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설교

아가서 요약강해(2)-제1장

등불지기 2012. 2. 19. 20:45

< 제 1 장 >

 

●제목

v.1-“솔로몬의 아가라” 솔로몬이 쓴 가장 아름다운 노래, 가장 거룩한 노래란 뜻이다. 솔로몬이 사랑하는 대상은 술람미 여인이다. 솔로몬(히, 슐로모)은 ‘평화의 왕’이다. 반면 술람미(히, 슐라미)는 ‘평화의 왕후’이다. 술람미가 실제적인 인물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우선 실제적인 인물로 가정하도록 하자. 중요한 것은 솔로몬이 사랑의 이상적인 대상을 술람미 여인으로 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의 이상형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세상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을까? 참 사랑의 본질은 하나님에게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사랑을 통해 우리는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 수 있다. 늘 강조하겠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면 다른 사람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자, 이제부터 노래들 중에 노래, 가장 우아하며, 가장 아름다우며, 가장 거룩한 노래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자.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사랑이 아니면 또 무엇일까? 그러면 어떤 사랑이 가장 아름다운 것일까? 아가서가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 아가서를 묵상함으로써 잃어버렸던 사랑의 열정을 회복할 수 있는 축복을 경험할 것이다.

 

●v.2-4: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면서 가슴이 설레는 술람미 여인의 고백(I)

지금 술람미는 솔로몬의 청혼을 받아들여 궁궐로 들어서면서 가슴에 품었던 느낌을 회상하고 있다. 이 궁궐로 입성하는 것은 시골처녀의 딱지를 떼고 어엿한 왕후의 자리로 들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아 새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 아마 이런 느낌을 받지 않을까? 술람미 여인의 고백을 통해 우리는 참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도록 하자.

(1)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는 솔로몬을 생각할 때 기쁨이 샘솟는다는 술람미의 고백(v.2) 입맞추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화목이다. 시편2:12을 참조해 보라.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화목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참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입맞추기’를 원하심으로 우리는 사랑을 배우는 것이다. 술람미는 평범한 시골처녀이었다. 그러나 솔로몬이 그녀와 입맞추기를 원했기 때문에 술람미가 이 궁궐로 들어올 수 있었다는 사실은 오늘날 우리에게 참 사랑과 참 구원이 어떤 성격인지 생각나게 해준다.

(2)그 사랑의 기쁨은 세상 그 어떤 기쁨보다 뛰어난 것이다.

포도주는 쾌락을 상징하는 것이다. 술람미는 솔로몬의 사랑의 열심을 보면서 어떤 세상 기쁨보다 낫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열정을 보면서 무한한 기쁨을 얻게 된다. 그 기쁨으로 세상 모든 유혹과 즐거움을 당당히 뿌리치게 된다.

(3)솔로몬의 이름이 탁월하기 때문에 모든 처녀들이 사모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3)

“네 기름이 향기로와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다”는 말은 ‘이름’의 존귀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솔로몬의 이름이 존귀하기 때문에 많은 처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예나 지금이나 탁월한 명예는 여인들의 마음을 빼앗아 가는 요소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이 탁월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것을 즐겁고 행복하게 생각하는 자들이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굉장한 행복감을 누리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당신은 아마 그리스도인이 아닐지 모른다. 왜냐면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탁월한 향기를 맛보지 않고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겠다고 자처하는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4)솔로몬이 자신을 침궁으로 이끌어 들이신다는 사실에 굉장히 흥분해하고 있는 술람미를 보라.(4) 사랑하는 사람은 감정적으로 열정이 있다. 사랑은 진정한 행동을 가능케 하는 힘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사건인지 아는 자들이다.

