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묵상

행동하는 신앙(2)

등불지기 2013. 6. 4. 21:07

 

 

행동하는 신앙(2)

 

지난 번 글에 이어서 [행동하는 신앙]에 대해 글을 올립니다.

살아있는 믿음은 행동하게 하는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행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행함의 특징이나 원칙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과감하게 행동하라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2:21)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2:25)

행동하는 신앙이란 그저 분주하게, 바쁘게,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하는 신앙이란 일종의 모험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모험이라고 한 이유는 살아있는 물고기가 물결을 거슬러 헤엄치는 것처럼 세상의 시류와 믿음 없는 사람들의 상식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흐름을 거부하는 행동이므로 모험과 같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과감하게’with resolution 행동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신중한 것은 좋지만 너무 신중함으로써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보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단호하게 행동에 옮겨야 합니다. 그것이 때로는 실수하고 실패할 가능성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통해 배우는 것이 있을 것이고 그것이 나에게 참된 지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믿음으로 살았던 의인들을 한번 보세요. 그들의 행동 중에 상식적인 행동이나 믿음 없는 자들의 눈에 자연스러운 행동이 하나라도 있었습니까? 그들의 믿음은 과감했고 세상 사람들의 눈에 무모하게 비쳐졌으며 때론 어리석게 보여졌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삭에 칼을 대려고 한 행동이나, 기생 라합이 두 정탐을 살려준 일들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눈에는 모두 기이한 행동이며 무모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동은 따라서 단호해야 하고 대담해야 하며 믿음 없는 사람들에게 어리석게 비쳐질 정도로 획기적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동은 모험입니다. 고민만 하다가 혹은 기도만 하다가 행동할 기회를 놓쳐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행동할 기회가 왔을 때 움켜쥐듯이 행동해야 합니다.

 

즉시 행동하라

 

성경에서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언제나 즉각적이었습니다. 머뭇거리는 법이 없었습니다. 결정은 빠를수록 좋고 행동은 즉각적이어야 합니다. 고민을 너무 많이 하고 머뭇거리고 멈칫할수록 실수를 많이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정이 빠르고 행동이 신속할수록 좋은 것은 그것이 직관적이기 때문입니다. 감정적인 행동과 직관적인 행동은 다릅니다. 직관적인 행동은 신념에 근거한 것이고, 감정적인 행동은 충동에 근거한 것입니다. 즉각적인 행동이 좋은 또 다른 이유는 즉각적으로 수정feedback할 수 있는 유연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결혼과 같이 일생에 한 번 있는 결정을 두고 즉시행동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행동이 결혼하는 것만 아니라 결혼하지 않는 것고 포함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전에도 실례를 든 것이지만 어떤 고3 학생은 경영학과를 가지 못하고 경제학과를 갔다는 이유로 다시 재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시간낭비입니다. 대학이라는 과정은 일종의 교양과정과도 같습니다. 직업을 선택하여 살아가면서 대학에서 배운 전공을 잘 활용하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실제로 직장생활 하면서 배우는 기술은 대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이처럼 즉각적으로행동하지 못하고 멈칫거리는 시간이 많을수록 우리는 시간을 낭비할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인생시험을 칠 때도 그렇습니다. 처음에 떠오른 답이 정답일 가능성이 높은데 고민하고 멈칫하다보면 오답을 적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깨닫는 순간우리는 멈칫거리지 말고 즉각적으로 행동에 옮겨야 합니다.

