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설교

요한계시록 강해(24)-하늘의 침묵(계8:1-6)

등불지기 2012. 3. 3. 17:57

우리가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고,

어떤 일을 열심히 하는데 아무런 결과가 없이 고요할 때가 있고,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침묵해야 할 때가 있기도 하지요..

침묵은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그 반대로 크고 중요한 일이 곧 일어난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삶의 침묵, 하나님의 침묵, 하나님의 침묵이 오히려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올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김광락 선교사 올림.

 

요한계시록 강해(24)

 

하늘의 침묵

 

본문: 계8:1~6

 

8:1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 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8:2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가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8: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8: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8:5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8:6 일곱 나팔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예비하더라

 

하나님의 은혜로 벌써 8장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살펴오면서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요한계시록을 강해하면서 저는 평소 그냥 지나치던 본문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는 기쁨이 참으로 큰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깨닫는 것은 성경을 볼 때 나도 모르게 타성에 젖어버리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 때문에 깊이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험성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연히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것입니다. 특히, 내가 잘 아는 본문만 가지고 가르치는 것보다는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본문도 함께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쭉 가르치는 것이 참으로 좋은 것 같습니다. 학사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가르쳤듯이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일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일만 마디 방언하는 것보다 깨달은 다섯 마디를 가지고 가르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십시오. 그러나 여러분, 그 이전에 먼저 말씀을 깊이 연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연구할 때 말씀이 주체가 되고 연구하는 내가 객체가 될 때 비로소 우리는 말씀의 능력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렇게 말씀의 능력이 있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말씀으로 섬기게 됩니다.

제가 청년부를 보면서 깊이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은 많은데, 개인적으로 말씀을 깊이 연구하는 데 시간을 들이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말씀을 읽으며 은혜를 공급받을 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제가 너무 무리한 것을 요구하는 걸까요? 아니 이것은 제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목회는 교인들을 말씀으로 먹이는 것과 교인들이 스스로 말씀을 먹을 줄 아는 사람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개인적으로 연구하는 분들이 여기 계십니까? 저는 우리 모임 안에 이러한 흐름이 주류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 있습니다. 제가 계시록의 말씀을 조금씩 강해하는 이유는 우리가 너무 익숙한 본문, 그리고 너무 어렵다는 편견 아래 그냥 지나쳐버리기 쉬운 본문에 대해 우리가 도전하자는 의도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의 말씀이 어렵다는 이유로 해석을 시도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계시록의 말씀 역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해야 하며, 연구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계시록의 말씀을 계속 연구하는 동안 여러분 안에 더욱 말씀을 연구하고자 하는 열망이 간절해지기를 바랍니다.

자, 본문을 살펴보기 전에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 다시 한 번 봅시다. 우리는 6장에서 어린양이 여섯째 인을 떼시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8장에서 일곱째 인을 떼십니다. 그런데 7장에는 막간으로서, 두 가지 환상이 보여집니다. 하나님께서 십사 만 사천 명을 인 치시는 장면과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많은 무리들이 ‘큰 환난’을 통과한 후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장면입니다. 7장은 6장에 대한 대답입니다. 6장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날이 선포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누가 감히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까? 이에 대해 7장은 이렇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아시는 자들만이 선택될 것이고, 하나님은 그들을 보호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 하나라도 잃어버린바 되지 않는 완전한 무리들이며, 사람 편에서 볼 때는 아무라도 능히 헤아릴 수 없는 큰 무리로서 의인들이며 승리한 자들이며 환난을 통과한 자들이며 전적으로 구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아는 자들입니다.

지금도 이 수많은 무리들은 하나님 보좌 앞에 서서 찬양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 수많은 무리들 가운데 우리 자신이 포함되어 있는지 찾아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무리들은 우리가 죽고 나서 천국에 들어가서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시간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들입니다. 여전히 몸은 이 땅에 있지만 자신의 실존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확신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십자가와 부활로 세례를 받은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자기 정체와 자기 주소를 분명히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모습은 무엇이며, 여러분이 지금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의 실존에 대해 잘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히12:22-24)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 와 있는가를 아는 것은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비밀입니다.

