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묵상

건강한 관계를 위하여

등불지기 2013. 11. 1. 18:17

 

 

 

건강한 관계를 위하여

 

건강한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은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관계는 일종의 발전소와 같아서 좋은 관계를 통해서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지만 반대로 깨어진 관계를 통해서는 삶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얻기도 합니다. 선교지에서뿐 아니라 사람이 사는 어디든 이 관계문제는 항상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건강한 관계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에고이스트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건강한 관계를 맺기가 가장 어려운, 아니 거의 불가능한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 뿐만 아니라 심지어 목회자와 선교사들 중에서도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신은 항상 옳으며 항상 잘 났고 항상 당당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에고이스트들의 특징 중에 하나가 다른 사람에 대해 쉽게 판단하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에고이스트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철저히 긍휼과 은혜가 필요한 죄인임을 깨닫고 자기의self-righteousness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의를 제대로 붙드는 것입니다.  

 

 

 

의존성을 버려야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하거나 오래 유지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의존성 때문입니다. 의존적인 자아의 특징은 자신의 부족함을 다른 사람을 이용함으로써 채우려고 하는 경향입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혼자서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나를 완성시켜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완전케 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십니다. 우리를 완전케 하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의지하는 자가 되지 않고서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기대를 걸게 되고 기대를 걸게 되는 만큼 실망도 하게 될 것입니다.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 우리는 이러한 잘못된 의존성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의지하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람에 대한 의존성을 버릴 수 있게 되며, 그렇게 될 때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를 완전하게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다른 사람과 자유롭게 나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불만을 버려야

 

우리 하나님 안에서 스스로 만족할 줄 알게 되면 우리 삶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할 줄 아는 사람은 삶에 작은 것에도 즐거워할 줄 알게 됩니다. 제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어린 시절에는 주님께 간구했던 소원이나 기도제목이 응답되지 않는 것에 대해 마음 속으로 항상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제가 하나님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모르십니까?"라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내 소원과 내 기대와 내 목표와 상관없이 하나님 안에서 만족하고 하나님 안에서 충분히 즐거워하게 될 때 삶속에서 사소하게 보이던 부분들이 갑자기 의미를 찾기 시작했고 내 기도에 관심없는 것처럼 보이던 하나님이 갑자기 내 옆에 계셔서 내 생각을 미리 읽으시고 그것을 구하기도 전에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이렇게 되자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뭐랄까 훨씬 여유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상처를 받는 것도 그렇게 두려워할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만족하는 법을 배운 순간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예! 그렇습니다.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는 모든 건강한 관계의 핵심이자 뿌리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면 사람과의 관계 역시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실패하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실패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정립되지 못한 상태에서 사람과의 관계가 잘 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다고 생각할 수도 혹은 그렇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성경 읽고 열심히 교회 출석하고 봉사하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매우 심각한 착각이며 자신의 삶 전체를 위기에 집어던질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어떤 기준으로 분별할 수 있을까요? 첫째, 그것은 하나님이 보시는 대로 자신의 모습을 볼 줄 아는 것입니다(지식의 단계). 둘째,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스스로 만족할 줄 알고 즐거워할 줄 아는 것입니다.(감정의 단계) 셋째,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으로 자신을 어디로 보내셨는가를 아는 것입니다.(의지의 단계)

 

 

 

광야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사람은 기도를 해라, 다른 사람은 성경을 읽으라, 등의 조언을 할 것입니다. 물론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광야로 가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축복과 약속의 땅에 정착하여 그 땅에 살고 있던 토착민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인가를 배우기 위해 40년간 광야에서 훈련을 받았듯이 우리는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하여 광야로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나를 기쁘게 해주는 사람들도, 음식도, 재미도 없는 곳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을 우러러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외로운 광야에서 언제까지 있어야 합니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즐거워할 때까지 참고 견디며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신뢰은행

 

스티븐 코비가 '감정은행'이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저는 관계문제에 관해서 '신뢰은행'이란 단어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건강한 관계란 서로 신뢰하는 관계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서로 믿지 못한다면 비록 만날 때마다 서로 웃고 떠들며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눈다 할지라도 건강한 관계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만날 때마다 서로 몇 시간씩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는 것을 가지고 자신들은 좋은 관계에 있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관계는 살얼음 위를 걷는 것과 같아서 언제 깨어질 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강한 신뢰가 바탕에 있는 관계는 어떤 시련과 위기에서 쉽사리 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관계를 원한다면 먼저 관계 사이에 신뢰계좌를 개설해서 신뢰포인트를 지속적으로 입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뢰를 입금하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의사소통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정직함과 일관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 이 사람은 언제나 한결같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면 신뢰포인트가 쌓이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신뢰계좌에서 풍성한 신뢰를 쌓아두어야 합니다.

