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부활했는가?
본문: 고전15:12-19
오늘 이것만큼은 꼭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신앙은 개념이 아니고 사실이다!” 이 말은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방황을 잠재우기에 충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개념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사실에 관한 문제임을 깨닫는 순간 단번에 자유할 수 있습니다. 특히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니던 사람이 어느 날 자신의 신앙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되고 방황하게 된다면 바로 이 문제 때문입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한낱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방황이 언제 끝나는가? 기독교 신앙의 역사성을 발견하는 순간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그런 분이 있다면 이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믿는 바는 어떤 개념(concept)이 아닙니다. 사실(fact)입니다. 개념의 문제로 더 이상 고민하지 마십시오. 사실 여부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과 다른 종교의 신앙을 구별시켜주는 특징입니다. 기독교만이 사실을 강조합니다. 기독교같이 고증이나 문헌적 증명이나 사본비평을 강조하는 종교는 없습니다. 왜냐면 기독교 신앙은 사실을 중요시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그럴듯하고 이성적이며 이해될만한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그것이 과연 사실인가, 실제로 일어난 일인가가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자유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기독교 신앙은 역사적 사실과 별개라고 주장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들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는데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꾸며낸 ‘개념 덩어리’(concept)이라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 부류는 성경에 기록된 것은 역사적 사실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이 부류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만약 여리고 성이 실제로 무너지지 않았다면 저는 사실이 아닌 개념을 믿는 것이 됩니다. 저는 그렇다면 믿음을 포기하겠습니다. 저는 기독교 신앙은 역사적 사실 위에 서 있다고 확신합니다. 만약 성경에 기록된 것 중에 어느 하나라도 사실이 아니라면, 역사성이 없다면 믿음을 포기하라고 저는 여러분에게 도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에 나갔을 때 도전받는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한낱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러분의 믿음의 기반을 흔들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기독교 신앙은 개념이 아니라 사실 위에 서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논리로 싸워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기대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세상에서 수세에 몰리는, 세상의 거센 공격 앞에 방어적이고 위축된 자세로 살기보다는 세상이 가지고 있는 허점들을 날카로운 논리로 반박해나가며 그들의 어리석음과 눈 먼 것과 미처 알지 못하는 맹점들을 정확하게 짚어나갈 수 있는, 그래서 공격적이고 변증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특히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라면 더더욱 이것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물론 자연과학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창조주 하나님을 위해 공부하고 변증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역사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한 근거와 논거를 가지고 세상과 싸우는 법을 학교 다닐 때 배우셔야 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그러한 지혜와 명철을 부어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는 실제로 부활했는가의 문제를 다루겠습니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부활을 빼면 시체나 다름이 없습니다. 부활의 사건은 기독교 신앙에서 핵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를 무너뜨리기 위해 나선 수많은 무신론자들이 부활이 허구이며 날조된 이야기이며 제자들이 꾸며낸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모든 노력과 시도들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부활의 허구를 증명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다가 오히려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부활에 대한 신앙이 없이 기독교 신앙은 결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기독교 전체는 허구이고 허구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조시 맥도웰이란 변증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주제와 그 주제에 대한 근거를 700시간 이상 철저하게 연구해보고 나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의 정신을 속여서 몰래 써넣은 가장 사악하고 부도덕하며 무자비한 날조이든지 아니면 가장 환상적인 역사적 사실이든지 둘 중 하나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변증총서, 2권, 212쪽)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로 부활하지 않았다면 인류역사를 설명할 길이 없어지게 됩니다. 만약 기독교 신앙을 반박하거나 공격하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부활하지 않았다는 강력한 증거들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께서 부활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기독교 신앙에 대해 공격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증거는 강력하고도 압도적입니다. 역사의 흐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라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부활에 대한 신앙이 없이 기독교 신앙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제자들은 여전히 짓밟힌 패배자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설령 그들이 예수님을 자신들의 사랑스런 스승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할지라도 그의 십자가 처형은 그들로 하여금 그가 메시아라는 소망을 영원히 갖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십자가는 슬프고도 수치스러운 그의 인생의 종말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기원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초대 사도들의 신앙에 그 축을 두고 있다.”