자, 오늘 본문은 드디어 어린양이 마지막 일곱째 인을 떼시는 장면입니다. 일곱째 인을 떼시면 이제 인류를 위한 구속계획은 완성될 것이고 하나님 나라는 완성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일곱째 인이 떼어질 때 하늘에 반시간 동안 장엄한 침묵이 흐르고 있습니다. 반시간 동안 하늘이 고요합니다. 그 동안 우리는 하늘에서 천군 천사들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찬송소리를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찬송소리가 뚝 끊어졌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이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면 굉장히 긴장했을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불안해한다. 제가 강단에서 ‘여러분’하고 딱 3분만 침묵한다고 가정해보십시오. 그러면 아마 졸던 사람들도 졸지 못하고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될 것입니다. 설교 때 졸지 않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실 설교를 중단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침묵을 싫어합니다. 침묵할 때 잠도 오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늘의 침묵에 대해 살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즉, 하늘이 왜 침묵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 살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일곱째 인을 떼실 때 천사들이 즉각적으로 나팔을 불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하늘이 침묵한 것은 앞으로 큰 일이 일어날 것을 암시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전쟁이 터지기 전의 고요함을 아십니까? 일곱째 인이 떼어지면 무서운 종말의 사건들이 터질 것입니다. 하늘의 모든 존재들은 곧 이어 발생할 사건들을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곧 행하실 일들에 천군 천사들은 침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의 때에 부르짖어도 하나님께서 아무런 응답도 주시지 않는 이유는 더 큰 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고 부르짖어도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아십니까? 그래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하나님을 끝까지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은 버리신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더 큰 일을 행하시는 전조로 여기십시오. 하나님은 언제나 침묵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언젠가 침묵을 깨고 일어나실 것입니다. 끝까지 참고 하나님을 기다린 사람이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우리가 그분을 과연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우리를 시험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만약 끝까지 참고 하나님을 기다리면 반드시 하나님을 만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의 말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6-8)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때론 침묵하십니다. 그러나 침묵하시는 이유는 택하신 자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 역설을 아십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침묵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끓어오르는 분노로 일어나셔서 그 자녀들의 울부짖는 소리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문제는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참 믿음은 인내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합니다. 인내 없이 참 믿음을 이룰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진정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에도 낙심하지 말고 계속 부르짖으십시오.

둘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도들의 기도 때문입니다.

하늘이 침묵하는 이유는 성도들의 기도 때문입니다. 지상에서 신음하며 탄식하며 부르짖은 성도들의 기도는 하늘의 천사들을 침묵케 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여 들으시기 위해서 침묵을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계십니까? 지금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울부짖는 기도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잠잠히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천군 천사들도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많은 분들이 기도를 노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맞는 말입니다. 기도는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기도는 성도들의 특권입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듣지 못하는 분처럼 생각하고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에 힘들어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몰라서 그런 겁니다. 하나님이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심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래서 중언부언합니다. 마치 귀머거리에게 우리가 마구 고함치는 것처럼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6:7,8)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 지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러면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신다면 왜 그것을 주시지 않는겁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2,33)

그러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불평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기까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주지 않고 기다리신다면, 과연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이유는 다 성도들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성도들로 하여금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으며, 하나님을 섬기고 있으며, 하나님을 기뻐하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그러한 사랑을 요구하실 권리가 있으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즐거워하기 보다는 내 필요, 내게 있어야 할 그것을 더 즐거워합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우상숭배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침묵하시는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 안에 있는 정욕과 탐심 때문에 내가 시험에 들고 내가 힘들어지는 것이지 그 원인을 침묵하시는 하나님 탓으로 돌리지 마십시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가만히 계시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우리의 기도를 안 들으시고 외면하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침묵하시면서 가만히 귀를 기울여 듣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침묵기를 통과할 때 우리가 어떤 고백을 하며, 어떤 말을 하며, 어떤 기도를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면 그것이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지 증명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신음소리마저도 놓치지 않으시려고 귀를 기울이십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더라도 계속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십시오. 무엇을 구하든지 그분의 뜻대로 하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됩니다. 요한일서 5:14,15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셋째로, 성도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능력으로 이 땅에 임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십시오. 밤낮 드리는 네 생물의 찬양과 천사들의 찬송소리는 성도들의 기도가 상달되기까지 중단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기도가 하늘 보좌에 상달되기까지 천사들은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기도의 위대성을 알기 바랍니다.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께 무릎 꿇어 기도하는 것이 왜 위대합니까? 성도들의 기도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크신 일을 행하시기 전에 먼저 성도들의 기도를 듣기 원하십니다. 또한 기도가 위대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기도하는 행위가 위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위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뢰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수표에 싸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아뢰는 말들은 다 무가치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뢰하는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우리가 의지하는 예수님의 공로 때문에 우리의 아뢰는 말들은 하나님 앞에 가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 그 자체는 하나님께 아름다운 향기와 같고 제사와 같습니다. 우리는 구약의 제사와 같은 그런 희생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죽음으로 희생제사를 친히 치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는 영적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의 공로로 인하여 우리의 기도가 상달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성도들의 기도가 하나님 보좌 앞에 상달되는 이유를 보십시오. 우리의 기도가 상달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천사들은 금향로에 향을 가득 담아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드리고 있습니다. 이 금향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공로와 이름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끝마침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가 그 의미를 알지 못하고 사실상 내 이름과 내 공로로 기도하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주기도는 주문이 아닙니다. 기도의 원리입니다. 그 원리를 따라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내 힘으로 기도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사실, 우리의 기도 그 자체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그 자체로는 가치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천사들은 우리의 기도에 많은 향을 더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기도들과 합하는 많은 향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어린양의 보혈의 공로, 어린양의 희생과 죽음을 의미한다. 주님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기도는 전혀 무가치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상달될 리가 없습니다. 여기서 천사들의 역할은 구원받을 후사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즉, 그들의 기도가 상달되고 응답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기도가 안 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가 안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오히려 기도가 잘 되는 것이 이상한 것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은혜이지 내 능력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귀를 기울이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천사들마저 침묵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의 공로가 내 기도를 향기롭게 한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다리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기도하는 소리를 듣고 싶어하십니다. 아가서 2:14에 보면,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라고 말씀합니다. 성도들의 기도소리를 듣고 싶어하십니다. 그것이 어린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심정입니다. 그것이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입니다. 자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부모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자녀의 말을 듣고 싶어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기도를 방해하지 못한 은밀한 장소를 정하십시오. 골방으로 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은밀한 곳에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려면 우리 역시 은밀한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께 여러분의 목소리를 내십시오. 어떤 소리도 좋습니다. 대화를 시도하십시오. 하나님이 앞에 계시는 것처럼 생각하고 말을 꺼내십시오. 기도는 대화입니다. 그래도 기도가 안 된다면 기도를 위해 기도해보십시오. 기도의 문을 열어달라고 말입니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찬양하십시오. 하나님이 임하시기 위해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불신과 싸우기 위해 찬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불신과 불만과 싸워 이기기 위해 가장 좋은 무기는 감사와 찬양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원수들과 싸우기로 작정하고 담대히 전진하며 뒤로 물러서지 않을 때 하나님은 우리 편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기도해야 할 지 모르겠다면 성경을 펴서 읽으십시오. 성경을 읽고 성경말씀을 기도의 제목과 내용으로 삼고 기도해보십시오. 기도는 의무가 아니라 성도의 특권입니다. 기도는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때 마귀는 떨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인생보다 더 무서운 사람은 없습니다.

