대해서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성경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성경책을 지어낸 이야기라고 한다면 성경책에는 구체적인 지명이나 인명이나 날짜와 시간에 대한 언급이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없어야 마땅합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사람들이 성경에 대해서 얼마나 지독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고고학적인 발견들이 이 책이 얼마나 정확한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화는 고고학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넷째로, 성경책이 아니면 그 어디에서도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은 다른 어떤 책들보다 독특합니다. 그리고 탁월합니다. 성경책은 구조나 양식에 있어서 매우 탁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 이 책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성경책과 같이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만물의 기원, 세상의 기원과 역사의 기원, 인종과 문명의 기원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는 책은 없습니다. 성경책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성경책은 마치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간들에게 알려주시려고 하시는 열정을 느끼게 해줍니다. 성경책은 사람의 기원과 본질에 대해서 매우 명확하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책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것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죄에 대해서, 구원에 대해서, 성경책은 매우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성경책은 철학서가 아니라 역사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책을 보다가 오해와 편견을 갖게 되는데 그 이유는 철학서라는 관점으로 성경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사서라는 관점으로 성경을 보면 상당 부분의 오해가 풀리게 됩니다. 다른 경전들은 거의 다 한 사람이 한 시대에 기록했기 때문에 역사서라기보다는 철학서나 자기 이론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모든 책들 중에서 유일무이하게 역사적인 책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잘 보십시오. 성경은 역사적으로 진실하게 기록된 책입니다. 역사적으로 기록한 책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일어난 사건인 양 기록했다고 함부로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고고학적인 발견 앞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습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지지 않았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여리고성이 무너진 흔적 앞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존재하지 않은 인물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실존인물었다는 고고학적인 증거 앞에 침묵할 수밖에 없습니다. 출애굽 사건이 후대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라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에 가보십시오. 그리고 이집트와 이스라엘 땅을 한번 여행해보면 침묵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한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해서 기록한 책이란 점에서 다른 어떤 책과는 구별되는 책입니다. 저는 이것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또 다른 강력한 증거라고 믿습니다. 왜냐면 성경책이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며, 분명한 사실에 근거해서 우리가 그분을 신뢰할 수 있기를 바라고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렇게 예고하고 예고하신 대로 성취하면서 역사를 이끌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성경이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한 책이라는 점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에 대한 증거입니다.

여섯째, 성경책이 인류역사에 끼친 영향력을 보고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란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성경책이 개인에게 들어갔을 때 개인이 변화되었습니다. 성경책이 가정에 들어갔을 때 가정이 변화되었습니다. 성경책이 나라와 민족에게 들어갔을 때 성경책은 나라 전체를 변화시켰습니다. 성경책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책은 역사상 결코 없었습니다. 성경책은 아직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입니다. 성경책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수를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일곱째, 성경책이 하나님의 말씀이란 강력한 증거는 문헌적인 증거입니다. 성경책은 수천 년을 지나오면서 내용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내용이 온전히 보전되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수많은 사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오래된 그리스 로마 신화인 호머의 일리어드와 오디세이와 같은 책도 사본이 500개가 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책은 무려 5,000개가 넘습니다. 사본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성경책이 하나님의 말씀이란 강력한 증거입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이토록 수많은 사본들을 학자들이 서로 비교해본 결과, 내용상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경책이 온전하게 우리 손에 들어올 수 있도록 얼마나 세심하게 간섭하시고 보호하셨는가를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손에 원본은 없습니다. 원본은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걱정도 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원본이 없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사본들을 조사해보니까 그렇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본을 번역한 번역본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번역할 때 쉬운 성경으로 번역할 수 있고, 개역개정판으로 번역할 수 있고, NIV로 혹은, NASB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심하십시오. 우리 손에 있는 번역본 역시 원본에 충실하게 번역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성경을 번역해줄 때는 ‘눈같이 희다’는 식으로 번역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프리카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다른 식으로 표현하여 번역했다고 해서 진리가 손상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덟째, 외경이나 위경이 성경이 하나님의 책이란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외경이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할 수 없는 문학서 내지는 경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위경이란 저자를 흉내낸 위작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책들과 66권 성경과 구별시켜주는 것이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경우 선지자성이고, 신약성경의 경우 사도성이라고 합니다. 