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하는 하나님
복음주의적 신학의 마지막 단원은 언제나 선교에 관한 진술이다. 기독교 선교학(Christian missiology)에서 가장 중요한 명제는 이것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선교하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그 로고스(Logos)로써 창조하셨다. 로고스는 하나님의 창조의 방법이자 목적이며 근본이시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나 부모는 그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모든 파티를 준비한다. 그것이 자녀의 기쁨을 위한 것이고 동시에 부모 자신의 기쁨이기도 하다. 첫째 날 모든 만물의 근본이 되는 빛을 창조하셨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께서 첫째 날 만드신 빛으로 되어 있다. 모든 만물은 빛을 품고 있고 빛을 방출하고 있다. 실체를 반영하는 거울처럼 만물은 창조주의 힘과 거룩과 아름다움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보시고 좋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그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하나님을 닮은 사람을 흙으로부터 만드셨다. 다른 모든 동물들은 둘씩 짝으로 창조하셨지만 창조된 사람은 혼자였다. 흙(원자)에서 창조된 사람에게 하나님의 호흡(wave)을 불어넣으시자 사람은 ‘살아 있는 영’ 즉 매우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를 깊이 잠들게 하신 다음 그의 옆구리에서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 그리고 장차 하실 일을 행동으로 보이신 것이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피조물을 다스리는 제사장과 같은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지음받았고 그들은 정기적으로 하나님을 만날 성전과 같은 곳인 에덴동산에서 거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며 피조물을 축복하며 다스리는 일을 수행해야만 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욕심에 눈멀어 결국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고 그들이 지음받을 때 입혀졌던 영광의 옷은 박탈되었다. 범죄한 그 즉시 그들은 자신들이 벌거벗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수치심은 인간이 범죄함으로 갖게 된 첫 감정이었다. 그 수치심은 형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즉시 바뀌었다. 그러나 그들이 추방당하기 전 하나님은 그들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하여 주셨다(창 3:15).
범죄한 첫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이 새어 나오는 에덴의 입구에서 머물며 회복의 길을 열어 줄 구세주를 기대하면서 살았다. 하지만 죄는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하나님의 빛이 새어 나오는 에덴의 동편 입구에서조차 가인은 머물지 못하고 추방되어 동쪽으로 계속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범죄한 인류의 발걸음이 하나님의 빛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면서 문명은 발달하였지만 점점 죄악이 심각하게 퍼지게 되었다. 하나님은 홍수를 보내어 그들을 심판하셨지만 그 와중에도 노아와 노아의 가족은 살아남아 다시 인구는 번성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불어난 인류는 다시 홍수의 재난을 당하지 않기로 결심하면서 하나님을 대항하여 뭉치기로 하자 하나님은 강림하셔서 원래 하나였던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섞어 버리셨다. 그 결과 각종 언어그룹으로 나뉘어 땅의 끝까지 흩어지고 말았다.
70여 민족으로 나뉘어 땅끝까지 흩어진 족속들에게 하나님의 이름과 빛을 전하는 특별한 족속을 선택하기로 하셨다. 그래서 그 특별한 민족의 조상으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불러내시고 그 민족을 심으실 그 땅을 향하여 가게 하셨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 12:1-3)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을 분명히 약속하셨다. 그리고 이러한 약속은 그 아들 이삭과 그 손자 야곱과 더불어 세 번 반복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아브라함을 큰 민족의 조상으로 삼겠다는 약속을 이루기 위해 요셉을 전령으로 애굽에 보내셔서 준비하게 하셨다. 흩어진 70여 족속을 향해 나아가는 특별한 족속을 이루기 위해 야곱의 70여 가족은 이집트로 내려가게 되었다.
이집트에서 400여 년간 살면서 드디어 큰 민족을 이루게 되었다. 때가 되어 하나님은 모세를 억압을 받던 그들에게 보내셔서 구원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있던 이스라엘을 건져 내기 위해 하신 방법은 이집트 전역에 큰 재앙들을 내리신 일이었다. 이집트 전역에서 모든 사람들이 떠받들며 두려워하며 섬기던 그들의 신들에게 재앙을 내리셨다. 이 재앙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은 추방당하듯이 탈출하게 되었다.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바다를 기적적으로 건넌 후 도착한 시내산에서 그들은 하나님과 언약식을 갖게 된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그들에게 계명과 성막을 주시면서 그들을 그곳으로 인도하여 내신 목적을 선포하신다.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출 19:4-6)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벗어난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과 성막은 구원의 선물과도 같았다. 율법은 이스라엘 민족을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윤리적이고 고상한 민족으로 만들 것이며 모든 민족을 이끌 만한 리더십을 갖춘 민족으로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그들에게 성막(tabernacle)을 주셨는데 하나님은 그들을 언제든지 만나 주겠다고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성소를 가진 민족이 되었던 것이다. 아담이 잃어버린 동산이 이제는 성막이 되어 이스라엘 품에 안긴 것이다. 온 우주의 하나님을 자유로이 만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선물인가!
