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설교

요한계시록 강해(28)-이 책을 갖다 먹어버리라(계10:1-11)

등불지기 2012. 3. 3. 18:23

하나님의 말씀을 통채로 먹는 것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경험한 것입니다.

말씀을 경험하는 것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씀의 경험이 삶에 어떤 축복과 고통을 가져다주는지 배워봅시다.

말씀을 배우고 깨닫는 것은 즐거운 일이나 그것 때문에 우리가 겪어야 할 일도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김광락 선교사 올림.

요한계시록 강해(28)

 

이 책을 갖다 먹어 버리라

 

본문:계10:1~11

 

10:1 내가 또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10:2 그 손에 펴 놓인 작은 책을 들고 그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왼발은 땅을 밟고

10:3 사자의 부르짖는 것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외칠 때에 일곱 우뢰가 그 소리를 발하더라

10:4 일곱 우뢰가 발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 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뢰가 발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10:5 내가 본 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10:6 세세토록 살아계신 자 곧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10: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10:8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 하기로

10: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

10: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10:11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계시록 10장의 핵심은 종말의 때란 곧 복음을 증거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 10장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오늘 본문이 어떻게 시작하는 지 살펴봅시다. “내가 또 보니...” 사도 요한이 여섯째 나팔소리를 듣고 본 광경은 참으로 끔찍했습니다. 그런데 곧바로 다른 환상이 주어집니다. 지금 사도 요한은 여섯째 천사장의 나팔소리로 인해 발생하는 재앙들을 본 직후에 또 다른 환상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재앙은 참으로 끔찍한 재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날 한 시에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는 장면은 참으로 생각하기도 싫은 장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재앙으로 끝인가? 이러한 재앙으로 인류의 역사는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는가?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 두 번째 환상을 통해 말씀하는 것은 11절에 말씀하는 대로 아직 복음을 전해야 하며, 복음을 각 족속에게 전하기까지는 종말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11절)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이 전체적으로 우리에게 말씀하려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이러한 끔찍한 재앙들을 보면서 마지막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우리의 사명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 그렇습니다. 우리는 종말의 현상을 바라보면서 주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받은 사명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세상을 등지고 산 속에나 들어가서 기도만 하게 되는 극단적 종말론자들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전할 복음이 어떤 것입니까? 그러나 먼저 생각해볼 것은 하나님의 구속계획에 있어서 불가해한 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의 지성을 만족시켜줄 ‘모든 지식’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의 영혼을 주며 구원을 얻기에 충분한 ‘모든 지식’을 제공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살펴볼 때에 우리의 이성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4절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도 요한이 바라보고 있는 장면을 그려봅시다. 지금 요한 사도는 ‘힘센 다른 천사’를 보고 있습니다. 이 천사는 지금까지 살펴본 예배를 담당하는 천사나 심판을 담당하는 천사와 달리 복음을 담당하는 천사입니다. 이 천사는 아마 가브리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니엘서와 누가복음을 보면, 미가엘이 전투를 담당했다면 가브리엘은 복된 소식을 담당하는 하나님의 전령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를 예수 그리스도와 결코 혼동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천사로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단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맡은 전령이기 때문에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천사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성경에서 구름은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말은 그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라고 했습니다. 무지개는 하나님께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않겠다는 표시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담당하는 천사들과는 달리 이 천사는 하나님의 긍휼을 전하는 천사입니다. 또, “그 얼굴은 해 같고”라고 했습니다. 얼굴이 해와 같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낯을 대변하는 존재임을 말해줍니다. 이 천사가 신성을 소유했다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낯을 대변하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발은 불기둥” 같다고 한 것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로우심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 천사는 복된 소식을 전하는 천사장입니다. 하나님의 전령입니다.

