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에 관하여 I
많은 사람들이 ‘축복’에 관심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 ‘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이 무엇일까요? 어떻게 복을 받을까요? 성경에 나와 있는 축복에 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전에 언급했듯이 어떤 주제를 중심으로 성경본문을 따라 내려가면서 묵상하는 것을 ‘성품묵상’이라고 합니다. 이 성품묵상은 우리의 성품과 삶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축복에 관하여 함께 묵상할 때 우리 삶이 하나님의 복으로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문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창1:22) 복bless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곳은 하나님께서 다섯 째 창조의 날입니다. 이 날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움직이는 생물을 창조하신 날입니다.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실 때에는 만드신 피조물들에게 복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피조물에게 온다는 사실이고, 둘째, 복은 움직이는 생명체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축복은 물이 흐르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복을 내리시고 사람을 복을 비는 존재입니다. '축복'이란 말 그대로 복을 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직접 복을 줄 수는 없지만 어떤 사람을 위해 복을 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남을 축복할 때에 복이 우리에게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흘러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복이 흘러내려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축복하는 것은 단지 통로의 역할을 할 뿐입니다. 물론 축복하는 자가 복을 담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축복은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복은 물과 같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물이 낮은 곳에서 위로 흐르지 않듯이 축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히브리서 7장 7절은 이것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논란의 여지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축복은 높은 사람greater person이 낮은 사람lesser person에게 하는 것입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복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옵니다.
복은 생명력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1:28) 하나님께서 생명을 창조하신 다음 그 창조하신 생명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목적은 ‘생육’ ‘번성’ ‘충만’케 함이었습니다. 복은 우선 생명의 재생산being fruitful과 관련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난하게 살아도 자녀를 많이 낳고 그 자녀들이 건강하게 잘 자란다면 많은 재물과 재산을 가지고 있어도 자녀를 낳지 못하거나 혹은 건강하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복이 있는 것입니다. 복의 기준을 재물이나 소유에 두지 말아야 합니다. 복은 생명력입니다. 생명은 스스로 움직이며 변화를 만들어낼 줄 아는 힘이 있습니다. '생명이 없다' 죽, '죽었다'는 말은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낼 능력을 상실했다는 뜻입니다. 외부의 변화와 자극에 의해서만 움직인다면 그것은 비록 움직인다 할지라도 생명력을 상실한 것입니다. 생명력이 있다는 말은 변화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만들어내는 능력입니다. 또 다른 생명을 만들어내는 능력입니다.
복은 영향력입니다
복은 또한 번성increase in number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번식력은 생명력의 당연한 결과입니다. 참 생명은 번식해야 하고 그 개체수를 늘리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경우는 단지 자녀를 많이 낳는 생물학적 수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번식력'이란 생물학적 번식만을 의미하지 않고 '생명을 나누는 것,' 즉 영향력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본받고 싶어하고, 누군가를 자신의 삶의 모델로 여기는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도 ‘번성’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영향력이라 말합니다. 복은 영향력이고, 복을 받은 사람은 영향력이 있습니다. 사람이나 환경에 잘 영향을 받는 사람은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복을 받은 사람은 반대로 사람이나 환경에 잘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영향을 주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축복할 수 있습니다.
복은 통치력입니다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은 영향력의 결과입니다. 사람이나 환경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아프리카에서 살면서 한 가지 놀라운 아이러니를 보게 됩니다. 아프리카는 세계에서 가장 자원이 많은 곳입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나라들을 복된 나라들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복의 기준은 자원이나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복의 기준은 영향력이고 지배력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을 활용할 줄 모르면 ‘복된 삶’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적은 것이라도 그것을 잘 활용할 줄 안다면 그것이 곧 복된 삶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생명력, 영향력, 그리고 지배력이란 관점이 아니라 소유나 물질의 관점에서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만일 소유나 물질이 복의 기준이라면 아프리카는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들로 가득 찼어야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반대입니다. 그러므로 복의 기준은 물질이 될 수 없습니다.