 

 

 

섬김의 도

 

건강한 관계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섬김'입니다. 여기서 '섬김'이란 '필요를 채우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관계에 있어 세 가지 근본적인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필요, 혹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살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항상 분별하는 것입니다. 둘째, 나의 필요입니다. 나의 필요를 어떻게 채울까요?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와서 자신의 필요를 채우려고 할 수 있고 혹은 다른 사람의 능력을 가져와서 자신의 필요를 채우려고 할 것입니다. 건강한 관계를 위해 중요한 것은 자신의 필요를 다른 사람의 도움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항상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른에게 떼를 쓰며 징징 거립니다. 그러나 어른은 항상 자신의 필요에 스스로 책임질 줄 압니다. 건강한 관에는 어른의 몫입니다. 셋째, 다른 사람의 필요를 자발적으로 채워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줌으로써 무엇인가 도움을 받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로 채워주는 것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채워주는 것입니다. 아무 조건이나 사심이 없이 채워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섬김으로 인해 우리는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능력을 얻게 됩니다.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두 눈을 만드신 것은 한 쪽만을 보지 말라는 것이고 두 귀를 만드신 것은 한 쪽 말만 듣지 말라는 것이며 한 입을 만드신 것은 두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건강한 관계를 해치는 주범은 다름 아니라 한 쪽 면만을 바라보는 편견, 한 쪽 말만 듣고 판단하는 오해, 상황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말을 바꾸는 이중적인 말들입니다.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상황과 사람에 따라 이리 저리 흔들리는 추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바람이 불어 쉽게 흔들리는 낙엽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심연abyss과 같이 흔들리지 말며 고요해야 합니다. 이와같이 사람들 사이에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잘 지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지혜가 필요함을 인정하고 지혜를 후하게 내려주시는 하니님께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사람들과 관계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을 가지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사람들과 관계할 때 항상 한 쪽 눈과 한 쪽 귀는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한 쪽 눈으로 관찰하면서 다른 한 눈으로는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이 보시는 대로의 눈이 되게 해야 합니다. 한 쪽 귀로 사람의 말을 경청하면서 다른 쪽 귀로는 하나님께 열어놓은 채로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시기 원하십니까?"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판단중지

 

칸트의 철학에서 나오는 이 용어가 사실 건강한 인간관계에서 꼭 실천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어느 한 사람의 말을 듣고 섣불리 판단을 내리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제가 사는 아프리카에 이런 문제가 생긴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선교사의 아들이 다른 집 아들에게 사고를 쳤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하여 사경을 헤매고 있게 된 아들을 바라보는 집에서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그래서 피해보상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피해를 준 쪽에서는 자신의 교단 동료 목사들에게 자신이 도리어 피해자라고 말하며 보호해달라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동료 목사들은 그 선교사의 말만 듣고 똘똘 뭉쳐서 가해자인 그 선교사의 아들을 보호해주었습니다. 이런 일로 인해 진짜 피해자가 겪은 상처와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가해자는 결국 자신의 집을 피해자에게 내주었지만 은행빚으로 산 집이라 가치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가관인 것은 가해자가 자신의 집을 빼앗겼다고 하는 말을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목사라고 하는 사람들도 어느 한쪽의 말만 듣다보면 사리분별을 하지 못한 채 큰 실수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A라는 분과 B라는 분은 서로 잘 압니다. 그런데 A와 C는 서로 잘 알고, B와 C는 서로 깊이 있게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A는 C가 가지고 있던 중고자동차를 B에서 팔게 했습니다. C는 A의 요청을 받고 많은 금액을 기꺼이 손해보면서 넘겨주었습니다. 그런데 B는 그 자동차를 A의 친구에게 선물하였습니다. C는 자신이 타던 자동차의 문제를 잘 일어주었고 보험 개런티가 아직 남아 있으니 어느 곳에 가서 수리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A의 친구가 자신이 받은 자동차를 전문적인 정비소에서 수리하지 않고 다른 곳에 수리를 몇 번 하다가 오히려 자동차가 크게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B에서 화가 나서 "어떻게 문제가 심각한 자동차를 넘겨줄 수 있느냐?"며 C에게 연락을 하며 환불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B와 C는 서로에 대해 아주 나쁜 인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제 3자의 입장에서 지켜볼 때는 중간에 중매역할을 한 A에서 충분히 정보를 나누지 못한 책임도 있고, 또 B와 C 사이에 서로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으로 인해 불필요한 편견과 오해가 생겼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편견과 오해로 인해 C는 B가 아무리 잘 해도 좋은 시각으로 볼 수 없고, B역시 C에 대해 항상 부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만약 이 세 사람이 한 교회에 출석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될까요? 당연히 교회에 일어날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어느 한쪽의 말만 듣게 됨으로써 편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관계에 성숙하여서 어느 한쪽의 말을 들을 때에 다른 쪽의 말을 깊이 경청할 때까지 판단을 중지하였다면 이런 불필요한 오해와 편견을 갖지 않게 되었을 것입니다.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때

