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MP 이야기

천리포 수목원

등불지기 2026. 5. 15. 22:39

 

충남 태안군 소원면에 있는 천리포 수목원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에 유명한 수목원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 천리포 수목원이 유명한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천리포 수목원은 한국의 제 1호 수목원이며, 둘째,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이 전 생애를 바쳐 만든 수목원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서해안의 깨끗한 해변가를 함께 볼 수 있습니다.

 

 

Carl Ferris Miller는 1921년 미국 펜실베니아주에서 태어났습니다. 1945년 한국이 해방되던 해 젊은 미군 장교로 한국땅을 밟게 되었을 때 한국에 대한 사랑에 빠졌습니다. 자신의 전 재산을 모아 서해안의 헐벗은 땅을 사들여 수목원을 조성하기 시작했습니다. 40년 동안 인간을 위한 산림이 아닌 산림 그 자체를 위한 수목원을 가꾸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300년 앞을 내다보고 수목원을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약 60 헥타르에 달하는 천리포 수목원을 17,000여 그루의 나무와 꽃들로 가득찬 세계적인 수목원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한국을 너무나 사랑하여 한국을 '우리나라'라고 불렀으며 늘 한복을 입으며 한옥에서 살았습니다. 1979년 그는 민병갈이란 이름을 가진 한국인으로 귀화하였고 2002년 82세의 나이로 죽는 순간까지 식물을 사랑하며 꽃과 나무를 심고 가꾸는 삶을 살았습니다. 자신의 전 재산을 수목원에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천리포 수목원은 매우 특이하고 희귀한 식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목련, 동백나무, 무궁화, 단풍나무, 호랑가시나무가 대표적인 식물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살면서 희귀하고 특이한 식물들을 많이 보아온 아내가 너무나 좋아하였습니다. 저는 이 수목원에 담긴 민병갈 씨의 삶을 통해 큰 울림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지요. 혼신의 힘을 다하여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의 자연을 사랑했던 푸른 눈의 미국인, 자신의 전 생애와 재산을 바쳐 세계 어디를 내놓아도 조금도 부족하지 않을 수목원을 가꾸었던 사람의 이야기는 저에게 큰 도전을 주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남기기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요? 자손들에게 무엇을 남겨주기 위해 사는 걸까요? 과연 남겨주려고 준비하는 그 무엇이 내게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남기기 위해 과연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제 가슴을 떠나지 않고 잔잔한 울림으로 남아 있었던 질문이었습니다. 

 

 

민병갈 씨의 삶을 통해 우리는 자연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제가 남아공에 살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남아공의 최초 도시들을 건설한 개척자들은 가장 먼저 만든 도시의 중심 도로에는 항상 Church Street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도시마다 그 도시를 대표하는 식물원(수목원)을 만들었습니다. 케이프타운이나 프레토리아 같은 대도시뿐만 아니라 작은 도시에도 나름 멋진 수목원을 가꾸어놓고 있습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은 남아공을 처음 건설한 백인들이 가지고 있었고 도시계획에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은 법에도 잘 나타납니다. 여행객들이 산행을 하다가 고사리를 채취하거나 길가에 차를 세우고 들판에 핀 꽃을 꺾어도 심지어 곤충을 채집하여도 처벌을 받습니다. 이것을 잘 모르는 한국인들이 여행가서 바닷가에 홍합이나 전복을 함부로 채취하다가 감옥에 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남아공에 사는 동안 들에 핀 꽃 한송이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그 많은 식물들의 이름을 알고 있고 막내 딸은 프레토리아 대학의 조경학과에서 공부했습니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아프리카만의 토착식물(indigenous plants)을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 되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꽃과 나무와 심지어 기어다니는 벌레들조차 사랑스러운데 현대인들은 너무나 바빠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잘 누리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천리포 수목원은 그 많고 많은 여러 수목원들 중에 하나가 아닙니다. 한국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했던 그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보석과 같은 정원을 가꾸었던 푸른 눈의 한국인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큰 도전과 울림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런 곳입니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다닐 기회가 있다면 꼭 시간을 내어 들러볼 것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수목원 바로 옆에는 매우 맑은 해변가도 있어 시원한 파도소리와 바닷바람을 맞으며 가족과 함께 산책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 같습니다. 

 

 

P.S. 모든 계절이 나름대로 특생이 있는데 수선화와 동백꽃 그리고 목련이 활짝 피는 4월에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3월말부터 4월중순까지 한국에서 유일하게 목련축제가 열립니다. 입장료도 연중 4,5월이 조금 더 비쌉니다. 어릴적에는 무궁화를 주변에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무궁화꽃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무궁화꽃을 보려면 7월 이후 여름에 방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설립자가 미국인이라 그런지 미국에서 건너온 것 같은 단풍나무도 많이 있었는데 가을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