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묵상

축복에 관하여 II

등불지기 2013. 8. 13. 22:56

 

 

축복에 관하여 II

 

나의 고난이 다른 이에게 축복이 될 수 있다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고후1:6)

사도 바울은 선교여행을 하면서 살 소망까지 끊어지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지만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의도를 잘 알았기 때문에 그런 상황속에서도 항상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고난이 넘칠수록 그것이 다른 누군가에게 축복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자신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에게 찾아오는 문제’ ‘기근’ ‘고난’ ‘고통등의 상황으로 인해 과연 내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것이 맞나?’라고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배워야 하고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 축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고통을 사용하셔서 다른 이들에게 은혜를 베푸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축복한다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14:19)

아브라함이 큰 전쟁에서 이기고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왔을 때 멜기세덱이라는 작은 왕국의 왕이 나와서 아브라함을 맞이하였습니다. 물질이나 소유나 유명세로 따지면 아브라함이 한 수 위라고 볼 수 있는데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내립니다. 세상은 물질이나 소유, 혹은 지위나 직함의 기준으로 높고 낮음을 계산하지만 축복은 그런 세상적인 기준과는 전혀 다릅니다. 축복은 영적으로 높은 사람이 영적으로 낮은 사람에게 내리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높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과 가까이 있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친밀감의 정도가 기준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하다면 어린 아이에게도 머리를 조아려서 축복을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려주는 사람이 되라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14:20)

멜기세덱은 작은 도시를 통치하는 왕이었지만 왕이기 이전에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섬기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가 아브라함을 축복할 때 어떻게 축복했는지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축복할 때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시고 보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아브라함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시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시며 아브라함에게 승리를 주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심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참된 축복은 항상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말해주는 계시혹은 예언의 형태로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축복은 일종의 예언입니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13:9)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러 목숨을 걸고 전장으로 나가기 전에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좋은 땅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을 양보했습니다. 삼촌이자 연장자로서 얼마든지 좋은 땅을 먼저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음에도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런 믿음이 있다면, 그래서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통해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흘려보내실 것이란 믿음이 있다면 어떤 척박한 땅에 거할지라도 그 땅이 하나님의 복으로 인해 변화될 것이고 윤택하여질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게 되면 삶에 중요한 변화가 한 가지 생기게 되는데 그것은 인색한 마음이 사라지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보하고, 후한 마음으로 베풀어줄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은 반대로 생각합니다. 내가 주게 되면 손해를 보는 것이고 내가 양보하면 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세상은 물질과 소유의 관점에서 복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반대로 주는 자가 복이 있고 복이 있는 자가 주는 것입니다.

 

보냄받은 자로서 싸워야 하는 무서운 적 (1)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14:23)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부름받고 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복을 흘려보내는 복의 통로로 보냄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찾아온 가장 큰 위기는 소돔왕이 제안한 것이었습니다. 소돔왕이 제안한 물질이라면 아브라함은 언제든 왕국을 세울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브라함은 한 마디로 거절합니다. 이것은 역시 하나님을 향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최선을 온전히 기대했기 때문에 사람이 제안하는 차선을 온전히 거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보내심을 받은 인생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입니다. 물질로써 하나님의 축복을 평가하려는 유혹입니다.

 

보냄 받은 자로서 싸워야 하는 가장 무서운 적 (2)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15:1)

 아브라함의 믿음에 하나님은 기쁨으로 반응을 보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는 최선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아브라함에게 상급이자 방패로 주겠다고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큰 상급은 없고, 하나님보다 더 큰 방패는 없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사느냐, 이 믿음이 없이 사느냐는 삶에 큰 변화를 결정짓습니다. 다름 아니라 인색한 마음입니다. 이 믿음이 없이 세상을 살아가면 우리는 언제나 인색한 마음, 계산적인 마음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선교사로서 선교지에 살면서 제가 배운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선교사에게 최고의 적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인색한 마음입니다. 언제나 부족한 후원과 부족한 자원을 가지고 살아가는 선교사는 자칫 인색한 마음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그러나 인색한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복을 온전히 흘려보낼 수 없습니다. 비단 선교지에 보냄받은 사람만 다 선교사가 아닙니다. 직장이든 가정이든 교회든 하나님의 부르심과 보내심을 받아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선교사입니다. 선교사로서 가장 무서운 적은 외부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자신의 마음에 있습니다. 물질이나 소유에 복의 기준을 삼지 않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자신의 상급, 자신의 방패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면 아브라함처럼 넓은 마음, 후한 마음, 양보하는 마음, 베푸는 마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인색한 마음과 싸워 이기라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9:7)

