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리즘을 조심하라
“...너는 아이 성 뒤에 복병을 둘지니라 하시니”(수8:2)
예전에 승리했던 방식을 지금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연속적으로 승리를 거둘 수 있다면 타성에 젖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전에 이렇게 하니 잘 되었다고 하면서 이번에도 이렇게 하면 잘 될거라고 단정짓지 말아야 합니다. 승리를 위한 삶의 원칙은 매너지름을 조심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창조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언약은 지켜져야 한다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용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올라가니라.”(수10:7)
기브온 거민은 교묘한 방법으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음으로써 살아남았습니다. 이제 기브온 거민은 미움을 받아 다른 민족들로부터 공격을 받게 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이 자신들을 거짓말로 속여서 언약을 맺었기 때문에 그들이 당한 위기를 불난 이웃집 구경하듯이 구경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군사를 거느리고 기브온을 보호하기 위해 전쟁터로 출정하였습니다. 이 장면에서 보여주는 것은 참된 언약의 정신입니다. 비록 거짓에 속아서 언약을 맺었을지라도 언약은 하나님 앞에서 한 거룩한 약속이기에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언약의 정신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 약속은 지켜져야 합니다.
계약 vs. 언약
그러나 세상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언약 또한 알지 못합니다. 세상이 이해하는 것은 오직 조건적인 계약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유익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고 유익을 가져다주지 않으면 언제든지 파기할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은 승리하는 삶의 원칙이 아닙니다. 참된 승리는 계약적인 것이 아니라 언약적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 약속은 비록 속아서 한 것일지라도 지켜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 또한 하나님 앞에서 한 약속은 신실하게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우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수10:14)
배신했다고 미움을 받아 공격을 받게 된 기브온 족속은 원래 가나안 족속이었고 원래 멸망하도록 예정된 족속이었습니다. 게다가 거짓으로 언약을 맺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얼마든지 핑계를 대고 기브온이 위기를 만났을 때 가만히 있을 수 있었지만 언약의 관점에서 보면 기브온 족속은 이제 더 이상 가나안 족속이 아니라 이스라엘 족속의 일부가 된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기분 나쁘다고 해서 행동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괘심하다며 기브온이 위기를 당할 때 내버려둘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언약을 어기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위하여 싸우셨다”고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이스라엘은 기브온 족속을 말하는 것이고, 기브온 족속을 위하여 싸움에 나선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언약적인 전쟁입니다. 언약을 지키기 위한 전쟁은 곧 하나님을 위한 전쟁이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곧 하나님 자신의 전쟁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전쟁에는 반드시 승리를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공부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업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한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다는 말은 우리의 유익이나 우리의 감정을 따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일은 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 됩니다. 그 일이 하나님의 일이 되면 하나님이 싸우시는 일이 되고, 그 일은 반드시 승리를 거두게 되어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싸우게 하십시오. 그것이 승리하는 삶의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은혜 vs. 행위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의 기업을 제비 뽑아..”(수14:2)
정복한 땅을 제비 뽑아 분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많이 수고한 지파에게 좋은 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제비를 뽑아 분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공평하게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훗날 다윗은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군인이나 후방에서 짐을 지키고 있던 늙은 군인이나 군인 가족에게도 동일한 상을 분배하는 원칙을 정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의 이러한 은혜의 원칙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은혜로 구원을 받은 자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은혜를 항상 기억해야 하고 은혜를 행위로 바꾸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은혜에서 행위로 나아가야 합니다. 결코 행위에서 은혜로 나아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전자는 은혜주의, 후자를 율법주의라고 합니다. 율법주의는 승리하는 삶을 살려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조심해야 할 원수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율법주의, 인본주의, 기복주의
승리하는 삶을 살려는 그리스도인들이 경계해야 할 세 가지 위험한 함정이 있습니다. 율법주의, 인본주의, 그리고 기복주의입니다. 율법주의란 하나님의 자원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의를 자원으로 삼는 것이고, 인본주의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자기 자신의 방법을 의지하는 것이고, 기복주의란 하나님의 목적이 아닌 자기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삶의 태도attitude를 구성하는 중요한 축axis입니다. 자원source의 관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를 붙들어야 하고, 방법method의 관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을 붙들어야 하고, 목적purpose의 관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목적이 아닌 하나님의 목적을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거둔 승리가 일시적인 승리가 아니라 연속적인 승리가 되기 위해 늘 주의하고 경계해야 할 세 가지 태도입니다.