먼저, 부활에 대해 정의를 내려야 합니다. 우리는 회생과 부활을 구분해야 합니다. 죽었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여러 가지 정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뇌기능의 정지라고 보지만 보편적으로 죽음은 심장의 기능이 정지된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무덤에 갇힌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은 부활이 아니라 회생입니다. 이것은 분명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회생이 아닙니다. 회생은 다시 살아났어도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다시 죽지 않는 몸으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생한 것이 아니라 부활한 것으로 믿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라는 고백은 “결코 다시 죽지 않을 몸으로 살아나시며”란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인류역사에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예수는 부활한 것이 아니라 회생한 것이라면, 아니면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고 제자들이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면 기독교인들은 허구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 핵심이 됩니다.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한다고 다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역사적인 사실로 믿지 않고, 단지 개념 정도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참 기독교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역사적 사실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영원히 죽지 않을 몸으로 부활했다는 것이고, 육체적으로 부활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부활을 상징적으로 봅니다. 실제로 죽었지만 제자들의 의식 속에서 살아났다는 논리로 부활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을 정신적인 부활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실제적이고 육체적으로 부활하셨음을 믿습니다. 노만 가이슬러라는 분이 한 말을 인용해보겠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가 무덤에 안치된 몸 그대로 부활하지 않았다면 그때의 부활은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자신의 주장의 증거로서의 타당성을 상실하고 만다. 만일 그가 십자가에 처형당한 그 몸 그대로 부활하지 않았다면 부활은 자신이 하나님이라던 예수님의 주장을 정당화시켜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몸은 문자 그대로의 몸 곧 육체적 몸이었다. 만일 예수님이 물질적인 몸 그대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그의 부활은 정당화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그것은 역사적 설득력의 가치를 상실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기독교 신앙에 핵심이라는 것을 다시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고요? 그냥 믿으면 된다고요? 아닙니다.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세계의 종교들-불교, 이슬람교, 유교는 모두 개념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유대교 역시 아브라함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했다”고 믿지 않습니다. 부활신앙은 오직 기독교에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물론 정신병동이나 사이비교주들 중에서 자신이 부활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지만 그들에게서 사랑과 겸손과 온유 등의 고귀한 성품을 발견한다든지 그의 가르침 속에서 영향력 있는 진리를 발견한다든지, 혹은 그들로 인해 세상이 긍정적으로 변화되었다는 증거들을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종교를 이야기할 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세계 4대 종교를 말하는 것입니다. 4가지 종교 중에서 각각의 신앙에 핵심인물이 다 있습니다. 예수, 부처, 공자, 그리고 마호메드입니다. 그런데 잘 보세요. 고다마 싯다르타가 평소 자신이 부활할 것에 대해 가르치거나 주장한 적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싯다르타의 죽음에 관해 가장 초기에 기록된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궁극의 멸절과 더불어 남은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석가모니의 경전이나 가르침 중에서 부활에 대한 메시지가 하나라고 있습니까? 없습니다. 또한 모하메드는 주후 632년 7월 8일 61세의 나이로 사우디아라비아 메디나에서 죽었는데 지금 15억에 이르는 무슬림 중에 모하메드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한 유교신봉자들 중에서도 공자가 부활을 가르쳤거나 혹은 실제로 부활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다릅니다. 하르낙이란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실제로 부활의 신앙을 거부한 신학자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기독교는 부활과 함께 서 있던지 아니면 부활과 함께 무너지던지 둘 중에 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대로 우리는 거짓을 믿는 사람들이 되고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인의 정체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적이고 역사적인 부활사건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책도 부활이 실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어느 한 구절이라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책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도 설명할 길이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고 가르치다가 유대인들의 미움을 받아 십자가에 처형당했고 그 이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성경책도 인류의 역사도 설명할 길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부활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면 기독교가 유대교의 본산이었던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부활하셨다는 강력하고도 압도적인 증거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해볼까요? 첫째, 예수님의 무덤은 없습니다. 다른 종교의 창시자들은 다들 무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무덤으로 순례를 떠납니다. 둘째,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제자들의 태도변화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 처형당할 때 제자들은 다들 도망가버렸습니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서 그들은 예수님은 부활하셨다고 기쁨으로 외치면서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이 환상을 본 것일까요? 수 백 수 천명이 그런 환상을 본다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의학적으로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게다가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 때문에 기쁨으로 핍박을 받고 순교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셋째,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전부터 자신이 부활할 것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미리 예고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제자들이 꾸며낸 이야기이며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한다면 심각하게 모순에 빠져듭니다. 