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보다 성경공부를 더 강조하는 이단?
질문:
> 혹시 이단 중에...
> 예배보다 성경공부를 더 강조하고,
> 사람이 짓는 죄를 심하게 강조하는
> 이단이나 교파가 있나요?
> 있다면 좀 아리켜주세요^^
답변:
JMS, 구원파, 다락방, 신천지, 등이 있지요.
(JMS는 윤리문제로 많이 와해된 상태에 있지요)
이들은 다 이단들로서 성경공부를 무지 강조합니다.
그 외에도 더 있는데 우선 생각나는 대표적인 이단들입니다.
이들은 지적인 호기심을 이용하여 예수님이 아닌 다른 복음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죄문제에 대한 강조에 대한 것에 대해서는...
사람이 짓는 죄를 심하게 강조하는 것 자체는 전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죄는 아무리 심하게 강조해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답니다. 지금은 오히려 죄에 대해서 심하게
책망을 해도 시원치 않을 시대입니다.
그러나 죄책감을 이용해서 잘못된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
잘못이랍니다.
옛날 청교도시절에는 죄를 얼마나 심하게 강조했는지 모릅니다.
문제는 죄에 대한 해결책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단은 죄에 대해 심하게 강조하면서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죄문제를 해결하려고 함으로써 결국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암송하려고 하는데 어느 곳을?
답변:
좋습니다.
성경구절은 그 나름대로 암송할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연결이 끊어지는 단점이 있지요.
성경본문에서 암송하려면...
제일 추천하고픈 순서대로 말한다면...
(1)시편 - 운율을 살릴 수 있어서 좋고 예배에도 도움이 됩니다.
시편1편, 23편, 51편, 73편, 90편, 89편, 107편, 119편, 등이 좋습니다.
(2)야고보서 - 실제 삶속에서 많은 도움을 주지요.
(3)산상수훈 - 마태복음 5,6,7장으로서 천국헌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중요한 본문입니다.
(4)요한계시록 2,3장 -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귀중한 본문이지요.
(5)빌립보서 - 일상생활 속에서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게 해주는 본문입니다.
(6)로마서 - 로마서는 복음의 핵심이지요.
로마서 전체, 로마서 1-8장, 로마서 8장, 로마서 9-16장
(7)에베소서 - 삶의 목적과 의미를 바로 잡아 주지요.
(8)골로새서 - 방황하고 있는 자에게 삶의 의미를 제시해주지요.
(9)신명기 28장 - 순종에 대한 축복된 말씀이지요.
신명기 5장, 신명기 6장도 좋습니다.
(10)룻기 - 기업무르기라는 측면에서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을 잘 그려주고 있지요.
(11)전도서 - 생활에 이보다 더 잘 적용되는 본문은 드물 것입니다.
(12)아가서 - 사랑에 대한 가장 탁월한 본문이지요.
(13)하박국서 - 세상의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웅변적인 응답이지요. 하나님으로 만족케 된 선지자의 마지막 고백이 압권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성경을 직접 읽어가다가 두고두고 묵상할 만한 본문을 발견했을 때
표시를 해놓고서 암송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말씀의 능력을 암송하다가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구원파가 이단인 까닭?
답변:
분명한 이단입니다.
구원파에는 세 가지 분파가 존재하는데
가장 활동이 왕성한 곳이 박옥수계열입니다.
구원파가 왜 이단이냐면,
예수 그리스도를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구원파에서는 회개하는 행위로써 구원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분명한 회개의 행위가 있으면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어떤 죄를 지어도 구원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하지요.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만으로 얻습니다.
오직 믿음을 믿음+행위로 왜곡시키는 가르침에 속지 마십시오.
중요한 일과 급한 일의 차이?
질문:
> 중요한 것과 급한 것을 분별하는 방법좀 가르쳐주세요..