(5)“솔로몬이여 그대는 나를 인도하세요” 지금 술람미는 솔로몬이 자기를 인도하지 않으면 침궁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구원이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함으로 얻는 것이다. 소명이 없이 자신의 행위와 의지만으로 지성소에 달려 갈 수 있는 인생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부르실 때 우리는 “즐겁게 그리스도를 따라 달려갈 것이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위해 은혜의 보좌(지성소)앞에 담대하게 달려갈 것이다.

(6)“우리가 그대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한다”

사랑은 상대방이 내게 무엇을 해주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그 인격을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것이다. 술람미 여인은 거듭해서 두 가지를 말하고 있다. 하나는 “그대의 사랑이 포도주보다 낫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처녀들이 그대를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고 충성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만족하면서 살았던 것은 당연한 것이다. 즉, 그리스도는 사랑 받을 만한 가치가 있으며, 그리스도가 주는 사랑은 세상 그 어떤 기쁨보다 낫다는 것을 고백하는 자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인 것이다. 당신은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 이렇게 생각하는가? “그분의 사랑은 세상 유혹과 행복과 바꿀 수 없어요”(찬102) “그분의 이름은 너무나 존귀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며, 그를 위해 충성하며, 그를 위해 죽음도 불사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거예요”

 

●v.5,6: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면서 가슴 설레는 술람미 여인의 고백(II)

지금까지 술람미는 으리으리한 궁궐로 들어가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었다. 많은 여인들이 이토록 솔로몬을 흠모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그리고 솔로몬의 구애의 열정을 생각하면서 가슴이 벅차 오름을 느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이제 많은 예쁜 예루살렘 처녀들과 비교해서 자신의 얼굴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자신은 얼굴이 가무잡잡한 시골처녀였다. 일순간 자신은 과연 솔로몬에게 사랑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지 생각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술람미가 보여준 태도이다. 술람미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열등감에 빠지지는 않았다. 자신이 얼굴이 새하얀 도시미인들과 비교해서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주눅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술람미는 자신의 얼굴이 햇볕에 그을려 탄 것임을 인정한다. 자신이 비록 검은 피부를 지녔지만 ‘이래뵈도 나는 아름답다’고 당당하게 자신을 생각하고 있다. ‘계달의 장막’ ‘솔로몬의 휘장’에다 비유하고 있다. 이것은 건강한 자존감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그리스도인의 건강한 자화상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열등감에 빠질 필요는 없다. 왜 그럴까? 술람미의 건강한 자아상이 어떻게 해서 가능한 것일까? 물론 성격 탓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솔로몬이 자신을 ‘아름답게 보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나를 보시고 ‘좋았더라’고 하시면 내가 피부가 검고, 내가 발을 절고, 내게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당당해질 수 있다. 사도 바울의 건강한 자아상을 보라. 그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사단의 가시를 늘 몸에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관점’을 배운 뒤 자신은 그것 때문에 우울해지거나 열등감에 사로 집히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사도 바울은 오히려 그것을 자랑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술람미 여인의 건강한 자존감과 같은 원리이다. 이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진정한 자아상이기도 하다. 술람미 여인은 자신이 왜 피부가 가무잡잡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자기 오빠들이(어미의 아들들이라고 한 것은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에게 화를 내면서 포도원 지기를 삼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포도원’(자기 몸매)을 가꾸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즉, 자신을 향해 이상한 눈초리와 질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예루살렘 여자들을 향해 자신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생각한다. 왜냐면 자신의 부주의나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게으름이나 부주의 때문에 생긴 결점이 아니라면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v.7,8: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면서 가슴 설레는 술람미 여인의 고백(III)