하나님은 본격적으로 모세를 통해 계속 말씀하시면서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들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그들을 거룩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방법은 레위기에서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기본 제사법을 통해 죄를 처리하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고, 그 제사를 수행할 제사장들이 임명되고 있고,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 음식, 옷, 피부, 가옥, 관계, 사회 전반에 걸쳐 거룩에 대한 하나님의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마음을 놓쳐 버리고 광야 생활을 하는 내내 하나님에 대하여 신실하지 못하게 행동하였다는 것은 민수기를 통해 자세히 나와 있다. 그러나 그들의 신실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언제나 신실하게 공급하시고 인도하시는 일이 대조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동안 첫 인구조사에 참여한 첫 세대는 광야에서 다 죽게 되고 새로운 세대가 준비되어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을 향하여 전진하려고 할 즈음에 모세는 요단을 건널 이스라엘에게 다시 율법을 강론하면서 그들의 과거 현재 미래를 조망하고 있다(신명기).
요단을 건너 성공적으로 가나안 땅을 차지한 이스라엘은 제비뽑기를 통해 땅을 분배받았으나 그 땅에서 여전히 남아 있던 우상숭배의 뿌리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고 때로는 가나안 토착종교와 혼합되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 멀어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외부의 적들을 일으켜 그들을 치게 하셨고 그들은 각성하여 간절히 도움을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억압하고 폭정으로 다스리던 적들을 심판할 ‘사사’(판관, judges)를 보내셔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다. 계속되는 실패와 타락과 징계와 구원이 반복되면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소견에 좋을 때로 행동하면서 영적으로 성적으로 이스라엘은 타락하던 시기에도 보아스와 룻의 이야기처럼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을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사사들로 만족하지 못했고 열국과 같이 강력한 왕을 요구했다. 그들의 요구에 따라 세워진 첫 왕인 사울은 기름 부음을 받은 지 얼마 안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고 이스라엘은 또다시 고통을 겪게 되었다. 그들을 위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을 왕으로 준비시켜 주셨다. 하나님의 성전을 향한 열망을 품고 있던 다윗에게 하나님은 그의 몸에서 날 아들이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지을 것을 약속하시는 언약을 주셨다. 그의 아들 솔로몬을 통해 그 언약이 얼핏 성취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 영광은 금방 시들고 말았고 나라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되어 서로 싸우다가 북이스라엘은 주전 722년 아시리아 제국에게 멸망하고 남유다는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했다.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이 70여 년간 나그네 생활을 하면서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 성전을 짓고 살게 될 희망을 가지고 귀환할 수 있었다. 많은 방해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성전과 성벽은 재건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유대 백성들의 삶은 점점 정체성을 잃고 또다시 방황하기 시작하였다. 더 이상 선지자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나 유대 백성들은 오실 메시아를 기대하면서 살게 되었다. 하나님의 빛을 세계 열방에 비추어야 할 제사장 사명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채 스스로 고립되고 있었다.
때가 되어 여자의 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나셨는데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선포하셨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셨으며 마침내 그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그 옆구리에 창이 찔려 물과 피를 쏟으셨다(아담의 옆구리에서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의 옆구리에서 여자가 해산할 때 흘리는 물과 피와 같이 새 생명의 공동체를 출산하는 과정으로 복음서는 묘사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속죄의 피를 쏟으시기 전 자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선포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세 번 미리 예고하신 대로 예수는 다시 살아나셨고 제자들과 40여 일 더 지내다가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셨다. 그리고 올라간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 선포되었다. 그리고 지상의 교회들에게 “가서 땅의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을 것”을 지상명령으로 주셨다.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예배하는 신약의 모든 교회들은 그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여기까지가 성경 전체를 요약한 것이다. 즉 성경 66권은 선교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인 것이다. 선교란 하나님의 영광을 피해 추방 혹은 흩어지고 떨어져 나갔던 땅의 족속들, 세계 민족들을 향하여 찾아가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선교의 주체는 교회가 아니며 하나님이시다. 교회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단지 부름받고, 동역자로 쓰임 받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공동체이다. 선교하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흩어진 땅의 족속들에게 찾아가셔서 하나님의 빛을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얼굴빛을 다시 비추어 주시는 일이다. 하나님의 빛으로 다시 불러 모으는 일이다. 이 일을 위해 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하늘로 올리우신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살아 계셔서 그의 몸 된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빛을 열방에 확장케 하는 일을 하고 계신다. 하늘의 광명체들(lights)이 첫째 날 빛의 운반체였듯이 교회는 하나님의 빛을 세계 열방에 전하는 등대와 같은 기관이다. 교회가 땅끝까지 가서 모든 족속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약 1:17-18)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일 1:5)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들은 빛을 중심으로 일어난 일들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신성과 영광과 능력을 잘 드러내는 빛을 만드시고 빛으로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 혼돈에서부터 질서로 나아간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역사라 하겠다. 어둠은 죄를 가져오게 했고 세상은 혼란에 빠지게 되었으나 하나님은 빛으로 모든 어둠을 몰아내기 시작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빛으로 다스리는 영역이자 하나님의 얼굴빛이 닿는 모든 곳이다. 죄는 하나님의 얼굴을 돌리게 만들어 하나님의 빛으로 차단시키는 것이었고, 죽음은 하나님의 빛으로부터 단절되어 어둠 가운데 사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속죄의 길을 제시하셔서 하나님 자신의 얼굴빛을 땅끝까지 비추시기로 하셨다.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의 로고스가 사람의 모양으로 오셔서 대속의 토대를 성취하셨고 그 위에 빛의 나라는 다시 건설되기 시작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아 신기한 빛의 세계로 다시 연결되는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었고 그 빛을 전하는 교회를 지상에 두셨다. 때가 되면 그 빛의 나라가 온 세상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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