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정보의 시대'라고 합니다.
우리는 정말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홍수 속에 마실 물을 구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람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 진리에 목말라 허덕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보가 아니라 참 지식, 참 지혜에 목말라 있습니다.
김광락 선교사 올림.
< 제 21 장 >
※정직한 인생이 누군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는 자가 아닌가? 하나님이 그를 기뻐하시는 이유는 그러한 태도로 살도록 인생이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정직한 자가 당연히 행하여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공부하자.
v.1- 왕의 마음은 여호와의 손에 있다. 저수지의 물과 같이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좌지우지하신다. 하나님께서 세상 역사를 통치하시는 방식은 왕의 마음을 인도하시는 것이다.
v.2- 사람은 자기가 보는 것이 항상 옳은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이 보기에 정직한 것과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것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겸허히 인정하는 것이 또한 정직한 인생의 모습이다.
v.3- 그러므로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종교인은 제사행위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지만 정직한 인생은 종교행위보다는 그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한다.
v.4- 그러므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교만한 것을 가장 싫어하신다. ‘악인의 형통한 것’이 왜 죄인가? 악인은 당연히 심판을 받아야 하지 않는가? 악인은 스스로 형통함으로 그 죄를 더하며, 확실히 하고 있으며, 심판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v.5-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기억한다면 부지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풍부함을 받고 즐기는 것이 아닌가? 구원얻는 신앙은 영적 부지런함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을 바라보지 않는 자는 조급한 인생으로 그는 궁핍함에 이를 뿐이다.
v.6- 그러므로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스스로 죽음을 구하는 것이다. 안개가 바람에 날려 정처 없는 것같이 불로소득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은 그날에 심판하실 하나님을 의식하고서는 불가능한 행동이다.
v.7- 따라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강포하게 될 것인데 그것은 자신을 소멸하게 될 것이다. 공의를 싫어하는 자는 강포를 즐거워할 것이며 그것은 자기의 영원한 형벌을 증명하는 것이 될 것이다.
v.8- 그러므로 죄를 크게 범한 자의 길은 ‘심히 구부러’질 것이다. 죄는 하나님과 관계를 단절시킨다. 죄는 하나님과 교제를 단절시킨다.
v.9- 따라서 재물과 쾌락과 다툼을 멀리 하라.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집에서 사는 것’은 재물, 쾌락, 그리고 허영과 다툼을 의미한다. 그것보다는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훨씬 낫다.
v..10-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남이 재앙을 받을 때 기뻐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남이 잘못될 때 매우 두려워한다. 신령한 자는 그 형제가 죄를 범할 때 자신을 돌아보고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다.(갈6:1)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그 이웃에게도 은혜를 베풀 마음의 여유가 없다.
v.11-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벌을 받을 때 하나님을 마음으로 인정하지 않는 자가 놀라게 될 것이다. 반면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교훈을 받을 때 지식이 더하게 된다.
v.12- 의로우신 하나님은 악인의 집을 감찰하신다. 그리고 악인을 환난에 던지신다. 하나님은 반드시 악인을 심판하신다. 시편73편의 기자는 이 사실을 깨닫고 불평에서 감사로 돌아서게 된다.
v.13-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마음을 굳게 먹는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의 여부는 가난한 형제들에 대한 태도를 보면서 알 수 있다. 그 형제를 섬기는가, 아니면 부리는가를 보면서 그의 구원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결코 남을 진정으로 섬길 수 없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궁핍한 자의 탄식을 마음에 새기지도 않을뿐더러 관심도 없다.
v.14- 하나님의 진노를 쉬게 할 것이 무엇인가? 살펴보라. 무엇이 그의 맹렬한 분노를 그치게 할 것인가? 생각하라. 사람의 진노는 쉬게 만드기 위해 뇌물을 사용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진노는 어떻게 쉬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라. 본문은 뇌물과 선물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다. 뇌물과 선물이 그런 가치가 있다면 하나님께 한번 드려보라는 것이다. 뇌물비유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달랠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늘 아래 피하는 것 외는 달리 무슨 방법이 있단 말인가! 하나님께 뇌물을 드릴 사람이 있을까!
v.15- 그러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공평하고 의로운 일을 행하는 것이 무엇인가? 가난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잠언에서 계속 말하는 의리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하나님을 진정 두려워하는 자들에게는 이 의리를 행하는 것이 진정한 영혼의 만족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망할 것이다.
