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친구에 관해 좀 더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많은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친구와 어울려 다니고 친구와 놀기를 좋아하고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실 어릴수록 친구를 사귀는 것은 쉽습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참 친구를 만나기란 점점 어려워집니다. 그리고 직장생활, 결혼하여 가정생활을 하고 아이들 학교문제로 이사도 다니면 가까웠던 친구들과 점점 멀어집니다. 그래서 연락이 끊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참 친구는 연락만 닿으면 언제나 어릴적 그 모습 그대로 있어줍니다. SNS가 좋은 것은 잃어버린 친구를 다시 찾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은 점점 어려워집니다. 순수한 동기보다는 목적과 이해관계를 따라 친구가 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쉽게 금이 잘 가고 적대적인 관계로 변질될 수도 있습니다.
로마황제 시저는 그가 친구로 여겼던 브루투스에게 칼을 맞아 죽었지요. 시저가 죽을 때 남긴 말은 "브루투스, 너 마저..."였답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한국 속담이 있습니다. 내가 믿었고 신뢰했고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 어느날 나의 등뒤에 비수를 꽂는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저도 목회를 하면서 여러 사람을 경험해보았습니다. 목사님 설교 최고라고 늘 추켜세우고, 항상 많은 간증담을 내 앞에 늘어놓고, 항상 목사님 팬이라고 자처하던 분이 제가 선교지로 파송되어 나오려고 하는 순간에 파송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선교는 하지 않고 공부하러 간다느니 혹은 1년 안에 분명히 추방되어 되돌아올 것이라는 등의 말로 저의 파송을 무산시키려고 애썼습니다. 목사일 때는 그렇게 좋아하더니 선교사일 때는 그렇게 돌변할 수 있다니 저는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에 대한 실망감이 컸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 대한 저의 모든 기대를 다 깨뜨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저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요? 저는 찾아가서 대화를 시도하거나 설득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하나님의 얼굴만 바라보며 눈물을 쏟을 뿐이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저를, 저의 가정을 아프리카로 보내시는 것이 맞는지 묻고 또 물었습니다. 사람이 반대한다고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뜻과 아무 상관이 없이 내 생각대로 하는 것일까봐..하나님의 뜻인양 말하면서 사실 내 생각대로 선교지로 나가려고 하는 것이 아닌지 저는 저를 반대하는 그 분보다는 그것이 더 두려웠습니다. 내 생각과 내 뜻대로 마시고 다만 하나님의 뜻대로만 되게 해달라고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습니다. 반대하는 사람을 찾아다니며 도와달라고 호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한분만 바라보고 붙들었습니다. 결과는? 하나님께서 다 하셨습니다. 저를 아는 모든 분들이 그 증인들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저는 배웠습니다. 항상 듣기 좋은 말만 하고 항상 칭찬하고 항상 팬이라고 자처한다고 할지라도 저는 비행기를 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볼 것입니다.
그래서 참 친구와 거짓 친구를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구별할까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항상 깨어 있는 수밖에요..하나님을 잠잠히 신뢰하며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는 것이 힘입니다. 사람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오해할 때에 내 힘과 정성으로 풀어보려고 애쓰지 않아야 합니다.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만 순종할 것이라는 영혼의 중심을 굳건히 지킬 뿐입니다. 그러면 참 친구와 거짓 친구가 서로 비슷하지만, 소금과 모래가 비슷하게 생겼지만 물에 의해 갈라지듯 물과 기름이 비슷하지만 나뉘어지듯 저절로 구분되어집니다. 거짓 친구는 떠나가고 참된 친구만 내 곁에 남게 될 것입니다.
참 친구는 곁에 있을 때는 그 가치를 잘 모릅니다. 친구가 내 곁을 떠날 때에 비로소 나는 그 친구가 내 가슴에 남긴 깊고 깊은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참 친구는 만나기도 어렵고, 일단 만나면 잃어버리기도 어렵고, 잊어버리기도 어렵습니다. 참 친구관계는 부부관계와 같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어떤 남여관계보다 친밀하고 견고했습니다. 언약으로 맺어진 관계처럼 생명의 끈으로 결속되어 있습니다. 어떤 것도 그 끈을 끊어버릴 수 없습니다. 성경은 그러한 관계를 '언약관계' 혹은 '소금관계'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관계에 소금을 치라고 말씀하셨는데 바로 이러한 관계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페이스북 친구가 수 백명이 될지라도 제가 갖고 있는 또 다른 친구 명단이 있습니다. 제가 가장 어려울 때 제 곁에 머물러 주었던 분들입니다. 이들 중 아주 소수만이 페이스북 친구입니다. 참 희한합니다. 저는 매일 저녁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축복하는 시간이 있는데 저는 항상 이 친구의 명단을 떠올립니다.
