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잠언8장

등불지기 2012. 3. 5. 00:18

성경을 볼 때 숲을 보고 나무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체 개관을 하는것이 한 절 한 절 의미를 살펴보는 것에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절 한 절 설명하지 않고 장별개요를 하는 이유입니다.

김광락 선교사 올림.

 

<제8장>

 

8장은 지혜의 부름(calling of the Wisdom)을 다루고 있고, 9장은 그 부름에 대한 시금석(testing)을 다루고 있다. 잠언서를 읽을 때 우리는 우선 전체를 조망해야 잠언의 숲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8장은 지혜가 모든 사람들을 부르며(1-21), 자신의 근원을 소개하며(22-31), 제자들을 부른다.(32-36) 우리는 지혜의 부름에 어떻게 하든지 응답해야만 한다.

 

●v.1-21:모든 사람을 향한 지혜의 부름

v.1-3: 지혜는 사람을 부른다. 명철(understanding)이 소리를 높인다.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그 날에는 ‘내가 복음을 듣지 못했다’고 항변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롬1장 참조) 왜냐면, 지혜가 ‘길가의 높은 곳과 사거리에 서며 성문 곁과 문 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부르기 때문이다. 시편19:4을 참조하기 바란다.

 

v.4-5: 지혜가 사람을 부르면서 하는 내용이 계속 된다. 사람들(인자들)에게 지혜이신 그리스도는 끊임없이 부름을 주셨다. 본문에는 죄인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지만 ‘어리석은 자’ ‘미련한 자’로서 죄인이란 뜻이 충분히 나타나고 있다. 어리석은 자는 스스로 지혜로울 수 없는 법이다. 미련한 자가 명철해질 수 있는 것은 밖에서부터 ‘구원’이 와야만 한다. 어리석은 자, 죄인으로서 인간은 ‘명철’이 필요하다. 즉,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지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미련한 자, 곧 죄인들은 마음이 밝아져야 한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듣게 될 것이다. 사도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기도할 때,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라고 기도했듯이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기 전에 ‘이해’가 내게 와야 하고 ‘마음이 먼저 밝아져야’ 한다. 성령의 조명이 없이 그리스도와 그의 영광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은 복음의 핵심이며, 계시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v.6-9: 지혜(그리스도, 로고스)는 사람들(죄인, 미련한 자들)에게 약속한다. “내가 가장 선한 것”을 너희에게 주겠다는 약속이다. ‘가장 선한 것’은 7절에 ‘진리’이며,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는 약속은 7절에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는 약속이다. ‘가장 선한 것’ 곧 그리스도의 진리는 죄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며,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정직’은 곧 ‘악을 미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미련한 인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기이한 말’은 다 의로우며, 굽은 것(=잘못 과장되거나 헛된 의도로 날조된 것)이나 패역한 것(=간사한 것, 간교한 것, 속이는 것)이 없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은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금과 같이 순결하다. 말씀의 순결성과 정직성은 오직 ‘총명 있는 자’와 ‘지식 얻은 자’가 분명히 아는 것이다. 정직한 자는 성경과 그리스도의 말씀을 연구할 때 하나도 왜곡되거나 날조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성경비평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은 ‘총명 있는 자’같으나 사실 그 총명이 없어진 자들인 것이다.

 

v.10-11: 지혜는 사람들에게 오라고 하면서 그들에게 ‘가장 선한 것’을 주겠다고 약속하면서, 그것이 가장 귀중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약속하는 ‘진리’는 가장 귀하다. 그것은 은이나 금이나 진주보다 더 귀하다. 인간들이 원하는 모든 것이 이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v.12-13: 지혜는 사람들에게 오라고 자신에게로 초청하는데 그러면 어떻게 어디로 가야 그를 만날 수 있을까? 그래서 지혜는 자신을 만날 방법을 가르쳐 준다. 지혜가 머물고 있는 ‘주소’는 몇 번지인가?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혜의 주소는 ‘명철’이다. 즉, 이해를 통해서 지혜를 알게 된다. 이것은 복음의 중요한 측면이다. 이해함 없이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은 없다. 복음은 이해를 통해 전달된다. 복음은 그래서 지성적이다.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지혜(그리스도, 로고스)를 만나기 위해서는 우선 ‘지식과 근신’을 찾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내게 와서 배우라’고 했고, ‘내 멍에를 매라’고 했다. 그것이 바로 ‘지식과 근신’이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얻어야 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멍에를 져야 한다. 지식과 근신이 그리스도를 만나는 데 중요한 ‘번지’이다. 특히, 근신에 대해 좀더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법과 악을 미워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지혜를 만나기 위해서는 지혜가 미워하는 것을 떨쳐버려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회개이다. 그래서 회개 없이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은 아직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복음은 생명을 약속하기 이전에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v.14-17: 지혜는 자신을 만났을 때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소개한다. 지혜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우선 ‘도략과 참 지식’이다. 지혜는 ‘이해능력’(명철)을 제공한다. 그것이 곧 능력이다. 왕들과 방백들과 재판관들이 지혜가 주는 명철을 받고 있다. 세상의 존귀한 자들이 가지고 있는 ‘명철’과 '능력‘은 사실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것이다. 그것을 골로새서에서 바울 사도가 자세히 증거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온 우주만물의 중심이시다. 그리스도가 없었다면 왕들과 세상지도자들이 ’명철‘과 지도력을 도무지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혜는 다시 한번 자신을 만나는 방법을 소개한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사2:30참조) 육신을 입고 오신 지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구하는 자가 받을 것이요, 찾는 자가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이다‘