> 알면서도 제자신 안에서 갈등을 해서 더 확실히 하고싶어서요~
> 꼭 가르쳐주세요~
> 제가 질문을 하면서도 어리석은 것 같네요 ㅠ.ㅠ
답변:
아주 중요한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도 잘 모르겠군요...
그러나 대게 사람 자신은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이 급한지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분량대로 나눠주신 믿음과 선한 양심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면 됩니다.
아마도, 중요한 일은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손해볼 것이 없지만 나중에 가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급한 일은 지금 당장 해야 하지만 그것이 내 영혼에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일 겁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제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권면하고 싶습니다.
(1)이것이 누구를 위한 일인가? 나를 위한 것인가, 남을 위한 것인가, 주를 위한 것인가? 나보다 남을 위한 일이 더 중요하겠으며, 남보다 주를 위한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겠습니다.
(2)이것이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사명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한 일이라면 분명 매우 중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사명과 관계된 일이 중요한 일입니다. 사명을 이루는 데 무슨 관련이 있는지를 자문해보십시오.
(3)이것이 숙제인가, 아니면 예습인가? 숙제는 급한 일이지만 예습은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 않으면 당장 손해가 될 일은 급한 일이지요. 그러나 하지 않으면 당장 손해는 없으나 점점 약해지는 원인이 되는 것이 중요한 일이지요.
(4)이것이 당장 눈앞의 이익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먼 앞날의 이익을 위한 것인가? 그 이익은 누구를 위하여 쓰여질 것인가? 내일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보다 내년의 이익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분명 중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
(5)이것이 사람의 인기를 끄는 것인가, 아니면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 마가복음1장 35절에서 39절까지 보면 예수님께서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을 어떻게 구별하시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필요로 해서 찾을 때, 사람들의 필요에 일일히 채워주는 일보다,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들을 찾아나서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급한 일보다 중요한 일을 먼저 하기로 결정하신 것은 분명 사람들의 인기와 영합하려는 유혹을 뿌리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힘은 새벽에 하나님과 교제하는 데서부터 나왔습니다. 우리가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을 잘 분별하려면 이렇게 먼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습관화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주님과의 개인적이고 친밀한 교제가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무엇이 급하고 무엇이 중요한지 분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분별하는 방법은 따로 공식이 없습니다.
주님과 사귀고 동행하면서 점차적으로 배워나가는 과정에서 얻어집니다.
주님과 사귀고 주님께 가까이 하는 일을 힘쓴다면 분명 주님의 뜻 가운데서 무엇이 중요한 일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김광락 목사 올림.
삶의 의미가 없을 때?
질문:
> 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 열심히 살아가는 내 모습이 가끔
> 대견스럽기도 합니다.
> 하지만 내가 나의 일을 열심히 하고
> 아무리 내가 원하는 일을 해도 한번씩
> 아버지 앞에서 점점 멀어지는 내 모습을 바라보았을 때
> 모든 것이 모든 하루의 보람과 만족이
>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짐을 느낍니다.
> 이렇게 살아서 뭐하냐고..
> 나의 삶에 하나님이 없는데 내가
>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
> 솔직히 아버지를 위해 살고 싶습니다.
> 이 말을 자신있게 말하진 못합니다.
> 하나님을 잘 알지도 못하는 아이가
> 무언들 알기에 아버지를 위해서
> 사느냐하는 물음에 답할수
> 없기 때문입니다.
> 저번에 아무도 안보일 때 어떻게 해야하냐하는
> 나의 물음에 목사님의 답을 읽고
>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 내가 아무것도 없는 내 자신을
> 바라보았기에 그렇게 막막했고
> 둘째는 목사님은 나를 모르신다는 사실입니다.
> 나를 모르시기에 그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 삶의 의미가 없습니다.
> 뭐가 뭔줄 모르겠습니다.
> 그냥 기도해주세요.
