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오늘도 지혜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볼까요?
지혜의 성령께서 우리의 멘토, 개인교사private tutor 이심을 믿습니다!
김광락 선교사 올림.
< 제 23 장 >
※본문의 전체 구조를 한번 살펴보자. 두 가지 부정적인 경고의 말씀 사이에 긍정적인 권고의 말씀이 끼어 있다. 결국 본문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가운데 있는 권면의 말씀이다. 이 권면의 말씀은 두 가지 경고의 말씀을 받아들인 자가 나아갈 길이며, 두 가지 위험한 길에 빠지지 않는 방법이자 두 가지 위험을 극복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①탐욕에 대한 경고의 말씀(v.1-11)
②훈계에 착심하라는 권면의 말씀(v.12-19)
③방탕에 대한 경고의 말씀(v.20-35)
●v.1~11: 탐욕에 대한 경고
“네가 관원과 함께 앉아 음식을 먹게 되거든...” 지금 이 말씀은 관원에게 주는 가르침이다. 관원이 되었을 때 주의해야 할 삶으로서 무엇보다 ‘탐욕’을 조심해야 한다. 국가의 지도자가 탐심을 품는 것은 그 국가를 망치는 길이다. “삼가 네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 생각하라” 관원이 되었을 때 무엇보다 자기 보다 더 높은 자가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 탐욕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지도자는 특히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로마서에서 사도바울이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의 진정한 배경이다. 지도자는 하나님의 궁정에서 먹고 마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 “네가 만일 탐식자여든...” 관원이 만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탐욕이 많은 사람이라면 “네 목에 칼을 두어야 한다” 얼마나 말을 조심해야 하는 지 모른다. “그 진찬을 탐하지 말라” 그 진수성찬을 먹으면서 관원은 거만한 마음을 품기 쉽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자기 앞에 놓은 진수성찬을 바라보면서 사람은 교만에 빠지기 잘 한다. 그러나 “그것은 간사하게 베푼 식물이니라”(3) 즉,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존재한 것이다. 지도자는 자기 앞에 놓인 화려한 진수성찬, 명성, 칭찬, 안락, 권위와 명예 등을 보면서 ‘간사하게 베푼 식물’처럼 대하여야 한다. 이처럼 지도자는 힘이 있을 때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그는 특히 “부자 되기를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려야 한다”(4) 관원이 조심해야 할 것은 부자되려고 애쓰는 삶과 사사로운 지혜를 자랑하고 내세우는 삶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허무한 것은 물질, 돈이다. 관원에게 왜 돈이 허무한가? 왜냐면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갈 것”이기 때문이다.(5) 관원으로서 돈을 바라보기를 새처럼 바라보아야 한다.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6)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와 함께 교제할 때 조심해야 한다. 음식을 같이 먹는 행위는 서로 동역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동역함으로 얻는 ‘진찬’을 좋아하지 말라. 왜 그런가? “대저”(왜냐면)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기” 때문이다.(7) 마음의 생각이 그 사람됨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가 너더러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기 때문이다.(7) 지도자는 사람들이 하는 칭찬의 말에 속지 말아야 한다. 마음은 함께 하지 않으면서 하는 말들이 많기 때문이다. “네가 조금 먹은 것도 토하겟고 네 아름다운 말도 헛된 데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8) 관원은 사람들의 칭찬이나 뇌물이나 진찬을 좋아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진찬은 토하게 될 것이고, 그들의 칭찬ㅇ느 다 헛된 것이다.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지니”(9)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 자신의 은밀한 비밀을 털어놓지 말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심 깊은 말들을 그 마음으로 업신여길 것이다. 겉으로는 듣는 체할지라도 속으로는 업신여길 것이다. 그들은 그를 단지 이용하려고 ‘진찬’을 베풀 뿐이다.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며 외로운 자식의 밭을 침범하지 말지어다” 관원은 영적 전통을 지켜야 하며, 탐심을 품고 남의 것을 빼앗는데 자신의 힘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대저(왜냐면) 그들(약한 자)의 구속자는 강하시니 너를 대적하사 그 원을 펴시리라”(11) 지도자는 최후에 심판하실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백성의 관원이 가져야 할 지혜이다.
