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묵상

희락에 관하여

등불지기 2013. 11. 2. 05:28

 

희락에 관하여

 

성령의 열매 중 두 번째인 희락에 관하여 묵상해보았습니다. 성령의 열매로서 기쁨, 즐거움, 환희는 어떤 것일까요? 세상이 주는 기쁨과 어떻게 다를까요?

 

 

 

주는 즐거움

 

우리는 사랑으로 섬기면서 섬김을 받고 치료를 함으로써 치료받고 베풂으로 부유해지고 먹임으로 배부르며 불쌍히 여김으로 불쌍히 여김을 받습니다. 모든 좋은 것을 우리는 줌으로써 받습니다. 받기 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 자체가 선물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 우리의 결핍에서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행복으로 가는 길은 보이기 시작합니다.

 

 

소망이 주는 즐거움

 

The best has not yet come!

옛날이 오늘보다 좋았다고 말한다면 스스로 꿈도 비전도 지혜도 없이 살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에게 항상 최고 최선의 날이며 진짜 최선은 아직 우리에게 오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 입에서 그때가 그 시절이 좋았지..란 말을 퇴출시켜야 합니다.-7:10

 

 

 

모험하는 즐거움

 

옛날에 통했던 방법이 오늘도 통하리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사실은 경험을 의지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이 의지한 것이 하나님이 아니었음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보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의지하며 살려고 애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싸워 이겨야 할 육신입니다. 육신을 이기는 믿음은 옛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방식대로 모험을 떠나는 것입니다.-8:12

 

                                                 

 

정서적인 건강을 회복하라

 

건강한 교회, 건강한 그리스도인에 관해서 여러 가지 기준이 제시되어 왔습니다. 기도, 예배, 봉사, 훈련, 교육, 선교, 목적, 등등..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기준은 '정서'emotion입니다. 제가 볼 때 건강한 교회는 정서적으로 건강한 교회이고, 건강한 그리스도인은 정서적으로 건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반면 겉으로 영성이 뛰어난 듯 하나 실은 정서적 장애emotional disorder를 겪고 있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상당히 많습니다. 정서적 장애란 감정을 느끼거나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낌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 바람직한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겪는 상태를 말합니다. 영적 성숙이란 정서적 장애에서 치유되고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12:15,16

 

 

 

결핍심리를 벗어던지라

 

결핍은 절대적인 결핍과 상대적인 결핍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결핍은 상대적인 결핍입니다. 남아공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중에 들어가지만 워낙 빈부격차가 심한 탓에 상대적 박탈감과 결핍의식이 매우 심한 편입니다. 중산층이 점점 사라져가는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처럼 빈부격차율이 심해지면 사회는 점점 사랑이 식어지고 치안이 불안해지는 등 여러 문제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사람들은 더 많이 가지려고 노력할 것이지만 그럴수록 박탈감은 더욱 심해져갈 것입니다. 그러나 해결책은 더 많이 가지는데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고 시기하며 질투하는 마음이 더욱 자신의 삶을 가난하게 만들고 비참하게 만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심리적인 부유함은 결코 소유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심리적인 부유함을 회복하지 않고서 삶의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결핍심리를 벗어던질 수 있을까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은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는 구도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정체성을 바로 정립해야 합니다. 그 어느 누구도 심지어 나 자신도 기대하는 모습이 아닌 하나님이 의도하신 그 모습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되찾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이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 있습니다.-4:13

 

 

 

하나님의 구원계획 안에 있음을 알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의 어떤 조건을 가지고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에는 우리의 성화와 영화가 이미 다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계획 안에 내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게 되고 즐거워할 수 있게 됩니다. 이 기쁨은 우리의 어떤 상황이나 외부 조건에 의해 오르락내리락하는 그런 변덕스러운 기쁨이 아닙니다. 환난 중에서도 잃어버릴 수 없고 즐거워할 수 있게 만드는 능력입니다.-8:29,30

 

                      