> 나뿐만 아니라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들
> 상황이 어떻더라도 마음이 어떻더라도
> 기도와 말씀이 끊이질 않는 삶이 되게 해달라고요
> 지금은 그것만을 원할 뿐입니다.
> 목사님 감사합니다..
>
답변:
좋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질문하신 지체의 모든 문제와 고통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질문하신 지체가 모든 것을 저에게 오픈하여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데
대충 글만 읽고서 제가 어떻게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저에게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신비한 명답'을 기대하셨다면 큰 착각일 것입니다.
제 느낌에는 그냥 저에게 하고 싶은 말과 감정을 털어놓고 싶어서 글을 올린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그렇다면, 즉, 분명한 해답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털어놓고 대화할 상대를 찾고 싶다면 차라리 일대일로 저를 만나주기를 바랍니다.
저는 하나님처럼 대답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인내심을 갖고 들어줄 수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나는 질문하신 분의 상황을 다 모릅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분명히 그 상황을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것 역시 분명한 사실입니다.
아니 하나님은 내가 내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자세히 정확히 알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이것이라고 봅니다.
내 믿음의 닻을 감정과 상황에다 두느냐 아니면 변함없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두느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 감정은 끊임없이 내게 "너는 실패자야"라고 말하고 있는데,
만약 성경은 내게 "너는 성공자야"라고 말하고 있다면, 나는 어느 말을 선택할 것입니까?
선택의 몫은 자신에게 달려 있지요.
자신의 감정과 상황이 하는 말을 더 신뢰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에 더 신뢰를 두어야 할 것인지...
저는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고 무엇 때문에 삶의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권면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배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정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의 닻을 내리는 법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내 감정이나 내 상황이 내게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기 시작할 때 내 영혼은 비로소 자유하게 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장)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싶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오십시오.
진리되신 그분의 말씀을 진지하게 경청해보십시오.
진리가 그대를 진정 자유하게 도와줄 것입니다.
쇠사슬에 매여 있는 인생이 무슨 수로 헤어나올 수 있단 말입니까?
오직 진리만이 열쇠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 자유를 발견하고 또 누리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이란?
질문:
> 정말 부끄럽지만..
> 저는 얼마 안돼서야(모태 신앙 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진정 우리를 사랑하고 살아 계신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 하지만 그분의 확신에 대한 기쁨도 잠시....그 사실에 대한 부담감도 매우 크더군요.
> 우스운 일이지만 억지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날 보면서 내가 꼭 이렇게 하지 않으면 주님이 날 다시 또 시험에 들게 하실 것 같은 불안감(물론 아니겠지만),옛날 같았으면 무심코 지나갔을 일도 한 가지 한 가지 따져가며 그 일을 행할 때 '주님의 뜻이 아니면 어쩌지' 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 주님을 확신하면 확신할수록 그 분에 기대에 못 미칠 것 같은 어리석은 부담감에 자꾸 나약해 집니다. 정말 제가 그분을 사랑하고 확신하는 걸까요? (...어리석은 질문인줄 알면서도 저의 가슴 속에서 떠나질 않내요...)
답변:
할렐루야!
한 영혼이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정말이지 기적과도 같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이후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행위로 살아가지 말고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로 구원을 받은 후에 은혜에 의지하려고 하기보다는
자기의 행위와 의지에 의지하려고 시도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자신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을 즐겁게 해드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마음으로 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핵심단어는 즐거움과 안식입니다.
무엇인가 하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쉬도록 하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 할 일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하셨는데
내가 또 무엇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서 쉬는 것, 그것이 믿음이요, 그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원한다면 내 행위나 의지에 의존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에 의지하려고 해야 합니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만약 행위에 의지하여 살려고 하면 점점 피곤해질 뿐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나의 생각과 의지와 계획보다는
나를 위한 하나님의 생각과 의지와 계획에 초점을 맞추어 보세요.
복있는 사람은 주야로 그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을 즐거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분과의 교제를 다만 즐기십시오.