제자들은 어릴 때부터 유대교 신앙의 가문과 사회에서 엄격하게 훈련을 받으며 자라난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이 이런 이야기를 지어낸다는 것은 유대인들과 유대사회에 대해서 심각하게 무지함을 보여주는 어리석음의 소치입니다. 또한 어느 종교지도자도 자신이 죽기 전에 자신이 부활할 것에 대해서 예고하거나 가르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부활할 것에 대해 확신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그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실제로 부활사건이 일어나지 않았고, 제자들이 이 개념을 만들었다면,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런 이야기를 꾸며내도록 했는가? 라고 질문하면 더 미궁에 빠져들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자신이 부활할 것에 대해 거듭 가르치셨고 실제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에 대해 가르치셨을 때에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그 가르침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이 자신의 부활에 대해 가르치신 구절만도 30구절이 넘습니다. 이것을 모두 제자들이 꾸며내었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분명한 증거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진리보다는 거짓에 매료되고 귀를 기울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진리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진리에 대한 불신과 증오라는 자기들의 감정 때문에 진리를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짓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거짓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제가 증거들을 제시하여도 진리를 사랑하지 않기로 이미 마음에 결정한 사람들은 온갖 꾀를 다 동원해서 그럴 듯한 질문들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이것 때문에 못 믿겠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믿기가 두렵다고, 혹은 믿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 예수님이 실제로 부활하지 않았다면 기독교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기독교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했다는 것은 누구나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다들 공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실제로 부활하셨다는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만일 예수님이 실제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유대인들이 무덤을 가지고 기독교를 공격했을 것이고 기독교는 초창기부터 무너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시체가 있는 무덤을 가지고 기독교를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이 기독교를 공격한 것은 제자들이 스승의 시체를 훔쳐갔다는 ‘개념’이란 무기였습니다. 그러나 개념은 결코 사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이 스승의 시체를 훔쳐갔다는 유대인들이 기독교를 공격하기 위해 만든 개념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을 간접적으로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왜냐면 첫째,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갈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둘째, 제자들은 스승이 처형당할 때 도망가던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살아있는 스승도 버리고 도망간 제자들이 죽은 스승의 시신을 훔쳐가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것은 더 큰 모순입니다. 셋째, 제자들이 스승의 시체를 훔쳐갔다고 유대인들이 기독교를 비방한 말은 그 자체로 예수의 시신을 둔 무덤이 비어있다는 것을 유대인 지도자들도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넷째, 유대인 지도자들도 예수님이 살아있을 때 부활할 것에 대해 미리 예고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더 강력하게 예수의 무덤을 지키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유대인 지도자들은 기독교를 핍박하기 위해서 가장 강력한 증거인 시신을 둔 무덤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유대 지도자들이 모인 곳, 유대교의 본부이자 지휘소(C.P.)와 같은 곳에서 기독교가 출발했다는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부활을 강력하게 지지해주고 있습니다. 왜냐면 예루살렘 주민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적으로 잡혀서 처형당하는 것을 지켜본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가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서 십자가 처형당한 것을 보고 듣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적으로 부활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기독교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해 제자들이 꾸며낸 이야기라면 이 모든 되어진 일들을 설명할 길이 없어집니다. 제자들이 쓴 복음서를 보면 3분의 1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대해 설명하는데 할애되고 있습니다. 꾸며낸 이야기를 이처럼 자세하게 기록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의 경우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에 대해 거의 2분의 l으르 차지하고 있습니다. 꾸며낸 이야기가 어떻게 시각과 장소와 인물에 대해서 이처럼 자세할 수 있을까요? 오직 역사적 사실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만약에 꾸며낸 이야기를 하려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한 200년 후에 기록한다면 가능할 것입니다. 왜냐면 그 사건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날조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란 시점으로부터 불과 몇 년부터 기록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성경이 주후 200년 경에 기록된 책이라면 날조된 이야기라는 비판이 힘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했다는 이야기가 실제로 부활이 일어난 그 시대에 기록되었다는 것이 바로 역사적인 사실임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 날조된 이야기로 가득 찬 전기를 쓰려면 200년 후에나 가능합니다. 지금 그런 날조된 이야기로 책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 시대에 그런 날조된 이야기로 전기를 만들었다면 그 책은 여러 사람들에 의해서 읽혀지고 또 다음 세대로 계속 전달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허구로 가득찬 이야기로 펴낸 책을 금방 알아볼 것이고 그런 책들은 폐기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대 사람들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책을 만들어낼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책은 다른 사본들을 만들어낼 수 없는 것입니다.