하나님이 시작한 일을 하라

 

간구할 때마다 너희를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1:4)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1:6)

그러면 어디서 어떻게 참된 기쁨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을 알고 그 일에 참여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던 사도 바울이 기뻐했던 것은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은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신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상황과 아무 상관이 없이 순전히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시작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 그분께서 친히 시작하신 일임을 확인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모든 상황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나의 상황과 상관없이 그분께서 이루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고난당하는 자와 함께 마음을 나누라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1:5)

앞에서도 말했듯이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함께 살면 항상 비교하게 되고 또 부러워하게 됩니다. 그러면 자신이 많은 것을 누리고 살고 있음에도 항상 자신은 부족한 것 같고 결핍심리에 붙들리게 되면 마음의 즐거움은 어느새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살면 반대로 우리는 삶의 보람도 느낄 수 있게 되고 마음의 즐거움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짜 부자들은 그것을 알기 때문에 항상 제 3 세계에 열심히 후원하려고 하는 이유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높은 데 두지 말고 낮은 자리에 두는 것이 마음의 즐거움을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뻐하라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1:18)

사실 모든 즐거움의 원천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왜냐면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모든 기쁨과 즐거움의 원천을 발견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비록 사람들로부터 불편한 오해와 억울한 비난을 당할지라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2:5)

우리가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을 묵상할 때 항상 발견하고 놀라게 되는 것은 예수님은 모든 상황 가운데서 오직 하늘 아버지의 기쁘신 뜻에만 항상 초점을 맞추며 사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태도attitude는 항상 하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시는 일에 최우선순위를 두셨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뜻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만 항상 초점을 맞추며 살 수만 있다면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즐거움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인지 어떻게 분별할 것인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2:13)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다면 반드시 우리 안에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즐거움, 하나님의 열정, 하나님의 희열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최소한 우리가 그 뜻을 순종하려고 하는 순간에는 하나님의 기쁨이 내 안에 강물같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행하려고 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억지로 그 뜻을 받들어 순종하는 것을 결코 내버려두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내 소원과 하나님의 소원, 내 기쁨과 하나님의 기쁨을 혼동하여 실수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감정이 아닌 우리의 직관이 보여주는 소원을 따라 과감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 내 뜻과 하나님의 뜻, 내 소원과 하나님의 소원을 구별하는 법을 조금씩 터득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소원이나 생각을 품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뜻을 묻기도 하고 혹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확실히 인정하고 하나님께 삶의 주도권을 분명히 이양해드렸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삶속에 개입하시고 우리의 실수와 실패조차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품은 어떤 생각이 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구별하는 것은 사실 그리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게 됩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뜻만이 분명히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소원이 내게로부터 온 것이라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합니다. 그래서 이루어지지 않아도 우리는 좌절에 대해서조차 감사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또한 감사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 소원이 좌절되어도 주님 앞에서 기뻐할 수 있고, 이루어져도 주님 앞에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우리의 소원과 계획과 생각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 실패를 즐겨라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며...”(11:9)

여러 나라의 청년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면 고민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 선택의 문제로 고민하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청년들에게 즐거워하며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린 때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 기회가 많다는 것입니다. 실패할 가능성 때문에 염려하고 근심하지만 그러나 실패하는 것을 즐겨야 합니다. 왜냐면 실패를 경험해보지 않으면 성공 또한 경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저것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은 20대는 분명 40대나 50대보다 훨씬 좋은 조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들은 너무 진지하게 고민하고 너무 심각해질 필요가 없습니다. 고민만 하다가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실패를 즐기겠다는 마음으로 마음의 소리가 이끄는 대로, 즉 직관을 따라 과감하게 도전하는 특권을 누려야 합니다. 많은 기회가 주어져 있기 때문에 청년들은 더욱 기뻐할 수 있고 또 그래야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부활의 소망을 놓치지 말라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3:1)

