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싸움
계속해서 불황 속에 살아가는 형제 그리스도인들에게 드리는 권면의 글을 적어내려가볼까 합니다.
믿음으로 싸워 이기자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5:4)
거대한 불황의 시대age of recession를 하나님의 부요하심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모든 형제 그리스도인들에게 권면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삶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믿음으로 싸워야 합니다. 힘들고 쪼들릴수록 우리는 믿음으로 주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소위 ‘반대정신’spirit of counterpart으로 사는 것입니다. 경기가 어렵고 후퇴하기 때문에 오늘 먹고 마시며 흥청거리자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 근검절약하며 아끼며 살아야 합니다. 생각 없이 지출되는 흐름을 찾아내고 차단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사는 것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잘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부요하심에 접속되었다고 믿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는 더욱 아끼며 저축하며 살아야 하고 재정원칙을 강화해나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의 부요하심을 삶으로 세상에 증언해야 합니다. 점점 인색해지게 만드는 환경에 저항하여 후하게 섬기고 베풀며 주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세상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 이것이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순교적 영성입니다.
선교지에서의 재정싸움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딤전5:17)
언어와 문화가 다른 선교지에서 살아가는 선교사에게 재정싸움은 날마다 겪는 실제적인 현실입니다. 선교지에서 정착하며 살아가면서 제게 생긴 습관이 있는데 날마다 환율을 체크하며 재정출납부를 직접 기록하고 각종 세금관련 일도 제가 직접 하고, 모든 영수증을 챙기고 재정이 흐름을 주시하며 기록하는 일을 아내가 아닌 제가 직접 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내가 물을 때면 전체적인 재정의 흐름을 알려줄 뿐이고 아내는 필요한 것을 제게 말할 뿐입니다. 이렇게 전체적인 재정상황을 항상 기록하다보면 제 마음은 실제적인 전투현장이 되는 것을 많이 경험합니다. ‘이렇게 빠듯한데 할 수 있겠어?’ ‘다음 달 더 큰 지출이 있는데 감당할 수 있어?’ 이런 생각이 문득 들 때마다 저는 제 자신에게 ‘너의 인생에 주인은 하나님이야, 돈이야?’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고백합니다. ‘돈이 제게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며 결정권을 행사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제 삶을 다스려주시고 모든 것을 결정하시는 그런 삶을 살기 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여쭙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말씀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의 뜻이면 없어도 할 것이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있어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돈이냐 하나님이냐, 둘 중에 내가 섬길 주인을 선택하기 위해 갈등하고 몸부림치며 목숨 걸고 결정을 내리는 일은 날마다 제게 현실입니다.
자신과의 싸움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딤전5:18)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잠11:25)
종종 하나님께서는 제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제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단지 지켜보시고 계신다는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결국 나 자신과의 외로운 사투를 벌여야 할 때입니다. 그럴 때는 제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어야 합니다. ‘너 안에 있는 것이 욕심이니, 아니면 비전이니?’ ‘조금이라도 아끼려는 마음인지 아니면 인색한 마음인지’ ‘네가 섬기는 주인이 돈이 아니라 하나님인지 어떻게 증명해낼 수 있어?’ 등등. 여러 가지 질문을 제 자신에게 던짐으로 제 자신을 시험해봅니다. 아주 가끔은 제가 인색하지 않다는 것을 일부러 증명하기 위해서 과감하게 행동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가 고장이 잘 나서 수리비가 많이 들어가면 속이 상합니다. 안 그래도 아끼고 모아야 하는데 예상치 못한 수리비로 왕창 나가면 많이 속상하지요. 그런데 주변에 보면 저보다 더 자동차 때문에 고생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비록 완전하지는 않아도 나름 괜찮은 제 차를 그냥 주는 것입니다. 저보다 상황이 안 좋기 때문에 동정의 마음으로 한 것보다는 사실 제가 인색하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돈이 내 삶에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일부러 삶으로 선포하기 위해서 더 큰 ‘포기’를 감행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믿음으로 큰 재정을 포기했는데 결과적으로 큰 손해 보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신기하게도 재정적인 돌파구breakthrough가 뒤따라오는 일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주는 삶이 복 되다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2033-35)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인용한 것은 이 말씀이 유일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심각한 영적전투를 앞둔 에베소 교회 지도자들에게 주시는 결론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주는 삶을 살라’는 말씀은 영적전투의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선교지에서 살아가면서 제가 제 마음에 가장 높은 우선순위에 올려놓고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어려울수록 줌으로써 어려움을 돌파하는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아끼고 모으고 절약하려고 애쓰지만 그것이 인색함으로 비치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습니다. 오히려 필요한 것이 많아질수록 저는 반대로 줄 곳을 찾아야 합니다. 주는 행위는 확실히 재정적인 어려움을 돌파하는 강력한 무기임이 확실합니다. 있어서 주는 것이 아닙니다. 없기 때문에 더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없기 때문에 못한다고 그래서 내 삶에 주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물질이라는 말을 원수로부터 듣기 싫어서 자존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돈이 없는데 무엇을 줄 수 있습니까? 밭에서 나는 야채를 뽑아서 한 상자 가득 담아서 나눠줍니다. 혹은 밭에서 떨어지는 호두나무 열매를 모아서 정성껏 까서 선물합니다. 목사가 교인들에게 받기만 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맛있는 과일과 음식으로 대접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만일 그래도 줄 것이 없으면 따뜻한 사랑을 담은 격려의 말을 줍니다. 최고의 선물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시려는 말씀을 대언해주는 것입니다. 예언의 말씀을 주는 것보다 더 큰 선물은 없습니다. 받을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줍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저는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내 삶에 주인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삶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삶의 고백이 분명할 때 비로소 나의 기도는 더욱 믿음의 기도가 되고 확실한 응답을 체험하는 것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갚을 것이 없는 자에게 주는 것은 불황과 빈곤의 시대를 헤쳐나가는 지름길입니다.