이 천사는 하나님의 전령으로서 온 세상에 전할 복된 소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손에 무엇이 있다고 했습니까? “그 손에 펴놓인 작은 책”이 있습니다. 작은 책은 여기서 하나님의 구속계획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있던 책을 기억하십니까? 그것은 범죄한 인류를 구속하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이 천사는 그 계획을 수행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책이 펴 놓였다는 말은 이제 그 책에 기록된 약속대로 실행하는 중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천사장이 어디에 서 있습니까? 하늘에서 내려와 그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왼발은 땅을 밟고 서 있습니다. 바다와 땅은 온 세상을 의미합니다. 밟는다는 것은 주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복음은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특정 개인이나 민족에게 결코 국한되지 않습니다. 복음은 온 세상에 전해져야 할 소식입니다. 이 복음을 사유화하고 특정 계층의 점유물로 삼는 자들을 조심하십시오.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대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천사장은 사자의 부르짖은 것같이 큰 소리로 외쳤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권세 있고 능력 있는 선포를 의미합니다. 그가 크게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발했습니다. 자, 천사장이 외칠 때 일곱 번 천둥소리가 그 우레 소리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즉, 일곱 우레가 천사장의 소리를 통역한 것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일곱 인과 일곱 나팔 소리에 이어 일곱 우레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사도 요한이 이 소리의 뜻을 기록하려고 하는데 하늘에서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늘의 소리는 곧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여기서 인봉하라는 말은 그 뜻을 비밀로 해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한 때가 되면 이 비밀이 명확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자, 하나님께서 왜 이 소리의 의미를 비밀로 해두셨을까요? 왜 기록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분명 우리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불가해한 신비의 영역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고 또 받아들이기에 너무 벅찬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가 믿고 구원을 얻으며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위해 충분한 지식을 제공하지만 완전한 지식을 제공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만약 이 복음의 영역에 모든 지식을 알고 있다고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거짓 선지자임에 틀림없습니다. 나만 알고 있고, 너희는 잘 모른다고 하는 사람들을 조심하십시오. 사실 저는 이 구원의 신비에 대해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낙태된 아이의 생명은 어떻게 되는지 대충은 설명할 수 있어도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구원의 신비에 있어서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29:29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것은 구원의 모든 신비를 가르쳐주시기 위함이 결코 아닙니다. 단지 우리의 구원에 충분한 지식입니다. 왜냐면 우리의 구원은 아직도 완전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완전해지는 그 날에 비로소 이 구원의 불가해한 영역도 비로소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구원의 신비를 인정하십시오. 그것을 인간의 부족한 이성의 능력으로 다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마십시오. 다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받은 구원의 은혜에 집중하십시오. 그리고 앞으로 열려지게 될 구원의 비밀에 대해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인봉된 구원의 비밀은 주님이 오시는 영광의 그 날에 활짝 열리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때 비로소 온전한 지식을 얻으며,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놀라고 감탄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살펴볼 것은 구원의 완성에 대한 것입니다.

본문 5절에서 7절에서는 우리가 구원의 신비에 대해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받은 구원이 기록된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5절을 보세요. “내가 본 바 바다와 당을 밟고 섰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 손을 들고”라고 했습니다. 하늘을 향하여 오른 손을 드는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향하여 맹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천사가 이렇게 맹세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복음을 이룰 사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천사는 하나님의 복음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이룰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세세토록 살아 계신 자 곧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자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입니까? 성경에 기록한 대로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소식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진심으로 믿으십니까?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지체하지 아니하리니...”라고 했습니다. 더 이상 시간이 없다는 뜻입니다. 결코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창조주께서 모든 만물을 그 뜻대로 창조하신 것같이 하나님의 구원계획 역시 하나님의 뜻 가운데 반드시 이루어지고 말 것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가 받은 구원이 완전해질 그 날을 분명히 예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 날이 언제 올 것인가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체하지 아니할 것이다”

여러분, 군대에 입대하게 되면 얼마나 지루한지 모릅니다. 하루하루가 정말 한 달 같습니다. 이상하게도 군에서 보내는 시간은 정말 다릅니다. 군생활을 해보신 형제들은 아마 알 것입니다. 특히, 제대를 몇 달 앞두고서는 하루가 정말 한 달 이상처럼 걸립니다. 그러나 군대에서 늘 하는 말이 있지요?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고 하는 말을 수없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요. 제대하고 나니까 정말 빨리 지난 것 같습니다. 2년 정도 군생활 할 때는 20년 생활하는 것처럼 느꼈는데 지금은 아무 생각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구원이 언제 완성되려나, 우리 몸의 구속이 언제 완성될 것인가, 그리스도의 재림이 언제 이루어지려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참으로 지루하고 답답한 면이 많습니다. 그러나 결코 지체하지 않습니다. 그날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결코 많지 않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우리가 거꾸로 매달려고 하나님의 시계는 오차 없이 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7절) 선지자들을 통해 주신 복음은 곧 성경입니다. 이 성경에는 반드시 이루어지게 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오심과 우리 몸의 부활,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서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결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국방부 시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시계는 지금도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조급하고 답답해하고 힘들어하고 때로는 실수하거나 넘어지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모든 조급한 마음이 그리스도의 충만한 평강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성경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경을 주목하십시오. 선지자들이 남긴 글을 주목하십시오.

