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설교

요한계시록 강해(14)-하늘예배I (계4:8-10)

등불지기 2012. 3. 3. 17:10

하늘예배는 참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할 때 한국에서 늘 드렸던 예배와는 너무나도 다르지만 하늘예배를 생각하면 큰 힘이 됩니다.

김광락 선교사 올림.

 

요한계시록 강해(14)

 

하늘 예배 I

 

본문:계4:8~10

 

4:8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4:9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4: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예배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예배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습니다. 얼마만큼 중요한가? 우리가 기도 응답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 예배입니다.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러나 더 아름다운 모습은 주님께 예배하는 모습인 줄 믿습니다. 예배가 오늘 우리에게 왜 중요한가?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첫째, 천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배이기 때문에 오늘 우리에게도 중요합니다. 천상에서 하나님 보좌를 중심으로 항상 신령한 예배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저 천국에서 이루어지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배입니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천국에 들어가면 영원토록 뭘 하고 사느냐고 묻습니다. 영원토록 쉬지 않고 우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예배가 우리에게 중요한 둘째 이유는 하나님 보좌에 가장 가까이 섬기는 자들이 바로 예배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있는 자들이 예배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예배는 소중합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예배자들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 다음 셋째로 예배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이유가 지난번 말씀드렸듯이 예배야말로 환난 많고 시련 많은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 요한이 계시록 6장부터 하나님의 심판을 소개하기 이전에 4,5장에서 천상에서의 예배를 소개하는 참된 목적인 것입니다. 예배 잘 드리게 되면 세상을 이길 힘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예배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예배는 승리하는 삶의 비결이요 원천입니다.

그러면 어떤 분은 또 말하기를 “천국에서 예배만 드리면 너무 지루하고 심심하지 않겠느냐?”고 물으실 겁니다. 그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 잘 모르시는 분이 하는 말입니다. 예배의 감격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해서 하는 말입니다. 보좌 주위에 네 생물과 24장로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쉬지 않고 찬송을 올려드리며 경배하며 밤낮 중단 없이 예배드리지 않습니까? 그들이 할 일이 없어서일까요? 아닙니다. 왜냐면 그들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마다 예배하지 않으면 안될 벅찬 감격과 흥분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배드리지 않으면 안 되는 흥분과 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바로 그런 감격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하나님을 정말 잘 아는 사람은 예배드리는 감격과 흥분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예배의 기쁨을 맛본 사람입니다. 어떻게 말인가요? 우리가 보좌에 앉으신 영광의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만 하면 예배하지 않으면 안 될 감격과 흥분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야말로 정말 영원히 그리고 밤낮 드려도 아쉬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배에 대해서 가장 큰 오류가 무엇인가요? 많은 분들이 예배를 ‘본다’는 겁니다. 혹은 예배를 ‘참석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배가 재미있다 혹은 재미없다는 식으로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배형식 그 자체가 재미있고 재미없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배는 내가 스스로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직접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재미있고 없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태도가 문제이지 예배 그 자체가 잘되고 못되고가 결코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감격이 식어진 것이 문제이지 예배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기쁨과 감격이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예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지 찬양이 어떻고 설교가 어떻고 순서가 어떠한가가 예배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예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을 얼마만큼 알고 있으며 얼마만큼 그분을 아는 기쁨과 감격과 열정이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예배는 참석하거나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배는 내가 몸과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예배에 참석하기는 하는데 예배를 전혀 드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몸은 예배당에 있는데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예배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예배를 위해 기도로 몸과 마음을 준비하게 됩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좋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성가대의 찬양이 화음이 맞지 않고 엉망으로 불러도 상관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에 대한 감격과 흥분으로 준비하게 됩니다. 이렇게 준비한 가운데서 예배에 임해야 능동적인 예배가 되고 참 예배가 되고 신령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 적 기억에는 친구들과 같이 이렇게 예배를 위해 기도로 준비하고 주일을 맞이한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럴 때 예배가 감격 있게 살아나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목사님의 말씀이 너무 좋고 성가대의 찬양이 너무 좋아서 그런지 예배를 위해 준비하는 분들이 적어져 가는 것 같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때 영국정부는 윌리엄 템플 감독에게 전쟁의 공포로 떨고 있는 전 국민들을 위해서 무언가 한 말씀을 하라고 부탁했을 때 윌리엄 템플 감독이 라디오를 통해서 이렇게 전국에 방송했다고 합니다. “국민 여러분, 이제 우리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전능하신 하나님께 예배해야 할 때입니다.” 전쟁이 났으니까 국가를 위해 군대에 지원하라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전쟁이 났으니까 합심하여 전쟁을 준비하자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전쟁이 날수록 우리는 더욱더 예배에 힘쓸 때라는 말입니다. 위기를 만날수록 더욱더 예배에 힘써야 한다는 윌리엄 템플의 말은 사도 요한 당시에 극한 핍박과 환난 속에 있던 수많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말씀이었고, 오늘날도 변함없이 적용되어야 할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여러분, 삶에 위기를 만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말씀은 삶의 위기의 때에 우선순위(priority)는 바로 예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계시록의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상에는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온갖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 당시에만 해도 핍박을 비롯해서 온갖 무서운 사건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온갖 기근과 지진과 홍수와 폭설과 각종 재난에 대한 소문들이 우리의 정신을 빼놓고 있습니다. IMF라느니, ‘경제환난’이니, 실직이니, 퇴출이니, 구조조정이니, 집이 경매 들어갔다고 하는 등 우리의 얼을 빼놓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모든 사건들은 죄악 많은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계시록 본문은 지상에서 일어나는 무서운 사건들을 보여주기 이전에 천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예배에 대한 환상적인 광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지상에서는 무서운 일들이 막 일어납니다. 소란스러운 사건들이 마구 일어납니다.