성경이 기록된 당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저자를 하나님의 선지자나 사도로 인식했는가, 그리고 그 책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했는가가 매우 중요한 기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떤 책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여도 그 책이 처음 나올 당시 교회들이 보편적으로 어떻게 반응을 보였는가가 매우 중요한 기준입니다. 그리고 그 책의 내용에 있어서 선지자나 사도의 권위가 있는가가 내용상으로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신약성경의 경우 사도성이 매우 중요한 기준입니다. 예를 들어 요한의 제자 폴리캅이나 클레멘트의 경우 그들이 쓴 서신들은 성경에 포함시키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사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누굽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거나 혹은 그들과 동역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기준은 매우 엄격하고 까다롭습니다. 만일 여기 사도 바울이 쓴 것이라고 주장하는 어떤 서신이 있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일단 연대를 측정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당시 교회의 인식을 문헌적으로 조사해보아야 합니다. 그러한 책이 언제 유포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미 확정된 사도들의 책들과 비교해보아야 합니다. 이런 방법을 통해서 외경인지, 위작인지 가려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경과 위경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 손에 들려진 성경 66권이 얼마나 보배로운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간접적으로 증명해준다고 하겠습니다. 요즘 어떤 분이 계시 받아 기록한 책이라고 출판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런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연대와 내용을 따지고 보편적인 교회의 평가를 보면 그것이 아무리 은혜스럽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책을 쓴 사람이 사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책의 내용을 성령께서 친히 감동했다는 증거도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책이 하나님의 책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성경책을 주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어둠에 갇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당신을 드러내주셔야만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나타내주시는 정도만큼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책은 인류에게 특별히 의미가 있는 책입니다. 성경책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책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를 안내하는 책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보여주면 믿겠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베드로후서 1장 15절에서 21절을 읽어보십시오. 베드로는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함께 생활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놀라운 기적과 체험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심지어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영광스럽게 변화하신 모습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입니다. 그런 베드로가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것보다 더 확실한 것이 바로 성경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책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 사람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성경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을 안다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보이는 글도 믿지 못하는데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단 말입니까? 성경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진리를 알지 못하면 그 어디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알 수 있단 말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성경책을 사랑하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책을 먹으십시오. 내 것으로 만드십시오. D.L.무디가 성경에 관해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성경은 정보(information)를 위한 책이 아니라, 변화(transformation)를 위한 책이다.” 성경은 우리의 지식적인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기록된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의 인격과 삶의 전체를 변화시키기 위해 기록된 책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아는 것에서 그치는 그런 책이 아니라 믿고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참조해도 되는 그저 그런 책이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가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고 가르치고 전수하고 보호해야 할 그런 보배로운 책입니다. 이 책을 먹으십시오. 그래서 여러분 자신의 것으로 만드십시오. 이 책이 여러분의 뱃속에 있도록 하십시오. 읽고 듣고 흘려보내지 말고 잘 씹고 소화시켜서 자신의 것으로 삼으십시오. 그럴 때 이 말씀이 여러분 안에서 어떤 지혜와 능력을 주는 지 경험해보게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넷째, 하나님의 책을 사용하십시오. 활용하십시오. 사단은 우리가 이 책에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훼방합니다.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못하게 거짓말합니다.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고 업신여기게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호해야 할 뿐 아니라 성경을 가지고 원수들에게 공격하는 것도 배워야 합니다. 성경은 수비를 위한 책이 아니라 공격을 위한 책이란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공격적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이 성경책을 재발견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도록 하십시오. 성경을 가르치고 전파하고 성경을 가지고 영적전쟁에 임하도록 하십시오. 성경은 여러분이 세상에서 넉넉히 이기고 개가를 부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이 책이 얼마나 놀라운 책인지, 그리고 어떻게 보배로운 책인지 경험하여 아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