세 번째로, 사명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종말의 현상을 목격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 사명은 무엇일까요?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한번 볼까요? 8절을 읽읍시다.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 하나님의 음성이 사도 요한에게 임했습니다.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고 했을 때, 그 책은 앞서 말한 대로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이 복음을 천사의 손을 통해 사도들에게 위임하셨습니다. 사도들은 그것을 기록했고, 우리는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지금 손에 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성경을 읽으면서 사도들이 받은 복음,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 복음을 사람들에게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힘 있는 천사들이 그 복음을 직접 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대신 연약하고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에게 그 복음을 부탁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매우 놀라운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벧전1:12) 사도 요한은 자신이 전한 복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계1:1) 오늘 본문은 힘 있고 영광스러운 이 천사의 모습을 강조하더니, 그 천사의 손에 들려져 있는 한 작은 책에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킵니다. 다시 말해서,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계시의 영광스러움을 말한 다음에, 그 계시 자체를 주목하게 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하나님의 계시는 영광스럽지만 그러나 ‘작은 책’입니다. 그 계시는 우리가 자세히 주목하지 않으면 잘 볼 수 없습니다. 그 계시를 담고 있는 모양은 매우 작습니다. 여러분, 세상은 성경을 ‘작은 책’정도로만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책의 영광과 능력과 위엄을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이 성경이 전 재산이며 기업이요 분깃이라고 감히 고백할 수 있습니다. 비록 작은 책이지만 저에게는 이 책을 떠나서는 다른 모든 것이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이 영광스러운 계시의 책을 연약하고 연약한 사람에게 맡기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황송함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계시를 부족한 우리의 손에 쥐어 주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요한이 그 천사에게 접근해서 작은 책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영광의 계시는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가서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시의 영을 구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 언제나 지혜의 영이신 보혜사를 구하며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는데 말씀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서 달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연구해야 합니다. 사람이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과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것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닌 것입니다. 부지런히 이 책을 연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천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작은 책을 달라” 이렇게 요구하는 것은 사도 요한의 특권만이 아니라 오늘 저와 여러분의 특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영광스러운 책이 우리 곁에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구하면서 성경을 연구하려고 하지 않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금 우리는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복음과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기 위해 몸부림쳐야 합니다. 교회가 성경으로 돌아가면 반드시 개혁됩니다. 교회가 성경을 읽고 연구하기 시작할 때에 참된 생명이 약동하는 것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지 않고서 생겨난 모든 체험과 거짓 부흥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보십시오. 천사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갖다 먹어 버리라” 책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 책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책을 먹는 것은 이 책의 내용을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분들이 성경을 먹으려고 암송합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암송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암송하는 것은 사람의 일이지만 동시에 잊어버리는 것도 사람의 일입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나게 하는 것은 성령의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암송하면서도 깨닫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잊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지 마십시오.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잊을 때 잊더라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깨닫고 난 후 잊도록 하셔야 합니다. 깨닫고 내 안에 들어온 말씀은 내 몸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가 하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9절) 그래서 천사의 말대로 요한 사도는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고 했습니다.(10절)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맛 보셨습니까?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경험을 해보신 분들이라면 이 말씀의 의미를 아마 알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맛은 어떤 것일까요? 분명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는 특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경험이 어떤 것인지 알려면 먼저 이 말씀을 맛본 선배들의 고백을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예레미야 15장 15절부터 18절을 보십시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 말씀을 먹을 때 경험한 고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오니 원컨대 주는 나를 기억하시며 권고하사 나를 박해하는 자에게 보복하시고 주의 오래 참으심을 인하여 나로 멸망치 않게 하옵시며 주를 위하여 내가 치욕 당하는 줄을 아시옵소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을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내가 기뻐하는 자의 회에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을 인하여 홀로 앉았사오니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찜이니이까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