그러나 천상에서는 너무나 환상적인 예배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광경입니다. 너무나 거룩하고 진지한 모습입니다. 죄악 많은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6장부터 본격적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먼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보좌와 그 보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천상의 예배의 광경을 먼저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예배는 구원받은 신자의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이기 때문이고, 둘째, 예배는 환난 많은 세상에서 승리하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늘 보좌의 영광을 목격할 때 비로소 세상의 수많은 시련과 환난을 넉넉히 이겨내고 승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이 세상이 겪고 있는 엄청난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아래 고통당하는 광경을 보여주기 이전에 영광스러운 천상의 예배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시록을 계속 살펴보려면 지상에서의 무서운 저주의 사건들과 대조되는 방식으로 천상에서 아름답고도 황홀한 예배가 드려지고 있다는 이 두 장면을 마음속에 선명하게 그려놓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계시록을 읽으면서 이 천상에서 드려지고 있는 이 황홀하고도 아름다운 예배의 광경을 잊지 않는다면 진정 계시록의 참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셨다고 믿습니다. 다시 말해서 계시록은 우리에게 환난과 위기 가운데서 참되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원리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말씀 속에서 우리는 참되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원리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8절 말씀 속에서 예배의 원리 세 가지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참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첫째,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서 절대로 바른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요즘 교계 내에서는 ‘열린 예배’라는 새로운 예배 형식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불신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예배형식도 자유롭게 하고, 찬송도 가급적이면 부르지 않고, 딱딱한 설교를 짧고 재미있게 하고, 흥미를 유발시키는 연극이나 영화 등을 예배 가운데 도입하자는 얘기가 많습니다. 어느 정도는 생각해볼 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으며 어떤 일을 하고 계시며 또 장차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 도무지 알지 못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 하나님께 예배드린다고 할 수 있습니까? 전도집회는 될 수 있어도 참된 예배는 결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른 예배를 드리려면 먼저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서 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예배하는 행위보다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소외되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예배에는 말씀선포가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설교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그 하나님께 참으로 경배할 수 있게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계십니까? 아는 것만큼 바르게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배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예배로 이어지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예배가 없다면 이는 죽은 지식입니다. 행함 없는 믿음이 죽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서 예배드리려고 한다면 이것은 공허합니다. 살아있는 예배는 ‘신령과 진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까? 성경은 바로 하나님에 대해서 말합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믿음의 영웅들이 있지만 사실 그들이 진정 주인공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경의 주인공이 되십니다. 그러면, 성경은 어떤 하나님을 말씀합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아는 것입니다. 본문 8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보좌에 가장 가까이 있는 네 생물들이 밤낮 쉬지 않고 찬송하는 제목이 무엇입니까?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하나님의 어떠하심에 대해 여러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거룩’입니다. 사도 요한이 전하는 복음은 바로 하나님의 거룩성에 대해서 선포하는 메시지였습니다.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일1:5절) 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아는 것이 가장 근본인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알지 못하면 우리가 죄인된 사실도 모르게 되고, 우리가 죄인된 사실을 모르면, 우리를 위해 대속의 십자가를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할 필요성도 모르게 되며, 구세주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하고, 여전히 죄악 가운데서 살 수 밖에 없게 되며, 그 결과 영원한 지옥형벌에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알지 못하면 아무리 능력 받고 아무리 은혜 받아도 교만하게 되고 교만하게 되면 버림받게 되고 패망하게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알면 아무리 실패해도 낙심하지 않게 되며 아무리 성공해도 자만하지 않게 됩니다. 죄에 대해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거룩을 아는 지식입니다. 승리하는 삶, 계속 쓰임 받는 삶을 위해서 하나님의 거룩성에 대한 경험적인 지식보다 더 중요한 지식은 없습니다.