그분을 즐겁게 해드리려고 노력하는 시도를 중단하십시오.
그것이 신앙의 첫걸음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려고 애쓰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도록 하십시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움직이기 위해 내가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행하셨기 때문에 내가 신뢰하고 안식하는 것입니다.
즉,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한 반응입니다.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뇌사에 대해서?
질문:
> 뇌가 죽으면 생각을 못하잖아요.
> 그런데 열심히 믿음생활을 하다가
> 사고로 뇌가 죽어서 아무생각도 못하다가
> 죽어버리면 그 사람은 천국에 갈수 있나요?
> 제 친구가 저한테 그렇게 물어보더라구요.
답변:
사람이 죽고 살았다는 판단기준은 뇌의 활동으로 보지 않고 심장의 활동으로 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심장이 뛰고 있고, 뇌가 활동하지 않는 경우라면 아직도 살아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보아야 할 성경적 근거는 사람의 생명이 피에 있다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창9:4-6과 레17:11,14절을 찾아 읽어보세요)
뇌가 활동하는 것과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별개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내 생각'이나 혹은 '신념'이 아닙니다.
믿음은 내가 하나님과 어떤 생명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머리(뇌)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에 관한 말씀들을 확신하더라도 하나님과 아무런 생명의 관계를 맺지 못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거든요.
믿음은 뇌의 활동에 국한시키지 마세요. 믿음은 주님과의 관계(언약)입니다.
따라서 만일 주님과 언약을 맺은 상태로 신앙생활하다가 뇌사했다면, 혹은 다른 어떤 이유로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했다면, 천재지변으로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죽고 말았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한 사고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관계)을 취소하지 못합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다도 아니고, 못 간다도 아닙니다.
뇌만 가지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뇌가 죽어서 생각을 못해도 천국에 못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신념으로 오해하지 마십시오.
믿음은 결코 신념(확신, 생각)이 아닙니다.
믿음은 주님과 생명력있는 관계입니다. 언약적인 관계이기도 합니다. 한번 언약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 왕성하게 뇌활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며,
뇌사자라고 해서, 혹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었다고 해서 다 천국에 못가는 것이 아닙니다.
신념이 아닌 믿음으로,
생각이 아닌 관계로 천국에 가기 때문입니다.
참된 믿음은 뇌의 활동에 있지 않습니다.
믿음은 가슴에 있습니다. 그리고 관계에 있습니다.
살아있음은 뇌의 활동이 아니라 피의 활동에 있는 것처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을 소유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복제된 인간도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답변:
일단 인간을 복제할 수 있다는 가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의 문제를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과학자들은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그러나 아직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무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봅니다.
인간을 복제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사람은 단지 세포 이상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결코 사람의 인격을 복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혼은 복제될 수 없는 성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제된 인간의 구원문제를 논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봅니다.
만약 복제된 인간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닐 것입니다.
사람은 과학의 힘을 빌어 세포를 복제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인격과 영혼은 절대로 복제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성애가 왜 죄인가요?
질문:
요즘에 여자로 성전환 수술을 한 하리수라는 남자가 연예인 데뷔를 해서 화제가 되었는데
그게 죄에 어긋나는지 정말 궁금해요...
물론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성(性)이 있는데 사람 임의로 바꾼 다는 것은 왠지 안될 것
같지만요..
그 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 사람은 자신과 같은 성을 갖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고 좋아하
감정이 생기는 건 어쩔수 없다고 봐요..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듯이 말이예요..
그래서 그런 문제의 방편으로 성을 바꾸는 것인데..
어떻게 보면 굉장히 안됬거든요...
제가 너무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는 건가요..
답변:
저는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합니다.
동성애는 아주 고약한 병적 상태이며,
동성애행위는 명백한 죄입니다.
왜 그것이 죄인가??
서로 사랑하면 그만이지??
내가 좋아서 하면 다 괜찮다는 얘긴가??