다섯째, 주일(sunday)이란 제도, 주전(B.C) 주후(A.D)라는 연대표기 등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을 증명해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오늘 우리는 주일에 모여서 예배드릴 수 없습니다. 주일은 부활사건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여섯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공개적인 처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예루살렘 주민들이 보았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유대인들이 공격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훔쳐가거나 제자들이 지어낸 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전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일곱째, 무엇보다 무덤이 부활의 증거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4대 종교의 창시자들은 기독교를 제외하고 다들 무덤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덤을 잘 꾸며놓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다윗의 무덤이 잘 꾸며져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무덤은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이상 무덤에 주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약 실제로 부활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무덤을 주목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봐라, 여기 너희 스승의 무덤이 있지 않느냐?”고 하면서 기독교를 핍박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제자들이 스승의 시체를 훔쳐갔다.”고 하면서 기독교를 핍박한 것입니다. 무덤을 가로막던 돌은 이미 굴려져 있었습니다. 빈 무덤과 굴려진 바위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시체를 누가 고의로 치웠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전에도 이야기했듯이 근거가 없이, 증명하지도 않은 채, 추론하는 말에 무조건 끌려다니면 안 됩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아무런 증거도, 근거도 제시하지 못합니다. 1세기부터 3세기까지 기록된 문헌들을 진지하게 살펴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유대인들의 매장관습과 문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덟째, 무덤을 지킨 로마 군인들의 말입니다. 자신들이 돈을 받고 유대인 가운데 소문을 퍼뜨린 말이 이것입니다. “우리가 자고 있는 가운데 예수의 제자들이 와서 돌을 굴리고 시체를 훔쳐갔다.” 그러나 이 말이 곧 또 다른 증거가 됩니다. 로마의 군율은 매우 엄격하기로 유명합니다. 주둔지를 이탈하는 것은 처형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자기들의 근무태만을 오히려 자랑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자고 있었다면, 자고 있는 가운데 제자들이 큰 돌을 굴리고 시체를 훔쳐가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입니까? 로마의 파수병은 보통 4명으로 구성되는데 그들 모두가 잠들었다는 것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파수병들은 전문적으로 파수하는 훈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낮에는 자고 밤에는 파수하는 생활리듬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무덤을 지키면서 잠들었다는 것은 군대생활을 전혀 해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저도 백마부대에서 최전방 철책선에서 야간 근무를 해본 적이 있습니다. 낮에는 자고 밤에는 근무하기 때문에 밤에 자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졸다가 발각되는 날에는 영창감입니다. 그리고 더 졸 수 없고, 잘 수 없는 것은 언제 어떻게 북한의 무장 공비들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결코 잠을 잘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막말을 하는 사람은 군대생활을 전혀 해보지 않은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이외에도 부활의 증거들은 더 많이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그 증거들을 정리해볼 것입니다.
존경하던 스승이 잡히실 때 두려워서 도망쳤던 제자들이 며칠 사이로 용감하게 나타나서 목숨을 걸고서 “예수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고 선포하기 시작했고, 예수님의 공개적인 처형을 목격한 예루살렘 주민들이 대거 회심하기 시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유대교의 본부인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를 넘어 로마를 넘어 온 세상을 향하여 뻗어가고 있습니다. 이 복음의 역사는 오직 한 가지 진리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친히 예고하신대로 십자가에 처형된 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을 몸으로 살아나셨고,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리우셨습니다. 두려움과 슬픔과 낙심과 한숨으로 가득 찼던 제자들을 기쁨과 담대함과 찬송으로 바꾸어놓았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로 부활하셨다는 사건입니다. 부활의 이야기를 제자들이 만들어내었다고요? 모어랜드란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자들은 거짓말을 통해서 새로운 종교를 시작하는 대가로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에게 돌아간 것은 고난,, 조롱, 적대,, 순교의 죽음이었다. 이점에 비춰볼 때 만약 그들이 자신들이 전하는 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결코 그들은 자신들의 동기에 있어 흔들림 없이 그 일들을 지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제자들은 바보들이 아니었고, 바울은 머리가 냉철한 최고 수준의 지식인이었다. 30, 40년간의 사역 기간 동안에 그 거짓에 대해서 다시 돌이켜보고, 그것을 포기, 단념하라만한 기회가 몇 차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세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이이 없었을 것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라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분은 말씀하신 대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세상이 여러분의 믿음을 흔들 때 여러분은 개념을 붙잡으려고 노력하지 마십시오. 부활의 의미, 신자의 의미와 같은 개념문제로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사실만 붙잡으시면 됩니다. 변함없는 사실이 여러분의 믿음을 지켜줄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을 붙드는 것은 여러분의 의지와 노력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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