 

창조적으로 행동하라

 

너는 아이 성 뒤에 복병을 둘지니라 하시니”(8:2)

지난번에 이렇게 행동했을 때 효과가 있었다고 해서 이번에도 똑같이 행동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은 주의하지 아니하면 타성에 젖기 쉽습니다. 여리고성을 정복할 때 어떻게 행동했는가는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이성과의 전투를 위해서 새롭게 행동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시는 은혜가 우리의 행동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반복적인 업무를 그만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직장일이든 교회일이든 반복적인 일을 할지라도 우리는 창조적으로 행동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삶은 반복적인 일에 창조적인 의미를 부여하거나, 창조적인 방식으로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믿음으로 행동하라

 

믿음으로 행동하는 것이란 단호한 것이며 대담한 것이며 어리석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의미를 좀 더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수준에서 행동하는 것이므로 세상의 상식수준을 뛰어넘는다는 말입니다. 다시 부연하자면 믿음으로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과격하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과격하게란 말의 의미는 즉시, 기쁨으로, 온전히란 뜻입니다. ‘억지로, 마지못해, 인색한 마음으로, 계산하는 마음으로순종하는 것이 아니란 뜻입닌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의미에서의 행동은 언제나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즉각적으로, 하나님의 의도를 온전히 알고 하는 행동입니다. 이것은 좁은 의미에서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복을 주시겠지라고 계산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어떤 조건을 바라보고, 혹은 어떤 조건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란 뜻입니다. 내가 순종하는 것이 목표이고, 온전히 순종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즐겁고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을 움직여보려고 행동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즐거움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은혜 안에서 행동하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실 거야라는 기대를 가지고 행동합니다.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이것은 올바른 믿음의 행위라고 할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행동하셨기 때문에, 혹은 이렇게 행하시기 때문에나도 따라서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자를 율법적인 행위라고 하고, 후자를 은혜에 의한 행위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배우고 연습해야 하는 순종은 하나님의 성품과 원칙, 그리고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이 근거가 되고 동기가 되는 순종입니다.

 

말씀과 함께 행동하라

 

"..기록되었으되.."(마4;4)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해보면 보통 사람과 다른 놀라운 행동의 패턴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행동하신다는 것입니다. '기록된 말씀을 이루려 함'이 예수님의 행동의 전부였습니다. 심지어 사단에게 시험을 당하실 때에도 기록된 말씀을 인용함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의 행동은 선지자들을 통해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과 언제나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무슨 행동을 하든 성경말씀과 함께 하는 습관은 아주 중요합니다. 지금 하려는 나의 행동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함께 따라 다니고 있습니까? 지금 내가 하는 말에 기록된 성경말씀이 지지대가 되어주고 있습니까? 오래 전에 [결정]에 관하여 올린 글에 이 부분에 관하여 잠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르기 전에는 행동하지 않는 습관을 들이는 것은 어떨까요? 너무 힘든 일일까요? 완벽하진 않을지라도 가능한 길이 어디에 있을까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 전재되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면 사단도 성경말씀을 이용하여 유혹하기 때문이고, 많은 사람들이 성경말씀을 인용하여 유혹에 넘어가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고 깨닫고 마음에 새길수만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행동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순종함으로 행동하라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딤전6:5)

행동하는 신앙의 최우선순위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말씀에 경청하는 일은 모든 행동의 최우선순위priority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일을 결정하려고 하거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기도합니다.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방법이 아니라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항상 물어야 하는 일상적인 일이 되어야 합니다. 평소에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내 생각대로 살다가 정작 내가 무엇인가 크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을 결정하려고 할 때에만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내 유익을 위해 이용하려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행위가 아니라 이용하려는 행위입니다. 신앙인이 주의해야 하는 가장 교묘한 함정이 이와같이 경건을 수단으로 삼는 일thinking godliness as a means to financial gain입니다. 이러한 함정은 매우 위험하고 또 교묘한 것이며 현대 교회 안에 이미 만연하여widespread 있는 전염병인데..이 함정을 피하려면 항상 말씀에 경청하는 일에 온 힘을 다해 집중하며 말씀을 묵상하는 일을 일상생활화해야 합니다. 신앙인의 행동은 하나님의 말씀에 항상 경청하는 삶에서 시작하여야 하는 것입니다.(딤전6:3) 우리가 말씀에 집중하여 경청하고 온 힘을 다해 묵상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생각이 내 안에 온전히 거하게 하기 위함이고 하나님의 생각이 내 안에 풍성하면 나의 삶은 저절로 순종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순종하지 않고는 분별할 수 없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7:17)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체질화되어 있으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에 힘들어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체질화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먼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순종함으로써 완전하게 분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혹은 어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하기도 하고 기도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만 하거나 기도만 한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과감히 순종하려고 하는 순간 우리는 '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구나'라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순종하려고 하는 순간 하나님의 선하심이 느껴지고 하나님의 기쁨이 밀려오고 하나님의 완전케 하시는 계획이 명확해집니다. 따라서 분별하기 위해 고민을 하되 결정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너무 고민만 하다 때를 놓쳐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분별하기 위해 순종하십시오. 거듭 말하지만 가장 좋은 분별의 방법은 순종입니다.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분별하게 될 것입니다분별이 먼저가 아니라 순종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란 감sense of assurance이 오면 더 생각할 필요 없이 일단 과감하게 행동에 옮김으로써 그것이 정말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인지 확신할 수 있습니다. 분별하려고 고민만 하지 말고 순종함으로 분별을 완성하여야 합니다.

