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의 조건에 관하여(2)
마음이 하나 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같은 목표와 목적을 품는다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보이지 않는 서약입니다. 그러니까 하나 됨을 이루기 위해 어느 한 사람이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방향에 관한 말들을 쏟아내고 해야 하는 일들을 마구 나열하는 그런 사람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굳이 그런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저마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가야 한다, 저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결국 하나 됨을 이루지 못하였다는 또 다른 증거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교회가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혼자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선교지에서 어떤 필요에 의해 같이 일하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고아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일, 신학을 하지 못한 목회자들에게 신학을 가르치는 일, 배고픈 이들을 위해 스프를 끓여서 먹이는 일,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일, 등등.. 선한 일들이고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그리고 같이 할 때 더 효과적이기 때문에 함께 일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내 깨닫게 되는 것은 진정 마음으로 하나가 되지 않은 채 일을 하는 것은 마치 살얼음판을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가는 것과 같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필요한 일이고, 함께 할 때 더 효율적이기 때문에 함께 일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참된 동역을 위해서는 먼저 마음으로 연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역하기 전에 먼저 마음으로 하나 되었는지 확인하고 검증해야 합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단지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고백하는 그런 지식적인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자신을 복종시키고 하나님의 가치와 비전으로 자신을 무장하는 것입니다. 저와 같이 현지인들에게 신학을 가르치는 선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기준이 있다면 단연 성경관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이 영감으로 된 무오한 말씀이며, 우리 삶에 절대 표준이 된다는 [성경관[에서 일치하지 않으면 함께 신학교 사역을 할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성경관이 맞지 않아서 신학교 사역을 동역하다가 결국 깨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로서 [선교관]은 아주 중요한 기준입니다. 선교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각이 다르면 결코 선교사역을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선교사에게 선교란 ‘구제’나 ‘건축’입니다. 또 어떤 이들에게는 후원자들에게 보여줄 만한 어떤 ‘행사’입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처럼 어떤 이들에게 선교는 ‘예배’여서 예배행위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게 있어서 선교란 현지인들의 ‘신학적 자립’입니다. 현지인들이 현지인들에게 건전한 신학을 가르치고 제자를 길러내도록 하는 시스템을 세우는 것이 제가 이해하는 ‘선교’입니다. 이렇게 선교에 대해 각기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면 선교사역을 함께 하기는 하겠지만 진정한 의미의 연합과 일치가 아니므로 그 동역은 결코 오래갈 수 없습니다.
선교사로서 함께 동역하기 위해 같은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품’입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을 닮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란 다름 아니라 오직 하늘 아버지 하나님의 뜻만을 생각하고 그 뜻에 철저히 자신을 복종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예수님처럼 하늘 아버지의 뜻만을 생각하고 그 뜻에만 복종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을 조종하려들거나 혹은 자신의 이름을 매스컴에 드러내려고 노력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온유와 겸손의 비밀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만 집중하고, 복종하려는 일편단심입니다. 선교사로서 이러한 단심loyalty가 없다면 현장에서 함께 동역하는 일은 일시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제가 여러 번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강조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함께 일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정 한 마음으로 일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동역하기 전에 동심을 이루었는가라고 묻자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위하여, 필요한 일을 위하여, 공동의 목적을 위하여 함께 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으며, 함께 일하고 있음으로 어느 정도 가시적인 열매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만족감을 갖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인 일이며 위험한 일인지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동역하기 전에 한 마음이 되었고 마음으로 일치가 되었는지는 다각도로 점검check하고 검증prove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놓친다면 함께 일한 동료가 어느 날 갑자기 원수가 될지도 모를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먼저 마음으로 하나가 되고 나서 함께 일을 하기 시작한다면 그 일은 나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희생하고 헌신하며 하는 그 어떠한 일보다 훨씬 더 큰 열매를 거둘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이같이 진정한 연합의 가치와 능력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진정한 연합과 일치를 통해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원수는 가능한 모든 힘과 자원을 총동원하여서라도 우리가 진정한 일치를 이루지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는 가능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서, 먼저 그리스도를 위해 달려 나가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한 마음을 품는 일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아마 일은 느릴지 모르겠지만 가장 확실한 일이 될 것입니다.
일을 얼마나 잘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을 얼마나 많이 하는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을 빨리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선교지에 빨리 나오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 옆집에는 나이가 70이 다 된 장로님 내외분이 얼마 전 선교사로 파송되어 나와서 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나이에 왜 선교지에 나왔냐고 물었습니다. 내외분이 모두 영어도 잘 못합니다. 정착하는데 주위의 도움이 없이 스스로 잘하기 어려운 분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어린아이 같은 분들입니다. 저도 직접 만나기 전에 속으로는 내심 그런 마음이 들었지만 직접 대면하고 보니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겠다 싶은 마음이 들어서 ‘대단한 용기를 가지셨습니다. 어려운 환경에 잘 나오셨습니다!’ 라고 격려해드렸습니다.
결국 그분들은 다른 도시에 정착하지 않으시고 제 옆집에 월세를 내어 정착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제가 잠시 그분들을 도와드리고 있지만 직접 도와드리는 것은 가능하면 자제하고 그분들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도록 해드리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어쩌면 정착사역만 하다 아무 일도 못하고 결국 한국으로 철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그분들을 판단하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들이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분들을 보면서 제가 또 느끼는 한 가지는 하나님의 시간표와 사람의 시간표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람 편에서 빠른 것이 하나님 편에서 보면 빠른 것도 아니며, 사람 편에서 늦은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결코 늦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각자에게 정한 하나님의 시간표가 다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잘한다고 너무 자만해서도 안 되고 잘못한다고 자책하거나 남을 비난해서도 안 되며, 혹은 생각처럼 잘 안 된다고 너무 조급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조급하면 참된 동역을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참된 연합을 위해 원하던 사역도, 동역도 늦춰져도 좋습니다. 어쩌면 내 생각보다 더 늦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가보다는 어떤 마음으로 하는가를 더 눈여겨보실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만을 생각하고 그 뜻에 온 몸과 힘과 정성을 다해 충성하셨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늘 아버지의 뜻에 집중하면서 이끄시는 대로 한걸음씩 순종하며 전진할 따름입니다. 하나님은 앞서 가시는 분이시고, 우리는 따라가는 존재이기에 조급함을 버리고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soli deo gloria
남아프리카에서,
김광락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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