특정 시간과 장소가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2:3)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것은 단지 생명체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특정한 시간에 또한 복을 내리셨습니다. 또한 구약에서 특정한 장소에 복을 내리기도 하셨습니다. 시간과 장소에 복을 내리실 때 성경은 ‘구별하셨다’ 혹은 ‘거룩하게 하셨다’라고 말합니다. 시간과 장소를 복되게 하시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앞에서 언급했듯이 복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복된 시간과 복된 장소는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내리는 복이 더욱 원활하게 잘 흘러가게 하는 통로입니다.
물은 고이면 썩기 시작한다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때 그 복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는 목적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것을 흘려보냄으로써 생명력과 영향력과 지배력이 증가하는 것을 보기 원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그 의도를 잊어버리고 나 혼자서만 그 복을 즐기기로 작정하고 흘러가는 관문을 차단시키기 시작한다면 금방 냄새가 나기 시작하고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그것이 나의 숨통을 옥죄어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스스로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이스라엘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약시대에 초대교회에서도 볼 수 있고, 2000년 교회역사 속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성장하기 시작하다고 초대형예배당을 건축하는 모습에서 씁쓸함을 느끼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흘려보내지 않는 모든 복은 썩기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복을 받기가 아닌 복이 되기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보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12:2,3)
많은 사람들이 복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복을 받으려고 수고합니다. 하지만 노력하여 복을 받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실은 그 둘이 서로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에 고민이 찾아옵니다. "어떻게 하면 복을 받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다음과 같이 생각을 바꾸어볼 것을 제안합니다. "나는 어떻게 하면 다른 누군가에게 복이 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보다 더 복을 받으려고 헛되이 노력하고 수고하는 것을 그만두고 이제부터는 다른 누군가에게 복이 되는 그런 삶을 살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주님, 오늘도 저의 삶이 다른 누군가에게 복이 되게 하소서!!
복을 받으려면 복을 가까이 해야 한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창12:3) 하나님께서 땅의 모든 족속으로 하여금 복을 받게 하시는 방법은 이것입니다. 한 인생을 은혜로 택하시고 그를 복의 통로로 삼으시고 세상에 파송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그를 가까이 하면 하나님의 복이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통해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가까이 하는 자에게 흘러갑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멀리하게 되면 스스로 복에서부터 자신을 차단하는 것이므로 복의 반대 즉 저주아래 살기로 자처하는 셈이 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여기서 아주 중요한 교훈을 한 가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은혜로 부르시고 은혜로 보내셨듯이 그리고 아브라함과 늘 함께 하겠다고 하셨듯이 오늘 현대를 살아가는 나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내가 복이 되었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이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나를 축복하는 자들에게 어떤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지 관찰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나를 축복하는 자’는 앞서 말한 대로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축복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고 따르고 함께 하는 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의 복이 흘러가는 것을 봄으로써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람을 친구로 삼아야할지 잘 배워야 합니다.
복의 통로가 되면
앞에서 언급한 것을 다시 부연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복의 근원입니다.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내려옵니다. 선하신 하나님은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내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족속에게도 복을 내리기를 원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하나님은 한 인생을 은혜로 택하시고 은혜로 부르시며 은혜로 파송하십니다.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인생이고 하나님과 같이 복의 근원은 아니지만 복을 흘려보내야 하는 사명을 받은 복의 통로입니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십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세상에 복을 내리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결코 그를 떠나지 않습니다.
복이 되었는데 고난이 찾아올 수 있다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창12:10) 그러나 아브라함이 복(의 통로)이 되었다고 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제나 함께 하신다고 해서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문제가 안 생기고, 고난이나 고통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큰 오해입니다. 복이 되면 고난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어 부르심과 보내심을 받고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에 더 큰 고난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가라는 곳으로 순종하여 나아갔는데 그곳에 유래없는 큰 문제가 찾아왔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아브라함의 생애를 읽어보면 몇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아브라함은 그 문제로 인해 하나님을 더 알게 되었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더욱 성장하고 견고해질 수 있었습니다. 둘째, 아브라함이 겪은 그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그를 지켜본 주변의 모든 족속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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