그 다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입니다.(8절)

본문에 보니까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을 때 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칼빈이 가르친 개혁사상의 핵심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우리의 자발적인 노력과 의지로 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부르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갈 수 없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바라보면서 벌벌 떨고 무서워하고 있을 때 오직 하나님께서 나아오라고 한 사람들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었지 않습니까? 오직 부름 받은 사람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신구약의 공통된 메시지입니다. 바로 여기서 예정론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도 사실은 하나님이 불러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주의 일을 할 수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주권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도 사람의 행동을 보고 무슨 윤리적인 교훈을 끌어내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직 모든 인간과 역사의 배후에 하나님의 주권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알아야 합니다.(8절) 첫째,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과거 역사 가운데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인격과 십자가과 부활 가운데 어떤 일을 이루셨는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지나온 나날들을 돌아보시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복과 은혜들을 한번 세어보시기 바랍니다. 예배드리기 전에 우리는 잠깐 손을 멈추고 지나온 세월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가장 어려웠을 때 함께 하신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 발자취들을 더듬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미국의 하몬드 제일침례교회의 담임목사님인 잭 하일스 목사님은 꼭 강단에 올라가기 전에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섬기면서 쌓아온 영적인 추억들을 하나둘씩 기억 속에서부터 끄집어낸다고 합니다. 그런 다음에 하는 설교는 얼마나 강력하고 힘이 있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배드리기 전에 하나님이 과거 역사 가운데 베푸신 위대한 일들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갈보리 언덕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들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십자가 보혈로 구속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지금 하고 계시는 일에 대해서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세계만국을 통치하고 심판하고 계십니다. 심판을 내리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믿는 자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일을 증거하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가운데 행하고 계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여러 모양으로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지 알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장차 행하실 일들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천군천사들과 하늘의 수많은 성도들과 함께 다시 재림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호수에다 돌을 던지는 것처럼 바벨론과 같은 이 세상을 영원한 형벌의 불못 속에 집어던지실 것입니다. 또한 하늘과 땅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불러모아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이 하신 일, 하나님이 하시는 일, 그리고 하나님이 장차 하실 일들을 알게 되면 참으로 예배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를 힘들게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이 무엇입니까? 수많은 시련과 환난 속에서 당장 우리가 취해야 하는 행동이 무엇입니까? 윌리엄 템플이 말한 대로 위기일수록 예배해야 할 줄 믿습니다. 요란하고 시끄러운 지상에서 벗어나서 천상으로 올라가 환상적인 예배를 한번 참석해보시기 바랍니다. 세상 모든 시련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배는 신자의 생활과 교회의 사역 중에서 가장 우선되는 사역인 줄 믿습니다. 하늘 보좌를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보좌에 가장 가까이 있는 자들이 한 일은 다름 아니라 바로 예배였습니다.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은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은 예배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예배의 갈급함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예배한번 잘 드리면 일주일 동안 쌓인 모든 피로와 무거운 짐들이 벗겨지게 되는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참으로 바른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배의 중요성에 대해 조금 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예배는 ‘가치를 높이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가치를 알아야 가치를 인정하고 높이지 않겠습니까?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이유는 가치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 때문에 예배의 감격이 식어져 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참으로 바르게 아는 지식이 바른 예배를 위해 필수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 교회의 예배는 저 교회에 비하면 재미없다’고 합니다. 그것은 사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고갈되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열망이 식어졌다는 단적인 증거입니다. 우리는 종종 예배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예배가 훌륭하다느니 엉망이라느니 말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배보러’ 여기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예배드리러’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가 예배드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하고 또 알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배의 초석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우리는 누구에게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우리가 예배드리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오늘 본문에 사도 요한이 두 번씩이나 반복하면서 표현하고 있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 9절에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0절에도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라고 했습니다. 두 번이나 “보좌에 세세토록 앉으신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보좌에 앉았다”는 말은 영광과 위엄과 주권을 가지고 통치하신다는 말이며, “세세토록 사시는 이”라는 말은 어제나 오늘이나 앞으로도 변함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변할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변함이 없으십니다. 항상 변함없이 이 영광의 보좌를 지키실 것입니다. 변함없는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신실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세상은 변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우리가 가진 물질이나 명예도 다 변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절대로 변함이 없이 보좌를 지키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께 예배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각자에게 변함이 없으십니다. 여러분 각자에게 신실하십니다. 그분이 나에게 변함이 없다는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그분을 예배할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세세 무궁토록 살아 계시며 보좌에 앉아 계신 그 하나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세상 이교도들이 하는 예배와 기독교 예배가 무엇이 다를까요? 저들은 자기들이 예배하는 신이 어떤 신인지 잘 모르고 예배합니다.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예배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잘 알고 예배합니다. 우리는 거룩하시며 변함없으시며 창조주가 되시며 구속주가 되시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저들은 예배를 통해서 무언가 축복을 구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축복이 오건 안 오건 상관없이 하나님께 예배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막연한 두려움이나 무지로 인한 동기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예배드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예배가 감격스럽습니다. 예배가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야 예배가 ‘보는 예배’나 ‘참석하는 예배’가 아니라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예배’ 혹은 ‘흥미로운 예배’에서 벗어나서 ‘살아 있는 예배’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배라는 말은 ‘가치를 높이다’는 말인데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고서 어떻게 하나님을 높여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기독교의 예배는 하나님에 대한 계시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성령의 계시가 없을 때는 도무지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예배드려야 합니까? 천상에서 네 생물들과 24장로들이 어떻게 예배드렸습니까? 그들은 쉬지 않고 찬송했습니다. 찬송은 곧 예배입니다. 이 찬송이야말로 예배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예배는 찬송을 많이 부를수록 좋습니다. 그 다음 24장로들이 한 일은 네 생물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선포할 때에 화답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뜻과 역사에 대해서 계시가 선포될 때에 우리는 아멘으로 화답해야 할 줄 믿습니다. 말씀에 화답하는 것--이것이 예배입니다. 그 다음 24장로들이 하 일은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엎드려 경배해야 합니다.

