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에 관하여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나무니라.”(잠13:12) 어떻게 하면 소원이 이루어지는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인생이 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이번에는 소원(wishes)에 대해서 묵상해보았습니다.
소원보다는 나 자신이 더 소중하다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어도 악인의 소망은 끊어지느니라.”(잠10:28)
사람은 누구나 소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마음에 품은 소원이 이루어질 때 그 즐거움이 얼마나 클까요? 그리고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혹은 더딜 때 그 안타까움은 또 얼마나 깊을까요? 그 즐거움과 좌절감은 경험한 사람만이 알 것입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한 가지 진리가 있는데 소원의 성취여부는 결코 내 소원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얼마나 선한 것인가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소원을 품고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소원 그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소원을 품을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소원이 선하고 아름다울지라도 그 소원을 담는 그릇인 내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이루어지지 않을테니까요. 무엇을 담을 것인가 보다는 어디에 담을 것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그룻만 준비되면 내용을 담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러나 그릇이 준비되지 않으면 내용을 담으려고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내용(소원)만 생각하지 그릇(자기 자신)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복을 받으려고 애쓰기보다는 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우선입니다.
죽음을 뛰어넘는 소원
“악인은 죽을 때에 그 소망이 끊어지나니 불의의 소망이 없어지느니라.”(잠11:7)
스티브 잡스는 17살 때부터 매일 거울을 바라보면서 자신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하려는 그것을 하려고 할 것인가?”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사람은 여러 가지 욕망과 소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자신이 가진 그 소원과 욕망 때문에 즐거워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의기소침해지기도 합니다. 소원wishes과 욕망desires이 나를 지배하고, 나를 이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소원과 욕망을 지배하고 이끌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마음의 중심을 바로 지키는 것이 소원을 품고, 소원을 성취하는 삶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내가 죽는다면...’이라고 가정해보십시오. ‘내일이 오지 않는다면...’이라고 한번 가정해보십시오. 그러면 내가 가진 소원이 참된 소원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가진 소원은 죽음을 뛰어넘는 것인지 점검해보십시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마음의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되고 성취와 좌절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믿는 자들에게 참된 소망이 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15:19)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모시고, 동행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참된 소망이 주어졌습니다. 부활의 소망입니다!! 이 소망이 없다면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참으로 불쌍한 존재입니다.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 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이 소망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소망hope으로 다른 소원wishes과 욕망desire을 다스려야 합니다. 만일 선물로 주어진 이 소망을 잊어버리고 만다면 우리는 욕망으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방향을 잃고 방황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단지 이 세상에서의 성공과 출세와 행복만을 소망한다면 이것보다 더 불쌍하고 비참한 삶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궁궐에서 살아야 할 왕자가 거지 옷을 입고 저자거리와 사창가를 헤매는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어떤 소원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인가 고민하기 이전에 이미 주어진 보배로운 선물인 이 절대소망을 잃지 않도록 굳게 붙잡아야 할 것입니다.
입술을 제어하라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잠13:2)
소원을 성취하는 즐거움을 경험하는 인생이 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자신의 입술을 제어하는 훈련부터 받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사람이 있고,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복이 주어졌지만 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주어진 복을 찾아서 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복을 받으려고 노력하지만 헛수고만 하는 사람이 있고, 이상하게도 복이 굴러들어오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말에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함부로 말을 하고, 후자의 경우는 말을 함부로 내뱉지 않습니다. 우리는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타고 났음에도 불구하고 장자로서 누려야 할 복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말 때문입니다. 에서는 배고프기 때문에 말을 쉽게 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과 상태에 충실하게 말을 내뱉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함부로 말을 쉽게 내뱉는 그런 사람을 친구로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을 쉽게 내뱉는 그런 사람과 어울리다보면 나도 모르게 말에 실수를 하기 쉽습니다. ‘그냥 내뱉은 말일 뿐인데 그게 내 삶에 무슨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이렇게 안일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 한마디가 굴러들어온 복을 차버릴 수 있습니다. 에서처럼 말입니다.
게으름을 원수로 여기라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잠13:4)
소원을 성취하는 즐거움을 알려면 무엇보다 게으름을 미워하고 증오해야 합니다. 먼저 개념을 정확히 해야 하겠습니다. 게으름이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게으름이란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반대로, 부지런함이란 바쁘게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부지런함이란 해야 할 일을 먼저 하는 것입니다. 24시간을 42시간처럼 사는 것이 근면 성실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 소명으로 주어진 일, 주님께서 하라고 분부하신 그 일에 눈과 마음을 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부지런한 인생일 수 있고, 바쁘게 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게으르고 나태한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늘 마음에 소원을 품고 살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 푸념하고 좌절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 게으름입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자신이 품은 소원과 욕망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갑니다. 반면 성취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자신의 소원보다 자신에게 하늘이 부탁한 일이라고 여기는 일에 눈과 마음을 두고 살아갑니다. 소원을 이루며 살려면 무엇보다 부지런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 소원에 눈과 마음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서 내게 부탁하신 그 일에 눈과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소원을 이루는 인생이 되려면 무엇보다 게으름과 나태함을 최고 최대의 원수로 여겨야 합니다.
친구를 잘 선택하라
“소원을 성취하면 마음에 달아도 미련한 자는 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하느니라.”(잠13:19)
소원을 성취하는 즐거움을 경험하는 인생이 되려면 우리는 무엇보다 친구를 잘 선택해야 합니다. 내가 쉽게 마음을 열어 보이며, 내 마음에 있는 것들을 함께 나누고 말을 나누는 대상이 누구인지 돌아보십시오. 소원을 성취하는 인생이 되려면 실패의식과 좌절감에 헤매이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취감을 누리며 목표의식이 뚜렷하며 삶의 목적과 목표의식이 분명한 사람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위의 잠언 본문 13장 19절 다음 2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잠13:20) 우리는 부정적인 입술을 가진 사람, 실패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을 친구로 두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인생과 도무지 대화도 나누지 말라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제가 어릴 적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 하려는 소원을 품은 학생은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을 친구로 사귀려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실패와 결핍에 그 사고방식이 사로잡힌 사람들입니까? 그렇다면 일단 거리를 두십시오. 미워하라는 뜻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되 그들의 사고방식이 내 삶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거리를 두라는 뜻입니다. 어쩌면 좀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소원이 더디 이루어지는 것 때문에 고통스럽습니까? 왜 내 삶은 성취의 즐거움이 없고 좌절감이 클까라고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제 조언은 이것입니다. 아무도 당신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는 낯선 땅으로 이사를 가십시오. 거기서 새로 시작하십시오. 맹모삼천지교라는 그런 말이 있습니다. 아들의 성공을 위해서 삼천 번 이사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사를 해서라도 친구와의 관계를 새롭게 해보십시오. 부모와 함께 살면서 부모의 좌절감이 그래도 나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부모의 곁을 멀리 떠나 하루 빨리 독립하는 것도 성취하는 인생이 되기 위해 필요한 조치입니다.
소원인가, 욕망인가?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행5:38,39)
내가 품은 소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내 욕망이 만들어낸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참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간단하게 풀릴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원이라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친히 이루실 것입니다. 반면 내 욕망이라면 이루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이루어지지 않아야 하며 이루어지지 않도록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이루어지기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드리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품은 소원을 이루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할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소원성취를 위해 금식도 하며 작정기도도 합니다. 이런 식의 기도는 자칫 자신의 신앙생활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소원성취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금식도 하며 작정기도도 해야 할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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