 

v.18-21: 지혜는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을 계속 열거한다. 두 번째 그룹으로 소개하는 것은 “부귀, 장구한 재물과 의”이다. 그런 것들도 그리스도가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내 열매’ 곧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가장 선한 말’ ‘진리’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천은보다 낫다. 지혜는 ‘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평한 길 가운데로’ 다니기 때문에 지혜(그리스도)를 만나려면 그 길로 가야 한다. 지혜는 자신이 다니는 길을 소개하면서 그 길로 오면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이유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기 때문이다. 지혜를 사랑하는 자가 재물을 얻을 자격이 있고, 곳간에 채울 수(재물을 누릴 자격과 능력)가 있다.

 

●v.22-31: 지혜의 기원

v.22-31: 지혜는 이렇게 자신의 주소, 자신이 줄 수 있는 것들과 자신을 만나는 방법을 말한 다음에 자신의 기원에 대해서 소개한다. 지혜의 기원은 영원 전부터이다. 지혜는 창조주이며 창조주와 함께 있었다. 사도요한은 영원하신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이렇게 증거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1:1-3) 지혜의 본체는 인격이신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지혜로서 영원 전부터 계셨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영원한 복락과 영화를 누리셨다.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으시다.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17:5)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17:24)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이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창조에 있어 탁월한 역할을 수행하셨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만물들은 하나도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지음받은 것이 없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스도에 의해, 그리스도를 통해 지음받았다. 만물을 그리스도의 무한한 영광을 드러내고 찬양한다. 이 부분을 더 묵상하기 위해 고린도전서, 골로새서, 요한복음, 계시록을 함께 연구하라.

 

●v.32-36: 제자들을 향한 지혜의 부름

v.32-36: 지혜는 이제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멈추고 지혜를 배우는 제자들에게 말하기 시작한다. “아들들아”는 말은 지혜의 제자들을 의미한다. 지혜는 모든 사람을 부르지만(외적 소명), 택한 제자들도 부른다.(내적 소명) “이제 내게 들으라” 제자들은 지혜의 말(=하나님의 말씀)을 귀기울여 들어야 한다. 그리고 지혜의 도(=하나님의 방식)를 지켜야 한다. 그가 진정 복된 사람이다. 지혜를 배우려고 모인 사람마다 다 지혜를 배우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좁은 길로 가고자 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을 것이다’ 진리의 말씀을 듣고자 예배당에 모이는 사람은 많을 지라도 진리의 말씀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묵상하며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며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은 드물다. 매우 드물다. 그런데 그가 진정 복된 인생이다. 그러면 어떻게 지혜를 얻는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얻기 위해 모든 지혜의 제자들로 자처하고 자부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얻어야 한다. 즉, ‘훈계를 들어야’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배우지 않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얻을 수 없다. 성령은 진리의 스승으로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가르쳐주신다. 찬송 506 찬송을 자주 부르자. 이 찬송을 부르면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경솔히 취급하거나 ‘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렇게 진지하게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얻고자 하는 그 사람은 복이 있다.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런데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쉬지 않고 우리 문을 두드리신다. 오히려 거꾸로 되었다. 진리와 지혜이신 그리스도께서 쉬지 않고 문을 두드리고 계시다니!(계2:20) 그러나 사실은 그분이 두드리고 기다리도록 하시기 전에 우리가 두드리고 기다려야 한다. 왜냐면(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혜(그리스도)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는 자다. 지혜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자해하는 것이다. 지혜가 곧 생명이기 때문이다. 지혜는 사람들의 빛이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 우리의 생명이시며, 빛이시며,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영원히 찬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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