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는 것’의 의미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을 구분하는 것은 ‘측정’의 문제이다. 고전역학에서는 측정문제가 없다. 그러나 양자역학에서는 양자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측정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측정이란 무엇인가? 무엇인가를 측정할 때 무슨 일이 생기는가? 이 모든 것으로부터 내부에서 진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을까? 측정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로부터 ‘양자역학의 해석’이라는 분야가 생겨났다…. 즉,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가 보는 것은 실제 세상과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식’은 ‘보는 것’ 즉 ‘관측’이다. 내가 하나님을 알고 있다 혹은 믿고 있다고 할 때 그 의미는 사실 내가 하나님을 보고(관측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내가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하나님을 보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이 허상이 아님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하면 양자의 세계를 연구해 본 결과 양자의 세계를 구성하는 어떤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관측할 수 없다. 모든 것이 원자로 되어 있으므로 원자를 알면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되는데 실험과 관측으로 어떤 것을 관측할 때 관측하는 순간 정작 중요한 다른 무언가를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이것은 양자세계를 ‘아는 것’의 특성을 잘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인간이 관측하여 어떤 물질이나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려고 시도할 때 필연적으로 사람은 오리무중에 빠지게 될 것이다. 즉, 어떤 것을 알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그것에 대해 모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것을 안다고 말을 한다면 그것은 그것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또한 어떤 것을 알면 알수록 그것에 대해 무지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할 때에는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에 대해 더욱 무지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지혜자 아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 이름이 무엇인지,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잠 30:2-4)
하나님을 알아 갈수록 자신에 대해 더 잘 알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참지식을 가졌는지 여부는 자기 자신에 대한 변화가 있는지에 달려 있다. 양자얽힘의 원리에 의하면 두 입자가 서로 얽히게 되면 아무리 먼 거리에 떨어져 있어도 한쪽이 관측을 통해 어느 상태인지 확정되는 순간 다른 한쪽도 동시에 그 상태가 결정되어 버린다. 즉,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과 양자적으로 얽혀 있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아는 순간 동시에 내 상태도 결정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아는 것은 즉시로 나를 아는 것의 변화로 이어진다. 이것은 어느 것이 먼저인지 알 수 없는 ‘동시적인 사건’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필연적으로 즉각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나를 변화시킨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필연적으로 나에 대한 앎의 변화로 증명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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