v.16- 따라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깊이 이해하려고, 헤아리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사망의 회중에 거하는 것임을 스스로 나타내는 것이다.
v.17- 그러므로 의리를 버리고 연락(쾌락)을 좋아하는 자는 영적 궁핍에 이를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부자의 비유를 생각해보라(눅12장)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하나님에 대해 결코 부요함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v.18- 그러므로 악인은 의인의 환난을 당할 때 와서 대신 당할 것이다. 악인은 의인의 환난 시에 의인을 대신할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악인은 의인을 대신하여 다 진노의 잔을 마시고 말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의식하는 자가 되라. 그러나 재리를 위해 영생을 버리는 망령된 자(궤사한 자)는 그들을 대신하여 진노를 받게 될 것이다.
v.19- 그러므로 시기와 분냄과 쾌락을 즐김보다는 광야와 고독이 훨씬 낫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으로 다투며 성내며 자기 쾌락을 즐기는 것이 주는 피해가 얼마나 큰지를 생각하라.
v.20-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의 집에는 귀한 보배와 기름(삶의 가치와 즐거움과 만족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이러한 것들을 다 없애버리고 만다.
v.21- 그러므로 ‘의로움과 인자함’을 따라 사는 진정한 구도자의 길은 생명과 의와 영광으로 결말을 맺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사랑을 따라 구하라’고 했다. ‘의와 인자’를 따라 모든 것을 행하도록 주의하라. 하나님의 의와 인자가 모든 삶의 근거요 출발점이 되도록 하라.
v.22- 그러므로 하나님을 진정 두려워하는 자는 강한 용사의 성을 파할 수 있는 지혜가 있다. 왜냐면 하나님이 그 성을 파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을 것이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얻는 인생이 어떤 환경에서도 자족할 수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v.23-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입과 혀를 지키도록 하라. 이것이 진정한 경건이다. 이러한 경건은 환난에서 자신의 영혼을 지키는 보호막을 형성하는 것이다.
v.24- 그러나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조심하라.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조심하라고 히브리서 저자는 말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므로 ‘넘치는 교만’으로 행하는 자를 조심하라.
v.25-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또한 게으를 수밖에 없는데 그의 악한 정욕이 그 자신을 사망에 이르게 할 것이다. 게으름과 정욕은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 손으로 일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정욕에서 비롯된 것’이다.
v.26- 영적으로 게으른 자는 온종일 탐하기만 하지만 베풀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아끼지 않고 재물을 베풀어줌으로서 자신의 의로움을 스스로 입증한다.
v.27-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소유한 재물은 가증하다. 잘못된 동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더욱 가증하다.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이웃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자신의 유익을 위해 재물을 모으는 자가 남을 위해 베푸는 삶을 살지 않고 하나님께 헌금을 드린다고 할 때 그 헌금이 정말 의로운가? 하나님은 의리가 없는 헌금을 가증하게 보신다.
v.28- 하나님의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영원한 사망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을 하는 사람은 힘이 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하는 말들이 얼마나 힘이 있을까? 이것은 성경관에도 중요한 빛을 던져준다. 신화와 꾸며낸 이야기와 달리 자신이 부활의 주님을 직접 보았다고 주장하면서 기록한 신약성경이 얼마나 힘이 있는가? 성경은 확실한 증인들이 증거하고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리스도인의 ‘힘’은 성경의 권위를 믿는데서 생기는 것이지 다른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v.29-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은혜를 베풀기는커녕 무자비한 얼굴, 은혜 베풀기를 거절하는 얼굴을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정직한 자)은 그 얼굴이 아닌 그 행위까지 조심할 것이다. 왜냐면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감찰하신다는 사실을 삶 속에서 이해하고 있다.
v.30. 그러므로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이것이 지혜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누가 하나님을 이길 수 있을까? 절대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싸움을 포기하는 것이 지혜요, 믿음이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싸우시도록, 하나님이 이기시도록 사람이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모든 죄인들은 하나님과 싸우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싸우는 것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그 앞에 부복하고 항복한 인생이다.
v.31- 사람은 전쟁의 날을 대비하여 말과 병사들을 모으고 준비하지만 이김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결정하신다. 사람들은 자기의 행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기울이지만 그러나 사람의 진정한 행복과 성공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지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지혜를 미련하게 만드셨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지혜로 하나님의 지혜르 파악할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