 

다른 사람들로부터 불필요한 오해를 받는 일은 참 불편한 일입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도 사람들로부터 오해와 비난을 받으셨으니까요.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부당한 편견을 받고 있고 억울하다고 느껴질 때 우선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전지하신 하나님이 아니므로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에 대해 오해를 가지고 있다고 답답해하거나 안절부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 일어났다고 쿨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직접 그에게 다가서서 그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설명하고 노력하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많은 경우 그의 오해를 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오히려 상대방의 오해를 더욱 강화시켜버리는 경우가 되어 관계가 더욱 악화되기도 합니다. 내가 설명을 함으로써 그가 오해가 풀릴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더 악화될 것인지 기도하면서 잘 분별해야 합니다. 물론 어떤 경우는 관계가 더 악화되는 것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변명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 변명하는 일이나 혹은 누명을 쓴 친구를 위해 의로운 변호를 해야 하는 일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하나님께서 그의 오해를 풀어주시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가 올바른 인식을 갖도록 도와주실 때까지 기도하며 나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행하는 일에 더욱 집중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사람들로부터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때 불편할 수 있겠지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잠잠히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중심잡기

 

건강한 관계를 위해 우리는 중심을 잡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람의 말에 쉽게 동요하고 쉽게 영향을 받고 쉽게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좋은 관계, 건강한 관계, 바람직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내가 먼저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작은 배는 큰 바다로 나갈 수 없습니다. 왜냐면 무게중심이 낮아서 작은 파도에도 쉽게 전복되기 때문입니다. 대양으로 나가려면 먼저 무게중심이 좋은 배가 되어야 합니다. 작은 배가 아니라 큰 배가 되어야 합니다. 크고 작은 파도에 쉽게 흔들리는 자아를 가졌다면 큰 바다를 항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까요? 답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뿐입니다. 우리의 마음 한 가운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채워넣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받들어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항상 행할 때 우리는 한결같은 사람, 변함없는 사람, 중심이 잡힌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자관계

 

어린 아이의 특징은 여러 사람과 팀사역을 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것입니다. 성숙하지 못한 목사, 선교사의 특징은 팀사역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독립적으로 사역하는 것은 잘 합니다. 때론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좋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다른 3자가 끼어들면 어려움을 많이 느낍니다. 청소년들을 잘 관찰해보면 이성교제에 관심을 보입니다. 그런데 다자관계로서의 이성교제가 아니라 독점관계로서 이성교제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직도 성숙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 청소년뿐만 아니라 심지어 어른들, 심지어 헌신했다고 하는 목사나 선교사들조차 다자관계에 약하고 헤매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건강한 관계는 독점적인 관계가 아니라 열린 다자관계입니다. 저는 선교사 중에서도 "나하고만 사역하고 그 사람하고는 절대 사귀지 말라"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독점관계를 즐기는 어린 아이같은 모습인 것입니다. 신분은 목사이고 선교사이지만, 몸은 어른이지만 마음은 아직도 아이에 머물러 있는 성인아이adult-child인 것입니다. 성인아이는 이러한 다자관계를 어려워하며 관계에 있어 상처를 많이 안고 있고 또 관계를 내심 두려워합니다. 

 

 

 

 

소금언약

 

하나님은 우리가 관계에 소금을 둘 것을 원하십니다. 여기서 소금은 변하지 않는 언약unchageable covenant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언약이 없으면 우리의 모든 관계는 언제 어떻게 깨어질 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를 사랑하시되 죽기까지 사랑하셨고 제자들이 그분을 배반할 것을 아시면서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관계에 소금을 두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할 때 그 관계 속에 소금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소금을 치지 않는 모든 관계는 언제 어떻게 썩어 냄새가 진동할 지 모른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건강한 관계는 바로 소금관계입니다.

 

 

 

우리에게 달린 문제

 

함께 늙어가는 관계, 함께 운명을 나누는 그런 관계, 죽을 때까지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관계, 건강한 관계는 삶의 축복이며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가장 큰 복입니다. 그런데 이 복을 누릴 것인가 그렇지 못할 것인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건강한 관계는 결코 거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최초의 인간이 범죄한 직후 서로 상대방 탓을 했듯이 모든 관계문제에 있어 발생하는 문제에 관해 다른 사람에게 원인을 돌려서는 개선의 여지가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원칙 아래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훈련시키는 일을 부단히 하면서 하나님의 긍휼과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나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변화시켜나갈 줄 아는 용기가 있을 때만 건강한 관계는 선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We are totally nothing without His Grace.

We are totally helpless without His Help..

Have mercy upon us..

 

건강한 관계를 원하는 모든 형제 자매들에게...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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