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구하는 기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시67:1,2)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기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편은 우리에게 아주 좋은 기도문을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은혜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죄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다른 복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얼굴 빛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친밀함,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 들어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가르치고 선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따라 죄사함을 받게 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게 되고 말씀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마음을 바로 알게 되는 것, 이것이 진정 복된 삶입니다.
야베스의 기도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4:10)
한국교회 안에 야베스의 기도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러나 상당히 왜곡되어 있고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를 자기 형편과 자기 소원에 끼워맞추려는 경향이 다분히 있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모든 기도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그런 기도를 드리는지 주목해야 하는데 상황과 문맥을 무시하고 성경본문을 끌어와서 자기 상황과 자기 형편에 맞추려고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면 야베스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리고 왜 복을 구하고 있을까요?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대상4:9) 야베스란 이름은 '고통'입니다. 매우 특이한 이름입니다. 아무리 산고가 심할지라도 아들의 이름을 '고통'이라고 짓는 부모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그런 이름을 지어준 이가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그 고통이 단순한 고통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고통은 마치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면서 자신의 이름을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를 것을 부탁한 것과 같은 성격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하나님의 징계와 연단을 거치면서 하나님을 깊이 경외하는 마음을 배우게 되었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그러한 신앙은 그 아들 야베스에게도 이어졌습니다. 존귀함은 이러한 뼈아픈 연단의 과정을 통과할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야베스가 하나님께 복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역대상 2:55절을 참조해볼 때 야베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평생 헌신한 인물임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지경territory을 넓혀달라는 그의 기도는 결국 도시 전체를 그의 제자들로 가득 채우는 은혜로 응답이 되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전하고 가르치고 제자를 삼는 일에 헌신할 때 어떤 고난과 역경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고난에서부터 야베스를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동산 투기하는 일을 정당화하기 위해 야베스의 기도를 끌어와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지경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고 모든 족속에서 복음이 증거되는 일을 위해 복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축복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민6:24-26)
제사장의 임무는 백성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백성을 축복할 때 사용되는 대표적인 축복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것, 하나님께서 항상 바라보시며 긍휼히 여기시는 것,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얼굴을 돌리시지 않으시고 항상 평강을 주시는 것, 하나님의 긍휼과 평강이 우리를 떠나지 않는 것,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을까요? 비록 우리의 삶이 곤고함과 고난으로 가득 차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얼굴이 우리를 향하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며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축복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13:13)
항상 예배가 끝날 때마다 듣는 축복입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그 흘리신 보배로운 피로 인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죄사함의 축복입니다. 우리는 항상 죄사함의 감격과 구원의 확신 속에서 살아가도록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죄인들을 위하여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깊은 확신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 높이 너비 그리고 길이에 관해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좁은 마음을 넓혀줄 것이고 용서하고 너그러운 마음이 되게 할 것입니다. 셋째, 성령의 교통하심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항상 깨우쳐주시며 생각나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행하신 은혜를 알 수 없습니다. 위의 세 가지 축복은 오늘 우리가 날마다 구해야 하고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의 축복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2)
이 축복을 어떤 분은 ‘삼중축복’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사실 영혼, 범사, 그리고 육체의 축복은 전인적인 축복입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은 이 축복만 구하지 이 축복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을 따라다니는지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는 듯 합니다. 사도 요한이 이 축복을 언급한 직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3절)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사람에게 이 전인적인 축복이 졸졸 따라다닙니다. 사도 요한이 가진 기쁨은 바로 주님의 기쁨이요 하늘 아버지의 기쁨이기도 합니다. 진리 안에서 행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곧 이어서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5절) 여기서 나그네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곳 저곳을 정처없이 다니는 복음전도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복음을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다 드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어떻게 행하는가를 보면 과연 진리 안에서 행하는지 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고 주장할지 모르나 실제로 자신의 삶은 복음에 전적으로 헌신한 ‘나그네’에 관해 무관심할 수 있고 혹은 미워할 수도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전적으로 자신의 삶을 드린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까? 그들에게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그들과 나는 과연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 마지막 시대에 살아계신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한 종들을 통해 세상에 복을 주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심는 대로 거두는 법칙을 이야기하면서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을 함께 하라고 했고 또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하라고 했습니다.(갈6:6,10) 결국 우리가 복을 받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을 받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복음에 헌신한 자들과 어떻게든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우리의 분량대로, 우리의 그릇대로 복을 받습니다. 따라서 복을 받으려면 그릇을 준비해야 하고, 큰 복을 받으려면 큰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받은 복을 흘려보내면 즉시 채워질 것이고, 계속 간직하고 있기만 하면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계속 저장하려다가 냄새가 나서 결국 다 버려야 했듯이 냄새가 날 것입니다.
