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묵상

두려움에 관하여

등불지기 2021. 4. 6. 21:21


이번 부활주일 예배에는 마태복음 28장의 본문을 가지고 두려움에 관하여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부활이 무엇인지, 부활 사건이 모든 그리스도린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특별히 두려움이란 감정에 대해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 입니다.

두려움이란 기본적으로 불확실하며 미지의 낯선 상황을 맞이했을 때 생기는 감정입니다. 청년들이 대학졸업을 앞두고서 느끼는 감정이며 어두운 밤거리나 산행을 할 때 느끼기도 합니다. 혹은 오랜 집을 떠나 새로운 땅으로 이사할 때 심지어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일을 처음 계약할 때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 펼쳐질지 두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두려움이란 감정은 보다 근본적인 관점에서 보면 죄의식 sense of guilty 이란 뿌리에서 생겨나는 형벌 punishment 에 대한 예측expectation 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활의 첫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가 경험한 그 두려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낯선 상황, 특히 낯선 천사와의 조우는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던 죄의식을 일깨우기 충분했고 그래서 그들은 형벌에 대한 즉각적인 감각에 사로잡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 천사도, 부활하신 주님도 그들에게 반복적으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최초의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을 때 그들이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은 자신들이 벌거벗음 nakedness 을 발견하였습니다. 범죄라는 행위의 결과 가장 먼저 갖게되는 원초적인 감정은 바로 수치심 sense of shame 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무화과 잎으로 치마를 하여 자신을 가렸고(은폐),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엄폐).(창3:7,8절) 은폐 엄폐란 행위는 바로 두려움이란 감정에서 비롯된 행동입니다. 수치심과 두려움은 형벌의식에서 비롯된 쌍둥이들입니다. 인간의 생애 동안 겪는 모든 문제들의 근원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복음이란 바로 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수치심과 두려움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요즘과 같이 두려움이 사람들의 마음을 세계적으로 지배했던 적이 있을까 싶습니다. 보이지 않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는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정도입니다. 저또한 죽음의 그림자를 이처럼 가까이 느끼며 살았는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매일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일상이 된지 오래입니다. 어쩌면 정도의 차이일뿐 모든 사람들이 나름대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 복음은 진짜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을 깊이 묵상하는 것보다 우리의 마음을 진정으로 위로하는 것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죄에 대하여 나 자신이 죽은 사건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모든 소망의 확실한 보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살아나셨고 지금도 살아계시며 영광증에 다시 오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첫열매라 하듯 그를 믿는 우리에게는 영광스러운 부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소망은 너무나 확실하고 절대적이어서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두렵게 하지 못합니다. "그므시라꼬"란 경상도 사투리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묵상하는 우리는 그 어떤 낯선 상황 죽음, 실패, 두려움에 관해서도 "그게 뭐라꼬"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 내 앞에 펼쳐진 낯선 상황, 사건과 사람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이 있습니까? 지금 첫열매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오직 그것만이 절대 소망 절대 기쁨 절대 평안으로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축하며 기뻐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김광락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