우리가 예레미야의 상황을 떠올리면 사도 요한이 들은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깨달을 때는 얼마나 황홀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말씀을 연구할 때 그 즐거움을 맛보셨습니까? 만일 성경 연구의 즐거움을 아신다면 그것은 결코 두뇌의 명석함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하심 때문인 줄로 믿으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할 때의 즐거움은 곧바로 쓰라린 고통으로 바뀌게 됨을 경험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며 살아갈 때 세상과 마귀가 우리를 먼저 알아보고 시비를 걸기 시작합니다. 의를 위해 핍박받는 것이 시작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이 쓰라림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여러분이 정말 성령의 사람인가 한번 진지하게 의심해보십시오. 말씀을 연구하면서 깨닫게 됨으로써 우리 안에 말씀이 들어올 때는 정말 황홀한 경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우리는 세상에 살 때 참으로 쓰라린 고통을 맛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말씀을 적용할 때, 그 말씀을 전할 때, 그 말씀을 붙잡고 살 때 반드시 오해와 비판과 핍박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본문의 그 천사는 요한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11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마지막 종말의 때를 살고 있는 하나님의 교회의 사명임을 잊지 맙시다. 구주께서 오시는 그날까지 교회는 이 영광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물론 전하는 과정에서 온갖 오해와 핍박이 가중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주의 복음을 전해야 하고 가르쳐야 하는 것, 이것이 마지막 때의 교회의 사명입니다. 여러분, 사명이 무엇입니까? 무엇이 참된 사명입니까? 사명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참된 사명은 기분에 따라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과 의지에 따라 하는 것입니다. 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여러분, 우리 가운데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리더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를 섬기는 임역원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하고 싶어서 맡았다가 나중에 힘들다고 내 마음대로 그만둔다면 그것이 과연 사명입니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사명입니까? 요한 사도를 보십시오. 말씀을 먹었을 때 그 배에서는 쓰라린 고통이 있었습니다. 사명을 받을 때는 황홀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사명을 감당하기 시작할 때 무엇인가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많이 들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소명에 대해 심각하게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참된 사명은 바로 그럴 때에 중단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직장에 들어갈 때는 하나님께 감사헌금 내면서도 직장을 그만 둘 때 감사헌금 내는 사람 거의 없습니다. 직장도 역시 하나님이 인도해주신 곳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단지 힘들다는 이유로 함부로 그만두는 것은 지양해야 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직장에서 그만두기로 결심하고서 2년이 지나서야 겨우 그만둘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맡을 때는 기쁨으로 하다가 단지 힘들다는 이유로 손쉽게 내려놓지 마십시오. 저는 그렇게 한번 했다가 주님께로부터 호되게 책망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모하는 마음으로 충성하겠다고 결심하고 기도하면서 은혜로 받은 직분을 수행하다가 힘들어지자 이제 쉬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너무나 쉽게 포기하고 말았을 때 그 다음 5년 동안 이나 하나님은 제게 사역의 길을 열어주지 않으셨습니다. 군대에 가서 호되게 고생하고 제대하고 나서야 하나님은 사역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 배에서 매우 쓰라린 고통이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예언해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포기하고 싶어도, 쓰라리고 아파도 그만둘 수 없는 것, 이것이 참된 사명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러한 사명이 있습니까? 하고 싶은 일만 하십니까?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그런 사람입니까? 아니면 속에는 굉장히 쓰라리고 아파도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입니까?

말씀을 맺습니다. 이 종말의 때는 어떤 때입니까? 이때는 영광스러운 복음이 계시되는 때입니다.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없는 구원의 신비한 영역이 있지만 성경에 기록된 대로 반드시 이루어 질 때가 점점 다가오는 때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종말의 현상들을 보면서 우리 마음이 불안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계속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그런 때입니다. 여러분, 힘들고 어렵습니까? 그럴수록 하나님이 맡겨주신 복음의 영광을 주목하십시오. 하나님의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사명을 생각하십시오. 주님이 주신 말씀을 붙드십시오. 주님의 때까지 포기하지 마십시오. 주께서 힘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