그 다음 그들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자기들의 면류관을 벗어 던져드렸습니다. 면류관이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 우리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그런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면류관은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나타냅니다. 24장로들은 천상에서 모든 예배자들을 대표하는 자들로서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한 몸에 받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들이 그것을 받기에 합당치 않다는 사실을 알고서 그것을 다시 하나님께 되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코리 텐 붐 여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나에게 감사하거나 칭찬을 하면 나는 ‘감사합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나님, 제가 받은 칭찬과 감사는 제가 받을 자격이 없어요 다시 주님께 돌려 드릴께요.”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누가 여러분에게 감사를 표합니까? 누가 여러분에게 칭찬합니까? 우선 기쁨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잠들기 전에 다시 그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시기 바랍니다. “주여, 저는 주님 앞에 이것을 받을 자격이 없어요. 주님이 받으세요”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다시 되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이룬 업적이 있다면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이 주시지 않고 이룬 일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있는 능력과 칭찬과 존귀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다 돌려드려야 할 줄 믿습니다. 바로 그것이 예배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칭찬과 존귀와 감사를 받을 때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리고 있습니까? 오늘 하나님께 돌려드릴 여러분의 면류관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기도응답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지금 천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황홀하고 아름다운 예배의 광경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이 놀라운 예배의 광경을 살펴보면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이 얼마나 천박하고 깊이가 없는지 알고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바른 예배를 드리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오직 한 가지. 하나님에 대해서 집중하십시오. 하나님을 더 깊이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더 알고자 열망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참 예배의 본질입니다. 우리 모두 깊이 있는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깊이 알기 원하는 소원이 불 같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려드리십시다.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우리의 면류관을 벗어 드리십시다.

 

면류관 가지고 주 앞에 드리세 저 천사 기쁜 노래가 온 땅에 퍼지네

내 혼아 깨어서 주 찬송하여라 온 백성 죄를 속하신 만왕의 왕일세

면류관 가지고 주 앞에 드리세 그 손과 못의 상처가 영광 중 빛나네

하늘의 천사도 그 영광 보고서 고난의 신비 알고자 늘 흠모하도다

면류관 가지고 주 앞에 드리세 온 세상 전쟁 그치고 참 평화 오겠네

주 보좌 앞에서 온 백성 엎드려 그 한량없는 영광을 늘 찬송하겠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