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에 관하여
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려본 적이 있으신가요? 기다리다 지쳐서 힘들 때가 있으신지요? 기다리는 기술art of waiting에 대해서 묵상해보았습니다.
기다리는 시간
우연히 기다림에 관하여 통찰력을 주는 멋진 글을 만났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기다리는 마음보다 더 깊은 것임을 깨닫게 해주는 글입니다.
시간은..
시간은 기다리는 이들에게 너무 느리고
걱정하는 이들에겐 너무 빠르고
슬퍼하는 이들에겐 너무 길고
기뻐하는 이들에겐 너무 짧다네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에겐 그렇지 않지
-헨리 반 다이크-
하나님의 사람들의 ‘기다림’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히6:16)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을 경외하였던 믿음의 사람들의 삶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한 마디로 ‘오래 참고 기다리는’ 삶이었습니다. 아담은 ‘여자의 후손’을 기다린 사람이었습니다. 노아는 100년을 기다리며 방주를 지었습니다. 노아는 또한 500여년을 기다린 끝에 세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자녀에 대한 약속을 받은 후에 무려 25년을 기다렸습니다. 이삭은 20년을 기다려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야곱 역시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오래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요셉은 17세에 하나님을 만난 후 자신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온전히 깨닫기까지 23년을 고통의 연단 속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양떼를 치며 40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다윗 역시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에게 미움과 핍박과 추격을 받으면서 오랜 세월을 광야에서 전전긍긍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믿음이란 기다릴 줄 아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기다림’
“네가..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롬2:4)
우리는 종종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를 잘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간절한 기대와 기다림을 관망하시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의 죄악이 관영할 때까지 400년을 기다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선지자들이 예고한 이후 오실 때까지 400년을 기다리셨습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부활승리 이후에 40일을 기다리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더욱 간절히 기다리시는 분이심을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 때문입니다. 우리가 온전한 구원을 얻기 위해서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다가오기를 그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고 계시지만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이유는 아직도 회개해야 할 영혼들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회개해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에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온전히 구원을 받기 위하여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과 유익을 위하여 우리 자신보다 더 간절히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다리는 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창15:4)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참고 기다렸습니다. 그 약속은 ‘아들’에 관한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에 대한 증거로 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그에게 보여주셨습니다.(창15:5) 아브라함은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바라볼 때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매일 참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 아내 사라의 몸 상태를 보며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도 혹시 하며 기다리다가 그 아내 사라가 다음과 같이 하는 말에 그만 믿음이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데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창16:2)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10년을 기다렸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믿음을 다잡곤 했지만 결국 그 아내의 말 한 마디에 타협하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 아들을 낳긴 하였지만 그 아들은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며 주시려던 ‘약속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로 인해 아브라함의 가정과 인류 역사 가운데 큰 갈등과 고통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무엇인가를 간절히 기다리다가 지칠 때 어떤 합리적인 이유를 대며 현실과 타협하려고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럴듯한 변명으로 타협한 그것이 우리 삶에 또 다른 고통과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완전함을 이루라
아브라함이 가정에 생겨난 갈등과 고통으로 힘들어할 때에도 하나님은 13년을 기다리신 다음 아브라함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 우리는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기다림에 지쳐서 그럴듯한 변명과 합리적인 이유를 가지고 타협함으로서 ‘완전함’을 잃을 수 있습니다. 기다림에 지친 자녀들에게 하나님은 ‘완전함’을 이루라고 말씀하십니다. 완전함을 이루기 위해 두 가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란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둘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말씀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며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의 믿음이 완전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완전하여 질 때 비로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삶속에 개입하셔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것은 우리의 불완전한 믿음이 완전하여 질 그 순간을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라의 믿음이 어떻게 완전하여졌는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By faith Abraham, even though he was past age—and Sarah herself was barren—was enabled to become a father because he considered him faithful who had made the promise.(히11:11)
