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묵상

그리스도인의 나비효과

등불지기 2015. 8. 30. 23:30

 

 

그리스도인의 나비효과

 

이번에는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작은 행동의 가치]에 관하여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큰 변화를 기대하면서 동시에 작은 행동의 가치에 대해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단조로운 자신의 삶에 의미 있는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신데렐라 이야기나 배설공주 이야기, 그리고 수많은 이솝우화들은 자신의 삶에 마법magic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서 재미없던 자신의 삶이 갑자기 놀라운exciting 이야기로 가득 찬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되기를 기대하는 일반 사람들의 소박한 꿈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일어나서 무거운 가방을 들고 학교를 향해 등교하는 제 딸들은 학교생활에 대해 늘 불만이 많습니다. 날마다 출근하는 회사원들은 반복적인 일상을 벗어나 창업을 꿈꾸고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부목사로 교회를 섬길 시절에는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하는 모습을 날마다 그리곤 했습니다. 자신의 삶이 의미와 재미로 가득 찬 놀라운 삶이라고 믿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 단조롭고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대부분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금 어려워도 참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 가장 의미 있고 재미있으며 보람 찬 삶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 있습니다. 다들 자신의 삶에 변화를 기대하고 있지만 정작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작은 행동을 할 용기가 없거나 그런 시도를 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행동이 아주 큰 삶의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날마다 새롭고 신선한 기적의 연속인 삶을 살려면 지금 이 순간 별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작은 행동이 나의 삶 전체에 아주 큰 변화의 태풍을 불러올 것이라고 진정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작은 행동을 옮기는 용기가 동반된다면 지금 나의 단조롭고 무미건조하며 때로는 힘든 일상이 매우 극적인 일상으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에드워드 N 로렌츠라는 미국의 한 기상학자가 컴퓨터로 기상변화를 연구하던 중 아주 작은 변수가 나중에 매우 큰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이러한 현상을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를테면 서울에서 나비의 날개짓이 지구 반대편에 태풍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후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모델은 예측 불가능한 경제나 사회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30년대의 미국 대공황이 시골의 어느 작은 은행의 부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생각과 말로는 자신의 삶에 구원의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행동으로 귀결되지 않는 믿음은 구원의 효과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에 아무런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말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뿐입니다. 세상에서 행동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말이 많은 것, 그래서 너무 시끄러운 것, 이것이 오늘날 교회가 세상에서 아무런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마다 자신의 삶에 구원의 바람이 불어오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고, 기도하고 있고, 바람아 불어라고 외치고 있지만 큰 변화를 불어오는 작은 행동의 의미와 위력을 믿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작은 행동을 할만한 용기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의 고백혹은 선포의 위력이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늘 인용하는 성경구절이 이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11:23,24) 그러나 믿음의 말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될까요?

 

제가 입술의 고백이나 믿음의 선포를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문제는 입술의 고백과 확신에 찬 담대한 선포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하셨는데 기도하고 구한 것을 받은 줄로 믿었는데 내 삶에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잘못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구하였지만 믿음으로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입술로는 고백하였지만 행동으로는 고백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선포하였지만 발로는 선포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산을 옮기실 것이라고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함이란 앎과 삶의 일치입니다. 삶으로 연결되지 않는 앎이란 아무런 변화를 만들어낼 힘이 없습니다.

 