참 친구는 나의 아픔을 잘 압니다. 내가 웃고 있을 때에도 나의 흘리는 눈물을 잘 봅니다. 저는 그러한 친구들이 많아서 정말 행복한 선교사입니다. 제 책상에 항상 놓여져 있는 그 명단은 오래 되어서 낡고 헤어졌지만 제 마음에 뚜렷이 새겨져 있습니다. 주님 앞에 반드시 가져갈 것입니다. 그들이 잘 되면 저도 기쁘고 그들이 아프면 저도 아파서 밥이 넘어가지 않는 것을 보니 제게 그들이 참 친구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제가 어려울 때 친구들이 저를 믿어준 것은 제 자신이 아니라 제가 믿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아내가 저의 청혼을 기쁘게 받아주어 평생의 친구가 되어 준 까닭도 나를 보지 않고 내가 믿고 내가 붙드는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의 지식, 소유, 경력, 지위, 직분, 업적을 보고 나를 좋아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친구는 결코 오래 가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 모든 것들은 일시적인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참 친구는 내가 믿고 섬기며 따르는 하나님을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ㅎㅎㅎ 정말 재밌는 사진입니다..) 친구를 위해 기꺼아 자신의 등을 내어주는 그런 친구 참 멋지지 않습니까? 기꺼이 등을 내주어서 자신을 밟고 일어서라고 할 그런 친구가 있습니까? 예! 저는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좋은 친구는 함께 성장하는 친구입니다. 서로를 날카롭게 하고 서로를 성장시켜주는 그런 친구..우리 인생에 꼭 필요한 매우 값진 선물입니다.
참 친구와 거짓 친구를 구별하는 아주 쉽고 간단한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이해가 갈 것입니다. 나에게 참 친구는 나의 비밀을 지켜주고 나의 허물을 덮어주는 친구입니다. 그렇죠? 그러니까 내 앞에서 다른 어떤 사람을 비난하거나 험담하고 다른 사람의 비밀을 누설하고 남의 허물을 쉽게 끄집어내서 보여주는 사람은 십중팔구가 아니라 100% 거짓된 친구가 될 것입니다. 그는 내 앞에서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을 드러내면서 오직 나하고만 공유한다고 말할 것이고 그 정도로 나를 신뢰한다고 말하면서 내 마음을 얻어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에게 절대 마음을 주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드러냈듯이, 다른 사람의 비밀을 누설했듯이 언젠가 여러분의 허물도 드러내고 여러분의 비밀도 누설하고 다닐 것입니다. 말이 많은 사람을 그래서 조심하라고 잠언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신 입이 무거운 사람을 찾으십시오. 말에 조급하지 않는 사람, 경솔히 함부로 남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것을 것을 싫어하는 그런 사람을 찾으십시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입이 무거운 사람보다는 입이 가벼운 사람, 오직 나에게만 비밀을 털어놓는다고 말하면서 접근하는 그런 사람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참 친구과 거짓 친구를 구별하는 지혜를 갖게 된다면..우리가 참 친구를 알아보는 눈을 갖게 된다면...그래서 참 친구를 얻을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은 시너지로 넘쳐날 것입니다. 참 친구는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저는 신대원을 입학했을 때 책을 많이 사서 읽는 다른 전도사님들을 보며 많이 부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제 마음에 한 가지 생각을 주셨는데 책 만 권을 읽는 것보다 한 명의 진실한 동역자를 얻는 것이 더 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책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주님, 제게 동역자를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신학교에서 신학훈련을 받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도 그렇게 풍성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책을 통해 배운 것보다 동역자들을 통해 배운 것이 더 많습니다. 지금은 대부분 선교사로 전 세계에 흩어져서 얼굴을 볼 수 없지만 그때 그 추억은 지금까지 제 가슴에 남아 있답니다..
참 친구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사모하고 구하고 찾으십시오. 먼저 주님이 여러분을 변화시켜주심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리고 광야에 있는 여러분을 친구들이 찾아올 것입니다.
참 친구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부부관계도 사실 친구관계입니다.)
참 친구가 되시려고 우리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 곁에 다가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면, 예수님과 신실히 동행하면,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사람들이 찾아올 것입니다.
비록 광야를 지나고, 깊고 깊은 어두운 터널을 지날지라도 여러분을 찾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친구를 통해 힘을 공급해주시고 친구를 통해 기력을 회복시켜 주시고 친구를 통해 비전을 보여주시고
친구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다시 일어서게 하실 것입니다.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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