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 앞에서
얼마전 아는 분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선교사님이 몸이 이상해서 한국을 방문하였는데 병원에서 암으로 판정받았다고 합니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자신이 몇 개월만 살 수밖에 없는 시한부 인생이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의사가 일러주는 대로 암세포제거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선교사님은 기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루에 한 번씩 예배드리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을 마시면서 무공해로 재배된 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온 몸과 마음에서부터 스트레스와 긴장감이란 독소가 빠져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몇 개월 후에 병원을 다시 찾았더니 무서운 암세포가 다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 이야기입니다. 병원에 가면 병이 더 위중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사의 말을 거부하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맡겼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선교사님은 두려움을 주는 암세포에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생과 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하면서 암세포를 극복하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현대의 골리앗을 만났을 때 우리는 진짜 두려움을 주는 대상이 누구인지 잘 선택해야 합니다.
위험보다는 기회를 생각해야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위기란 위험할 수도 있지만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을 말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위험해질 수도 반대로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골리앗의 등장으로 인해 온 이스라엘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무기력해 있을 동안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와 방법으로 다윗을 등장시키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챔피언으로 다윗을 준비하셨고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치는 하나님의 구원의 병기로 쓰임을 받는 모습을 잘 묵상해볼 때 우리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참 신앙의 위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골리앗 이야기로 정신이 없을 때 다윗은 놀랍게도 골리앗을 이길 때 어떤 상reward을 받게 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삼상17:26,30절 참조) 사람들은 골리앗의 외모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반면 다윗은 만일 골리앗을 이긴다면 어떤 상이 주어질 것인가에 대해 사람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위험’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다윗은 ‘기회’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신앙은 다름 아니라 올바른 사고방식의 무장한 것입니다. 나는 골리앗을 만났을 때 ‘위험’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까? 아니면 ‘기회’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신 일들을 기억해야
다른 모든 사람들이 골리앗을 이야기할 때 혼자서 ‘상급’을 이야기하던 다윗은 모든 이스라엘 가운데 특출하였습니다. 그 형들조차 다윗을 비난하며 조롱하였지만 다윗은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기회’를 이야기했습니다. 다윗의 말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굉장히 흥미로운 것이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시선을 골리앗에서부터 하나님께로 옮겨놓은 다윗이었기 때문입니다. 골리앗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다윗의 말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울에게 추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에게 기회가 찾아오는 법입니다. 사울 앞에 선 다윗이 고백하는 이야기는 성경에서 가장 감동적인 고백 중에 하나입니다.(삼상17:34-37절 참조) 다윗이 사울에게 고백하는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나를 어떻게 구원해주셨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그냥 한번 싸우게 해달라고 떼를 쓰지 않았습니다. 한번만 기회를 달라고 읍소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 이야기를 한 것뿐이었습니다. 다윗의 고백에 사울 또한 감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신앙은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더 정확히는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인도해 오셨는지, 나를 그 모든 고난 중에서 어떻게 구원하여 주셨는가를 정확히 기억해낼 때 두려움을 극복하는 능력이 찾아옵니다.