많은 사람이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복을 받기 전에 복을 받을 그릇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복을 받으려면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기본중에 기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온전히 사모하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도 기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다음입니다. 그렇게 사모하고 기대한다면 믿음으로 복을 받을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먼저 인색한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인색한 마음에는 결코 하나님의 복이 담길 수 없습니다. 인색한 마음은 마치 작디 작은 그릇과 같습니다. 마음그릇을 넓혀야 합니다. 그릇을 넓힌 다음 그릇을 비워야 합니다. , 받으려면 먼저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줌으로써 받을 준비를 합니다. 은혜를 받으려면 은혜를 주어야 하고, 긍휼을 받으려면 긍휼을 주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을 원하고 있고, 복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지만 그릇을 넓히는 것과 그릇을 비우는 것에 미적거리고 있습니다. 많이 심는데 거두는 것이 적다고 느낀다면 혹시 인색한 마음과 싸워 이겼는지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를 알라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18:18)

하나님께서 나를 은혜로 부르실 때에 하나님의 기대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를 부르실 때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의지는 나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믿지 않는 이들에게, 하나님을 모르는 족속에게 하나님의 복을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을 우리가 잘 이해하고 또한 잘 품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삶은 반드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고, 잃어버린 족속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책임을 느껴야 하는 이유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목사가 될 수 없고, 선교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복음전도적인 삶, 선교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복이 우리 삶에서 현실화되고 구체화될 것입니다.

 

시험을 넘어야 큰 축복으로 나아간다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22:16)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욥5:11)

여기 간단한 진리가 있습니다. 큰 복을 받기 원한다면 반드시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포기함으로써 하나님의 시험에 통과하였습니다. 우리는 종종 내 삶에 원하지 않는 시련이 찾아올 때 좌절합니다. 그리고 왜 하필 나에게?”라고 하나님께 묻기도 합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 제게 복을 주십시오.”라고 마음으로 기도했을 것입니다. 혹은 누군가 나를 위해 그렇게 복을 빌었을는지 모릅니다. 작은 시험을 통과함으로써 우리는 큰 축복으로 나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찾아온 고난과 시련이란 손님을 대할 때 짜증내지 마십시오. 내가 지금 만난 시련은 앞으로 만날 축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나를 축복으로 안내하기 위해 보냄받았습니다. 그래서 고난을 나의 스승으로 여기고 환영하십시오. 그 스승 앞에서 나를 은혜로 부르시고 보내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십시오. 시험장에 학생들이 답안지를 작성하듯이 그 스승이 가르치려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판에 적어내십시오. 그러면 시험은 떠나가고 큰 축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형통을 경험하는 기도의 비밀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데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24:12)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24:1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5:14,15)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거의 불가능한 사명을 받았습니다. 수백 킬로 떨어진 곳에서 가서 아들 이삭을 위한 배우자를 구해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삭과 함께 길을 떠날 것을 요청했지만 주인 아브라함은 거절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로 거절하는 이유를 말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였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24:7) 늙은 종은 주인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먼 길을 여행하고 아브라함의 고향에 도착했을 때 형통한 길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가나안 땅에 보내신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가나안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의도를 가지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이 친히 당신의 사자를 자신보다 먼저 보내실 것을 믿는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이것이 형통을 경험하는 기도의 비밀입니다. 형통을 경험하기 원합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하십시오. 내가 기도하기 전에 어떤 하나님께 기도하는지 잠시 묵상해보십시오. 나를 부르시고 보내시는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의 기대,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소망을 진심으로 이해하도록 해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담대하게 기도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이 기뻐하시는 뜻(소망)을 위하여 형통함을 간구하는 우리에게 반드시 응답하여 주실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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