부활의 소망을 놓치면 마음의 즐거움은 사라지게 됩니다. 부활의 소망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참된 기쁨과 즐거움의 원천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몸으로 변화될 것을 온전히, 가슴으로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자신의 시선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고 고백했습니다. 감옥이라는 상황조차 그에게 충만했던 즐거움을 앗아갈 수 없었습니다. 문제는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겠지만 부활에 대한 소망이 없이 땅의 것에 너무 집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4)

기독교는 기쁨, 환희, 즐거움의 종교입니다. 그 기쁨은 육신의 쾌락을 추구하는 자들의 기쁨과 다른 것입니다. 또는 자기 착각 속에 빠져서 희희낙락거리는 명상주의자들의 그것과도 다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만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기쁨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도 성경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8:10)

 

                                   

 

하나님과 함께 춤추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3:17)

제가 아프리카에서 살면서 즐거운 일이 많은데 그 중에 하나가 현지인들과 함께 예배드릴 때입니다. 한국에 있었을 때는 체면을 지키며 엄숙히 예배를 드리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던 장로교 목사가 아프리카 현지인들의 그 현란한 리듬과 율동과 박자에 맞추려고 할 때 처음에는 무척 어색하고 힘들었지만, 아직도 따라하기가 여전히 어렵지만, 고난과 슬픔을 춤과 노래로 승화시키는 아프리카 흑인들의 독특한 삶의 방식이 어느덧 좋아져버렸습니다. 힘들고 슬픈 일이 있을 때 함께 모여서 신나게 흔들고 목소리를 높여 신나게 찬양을 부르면 어느새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 제 모습을 보게 됩니다. 특별한 악기도 성가대도 없지만 그들은 그들의 온 몸을 다 사용하여 신명나게 찬양합니다. 아프리카 흑인들에게 특히 춤과 노래는 아주 중요합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 예배드리면서 하나님께서도 이렇게 기뻐하시며 춤을 추실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춤추시는 하나님! 상상해보셨습니까?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둥실 둥실 춤추시는 모습! 하나님은 영이시지만 하나님의 영이 춤을 추고 계신다는 사실을 저는 아프리카 흑인들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힘들고 슬프고 맘 어려울 때 골방에 혼자 들어가 하나님 앞에서 신나게 춤춰보십시오.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을까요?

 

항상 기뻐하라...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 뜻이니라.”(살전5:16,18)

Be joyful always!!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이 말은 장례식에서 조문하면서도 웃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상실감을 느낄 때 슬퍼하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고통을 느낄 때 울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이 말씀을 단순하게 이렇게 생각합니다. 기쁨을 내 삶에 가장 중요한 성품으로 간주하라는 말씀입니다. 기쁨이 내게 두드러진 성품으로 나타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너무 진지하거나 심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긍정적이고 낙천적이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궁극적인 부활의 기쁨을 미리 앞당겨서 지금 이곳에서 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비록 지금 우리는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완전체로 바라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을 이해하며 하나님의 기쁨을 공감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현재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시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계시는 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하여 영화롭게 된 완전체로서의 모습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바라보시며 기쁨에 겨워 어쩔줄 몰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아는 참 지식이 우리 삶속에서 희락, 곧 기쁨이란 성령의 열매로,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쁨은 선택이다

 

저는 기쁨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내 상황이나 내 감정이 기쁨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며

믿음으로 기쁨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왜냐면 참 기쁨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선택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기쁨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내 주님을 기뻐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긍정하며

하나님의 기쁨에 날마다 참여하며

성령의 열매인 기쁨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으며

나를 바라보는 자마다 하나님의 기쁨을 조금이라도 맛보며

좌절과 고난 중에서도 기뻐하며

무슨 일이든 기쁨으로 감당하며

그렇게 살기를 바라며...

 

The reason why I am always joyful is that He is my LORD and He saves me, loves me, and guides me always.

So I will rejoice in the LORD, dance before the LORD, and jump to the LORD today!!

because He has done great things for me!!
Forever I am His and He is mine.

He will never leave me or forsake me..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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