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위험성 Danger of knowledge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후8:1)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이 풀어쓸 수 있습니다. “지식은 자신을 세우게 하지만 사랑은 남을 세우게 한다.” 이번에 저는 지식의 위험성에 관하여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저는 어릴적부터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선교지에서 낯선 사람들, 낯선 언어와 문화를 알아가는 것이 한편으론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설레는 일이기도 합니다.
호기심은 모든 배움의 관문입니다. 예를 들어, 언어를 습득하는데 있어 어떤 사람은 즐겁게 하며 성취감도 빨리 느끼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은 매우 더디기도 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합니다. 그 차이에 관하여 저는 간단히 ‘호기심의 차이’라고 봅니다. 즉, 호기심이 많은 사람일수록 언어습득이 빠르며 큰 스트레스 없이 성취감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나 다른 언어를 열심히 배우려는 초보자들에게 늘 조언하는 것은 부담감이 아닌 호기심을 갖고 접근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호기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즐거운 일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마당을 마련해주고 방법을 제시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 학습법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주입식 교육이나 암기식 교육은 오히려 큰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며 창의성을 떨어뜨리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성향이 강했던지라 초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해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야 저는 제 방식을 찾아 제 스스로 공부하는 즐거움을 조금씩 맛보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을 영문과에 진학했던 저는 다들 학점을 따서 장학금을 받으려고 수업에 열심을 내던 다른 친구들과 달리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제 방식대로 공부하였습니다. 남들은 영어회화를 잘 하기 위해 학원을 다닐 동안 저는 혼자서 영어작문을 위해 씨름하였습니다. 남들이 다 하는 대로 공부하려니 이길 만한 실력도 없어 경쟁도 잘 안 되고 자존심도 상하고 차라리 내 하고 싶은 대로 나 자신과 경쟁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신대원을 입학한 뒤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 교수들이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어 공부하는 것을 과감히 포기했습니다. 저는 읽어야 할 도서목록을 제가 만들었고 제 스스로 논문주제를 정하고 논문 쓰는 법을 스스로 익히고 한 학기에 한 편씩 자발적으로 논문을 쓰면서 신대원을 즐겁게 다녔습니다. 학점은 정말 형편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느 누구보다 신학의 세계에 푹 빠졌다고 자부할 정도로 정말 즐겁게 공부를 했습니다. 스스로 논문주제를 정하고 글을 쓰는 일이 즐거웠고, 그것을 논문대회나 학술지에 기고하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다행히 인정을 받고 원고료가 나오면 그 돈으로 원하는 책들을 사서 모으는 즐거움도 쏠쏠했습니다. 3년 동안 신대원을 다니면서 모았던 책들이 1,500여권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지식의 바다에 깊이 빠져 들어가면서 느끼는 것이 있었습니다. 지식의 세계에 깊이 들어갈수록 나도 모르게 제 자신은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으며 은혜를 받기보다는 비평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고, 설교시간엔 설교에 경청하기 보다는 본문을 들여다보며 주해하고 있었습니다. 교수들의 글을 읽으면서 논평하려고 하고 책을 보면서 비평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경향이 좀처럼 제게서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내가 아는 것이 곧 나 자신인 것처럼 생각되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게 놀라운 변화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위해서 군입대를 계속 미뤄오다가 결국 신대원을 마치고 강도사 고시에 합격한 다음 결국 군입대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군대를 면제시켜달라는 저의 간절한 기도에 저의 하나님은 매몰차게 거절하시고 저를 그것도 제일 훈련이 많고 힘든 최전방 부대에 말단 이등병으로 입대하게 하셨습니다. 그때 군대에서 쓰던 용어로 제가 가방끈이 제일 길었습니다. 제 주변에는 대부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입대한 이들이었습니다. 나이가 한참 많았던 저는 제 동생뻘도 되지 않는 그들에게 온갖 욕설을 날마다 한 바가지로 받아먹으며 체력이 좋은 그들과 함께 뛰고 구르고 행군하는 일을 날마다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온갖 폭행과 폭언이 난무한 내무반 생활을 견뎌야 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하나님은 저를 제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밑바닥에 내려 보내셔서 저를 이리저리 구르게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속으로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는 마음이 많이 들기로 했습니다. 