풂과 매임의 원리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8:18)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사58:6)
우리가 열심히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이나 변화가 없다면 더 이상 기도를 하지 말고 깊이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침묵하신다면 사람 편에서도 침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답답한 재정상황을 풀어주기를 원하신다면 내가 답답하게 묶고 있는 부분이 있는지 먼저 찾아보고 그것을 푸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침묵하신다면 내가 풀어야 할 것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을 재정적인 원리에 적용해보겠습니다. 내가 받기 전에 먼저 주어야 할 부분이 있는지 찾아보십시오. 내 생활이 윤택해지려면 내가 먼저 윤택하게 해야 할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십시오. 하늘에서 풀어주기를 원하면 내가 묶고 있는 것을 먼저 풀어야 합니다. 하늘문을 여는 것은 이웃과 다른 사람에 대한 나의 좁아진 마음문부터 먼저 활짝 여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내가 순종해야 할 영역에서 불순종하고 있는 한 아무리 간절한 기도라 할지라도 하늘 보좌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하늘에서 풀기를 원한다면 내가 묶고 있는 것을 먼저 풀어야 합니다.
영적전투의 현장에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딤전5:10)
돈이냐, 하나님이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예수님의 도전은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날마다 계속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결정할 때 그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그것이 돈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십니까? 그것이 돈이 있어서 혹은 없어서입니까? 아니면 돈이 있어도 혹은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까? 재정싸움에서 나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실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재정싸움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평생 피할 수 없는 영적전투입니다. 그것은 내 안에 있는 죄성과 싸우는 것이고, 나를 인색함이라는, 하나님의 성품과 반대로 몰아가려는 원수 마귀와 벌이는 싸움입니다. 이 싸움에서 말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삶으로 선포하고, 행위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말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 발로는 돈을 향하여 ‘주여, 주여’라고 외치는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 영적싸움에서 패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산을 옮기는 믿음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눅17:6)
산을 옮기는 믿음은 겨자씨만한 믿음입니다. 우리는 종종 큰 산을 만나면 피해가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기 위해, 더 큰 믿음을 주시기 위해 감당치 못할 태산을 우리 앞에 만나게 인도하시기도 합니다. 이 태산을 ‘재정적인 과제 혹은 문제’라고 생각해봅시다.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피할 것인가, 아니면 돌파할 것인가 기도하면서 결정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돌파하기를 원하신다는 마음을 주신다면 우리가 과감하게 행동해야 할 순종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작은 용기가 바로 산을 옮기는 겨자씨 같은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산을 옮기기 원한다면 태산 앞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에 과감히 순종하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게 재정적인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를 묻지 말고 이 시점에서 내가 순종해야 할 주인이 누구인지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나의 실제적인 주인으로 섬길 것이라고 결정하였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그럴 때 산을 옮기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통해 흘러나가게 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
힘들다고 다들 아우성치는 세상의 탄식 속에 살지만
없다고 인상 찌푸리며 살기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부요하심을 누리며 사는 법을 가르쳐주십시오.
날마다의 재정싸움에서 승리하기를
불황의 시대 속에 하나님의 부요하심을 날마다 누리며 살기를
이를 위해 날마다 말씀으로 붙들어주시고 믿음의 도전과 응전을 멈추지 않게 하시기를
물질만능의 세상 속에서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실제적인 주인되심을 날마다 입으로 삶으로 고백하여낼 수 있기를
재정적인 궁핍 속에서 나는 부요하다고 외치며 노래할 수 있기를
하나님의 위로와 부요하심을 나의 기업으로 여기며 즐거워하며 살 수 있기를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모든 것을 후히 주시고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한 사업에 부유한 자가 되고 선한 열매 풍성히 맺으며 사는 믿음을 허락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김광락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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