못하는 것보다 잘 하는 것에 집중해야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결국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한 가지 사실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수준에 자신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을 과감히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전히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하고, 자신에게 가장 편한 방식으로 행동에 옮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고백에 감동을 받은 사울은 자신이 입고 있던 갑옷과 투구와 무기를 내어줍니다. 시험적으로 입어보다가 금새 벗어던져버립니다.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두려움을 극복하는 신앙을 행동으로 옮길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이러 저러한 방식으로 할 것이라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멋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러한 기대수준에 우리 자신을 맞추려고 한다면 우리는 온전한 승리를 거둘 수 없습니다. 우리는 겉으론 멋있지만 사실 거추장스러운 투구와 갑옷과 무기들을 과감히 내려놓아야 합니다. 대신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가장 편한, 그래서 우리의 분신과도 같은 것으로 우리의 무기를 삼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추천해주는 그런 방식을 내려놓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그것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선교지에서 만나는 골리앗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하며 산지가 벌써 7년입니다. 선교지에서 두려움은 매일 만나는 원수입니다. 치안의 불안, 정치 경제 사회적 불안, 제노포비아, 흑백갈등, 재정결핍, 사고의 위험, 등 여러 가지가 선교사를 두렵게 합니다. 이런 땅에서 살기로, 그리고 사역하기로 결심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처음에 많은 사람들은 저의 결정에 대해 말하기를 한국에서 목회를 하면 잘 할텐데 힘들고 어려움 선교지로 간다고 말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이야기하면 제게는 국내목회보다 선교가 훨씬 재밌고 더 쉽습니다. 목회현장보다 선교현장이 훨씬 다이내믹하고 쓰릴 넘칩니다. 제게 있어서 선교사역은 솔직히 매일 심방하고 사람들을 만나 상담하는 목회사역보다 쉽습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함께 공부했던 어떤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분이 아프리카에서 선교사역을 하시다가 얼마전 미국에서 공부를 하시고 유명한 신학교에 교수로 임용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분은 선교사역보다 교수사역이 훨씬 잘 어울리는 그런 분이었다고 생각되기에 진정 기뻤고 잘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저도 그런 이야기를 종종 듣기는 합니다. 저도 신학교에서 학회할동도 하고 논문도 자주 발표하고 신문이나 학회지에 실리기도 했기 때문에 저를 아는 분들은 제가 목회사역보다는 교수사역을 더 잘 할 것이라고 하는 말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말과 기대에 제 자신을 맞출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게 잘 어울리는 옷이 무엇인지 제 나이 50이 되어서야 제대로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물론 혈기왕성하던 20, 30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무척이나 노력하던 때가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사울의 갑옷과 투구를 과감히 벗어던진 것처럼 제게 주어진 사람들의 기대와 생각을 과감하게 내려놓은 순간부터 저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고 사역과 삶에 행복과 만족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일 10년 전이라면 그 동기목사님의 교수임용이야기를 듣고 많이 부러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나에게 가장 편한 옷을 만난 지금은 세계적인 신학교의 교수자리도, 초대형교회에서 목회하는 친구 목사의 자리도, 부러운 것이 아니라 제게는 매우 거추장스러운 것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진정으로 그 동기목사님의 교수임용에 대해 기뻐하라 수 있고 또 축하할 수 있습니다. 저의 아내도 저의 딸들도 같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입니다. 저와 함께 사는 가족들은 그렇지 못하고 저 혼자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저는 위선이거나 혹은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우리가 사는 시대는 두려움을 주는 일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럴수록 우리는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풍랑 가운데서도 깊은 잠을 주무신 예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풍랑에 집중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을 구원하라고 자신을 세상에 보내신 하늘의 아버지께 온전히 집중하셨기 때문에 세상의 그 어떤 두려움도 예수님을 무기력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하루는 풍랑 가운데 괴로이 노를 젓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바다위를 걸어서 오셨습니다. 많은 제자들이 유령이라 소리지르며 무서워했지만 예수님은 “내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용감하게 말했습니다. “만일 주님이시라면 저보고 물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걸어오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베드로는 용감하게 발을 내딛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신에게 말씀하신 예수님을 주목하는 동안에는 베드로는 물위를 기적적으로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삼키려고 덤벼드는 파도를 주목하는 순간 베드로는 그만 깊은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우리는 풍랑에 위험해질 수 있고 아니면 물위를 걸어가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와 늘 함께 동행하시고 우리의 키를 잡고 계시는 예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두려움도 넉넉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제가 요즘 즐겨부르는 찬송을 소개합니다.
만일 골리앗 앞에서 두려워하신다면
저와 함께 이 찬송을 부르실까요?
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
저 등대의 불빛도 희미한데
이 풍랑에 배저어 항해하는
이 작은 배 사공은 주님이라
나 두렴없네 두렴 없도다
주 예수님 늘 깨어 계시도다
이 흉흉한 바다를 다 지나면
저 소망의 나라에 이르리라.(찬432)
맘속에 시험을 받을 때와
무거운 근심이 있을 때에
주께서 그 때도 같이 하사
언제나 나를 도와주시네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언제나 새생명 주시나니
영광의 그날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찬407)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김광락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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