 

순종하는 자에게 능력을 베푸신다

 

하나님은 기꺼이 순종하려는 자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행동하려는 자에게 더 큰 행동을 할 능력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면서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능력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행동하려는 자에게 행동할 능력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순종할 능력을 달라고 간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할 필요는 있어도 행동하기 위해 능력을 달라고 기도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즉시 기쁘게 온전히 순종하려는 자들에게는 구하지 않아도 능력을 풍성히 베풀어주시는 분이십니다.순종할 능력을 받아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면 더 큰 순종을 위한 능력을 베풀어주십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없는 자에게 결코 순종하라고 명령하시지 않는 분입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일을 명령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작은 것에 순종하는 것을 보시고 큰 능력을 베풀어주십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라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

사랑으로 행동하는 것보다 더 귀한 행동은 없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것이란 하나님의 성품과 원칙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 하나님의 성품과 원칙에 부합되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고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원을 소유하고 있다는 넓은 마음’ ‘넉넉한 마음’ ‘풍요의 심리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는 것같이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베푸는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듯이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베푸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성품은 우리의 섬김과 봉사를 완성시켜줍니다. 신앙이란 사랑으로 행동하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랑으로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금식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행동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58:6,7)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실제로 참된 변화는 기도하는 일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참된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일을 하다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들리기 시작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하나님이 우리 삶에 변화를 일으켜주십니다. 금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내 삶에 꽉 막힌 부분을 시원하게 뚫어버리는 은혜가 필요하다면, 답답한 내 삶에 시온의 대로가 열리기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음식을 전폐하고 땅의 먼지를 뒤집어쓰고서 하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은혜와 긍휼을 부르짖어 간구해야 합니다. 자신의 무가치함과 무익함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개입을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도에 반드시 선행해야 하는 행동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내가 먼저 용서하는 일입니다. 또 내가 상처를 준 사람들을 찾아가서 용서를 구하는 일입니다. 내가 재정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결박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일입니다. 나의 삶에 재정적인 축복을 바라며 금식하기 전에 먼저 배고픈 자들에게 양식을 주는 일입니다. 나그네를 초청하여 천사같이 대접하는 일입니다. 고통을 당하는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어떻게든 그들의 고통을 나눠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이 선행될 때 비로소 우리가 금식하며 하나님께 매달리는 기도가 하늘에 상달이 되고 응답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 기도, 지식, 믿음은 아무런 유익도 효과도 없습니다.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아무 일도 일어나게 하지 못하는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 것이라 했습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행동하며 행동함으로 자기 믿음을 끊임없이 증명하며 사는 것입니다.

 

단지 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지식만으로는 아무 변화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지식은 우리를 교만하게 하지만 행동은 우리를 겸손하게 할 것입니다.

지식인은 세상에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하지만 행동하는 지식인은 세상을 흔들 수 있습니다.

 

기도가 만사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순종하는 자가 세상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지금은 적극적인 행동에 나설 때입니다.

Now is the time to take action!

 

아프리카에서

행동하는 신앙인이 되길 소원하는

김광락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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