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서 ‘믿음’은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믿음’과 어떻게 다른가?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계시’의 사건과 계시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는가, 그리고 ‘믿음’의 대상에 대한 명확한 구분에 있다. 우선 믿음의 대상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과학자들은 실험과 방정식으로 검증된 이론체계를 ‘진리’로 믿는다. 그들은 사물의 이치를 잘 설명하는 어떤 이론이 여러 실험(사고실험도 포함)으로 증명되었을 때만 그것을 ‘진리’로 믿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다른 종교인들은 명상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을 때 ‘진리’를 얻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리는 매우 특이하게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인격을 발견했을 때 진리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자연법칙이나 사물의 이치도 아니라 인격에 대한 ‘깨달음’이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은 인간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고 전적으로 창조주의 특별한 계시로 인하여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
성경은 이러한 깨달음을 ‘믿음’이라고 부르고 있고, 그것을 ‘보는 것’과 동일하게 설명한다. 한밤중에 예수께 찾아와서 예수가 어떤 분인지 알고 있다고 말하는 바리새인 니고데모에게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즉, 예수님이란 분이 어떤 분인지 깨닫는 것이 곧 하나님 나라를 보는 것이다. 그러한 깨달음은 인간의 노력과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거듭남’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니고데모는 다시 여쭈었다. 사람이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느냐고. 예수님은 ‘거듭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 3:5-8)
기독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란 예수라는 한 인격의 참된 본질을 이해하는 것인데, 이러한 이해는 연속적이거나 자연스러운 경험이 아닌 단회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이라는 점에서의 ‘깨달음’이다. 양자역학적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이러한 깨달음은 ‘엄청난 진동 혹은 떨림’이다. 이러한 떨림은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오는 어떤 충격, 다시 말해 더 큰 어떤 파장(wave)에 부딪힐 때 만들어지는 그런 ‘진동’(vibration)이다. 그러한 ‘외부에서 오는 충격파’의 실체는 ‘물과 성령’이시다. 물과 성령은 히브리어 대구법에 의하면 사실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으로 전자는 사역의 상징을, 후자는 사역의 실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성령은 하나님의 영(루아흐, 바람)으로서 ‘씻음’의 사역으로 다가오시는 분이시다. 3절에서 ‘위로부터 나는 것’은 즉,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성령으로부터 씻음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을 씻는다는 말인가? 그것은 사람의 영이다. 아담 이후 태어난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단절된 채 태어났다. 영적으로 죽은 상태인 것이다. 죽은 자에게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바람이 불어와야 한다. 그럴 때만이 살아나게 된다. 그리고 그럴 때만이 예수라는 인격의 참 본질을 볼 수 있게, 즉 깨닫게 되고 영혼의 떨림으로 반응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바람이 부는 것’에 대해 말씀하신 것도 그런 맥락이다.
신약성경은 이러한 깨달음, 즉 영혼의 진동과 떨림이 있는 순간부터 참된 신앙생활이 비로소 시작된다고 말한다.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골 1:6)
이러한 영혼의 진동 혹은 영혼의 떨림은 하늘의 세계와 비로소 연결되는 순간이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벧후 1:3)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믿는 자들의 모임인 교회를 지상에 세우셨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이러한 떨림을 계속 유지하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을 향하여 울림을 발산하는 것이었다. 교회 안과 밖에서 하는 주요한 사역이 바로 말씀을 증거하는 일이다. 가르침과 선포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떨림의 나눔이다. 이것으로 모든 교우들을 더욱 강력하게 떨리게 할 것이며, 택함받은 자들이 또한 반응하여 진리 안으로 나아오게 될 것이다. 그래서 교회에서 일하는 모든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영(바람)에 적극 반응하여 강력한 떨림을 지속적으로 경험하고 그러한 떨림의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깨우치는 일에 전심을 다하여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전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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