내가 사랑한다고 하면 그것이 어떤 행동이든 괜찮은건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다 괜찮은건가??
죄라고 하는 것은 내 기준과 내 관점에서 평가하는 성질이 아닙니다.
죄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거룩성을 위반하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반역하는 것입니다.
동성애란 말은 영어로 sodomite라고 합니다.
이것은 소돔과 고모라의 백성들이 열렬한 동성애자들이었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 말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백성들이 얼마나 성적으로 문란했는지는 성경을 읽어보세요.
그들이 서로 사랑한다고 떠들어댔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진노의 불길 아래 가두어버리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으로 사해바다가 생겨났다고 성경학자들은 얘기를 합니다.
물고기 한 마리 못사는 저주의 바다,
사해 바다의 밑바닥은 소돔과 고모라의 잔해가 묻혀 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하나님께서 인류역사를 어떻게 심판하실 지를 미리 보여주시는 아주 작은 실례입니다.
또,
폼페이가 왜 망했습니까?
로마가 왜 망했습니까?
가나안 7족이 왜 망했습니까?
음란한 성생활 때문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동성애를 비롯한 음란하고 문란한 성생활은 개인과 도시와 국가를 멸망시키는 주범입니다.
AIDS(후천성면역결핍증)이란 치명적인 바이러스,
아무도 치료약을 개발하지 못한 이 바이러스가 왜 생겨났습니까?
바로, 동성애가 만들었습니다.
인류역사에 치명적인 재앙들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이 만드셨습니까?
아닙니다.
인간 스스로가 만든 것입니다.
가축동물들 사이에 구제역만큼 심각한 바이러스 재앙은 또 없을 것입니다.
이 구제역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사람이 만들었습니다.
오존파괴로 말미암은 자외선의 공포는 누가 만들었습니까?
지구의 온실효과로 말미암아 기상이변과 재앙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누구 때문입니까?
바로 사람의 죄가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선한 청지기같이 잘 관리하기는커녕 오히려 마음대로 어지럽히고 마구 헤치고 환경을 파괴하는 인간의 죄가 오늘날의 재앙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그들을 한 몸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지키는 것을 싫어하여 마구 파괴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죄의 열매를 먹고 있는 중입니다. 앞으로 큰 심판의 날이 닥치기 전까지 사람들은 더 많은 재앙들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교회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그러한 인간의 죄악된 행동에 대해 단호히 경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아니면 세상은 전혀 희망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온 인류가 살 길입니다. 복음을 듣고 믿어야 함께 잘 살 수 있습니다.
동성애문제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질문해볼까요?
서로 사랑하면 괜찮다고요?
결혼하고 살고 있는데 배우자가 나 몰래 다른 사람과 교제하고 관계를 맺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사랑하기 때문에 용납해야하겠네요. 그것이 정말 사랑입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괜찮은 것입니까?
사람들은 이렇게 이기적으로 사랑을 생각합니다.
나 자신이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말입니다.
동성애자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괜찮지 않느냐고 한다면
입장을 바꿔놓고 내가 사랑하는 연인이 배우자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내가 사랑하는 동생이나 가족들이 동성애를 하겠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럴 때에도 "아, 사랑하니까 괜찮아"라고 변호해주겠어요?
아닐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극렬하게 반대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들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못할 것입니다.
부디 사랑을 이기적으로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내가 하면 좋고 남이 하면 나쁘다는 식은 안 됩니다.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좋다는 생각은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참 사랑은 책임과 두려움과 존경과 원칙에 입각해야 합니다.
그러한 것들이 없는 사랑은 위험한 것입니다. 자기를 파멸에 이끄는 것이죠.
잠언7장을 읽어보세요.