은혜에서 멀어지지 말라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ㅇ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3:3)
신앙인으로서 늘 깨어서 주의해야 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 은혜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큰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량한 은혜를 이미 우리에게 남김없이 다 부어주셨습니다. 그 말은 우리가 은혜를 받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사모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은혜를 받기 위해 우리가 우리의 노력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은혜에서 멀어지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신의 수고와 노력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고 애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다 주셨고 또 지금도 주시고 계시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되게 하는 것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입니다. 원수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게 하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우리를 설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은혜를 사모하고 갈급하되 은혜를 노력으로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취하는 것입니다.
충성이란 보배로운 성품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수14:8)
광야생활뿐 아니라 가나안 승리의 생활에서도 갈렙보다 더 성공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갈렙이 광야뿐 아니라 가나안에서도 항상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충성”하였기 때문입니다. 충성이란 성품은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두드러지는 보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셨다고 선포하셨을 때에도 그 의미는 하나님 아버지께 충성하셨다는 의미였습니다. 승리와 충성은 동전의 앞뒤면과 같이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충성(忠誠)이란 문자 그대로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입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고민하고 있던 여호수아에게 ‘말씀묵상에 전념’할 것을 요구하신 것과도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의 중심에 두지 않고서는 결코 승리하는 삶을 이뤄낼 수 없습니다. 갈렙은 40년 광야생활뿐 아니라 가나안땅에서의 무수한 전쟁을 치르는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 마음에 두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승리하는 삶의 원칙은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된 성품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강해야 한다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수14:11)
문제는 속사람이 강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조건의 신체와 환경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속사람이 연약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갈렙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최고령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노인대접을 받으며 편하게 살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의 육체보다 그의 속사람이 얼마나 강건한지를 보십시오.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우리는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그 때에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에 사로잡혀 살았었는데...그런데 지금은...”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과거를 자랑하는 우리의 말들은 이미 우리의 속사람이 연약해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속사람이 강건한 사람은 미래지향적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세요. “오직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과거에 받은 은혜, 과거에 경험한 체험, 과거에 해낸 업적 등은 등 뒤로 던져버리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과거에서보다 더 큰 은혜를 경험할 수 있고 또 더 큰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속사람이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속사람이 건강한 사람은 미래를 말하기 좋아합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있습니다. 앞으로 할 일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의 속사람을 비로소 강건하여집니다. 그렇게 건강한 속사람을 가지십시오. 그것이 승리하는 삶의 원칙입니다.
개척정신을 가지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수14:12)
최고령의 나이에, 리더격인 유다지파의 두령으로서 남은 여생을 편히 쉬면서 편안히 지낼 수 있지만 갈렙은 편안한 삶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갈렙은 또 다른 도전을 계획하고 있고 또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개척에 대한 부담을 가집니다. 모험심도 약해지고 점점 안정과 안전을 추구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갈렙이 진정 추구한 것은 개척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은혜와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고자 하는 열망이 그로 하여금 장대한 아낙 자손들이 거하는 헤브론 산지를 요구하게 만든 것입니다. 선교지에서 사역하다보면 타성에 젖기 쉬운 상황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기적으로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개척하는 일을 하게 되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항상 긴장하게 되고 기도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과 서로 경쟁하면서 1등이 되려고 열심히 고지를 향해 올라가는 것보다 남들이 잘 하지 않으려는 일, 남들이 잘 가지 않으려는 곳으로 성큼성큼 발을 내딛는 일은 자신을 살아있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승리하는 삶의 원칙은 개척정신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수14:14)
진정으로 승리하는 삶이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을 끝까지 추구하는 삶입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끝이 전부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은 더 중요합니다. 아니 마지막은 사실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을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인생일까요? 마지막까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모습이라면 이보다 더 멋진 삶, 승리한 인생이 또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셨을 때 예수님의 삶은 성공한 인생이요 진정으로 승리한 인생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십자가 죽음 앞에서 그렇게 당당하게 외친 인생이 없기 때문에 그를 지켜본 백부장은 그를 ‘진정 의인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승리하는 인생의 마지막 원칙은 ‘온전히to the end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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