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의 조건에 관하여
어떤 일이든 함께 할 때 더 큰 효과와 열매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함께 일하다가도 사소한 일로 인해 관계가 깨어져서 서로 원수처럼 지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역하기로 결정하기 전에 그 관계가 깨어지지 않는 견고한 관계인지 여부를 먼저 점검하고 테스트해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여러 가지 요소들을 점검해보아야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저는 주저함 없이 “마음의 일치”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같이 일을 할지라도 마음으로 먼저 하나가 되지 않는다면 그 일은 결코 오래갈 수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동역의 조건에 관하여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써내려가려고 합니다.
함께 일하는 것보다 우선되어야 할 일은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각자 완벽하지 않아도 진정 하나 됨을 이룰 수만 있다면 기적은 언제나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 부흥은 한 개인의 헌신과 희생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연합과 일치의 열매입니다. 사역의 열매는 희생으로만 맺는 것이 아니라 하나 됨으로 얻는 것입니다. 진정한 희생과 헌신은 혼자만의 희생이 아니라 연합을 위한 희생이어야 합니다. 사역자로서 가장 힘든 숙제는 어떻게 하나 됨을 이룰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역자들이 연합과 일치의 중요성과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음이 하나가 되지 않더라도 함께 일을 할 수 있는데 무슨 큰 문제가 될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거듭 강조하지만 함께 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이 하나 되는 것입니다. 동역보다 동심이 더 중요합니다. 목회현장이든 선교현장이든 가장 중요한 과제는 마음으로 하나 됨을 이루는 것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한 아버지, 완벽한 어머니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완벽한 아버지가 된다고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완벽한 목회자가 목회한다고 교회가 다 성장하고 부흥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교도 그렇습니다. 선교사가 혼자서 아무리 희생하고 헌신한다고 선교의 열매가 저절로 따라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참된 열매는 마음으로 먼저 연합과 일치를 이룬 다음에서 비로소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에 관해 제게 가르쳐주시려고 한 때가 생각납니다. 제가 선교지에서 내 삶을 드리겠다고 결심한 이후에 곧바로 선교현장으로 나오지 못하고 몇 년을 참고 기다려야 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 안에 선교의 열정이 부족하거나 결단력이 모자라서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마음을 제 아내에게도 세 딸들에게도 주시기를 원하였고 이를 위해 제가 참고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온 가족이 마음으로 하나가 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마음은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었지만 하나 됨을 이루기 위해 참고 기다리는 것 또한 제게 주어진 아주 중요한 선교훈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당장 선교현장으로 달려가서 선교활동을 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가족이 하나가 되는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동역의 가치를 알고 있고, 동역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동역이 이루어지기까지 치러야 하는 대가가 있다는 알고 그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려고 하는 용기와 희생을 실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어떻게 동역할 것인가를 말하기 전에 어떻게 하나 됨을 이룰 것인가 고민해야 하고 내가 지불해야 할 값이 있다면 기꺼이 치를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하나 됨을 위해 치러야 할 가장 중요한 대가는 ‘인내’와 ‘기다림’입니다. 즉, 충부히 혼자서 치고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고 기다려주는 배려심’입니다.
모든 사역의 현장에서 가장 동역하기 힘든 유형의 사람이 있다면 말로는 동역, 동역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동역의 의미도 모르고, 하나 됨의 의미도 모르는 사람, 그리고 하나 됨을 위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할 용기도 없고 자신이 희생해야 할 때 희생하지 않고 뒤로 빠지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멋진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비전을 제시하고, 그림을 그려주기를 잘 합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이 일조차 책임지지 못합니다. 그리고 작은 어려움에도 쉽게 포기하기를 잘 하며, 다른 사람에 대해서 쉽게 실망하기를 잘 합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과 동역하는 것은 정말 하늘의 별따기와 같은 일입니다.
사역보다 중요한 것은 먼저 하나 됨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됨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은 자신이 최소한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합니다. 대게 자신의 일조차도 제대로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 됨’ ‘동역’을 외치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을 자신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사용하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주는 것이 하나 됨을 위한 것이라고 믿지만 그러나 그것은 하나됨을 이루는 길이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하나 됨을 생각하는 사람의 특징이 하나 있는데 자신의 기대와 생각되지 잘 따라와 주지 않는 다른 사람에 대해 쉽게 실망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을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완성하려고 하는 사람과는 참된 동역이 어렵습니다. 하나 됨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각자가 자신의 일을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도 책임감 있게 잘 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참으로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야 서로 배려하고 서로 하나 되는 길이 열리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진리입니다. 하나 됨을 이루려면 각자 자신의 일을 그 어느 누구의 도움이 없이도 잘 해내는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역하자고 말은 하면서도 실제로 동역하기 가장 힘든 유형의 사람이 누굴까요? 아이디어를 많이 내어놓는 사람, 그리고 말이 많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일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의존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자신의 일에 집중하며 자신의 일을 책임감 있게 그리고 잘 해내는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이 해야 할 일에 관하여 말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 동역해야 할 일에 관해서도 말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하나 됨을 이루기 위해서 어쩌면 먼저 말수부터 줄여야 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일을 자신이 책임감 있게 잘 하고 있는지 자신을 냉철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의존적인 사람은 동역하기에 어려운 유형의 사람입니다. 자신의 일을 자신이 잘 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얻어서 자신이 이루고 싶은 그림은 어느 누구보다 크고 화려하게 그릴 수 있지만 결코 자신의 힘으로는 그 그림의 일부조차도 제대로 그리지 못합니다. 그런 유형의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의존적이기 때문에 또한 다른 사람에게 요구를 잘 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기대를 걸었다고 자기 스스로 그 기대가 무너져서 다른 사람에게 쉽게 실망도 잘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위로해버리고 자기 의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선교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은 가장 비의존적인self-dependent 사람입니다. 주변에 교회가 없어도 스스로 교회가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 둘씩 연결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일을 아무의 도움이 없이도 잘 해내는 그런 사람이 다른 사람과 손을 잡을 때 하나 됨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의존적인 사람들끼리 손을 잡으면 하나 됨을 이루는 일은 힘들어집니다. 각자 완벽한 사람이 먼저 되자는 것이 아닙니다.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먼저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하나 됨을 위해 자신을 오픈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약간의 여유’를 가진 그런 ‘독립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계속)
'내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정싸움(1) (0) | 2015.09.07 |
---|---|
동역의 조건에 관하여(2) (0) | 2015.09.05 |
Faith Like Potatoes (0) | 2015.09.02 |
그리스도인의 나비효과 (0) | 2015.08.30 |
지식의 위험성에 관하여 (0) | 2015.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