음녀가 "우리가 밤새도록 서로 사랑하며 아침까지 희락하자"라고 제의할 때
그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잠언 7장에 나오는 젊은 청년과 같이 자기 생명을 스스로 포기하는 어리석은 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참 사랑은 두려움과 책임이 따라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사랑이라는 명분 아래 모든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마귀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그것이 의롭지 못하다면 아무리 좋은 사랑과 기쁨이라도 마귀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곧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했습니다.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거룩한 삶이란 음란을 버리고 가정생활에 충실하며 일부일처에 충실하며 성적으로 순결하고 깨끗한 것을 말합니다.
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적으로 순결하고, 마음으로 성결하며, 삶으로 흠이 없이 주 예수님의 날까지 보존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독교 국가인데 왜 가난할까요?
질문:
학교 종교 시간에..
비디오를 봤는뎅
거기서 소말리아 같은 빈민촌은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약 32 %라는데요
그 많은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활하는지 궁금합니다..
바보같은 생각같기도 하는데.. 예전부터 궁금했어요
평등하게 똑 같이 사는것이 아니라.. 어디는 너무 못살고.. 또 어디는 너무 잘살고..
너무 궁금합니다..
답변:
신명기 28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읽어보기 바랍니다.
축복과 저주는 오직 순종과 불순종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순종하면 축복이요, 불순종하면 저주입니다.
세계역사나 세계 모든 나라들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고 하는 개인이나 민족은 다 잘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을 저버린 개인이나 민족은 다 망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법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는가 하는 것이 그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축복은 순종으로 받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법을 순종할 때 축복은 따라옵니다.
아무리 잘 살려고 노력하더라도 인권을 무시하고, 사람을 마음대로 죽이고, 학대하고,
남의 것을 빼앗고, 가진 자는 없는 자를 착취하고, 권력자는 약자를 보호학는 커녕
오히려 이용하고, 악한 일에 대해 공의의 법을 집행하지 못하고, 약육강식의 삶을
인정한다면 하나님의 축복이 그 나라에 임할 수 없습니다.
법이 얼마나 하나님의 법 정신을 이해하고 정의롭게 공의롭게 집행되느냐에 그 나라의
흥망성쇠가 달려 있습니다. 권력은 섬기라고 주신 것이고, 법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국민성이 얼마나 이해하는가가 중요합니다. 결정적으로...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
공법을 지키지 않고, 정의를 행하지 않는 나라에게 하나님은 땅의 기름진 축복을 내려주시지 않습니다. 절대로...
하나님을 설령 몰라도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가려고 한다면 하나님은 약속대로
땅의 기름진 축복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공법을 사랑하십니다. 부정부패를 미워하십니다.
나라가 잘 살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러한 부정부패 때문입니다.
공평과 공의를 행하는 나라에게 하나님은 잘 되는 복을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지금도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는 나라에게 복을 내려주십니다ㅏ.
신명기 28장을 꼭 읽어보세요.
자살에 대한 의문?
질문:
안녕하세여...
짧은생각과 부족한 모습이 많지만 감히 이곳에 글을 올립니다..^^
오덕호 목사님이 쓰신 "교회주인은 사람이 아니다"란 책에 자살에 관한 내용을 있어서 이 글을 올립니다...참고가 됫음 조켓네여...
자살은 일종의 살인죄인거 아시져..자살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할 죄입니다. 근데 왜 다른 죄를 지은 신자는 지옥에 간다고 하지 않으면서 왜 꼭 자살한 신자는 지옥에 간다고 할까요?
결정적인 이유는 다른 죄를 지으면 회개할 기회가 있지만 자살은 죽으면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회개할 기회가 없다는 점입니다..근데 또 이 말도 조금 복잡한 문제입니다..
자살 할 떄 회개할 기회가 없기 때분에 지옥에 간다면 거기에는 타당성이 없다는 것이죠..
이 문제는 2 가지로 생각할 수 있는데요..