술람미는 계속 해서 궁궐로 들어갈 때 자신의 느낌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나타내고 있다. “내 마음에 사랑하는 그대(솔로몬)이여, 그대가 백성(양떼)을 돌보는 일(국정)을 어떻게 하며, 일을 끝내고 어떻게 쉬는지 내게 가르쳐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대가 어디 있는지 모른 채 무작정 그대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찾아다니면 사람들이 나를 창녀(얼굴을 가리운 자)같이 오해할 거예요” 지금 술람미는 궁궐로 들어가면서 솔로몬이 나라 일로 바쁠 것이며, 자신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이 없을 것을 예상하고 있다. 그래서 술람미는 자신이 사람들에게 ‘창녀’와 같이 오해받지 않도록 해 달라고 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간구에 합창으로 대답되어진다. “여인 중에 아름다운 자여, 만약 네가 이것을 알지 못한다면 차라리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먹 곁에서 자신의 염소 새끼를 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어떻게 얻는 지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그것을 알지 못한다면 차라리 집에 있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얻는가?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말미암았느니라” 우리는 성경을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 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그리스도인이 안 되는 것이 더 낫다.

 

●v.9-11: 혼인잔치자리에서 술람미에게 속삭이는 솔로몬의 고백

이제 장소는 혼인잔치이다. 복음서에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회개하며 나오는 세리와 죄인들을 위해 특별히 잔치를 베풀어주신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다. 비록 아가서를 인용하신 적은 없지만 예수님은 행동으로 아가서를 실천하셨음이 분명하다. 계시록에서는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얼마나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는지 모른다. 자, 솔로몬이 잔치석에서 옆에 앉은 술람미에게 귓속말로 속삭이는 말이 무엇인가? “내 사랑아” 솔로몬은 지금 술람미를 ‘자신의 소중한 사랑’으로 부르고 있다. 거듭 말하지만 사랑은 인격이다. 솔로몬은 술람미를 ‘내 사랑’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주의해 보라. “내가 그대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고 싶소” 지금 솔로몬은 술람미를 굉장히 칭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솔로몬은 말을 굉장히 좋아했다. 말들 중에 가장 아름답고 건장한 말이 바로의 병거를 모는 준마들이다. 그 말은 힘이 있고, 아름답고, 침착하며, 순종을 잘한다. “그대의 두 뺨은 땋은 미리털로, 그대의 목은 구슬 꿰미로 아름답소” 솔로몬은 술람미의 뺨과 목의 아름다움을 칭찬하고 있다. “우리가 그대를 위하여 금사슬을 은을 박아 만들어주리라” 솔로몬은 술람미에게 더 좋은 것을 선물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의 은사와 각종 좋은 선물을 주신다.

 

●v.12-14: 신방에서 술람미가 솔로몬에게 속삭이는 고백(I)

이제 장소는 잔치에서 신방으로 옮겨간다. 신방은 남편과 아내의 깊은 대화가 오가는 장소이다.

(1)왕이 상에 앉았을 때 나(술람미)의 몸에서 나도 기름이 향기를 내는구나.

(2)나의 사랑하는 자(솔로몬)는 내 품 가운데 몰양 향낭과도 같구나.

(3)나의 사랑하는 자(솔로몬)은 나에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와도 같구나.

이 노래는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거룩함은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온다는 것이 아닐까?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그 위엄의 보좌에 앉으신 곳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성령충만을 경험한다. 왕이 상에 앉았을 때 술람미의 몸에 발리운 나도 기름이 향기를 내고, 목에 걸린 향낭이 향기를 진동하듯이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위엄찬 좌정을 바라볼 때, 그분의 주권과 위엄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기름부음 받는 것이다.

 

●v.15-17: 신방에서 솔로몬과 술람미가 서로 주고받는 고백(II)

“내 사랑이여, 그대는 어여쁘고 어여쁘군요. 그대의 눈은 비둘기 같아요”(솔로몬)

비둘기는 순결함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전도대를 파송하시면서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당부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은 순결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순결함 때문에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들을 바라보시면서 기뻐하신다.

“나의 사랑하는 그대여, 그대는 어여쁘고 화창하군요.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석가래와 같군요”(술람미)

침상은 지성소에 있는 언약궤를 상징하는 말임이 틀림없다. 백향목과 잣나무는 예루살렘 성전의 중요한 재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