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 관한 기독교적 관점은 ‘피’에 관한 교리가 핵심이다. 피에 관한 율법의 조항은 매우 엄격하다. 지금도 유대인의 랍비들은 피에 관하여 극도로 예민하여 도축에 쓰이는 칼을 자세히 조사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성경은 피에 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구약의 율법에는 피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 17:10-11)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느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 피인즉 무릇 피를 먹는 자는 끊쳐지리라”(레 17:14)
모든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 생명체에게 피는 생명유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피에는 헤모글로빈이란 철분이 있는데 이것이 산소와 만나서 산화하여 붉게 보인다. 이 피에는 절반은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이란 고체 성분이 있고 절반은 혈장이라는 액체 성분이 있다. 이 피가 세포의 재생에 필요한 에너지를 실어 나르며, 이 피가 모든 노폐물을 반대 방향으로 실어 나른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뇌사를 죽음의 증거로 간주하지 않고 심장이 정지되어 피가 굳기 시작할 때 비로소 육체적인 죽음으로 간주한다. 이 피에 대한 하나님의 엄격한 명령은 율법이 있기 이전에 노아 홍수 직후 생겼다.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찌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 것이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창 9:3-6)
인간에게 최초로 육식을 허락하신 것은 노아 홍수 직후이다. 짐승이 다른 짐승의 피를 흘리면 “내가 반드시 그 생명의 피를 찾겠다.”라고 하신 말씀은 쉽게 말해 “내가 반드시 보복하겠다.”라는 뜻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린다는 것은 그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 그러나 창세기 1장에서 동물과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는 채식만 가능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의 창조기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섯째 날 물고기와 새들을 창조하실 때, 그리고 여섯째 날 동물과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모든 피를 가진 생명체를 향해 “그들에게 복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할 것을 말씀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복이 모든 생명체의 생육 번성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보게 된다.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것을 이스라엘의 제사장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잘 보여 주는 본문이 있다. 그 유명한 제사장의 축복문이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찌니라 하라”(민 6:24-26)
즉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것은 피를 가진 모든 생명체를 향하여 대면하여 얼굴빛을 비추는 하나님의 행위를 말한다. 세상 모든 물질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빛, 즉 양자의 세계로 구성되었는데 특별히 그중에서도 피를 가진 생명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얼굴빛을 한 번 더 비추어 주신다. 하나님께서 모든 생명체를 대하여 마치 갓난아이를 그 부모가 얼굴을 대면하듯이 애정을 갖고 대하신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모든 생명을 소중히 대하여야 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죄가 무엇인가? 죄는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게 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얼굴을 돌리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얼굴빛으로부터 단절된 상태가 바로 인간이 경험한 최초의 죽음, 즉 영적인 죽음이자 참된 죽음이었다. 그러한 죽음으로 인해 인간은 서서히 육체의 생명의 빛이 꺼져 가는 상태로 살다가 육체적으로 죽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원이란 무엇인가? 구원이란 다시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얼굴빛이 다시 내게 비추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빛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다. 빛이 어둠을 몰아내는 것을 경험하는 삶이다. 죄로 인하여 외면하셨던 하나님의 얼굴의 방향이 다시 내게로 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 죄는 속하여야 한다. ‘속하다’는 히브리어의 ‘카파르’는 ‘덮는다’ ‘가린다’는 뜻이다. 죄는 덮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죄를 보시지 않게 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귀하게 보시는 생명으로 그 죄를 덮어야 한다. 그러면 죄를 대하여 얼굴을 돌리셨던 하나님께서 다시 대면하여 얼굴빛을 비추실 수 있는 것이다. 죄를 생명의 피로써 덮을 때 죄인을 외면하셨던 하나님께서 다시 대면하신다! 그래서 신약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복음의 핵심인 속죄교리를 말하고 있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창조의 순간부터 모든 생명체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시며 생육 번성하라고 하셨던 하나님께서 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생명의 피로써 죄를 덮어 가리는 것을 말씀하셨다. 생명의 피로써 죄를 덮을 때 하나님의 애정 어린 시선으로 죄인을 대면하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신약의 사도들이 선포한 복음은 동물의 피보다 더 나은 ‘말하는 피’ 더욱 강력한 피, 즉 세상 그 어떤 생명보다 더 사랑하시는 그 아들의 피로써 인간의 죄를 덮어야 구원, 즉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하였을 때 땅이 아벨의 피를 받아 하나님께 보복을 호소하고 있었다. 모든 피 흘림에는 하나님의 보복의 대가가 뒤따른다. 하나님의 구원이란 하나님의 얼굴을 다시 대면하는 관계의 회복이다. 이것은 죄를 보지 못하시게 만들어야 하는데 하나님이 사랑하는 생명의 피로 덮고, 가리는 방법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이 구원의 길은 구약에서 그림자로 계시되었고, 신약에서 실체로 드러나게 되었다. 동물의 피가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써 완성된 것이다. 그 피가 없이는 아무도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의 얼굴을 다시 볼 수가 없다.
따라서 기독교의 생명윤리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인 속죄교리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은 모든 물질과 모든 생명체의 창조주이시며, 특히 모든 생명체에 관하여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계신다. 따라서 생명을 함부로 취급하는 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향한 매우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어떤 피를 흘리든지 그 피를 다시 찾겠다, 즉 피 흘린 자에게 보복하겠다는 하나님의 선언을 보라! 기독교회는 생명 경시의 풍조에 관하여 매우 엄중한 경고를 날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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