여기 가장 확실한 변화의 공식이 있습니다. 우선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주장하시도록 내어드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동하도록 하십시오. 만일 하나님께서 내 삶을 쪼들리지 않도록 하시기를 원하신다면, 그리고 실제적으로 윤택하고 부유한 삶을 살도록 개입하여 주시기를 원하신다면 모든 만물의 소유자이며 주시기도 하시며 가져가기도 하시며 후히 주셔서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찰싹 붙어 있어야 합니다. 내 삶이 빈곤과 결핍으로 고통당한다고 느낄수록 하나님의 무한하심에 강하게 접속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유하심을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고백해내야 합니다. 말이 아니라 발로서 하나님의 부유하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부유하심은 비로소 내 삶에 실제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도해도 믿어도 아무 변화가 없다면 앎과 삶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변화를 원하지만 매우 작은 날개짓을 하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경험하고 이해한 날개짓을 가지고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저는 오래 전에 선교지로 나올 것을 결심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선교의 마음을 제 아내와 제 어린 딸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실 것을 간구하였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살 것에 대해 전혀 꿈꾸지 않았던 아이들의 마음에 아프리카에 살아도 괜찮겠다는 변화의 바람이 불게된 것은 큰 아이를 킹즈키즈King’s Kids에 입학시키기 위해 등록금 5만원을 내는 일부터 시작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5만원은 저희 가족에게 매우 큰 것이었습니다. 왜냐면 강의료와 해외전도여행비까지 200만원이 소요되는 태산이었습니다. 한 달 생활비가 고작 30만원에 불과했던 제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기도하던 중에 한 줄기 믿음의 빛이 내 마음에 비추이기 시작했습니다. 만일 돈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이를 선교훈련프로그램에 넣지 못한다면 내 삶에 주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돈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자 갑자기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주인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믿음이 들자 일단 아이를 프로그램에 등록하겠다고 일단은 담당 간사에게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도에 들어갔습니다. 필요한 등록비 5만원부터 채워달라고 말입니다.

 

은밀하게 기도하던 중 어느 젊은 간사님이 기도하면서 감동을 주셨다면서 아이를 선교프로그램에 동록하는데 쓰라고 5만원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돈을 받으면서 기쁜 것은 아주 잠시. 하나님께서 그 돈을 등록비로 내지 말고 가난하고 어려운 다른 간사에게 주라는 마음을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제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잘 아는 것은 제 마음에서는 그런 마음이 도저히 나올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 동안 망설였지만 그 주신 감동을 따라 다른 이에게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받으려면 먼저 주어야 한다는 말씀을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용기를 가지고 해야 할 날개짓이었습니다.

 

당시 30만원 한달 생활비로 살던 저희 가족에게 200만원이 필요한 선교프로그램에 큰 아이를 들여보내는 큰 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산을 옮기기 위해 등록비로 사용할 5만원을 과감히 그리고 즐겁게 포기하는 행동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작은 나비의 날개짓과 같은, 다른 이들의 눈에는 매우 사소하게 보이는 그 행동 하나가 산을 옮기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신비로운 과정이었지만 저는 어느 누구에게도 손을 벌리지 않고 한 푼의 빚을 내지 않고서 오직 하나님의 놀라운 솜씨로 제 앞을 가로막고 있던 산을 옮길 수 있었습니다. 그 산을 옮기면서 제가 얻은 것이 있다면 이번 일을 결정할 때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증명해보였다는 것과 앞으로 더 큰 산을 만날지라도 또 옮길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감이었습니다. 그리고 결핍과 궁핍이 더 이상 내게 뭐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저도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도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등록비로 쓰라고 생긴 5만원이었는데 이것을 또 다시 어려운 이에게 준다는 것, 이것은 매우 작은 행동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 당시 제게는 어마어마한 태산을 옮기시는 하나님의 실제를 맛보게 만든 일이었습니다. 물론 이 일은 내 생각과 감정을 따라 한 것 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해야만 했습니다.(고후8:5) 당연 고백이나 선포와 같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을 따라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를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저의 믿음을 아주 실제적으로 훈련시키기를 원하셨고, 그 믿음의 연습을 시키신 후에 아프리카로 내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 와서 첫 해 맞이한 훨씬 더 큰 태산 몇 개를 하나님의 은혜로 옮길 수가 있었습니다.

 

삶의 변화를 기대하는 모든 형제자매 그리스도인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이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속에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기를 진정 원한다면,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아주 사소하게 보이는 작은 날개짓을 두려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마십시오. 믿음의 고백과 선포만으로 그치지 않도록 하십시오. 말로만 끝내지 마십시오. 비록 날개짓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작은 용기의 작은 행동이 큰 변화의 태풍을 일으킬 것입니다. 큰 산을 옮기는 믿음이란 순종하여 날개를 펄럭이는fluttering 행동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의 나비효과를 믿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김광락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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