●v.12~19: 훈계에 대한 권면
지혜의 교사는 아이를 훈계하라고 말한다.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다. 이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단순한 자녀교육에 대한 가르침에 머물지 않는다. 이것은 보다 깊은 의미로 나아간다. 왜냐면 우리는 ‘아이’가 되지 않고서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죄인에게 필요한 것은 복음의 날카로운 채찍과 같은 말씀이다. 관원의 입장에서 보면 깊은 연단을 받아야 그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 그 좋은 실례로 요셉의 받은 연단을 기억하라. 요셉은 애굽의 관원이 되기 전에 얼마나 혹독하게 채찍에 맞았던가! 그러나 그러한 연단이 없었다면 그는 자신의 영혼을 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복음은 그리스도의 책망의 말씀이다. 복음의 책망은 채찍과 같이 ‘아이’같은 죄인들에게 깊이 박혀서 그 영혼을 구원할 것이다. 이 복음은 관원에게 더욱 필요한 것이다. 오늘날의 교회는 더욱 강력한 복음의 선포와 가르침이 필요하다.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지혜는 제자들이 지혜 안에서 행할 때 기뻐한다고 말한다. 참된 스승은 그 제자가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진정한 상급으로 삼는다. 요한3서 3, 4절을 참조하라. 그럼로 지혜자의 마음을 가지라. 지혜자는 재물이나 명예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진리 안에 거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한한 즐거움을 삼는다. 지혜를 가지기 위해서 경건을 연습하라. 즉,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17) 시편 73편 기자는 죄인의 형통을 시기하다가 그 발이 실족할 뻔하였다. 그러나 경건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자이다. 심지어 죄인이 형통할 때조차도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죄인의 형통함이 그 경외심의 깊이를 테스트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것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비밀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진정으로 두려워할 때,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18) 그러므로 “네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정로로 행할지니라”(19) 지혜의 제자들은 지혜의 스승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부단히 듣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워서 시온성을 향해 좁은 길로 계속 부단히 나아가야 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지혜의 스승이시다. 다른 스승은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그렇다. 우리의 참 스승은 오직 하나이시다. 그는 하늘의 지혜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는 오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법을 가르치셨다. 생명을 얻는 생명나무로 향한 길을 가르치셨다.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가르치셨다. 우리는 그 길로 가야 한다. 비록 좁은 길,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은 길이지만 우리는 그 길이 생명길임을 알기에 전진해가야 한다.
●v.20~35: 방탕에 대한 경고
관원이라면 탐욕뿐만 아니라 방탕함도 조심해야 한다. 당신이 만일 정로로 가기를 원하는 지혜의 제자라면 방탕함에 유혹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방탕함에 빠진 경우 영적 깊은 잠을 자게 되어 결국 그리스도의 날에 영원한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술을 즐겨하는 자”와 사귀지 말라.(20) 술을 즐겨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증거하는 것이다. 그는 지혜가 없는 자이다. “고기를 탐하는 자”와 사귀지 말라. 요즘 음식순례라는 말이 얼마나 유행하는가? 어느 식당이 더 맛있다는 말이 대화에 얼마나 많이 차지하고 있는가? 이런 삶이 다 방탕인 것이다. 술취하고 탐식하는 것은 ‘가난하여 질 것’이다.(21) 그는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만족을 찾지 못한다. 아무리 돈이 많고 좋은 옷을 입는다 하더라도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가난하고 가련하고 벌거벗은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는 자’인 것이다. 방탕함과 게으름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21) 방탕한 자는 결코 부모를 효도하지 못한다.(22) 지혜의 말씀을 청종하지 못한다.(22) 방탕한 자는 진리를 사고서 파는 망령된 일을 행할 것이다.(23) 그러나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24) 방탕한 자들이여! 정신차리고 네 부모를 공경하라. 낳은 부모를 즐겁게 해드리도록 하라. 그러면 방탕이 얼마나 부모를 기쁘시게 하는 일에 장애가 되는 지 알 것이다. 자신이 부모가 되어 보면 그 자식의 방탕이 얼마나 부모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지 알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지혜를 간직하라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26) 이 일에 게을리하지 말라. 왜냐면 이 일에 게을리 할 때에 음녀에게 마음을 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저 음녀는 깊은 구렁이요 이방 여인은 좁은 함정이라”(27) 하나님과 하나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즐거워하지 않는 자, 그 말씀을 즐거워하지 않는 자는 필연적으로 좁은 함정으로 기울어게 될 것이다. 왜냐면 음녀는 “강도같이 매복하며 인간에 궤사한 자가 많아지게 하기 때문”이다.(28) 그러므로 방탕한 자들이여! 다음의 질문에 답해보라.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29) 방탕한 자들에게 있지 아니한가?(30) 쾌락에 영적 감각을 잃어버린 자들이 아닌가? 쾌락을 찾아다니는 자들에게 있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관원이여, 그러므려 지혜를 구하는 구도자들이여,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자들이여,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31) 왜냐면 “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기 때문이다.(32) 아담과 하와를 뱀이 어떻게 물었는가 생각해보라. 방탕에 젖어든 사람의 모습을 보라.(v.33-35) 그는 상황을 바로 인식하지 못할뿐더러,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으로 함부로 말을 낼 것이며(33),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것이며(34), 얼마나 무감각하며, 무감각한 것을 오히려 자랑하며 그것을 또 추구하는지 보라(35) 방탕한 자들이여 돌이켜 ‘어린아이’가 되어 복음의 채찍을 순하게 받으라. 복음의 훈계를 기쁨으로 받으라. 이것이 영혼을 살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