첫째 자살하려고 자해한 사람이 죽기 직전에 극히 짧은 시간이나마 회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살자의 운명과정을 알지 못하는 우리가 "그는 지옥갔다"라고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 모두에게는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지 못한 죄가 많기 때문에 단순히 "회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옥에 간다" 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자살하지 않은 신자도 회개하지 못한 여러가지 죄를 안고 죽게 되죠..신자들의 죄를 다 회개하지 못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가 아니라고 오덕호 목사님은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복음을 이해하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구원받는 것이지 우리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종교행위나 경건행위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우리가 죄를 일일이 찾아내어 회개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면 그것 자체가 우리의 종교 '행위'를 의지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구원을 부탁하고 있는 마음(믿음)으로 모든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있느냐에 달린 것이지 죄를 구체적으로 회개했느냐에 달린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점들로 볼때 자살한 사람이라고 반드시 지옥에 간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도 마음으로는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으나 순간적인 실수로 자살이란 큰 죄를 짓고 미처 회개하지 못한 상태로 죽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라면 그 사람이 지옥에 갈지 안 갈지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으로 인간인 우리가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더욱이 타인의 구원문제를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살이 심각한 죄라는 것을 가르치며 최선을 다해 자살을 막아야 하지만 자살한 사람에 대해 그 사람이 지옥에 갔다고 단정하는 자세는 지!양!(지향이 아닙니다 절대로)해야 합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주님의 고난과 부활을 묵상하며..
답변:
좋은 설명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자살한 사람을 지옥에 갔다고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자살한 사람이 천국에 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고 봅니다.
우리는 자살에 대해 정의를 잘 내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살 수 있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다 지옥에 간다면 주님을 위해 신앙고백하다가 순교한 자들은 다 지옥에 가야 합니다.
그들은 복음을 거부하면 살 수 있었는데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거든요.
또, 구약에 엘리야를 보세요. 식음을 전폐하고 로뎀나무 아래 누워 죽기를 간구했던 엘리야가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하던 중 만약 죽었다면 지옥에 갔을까요? 아니라고 봅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충성하다고 과로로 사망한 목사님들은 다 지옥에 갔나요?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서 자살에 대해 정의를 잘 내려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자살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라고 한다면 순교자나 충성하다가 죽은 주님의 종들도 해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어쩌면 스스로 목숨을 버리셨지 않습니까? 그러면 예수님은 자살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지옥행 자살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삶의 목적과 기회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즉, 자기 생명을 혐오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살해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충성하다가, 섬기다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과 오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스스로 죽는 사람이라고 다 지옥 가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했느냐 아니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거부하는 자들이 최후로 선택하는 삶이 자살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지옥행 직행버스를 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죽도록 충성하는 것은 '순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도피하기 위해 죽는 것은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죽어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살고, 내 마음대로 죽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죽어도 주를 위해 죽고, 살아도 주를 위해 죽나니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몸과 생명을 마음대로 임의대로 처분할 권리가 내게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죽기까지'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전부입니다.
주님의 뜻을 피해서 '죽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요나가 자신을 바다에 집어던지라고 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회개시키시고 다시 살리셨습니다.
자살도 주님의 뜻대로 죽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주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직 주님의 뜻대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자만이 천국에 갑니다.
그들은 하늘의 영광과 상급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을 대적하여 죽음을 선택하는 자들은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만약 그 죽음이 주님의 뜻이 아니라면 요나와 같이, 예수님과 같이, 다시 살려주실 것입니다. 죽지 않게 만드실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서 주님의 뜻을 따르게 만드실 것입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의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죽으면 그 영혼은 어떻게 되나요?
질문:
오늘 학교에서 안 좋은 소식을 들었답니다.
친척형의 딸이 숨졌다고 말입니다...
그리곤 집에 와서 참많은 생각들을 했답니다.
고작 나이가 1살이거든요...
많은 사람들의 축복가운데 태어나서 많은 것을 해보지도 못하고 정말 안됐다는 생각도
했고요.
참 이뻤는데...이런생각도 들고 머리가 참 복잡했어요.