성도들의 기도에 어떤 결과가 따릅니까? 기도응답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뇌성, 음성, 번개와 지진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킵니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의 부흥케 하심을 가리킵니다. 교회사를 보면 부흥이 일어났던 때의 특징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선명하게 의식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진노를 깨닫게 될 때 영적으로 각성하게 되고 부흥하게 됩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기도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세상 역사를 변화시킵니다. 성도는 기도로 세상을 통치하는 셈입니다. 하나님은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서 세상을 심판하시며 세상에 진노를 내리십니다. 성도들이 기도할 때, 세상을 두려워 떱니다. 마귀는 무서워합니다.

성도들의 무기는 기도입니다. 성도들이 기도함으로써 천사들은 경고의 나팔을 불 준비를 하게 됩니다.(6절) 이 나팔은 전쟁을 알리는 경고의 나팔입니다. 교회의 가장 큰 임무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교회가 세상을 바꿉니다. 교회가 기도하지 않을 때 마귀는 교회를 얕잡아 보기 시작합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집’입니다. 기도하는 교회가 반드시 성숙한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기도하지 않는 교회는 병든 교회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는다면 우리가 병들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무엇보다 기도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주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말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기도할 때까지 천사들을 잠시 침묵케 하셨습니다. 성도들의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상달되기까지 천사들은 경고의 나팔을 불수도 없었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여러분이 기도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알아서 주실 것이라고 믿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이 모르는 부분에서 그렇게 채워주시는 부분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그 자녀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십니다. 그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 싶어하십니다. 여러분의 목소리를 그분께 들리게 하십시오. 그분과의 대화를 줄이지 마십시오. 그분과의 대화가 형식적인 것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분과의 대화가 즐거운 것이 되게 하십시오.

결론입니다.

내가 힘 있게 기도한다고 내가 논리적으로 기도한다고 내가 정당한 것을 간구한다고 해서 상달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기도가 상달되는 유일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는 금향로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라는 향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 때 우리는 기도에 있어 자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는 성도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무릎 꿇을 때 세상은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준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의 가치를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내 의지와 내 공로로 기도하려고 노력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기도를 믿으십시오. 아니, 기도를 들으시기 위해 다른 모든 천사들을 침묵하게 하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기도하려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 위해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아십시오. 하나님은 듣기 위해서 침묵을 명하십니다.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을 알면 우리는 기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기도의 힘이요 동기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 최고의 우선순위입니다.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생명 되시니

구주 예수 떠나가면 죄중에 빠지리

눈물이 앞을 가리고 내 맘에 근심 쌓일 때

위로하고 힘주실 이 주 예수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친구 되시니

그 은혜를 간구하면 풍성히 받으리

햇빛과 비를 주시니 추수할 곡식 많도다.

귀한 열매 주시는 이 주 예수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기쁨 되시니

그 명령을 준행하여 늘 충성하겠네

주야로 보호하시며 바른 길 가게 하시니

의지하고 따라갈 이 주 예수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소망되시니

이 세상을 떠나갈 때 곧 영생 얻으리.

한없는 복을 주시고 영원한 기쁨 주시니

나의 생명 나의 기쁨 주 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