어릴 적 중고등학교 다닐 때 기도와 말씀으로 큰 은혜 속에 지낼 때 그토록 수없이 사랑, 헌신, 충성을 고백했던 제가 밑바닥을 기면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제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볼품없고 추한 죄 덩어리 인간인지 다시 한 번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밑바닥 인생 속에서야 내 자신의 참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 동안 알고 있었고 갖고 있었던 그 수많은 책들, 그리고 자부하던 지식들이 얼마나 하찮고 보잘 것 없는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던 지식이 나 자신의 분신이며 나 자신인 것처럼 생각되었던 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던 것, 내가 갖고 있던 지식은 나 자신이 아니었고 나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하나님은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을 통해 나를 보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 전에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통해 나를 보았지만 이제는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나 자신을 분리시켜서 따로 바라보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책을 통해서나 글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신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교장으로 계시는 광야학교에서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내가 알고 있던 그래서 자부심을 갖고 있던 그 모든 지식들이 결코 내 것이 아님을 깨닫고 하나님이 보시는 대로의 내 모습, 오직 은혜가 필요한 한 죄인의 모습으로 내 모습을 다시 보기 시작했을 때 살아계신 하나님은 풍랑 가운데 괴로이 노를 저어 고생하던 제자들에게 찾아가셨던 것처럼 최전방에서 괴로이 고생하던 제게 조용히 그리고 은밀히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최전방에서 힘들게 고생하던 제게 하나님의 임재는 실제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님은 제 기도에 응답하기 시작하셨고, 친밀한 음성을 들려주셨으며, 제게 사역의 길을 다시 열어주셨습니다. 그렇게 힘들었던 최전방 군생활이 갑자기 천국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친밀감으로 인해 저는 전역을 몇 달 남기지 않은 군생활이 그토록 즐겁고 의미 있고 보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지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책을 통해, 강의를 통해, 인터넷과 매스컴을 통해 얻는 지식입니다. 다른 하나는 책이나 그 어떤 탁월한 강의로도 얻을 수 없는 지식입니다. 모두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지만 저는 전자를 정보적 지식informational knowledge라고 하고, 후자를 경험적 지식experienced knowledge라고 구분합니다. 즉, 지석은 경험된 정보입니다. 그리고 지혜wisdom는 지식을 통제하는 능력입니다.
제가 제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이것입니다. 고난의 심연abyss에서 바닥을 기면서 이리저리 뒹굴고 비틀거리는 것은 제게는 정말 큰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미워하셔서 고생시킨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지나고 보니 사실은 하나님께서 저를 너무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높이고 교만하게 만드는 지식의 굴레를 벗어던질 수 있는 것은 광야학교에 배울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제 나이 50이 되어서 뒤를 돌아보니 몇 번에 걸쳐 주기적으로 저를 광야학교에 들여보내셔서 진짜 제가 배워야 할 것을 배우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providence와 은혜grace가 있었습니다. 당시는 몰랐는데 나중에서야 고백하는 것은 광야학교에 들어간 것은 제게 큰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오래 전 YWAM에서 자주 사용하던 용어가 있었습니다. ‘스쿨중독’이란 말입니다. DTS를 마치면 FMS(가정상담학교), SBS(성경연구학교), IBS(내적치유학교)등 계속 훈련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배움에도 중독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책 속에 파묻혀서 지내는 분들이 계시다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과연 나 자신의 것인지 한번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은 광야학교에 입학하여 하나님의 강한 손에 의해 낮춰지고 이러 저리 뒹굴며 비틀거릴 때 알게 되고, 또 나를 높여온 지식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지금 하나님의 광야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한다면 원망하고 불평하는 죄를 짓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나의 욕심, 기준들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참된 지식을 주려고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대로의 내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내 모습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그 어느 학교나 책에서 얻을 수 없는 참된 지식입니다. 이 지식을 얻어야만 광야학교를 졸업하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또 다른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지식은 나를 높이지만 사랑은 남을 높입니다. 우리는 지식의 늪에서 빠져나와 사랑의 힘을 맛보아야 합니다. 나는 나 자신을 세우는데 관심과 열심 갖는지, 아니면 그리스도 안에서 남을 세우는데 관심과 열심을 내는지...내가 아는 것이 곧 나인 것처럼 착각하는 삶속에 허우적 거리지는 않는지...자신을 잊어버리고 남들을 세우는 일에 집중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잊어버린 나 자신을 세우시는 일을 하실 것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김광락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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