교회를 위한 사도 바울의 중보기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과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1:17-19)
사도바울이 쓴 에베소서서는 특별히 '복'에 관한 서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에베소 교회를 향한 사도바울의 축복기도는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충만한 복을 주신 은혜로운 행위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위의 기도로 에베소 교회를 축복하며 기도하기 전,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보을 우리에게 이미 충만하게 내려주셨다고 선언하면서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하늘의 모든 복이 어떤 것인지 3절부터 14절까지 고대 헬라 문헌 중에서 가장 긴 문장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내리신 복은 첫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당신의 아들들로 삼으신 것이고(5절), 둘째, 그리스도 안에서 죄사함을 주신 것이고(7절), 셋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기업(소유)으로 삼으신 것이고(11절), 넷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성령으로 인치신 것입니다.(13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네 가지 복에 기초하여 17절부터 19절까지 네 가지 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으니 우리의 아버지되시는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해 주실 것과, 둘째,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으니 그렇게 속량해주신 하나님의 소망(목적)을 알게 해주실 것과, 셋째, 우리를 하나님의 기업(소유)으로 삼아주셨으니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로서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알게 해주실 것과, 마지막으로 우리를 당신의 소유로 온 우주에 선포하시려고 성령으로 인치셨으니 우리를 결코 잃어버리지 않고 뺏기려 하지 않으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의 축복기도는 계시의 영이신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친밀감, 소명감, 자존감, 그리고 안정감을 가질 수 있도록 계시의 은혜를, 다시 말해서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의 구조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복주신 것들을 기초로 사도바울의 축복기도로 연결되어 있으며(1장), 2장에서는 첫번째 축복에 관해, 3장에서 다시 한번 더 축복기도를 하고, 4장에서는 두번째 축복인 부르심의 소망에 관해, 5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에 관해, 6장 10절부터 안정감에 관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에베소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이미 받은 복에 대해서 말함으로써 다가오는 원수의 공격과 세상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견고한 삶을 살도록 돕기 위해 기록된 서신입니다.)
복 있는 자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1:1,2)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3)
내가 복이 있다는 말은 하나님의 얼굴이 나에게로 향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얼굴 빛이 나에게로 비추이고 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얼굴을 향하실까요? 구약성경에는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말씀에 고정시키는 사람, 기록된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생각을 변화시킬 줄 아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얼굴을 향하십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를 맨 먼저 언급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은 자신이 죄인됨을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에게 하나님이 찾으시는 의가 없음을 깨닫는 인생, 즉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없는 죄인임을 깨닫는 그런 인생..그런 인생에게 하나님의 얼굴이 향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그 사실 때문에 슬퍼하고 우는 자에게 하나님은 얼굴을 향하셔서 위로하기를 원하십니다.(애통함) 그리고 잠잠히 하나님의 처분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자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얼굴을 향하십니다.(온유함)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의를 간절히 사모하며 주리고 목마른 자를 향하여 하나님은 당신으 얼굴을 향하십니다.(주리고 목마름) 하나님이 주시는 의를 소유한 것이 은혜인줄 알고 다른 인생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에게 하나님은 얼굴빛을 비추십니다.(긍휼히 여김) 하나님이 주시는 의를 붙잡기 위해 회개하고 마음을 청결히 하는 자에게 그리하십니다.(청결한 마음) 하나님의 의를 전함으로 죄인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려는 자에게 그리하십니다.(화평케 함) 그리고 하나님의 의를 위해 기꺼이 미움을 받고 핍박을 받는 것을 즐거워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시고 얼굴을 향하십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복된 삶입니다. 이런 삶이 또한 생명력이 있고, 영향력이 있고, 또 왕같은 제사장으로 다스리고 통치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항상 감사하는 자가 되기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15)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3:17)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우리가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의심, 불평과 불만은 언제나 복을 물리칩니다.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의심을 잘 하고 불만도 많고 불평도 많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보기에 약간 어리석게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함께 한 복된 삶은 모두 한결같이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다들 어리석은 삶이었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데도 감사하고 기뻐하니 얼마나 어리석게 보이겠습니까? 그러나 복 있는 자는 감사하는 자입니다. 감사의 조건이 있을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의 조건이 안 될 때에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같을 때에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계산적인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너무 똑똑하여 잘 의심하고 잘 짐작하며 추측을 잘 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쉽게 불평하고 원망하고 불만을 쏟아내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이 보기에 미련하게 보일 정도로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까닭은 오직 믿음 때문입니다. 모든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에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부요한 마음,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내게로 얼굴을 향하고 계신다는 믿음에서 오는 여유, 유한한 존재가 무한하신 하나님의 자원으로부터 공급을 받고 있다는 넉넉한 마음..하나님이 나같은 인생을 부르셔서 세상에 복을 전하는 복의 통로로 보내셨다는 자부심과 긍지..가진 것이 없어도 하모든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그 믿음 때문에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믿음 때문에 가진 것이 없어도 베풀어 주며, 그 믿음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복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 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세상 근심 걱정 너를 누르고 십자가를 등에 지고 나갈 때 주가 네게 주신 복을 세어라 두렴없이 항상 찬송하리라
세상 권세 너의 앞길 막을 때 주만 믿고 낙심하지 말아라 천사들이 너를 보호하리니 염려없이 앞만 보고 나가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찬송429장)
사랑하는 주님,
저에게 이미 베풀어주신 복을 세어볼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모든 상황 가운데서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얼굴 빛을 더욱 비춰주심으로 복에 복을 더하여 주셔서
다른 많은 이들에게 더 복된 삶을 살게 하소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김광락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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