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묵상

두려움을 이기는 신앙 I

등불지기 2015. 6. 27. 20:33

 

 

두려움을 이기는 신앙

 

두려움은 강력한 전염병이다

 

요즘 한국은 난리가 아니라고 합니다. 100년만의 가뭄과 유례가 없는 전염병 MERS(middle-east respritory syndrome중동호흡기증후군)의 창궐로 인해 온 국민이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하지만 마스크를 보는 것만으로 두려움이 생각나 불쾌감을 느낀다면서 편의점 직원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 얼마 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시에 있는 아프리칸 감리교회에서 딜런 루프라는 21살 백인 청년이 수요예배를 참석한 뒤 총기를 난사하여 담임목사를 비롯하여 9명이 끔찍하게 죽는 사건으로 온 미국이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뉴욕 교도소에서 탈출한 살인범으로 인해 온 미국이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미국 매스컴에서 연일 보도하는 ISIS의 끔찍한 만행으로 인해 그 두려움은 국내외 모든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전파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두려움은 그 어떤 바이러스보다 강력한 전염병입니다.

 

두려움의 원인

 

미국은 겉으로는 평화로운 나라인 것 같지만 사실 인종차별주의가 심하고 흑백갈등이 심한 나라입니다. 남아공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만델라 이후 흑인정부가 들어섰지만 여전히 흑백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습니다. 게다가 타인종에 대한 증오심(제노포비아)까지 더해져 언제 어떻게 뇌관이 터질지 모르는 긴장감이 있습니다. 흑인은 자신들을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으로 강압했던 백인을 두려워하고 있고, 백인 역시 언제 어떻게 자신들의 목숨과 재산을 빼앗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흑인들을 무서워하고 있으며 기회가 되면 호주나 유럽 같은 나라로 이민을 가고 싶어합니다. 백인과 흑인은 서로를 두려워하고 있는데 이 두려움으로 인해 인종간 편견과 증오가 생겨납니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두려움의 뿌리는 죽음death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죽음은 모든 종류의 두려움의 원천입니다. 그리고 죽음의 뿌리는 바로 죄sin입니다.

 

사람들은 왜 두려움에 사로잡히는가?

 

두려움은 여러 가지 형태로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으며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전염병, 테러, 강도에 대한 두려움뿐만 아니라 실직, 불안한 미래, 건강악화, 관계의 단절, 사업의 실패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옵니다. ‘이러다가 내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으로 두려움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결국 인생을 두려움의 계곡에 송두리째 투신하게 만들어버릴 정도로 강력합니다. 이와같이 사람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은 기본적으로 믿음 소망 사랑의 결핍에서 비롯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4:18)고 성경은 두려움의 원인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 삶에 두려움이란 불청객이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면 내 안에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이 결핍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두려움을 주는 대상을 잘 선택해야 한다

 

앞에서 말한 대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죽음을 직감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투를 앞두고 대치하고 있었을 때 싸움을 돋우기 위해 골리앗이 블레셋의 챔피언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40일 동안 아침과 저녁으로 이스라엘 앞에 등장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모욕하는 발언을 할 때 이스라엘은 골리앗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공포는 현실이 됩니다. 골리앗을 바라보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였습니다. 두려움이란 바이러스는 대부분 시각을 통해 전염됩니다. “보고 두려워하여 도망하여...”(삼상17:24) 이스라엘 사람들은 서로 만날 때마다 서로에게 이야기합니다. “너희는 골리앗을 보았느냐?”(삼상17:25) 두려움은 눈을 통해 전염됩니다. 무엇을 응시하느냐, 집중해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두려움은 찾아옵니다. 한국인의 기질을 아프리카 흑인들과 비교하여 생각해보면 지나치게 걱정 근심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면 걱정하게 하는 것에만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걱정한다고 걱정학 p하는 것이 없어지거나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골리앗 앞에서

 

우리가 사무엘상 17장을 묵상해볼 때 이러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배울 수 있게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골리앗을 바라보면서 두려움에 사로잡혀 탈영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이스라엘의 챔피언을 예비하십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어린 다윗입니다. 전장warfield에 도착한 다윗의 반응을 주목해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골리앗의 외모appearance에 집중하며 그 외관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다윗은 골리앗의 외모에 관해서는 시선을 고정시키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시선을 골리앗에 집중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다윗의 시선이 어디에 집중하여 있는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시선이 집중하고 있는 곳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얼굴입니다. 하나님께 시선이 모아진 다윗은 골리앗에 대한 두려움이 찾아올 공간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다윗은 골리앗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크게 보일수록 골리앗은 작게 보였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가득했던 다윗은 골리앗의 두려움에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진정한 두려움을 주는 대상을 잘 선택하기만 한다면 두려움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시선을 어디에다 고정시켜야 할지에 대해서 안다면 세상의 그 어떤 두려움에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다름 아니라 우리의 시선을 골리앗에게서 하나님에게로 옮기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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