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말씀에 관하여
그러면 하나님을 아는 것은 무엇일까? 성경에서 말하는 ‘안다’는 단어는 ‘보다’라는 단어로 쓰이고 있다. 히브리인들은 어떤 사물을 이해할 때 ‘안다’라는 추상 언어가 아닌 ‘보다’라는 그림 언어로 이해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보는 것은 세 가지를 포함한다. 첫째, 하나님의 이름이고, 둘째, 하나님의 존재이며, 셋째, 하나님의 사역이다. 그래서 신학에서 ‘신론’ 부분에서 세 가지를 다룬다. 여기서 그것에 대해 자세히 다 다룰 수는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어떻게 갖는 것일까?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유한한 인간에게 자신에 관하여 알려 주시는 것만큼 하나님을 알게 된다. 무한한 빛의 세계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자신에 대해 유한한 인간에게 알려 주시는 것인가? 하나님에 관하여 계시의 역할을 담당하는 분이 바로 하나님의 성령이시다. 하나님의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부분에 관하여 아시는 분이며 또한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알려 주시는 분이시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 2:10-11)
계시의 궁극적인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에 관하여 누구에게 알려 주실지 결정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사람은 스스로의 노력과 능력으로 결코 하나님에 관하여 알 수 없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
예수님께서 전도하러 보낸 70명이 돌아와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보고했을 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반응하셨다.
“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종용히 이르시되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눅 10:21-23)
하나님을 아는 것은 따라서 전적으로 계시에 의한 결과이다. 이것은 모든 복 중에 최고의 복이다. 그런데 계시를 담당하는 하나님의 영이 사람에게 특별한 능력을 주시기도 한다. 이것을 ‘지식의 말씀’이라고 한다. 지식의 말씀이란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 중의 하나로서 ‘아는 능력’을 가리킨다. 복음서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마 12:25)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셨고, 사마리아 여인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그리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셨다. 그리고 예수님께 나아온 어떤 병자가 그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즉각적으로 아셨다. 자신을 죽이려고 은밀하게 모의하는 유대인들의 생각을 읽으셨다. 멀리 떨어진 곳인데도 사람의 생각을 읽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것은 ‘파동’으로 존재한다. 이것은 양자역학이 밝혀낸 사실이다. 파동(wave)이란 단지 호수나 바다에서 보는 파도만이 전부가 아니다. 사람이 듣는 소리도 사실 공기라는 매질이 진동하는 파동이며, 사람이 느끼는 빛 역시 파동이다. 모든 에너지는 파동으로 존재하며 전달되고 또 흡수되기도 한다. 100여 년 전에 프랑스 물리학자인 드 브로이는 모든 만물이 파동이라고 말하였다.
파동이란 무엇인가? 파동이란 진동과 관계가 있다. 어떤 점에서 진동이 발생하여 주변으로 번져 나가는 것이 파동이다. 파동은 방향이 있지만 물질 자체가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파동은 진행 방향이 있고, 골과 마루가 있으며 진폭과 파장이 있다. 그리고 파동에는 횡파와 종파가 있다. 단순한 파동이 겹쳐져서 복잡한 형태의 파동이 생기기도 한다. 파동은 서로 간섭하기도 한다. 여러 가지 이름의 파동이 있다. 지진파, 중력파, 음파, 광파, 물질파, 전자파, 자기파, 전파, 마이크로파, 각종 방사선도 파동이다. 파장이 짧을수록 에너지가 크고 강력하다. 양자역학에서 전자가 진동할 때 전자기파란 빛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파동에는 여러 가지 특성이 있다. 반사되기도 하며, 굴절되기도 한다. 빛(광파)은 직진하다가 물을 만나면 굴절하게 된다. 파동은 앞에 장애물이 있어도 통과하기도 한다. 파동과 파동이 만나서 파동이 사라지기도 하고 혹은 더욱 강해지기도 한다(간섭). 현대 과학기술은 노이즈 캔슬링(noise cancelling) 효과를 이용하여 이어폰을 만들 수 있다. 또한 안테나와 회로의 공명을 통하여 전파를 구분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즐겨 듣는 음악은 파동의 조합이다. 다양한 색도 빛의 파동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이 볼 수 있는 파장의 빛이 있고 볼 수 없는 파장의 빛도 있다. 엑스레이의 원리는 파동을 이용하여 내부를 들여다보는 장치이다.
양자역학은 이미 오래전에 관측되기 전에는 파동으로 존재하다가 관측하는 순간 입자의 모습을 나타내는 전자의 움직임을 확인하였다. 이런 현상은 아직도 많은 물리학자들로 하여금 논쟁하게 만든다. 도대체 관측이란 행위는 무엇인가? 파동을 입자로 바꾸는 것은 관측자의 의식인가 아니면 관측하는 행위인가? 최근 입자 물리학자들은 만물의 근원이 끈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초끈이론(super-string theory)을 연구하고 있다. 양성자, 중성자, 그리고 전하를 구성하는 더 작은 입자는 끈으로 되어 있고, 각각의 끈이 다양하게 진동함으로써 에너지를 발산하기도 하며 물질의 형태를 이루기도 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공간이 떨어진 곳에서 은밀하게 나누는 대화를 들으신 것이나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읽으신 것은 파동의 원리로 이해할 수 있다. 생각은 무형이지만 사실은 진동이며 파동이다. 내가 마음속으로 어떤 노래를 부르는데 옆의 사람이 같이 따라 부르는 현상을 몇 번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영혼은 파동으로 존재한다. 생각도 파동이며, 말도 파동이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그것으로 마지막 심판의 날에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6-37)
무심코 내뱉은 모든 말이 파동이며, 그것은 사라지지 않으며, 그것은 기록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한 말을 남들이 듣지 못하면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아니다. 혼잣말이라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함부로 맹세하는 말을 주의하라고 하셨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 5:34-37)
하나님은 지식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는 숨김이 하나도 없다. 내 속의 은밀한 생각도 아시고 내 의도 또한 아시는 분이시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가운데 했던 말이나 행동들 모두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그런 하나님이 누구인지, 그 이름이 무엇인지, 그가 어떻게 계시며,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아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자신이 알게 해 주셔야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성령의 역할 때문에 하나님을 알게 된다. 때로는 복음증거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만이 아는 것을 알게 하시는 능력을 주시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교만’과 ‘겸손’의 성품에 대해 중요한 것을 말해 준다. 하나님의 계시는 마음이 교만한 자(어른이라고 비유되고 있음)에게 결코 임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겸손하고 정직한 사람은 하나님이 보시는 것처럼 보기 전까지는 보고 있다고, 혹은 알고 있다고 자신할 수 없음을 잘 안다. 그러나 마음이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보는 것이 실재라고 자신의 보는 것과 아는 것에 대해 과도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마음이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