인내를 이루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Perseverance must finish its work so that you may be mature and complete, not lacking anything.(약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때를 채우려면 인내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마치 농부가 땅을 기경하고 씨앗을 뿌리고 추수할 때를 기다리면서 참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씨를 뿌린 후에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땅을 뒤엎어버린다거나 이제 겨우 싹이 나왔을 뿐인데 싹둑 잘라버린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씨를 뿌렸으면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땅을 기경하고 씨를 뿌리는 것은 우리가 할 일입니다. 그리고 기다리는 것도 우리가 할 일입니다. 문제는 씨를 뿌리지 않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뿌리지도 않고 거둘 것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이 없을 것입니다. 무엇인가 놀라운 것이 내 삶 가운데 일어날 것을 기다리기보다 나가서 씨를 뿌리는 것이 더 지혜로운 일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뿌리지도 않은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다리는 것을 당장 멈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당장 나가서 씨를 뿌리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기다리지 말고 그 무엇인가를 위해 행동해야 합니다. 내가 확실히 뿌렸다면 그 다음 내가 할 일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뿌리는 일은 내가 하는 일이고 자라게 하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열매 맺게 하십니다. 결실기와 추수기는 내가 결정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만이 결실할 때를 결정하십니다. 하나님의 때를 온전히 기다리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믿음으로 뿌렸으면 반드시 거둘 것을 믿어야 합니다.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공의를 부린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잠11:18)
낙심하지 말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사람들이 낙심하는 이유는 조급하기 때문입니다. 선한 농부가 되려면 조급함을 우선 버려야 합니다. 조급하기 때문에 낙심하고, 낙심하기 때문에 중도에 포기해버립니다. 포기해버리면 결실을 맛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조급하고 낙심하는 이유는 이것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보다 자신이 설정한 자신의 때time을 믿는 것입니다. 자신이 설정한 자신의 때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신의 시간표를 지워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때를 알 수 있을까요? 그러나 아쉽게도 하나님의 때는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하나님 앞에서 깨어 있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눅18:1) 하나님 앞에서 항상 깨어 있으며 기도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때가 이를 때까지 낙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열심히 사랑하라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창29:20)
기다리다 지친다면 내 안에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이 기다리는 것은 정말 피곤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기다리는 것은 쉬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기다리다 지칠 때, 지쳐서 낙심이 될 때, 낙심이 되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그 때에,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번 돌아보십시오. 지금까지 내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십시오. 내 안에 참된 사랑이 있는지, 내 마음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인지 자신의 마음에 사랑이 거하는지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십시오.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기다리는 것이 수월해집니다. 기다리는 것도 피곤하고 곤한 일이 아니라 아주 설레고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데리러 오실 그날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날을 기다리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 날을 기다리는 것이 짜릿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7,8) 기다리다 지쳐 있습니까? 지쳐서 낙심이 됩니까? 낙심이 되어서 포기하고 싶습니까? 내가 뜨겁게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만약 내가 주님을, 아니 보이는 형제를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기다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와 같은 일입니다. 기다리는 기술은 다름 아니라 회복된 사랑입니다.
앉아서 기다리지 말고 나가서 무엇인가 하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벧전4:9)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기대와 소원을 가지고 주님 앞에 아룁니다. 문제는 아뢰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간절히 부르짖고 기도하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무엇인가 굉장한 일이 우리 삶에 일어나기를 기도하며 기다리지 말고, 무엇인가 놀라운 일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밖에 없도록 나가서 땅을 기경하고 땀흘리며 씨를 뿌려야 합니다. 저는 선교지에서 지내면서 문제도 많고, 소원도 많고, 기도제목도 많은 사람입니다. 어떤 것을 놓고 주님 앞에서 간절히 소원하며 기도하며 기대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하다보면 마음 깊은 곳에 어떤 확신이 주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속으로 ‘아, 이것은 이루어지겠구나’ 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 확신은 오감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확신은 오감과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오래 머물며 어떤 기도제목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어떤 확신을 주시는 것을 직감으로 인지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가 바로 일어날 때이고, 나가서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그럴 때 제가 즐겨 했던 일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손님대접’입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님을 대접하듯이 융숭하게 대접하는 것입니다. 나의 정성에 사의를 표하지 않았다고 섭섭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올바른 손님대접이 아닙니다. 감사하다고 돈을 준다면 즉시 돌려줍니다. 왜냐면 손님대접은 하나님께서 제게 이미 응답해주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집에 손님을 모시고 숙식을 제공하며 대접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올 때마다 ‘아, 하나님의 약속이 현실이 될 때가 다가왔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손님대접은 기다림을 끝낼 때가 되었음을 말해주는 Sign입니다.
기다림을 끝내는 손님대접
아브라함의 생애를 자세히 보십시오. 그의 믿음이 완전해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직접 심방하셨습니다. 비록 아브라함은 하나님이신 줄은 알아보지 못했지만 아브라함이 완전한 믿음으로 한 일은 하나님처럼 극진히 대접한 것입니다. 그 손님대접 이후에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을 비로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식과 세우리라.”(창17:21) 제가 선교지에서 경험한 응답의 비결은 ‘손님대접’입니다. 주님처럼 극진히 섬기고 대접하면 항상 하나님이 기도 중에 주신 확신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앉아서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벌떡 일어나십시오. 그리고 당장 나가서 뜨겁게 사랑할 영혼들을 찾아나서 보십시오. 주님처럼 극진히 섬기고 대접할 이들을 찾아나서 보십시오. 그러면 확신이 현실이 되고, 약속은 성취가 될 것이고, 모호했던 하나님의 때는 구체적인 때가 되어 다가올 것입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 믿음으로 적극 행동하는 것은 또 다른 기다림의 기술art of waiting입니다. 잘 기다리는 사람은 단지 기다리는 것만이 아니라 나가서 적극적으로 섬김으로써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남아프리카에서,
김광락 선교사 올림..
P.S.
If you wer waiting for a SIGN, This is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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