친한 친척형의 딸이라서 나두 많이 좋아했거든요 이뻐해주고...
그런데 이 아이의 영혼은 어떻게 될까요...
죄가 몬지도 모르고 잘 하는게 몬지 잘못 하는게 몬지도 모르는 이 아이가 죽어서 어느곳에
가게 될까요...
알려주세요.
기도해주시고요.
답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죄인들의 탈출구는??
아담의 피를 받은 모든 인류는 모두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죄인들입니다.
설령 1살된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는 오직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뿐입니다.
그리스도 아래 들어갈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속죄의 은총 없이 하나님의 진노를 벗어난 인생은 하나도 없습니다.
지각력이 없는 영혼의 경우는 어떻게 될까요? 저는 예외가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신앙고백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아세례를 장로교회는 인정합니다.
아무튼, 예수 그리스도밖에 다른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단, 하나님의 공의는 상급과 형벌의 차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주님을 알고 고의적으로 복음을 거부한 사람과 주님을 모르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과는 똑같은 형벌로 다루지는 않으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저는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변: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예배(worship)는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와 권세를 바라보며 즐거워하며 높여드리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되심과 그분의 영광과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피조물이 하나님께 경배와 영광을 돌리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의무이자 가장 영광스러운 특권입니다. 예배는 인간만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그 영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 중에서 으뜸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예배생활에서도 으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모여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교회는 날 구속하시려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그리스도의 몸이며 나는 그 몸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면서 모이는 모임 가운데 임재하시며 기도와 찬양의 제사를 받으십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면서 체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공로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지음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무궁하며 무한한 영광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그분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영광을 바라보고 참여하고 함께 즐거워하기 위해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며,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자를 하나님이 존중히 여기시시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최고 우선순위는 예배여야 하며 예배생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바른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 중심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기억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묵상하며 그 영광을 영안으로 바라보면서 기뻐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이 예배를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 기도로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높은 사람이나 좋아하는 사람을 만기 전에는 몸과 마음을 준비하듯이 하나님과의 만남인 예배를 위해서 우리는 더 많은 준비를 해야 합니다. 준비된 예배가 바른 예배를 가능하게 합니다. 6일 동안 우리는 주일예배를 위해 정성껏 준비해야 합니다. 자신을 위해 기도로 준비하고, 헌금도 미리 준비하고, 주일예배를 위해, 공동체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설교자와 예배인도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예배 때에는 오직 하나님만 생각해야 합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님만을 생각해야 합니다. 날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의 은총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 조심해야 할 부분은....
예배시간에 늦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학교수업시간은 늦지 않는데 예배시간은 잘 늦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건성이나 억지로 예배 드려서는 안 됩니다.
떠들거나 잡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핸드폰은 집에다 놓고 와야 합니다.
건성으로 찬양해서는 안 됩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찬양을 해야 합니다.
대표기도자의 기도를 내가 하는 기도로 여기고 함께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설교말씀은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여겨야 하며 말씀 속에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을 찾고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존중히 여기고 예배를 성실하게 잘 드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통해 큰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성경이나 교회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예배자였습니다. 예배에 성공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성공하게 도와주십니다.
어떻게 예배드려야 합니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드리기 전에 준비기도를 반드시 해야 합니다. "성령님, 저의 예배를 도와주세요"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감정에 치우친 예배는 올바른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에 승리하면 모든 일에 승리하고
예배에 실패하면 모든 일에 실패한다.
예배를 존중히 여기면 하나님이 우리를 존중히 여기고
예배를 무시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무시한다.
하나님에 대한 두 가지 태도?
답변:
하나님에 대해 고민하는 지체들을 위해 문득 생각이 나서 글을 올립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들의 문제(고통)에 대해 공감하고 들어주고 해결해주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둘째는 자기들의 문제와 상관없이 함께 교감하고 대화하고 내 마음과 말을 들어주시는 인격자이신 하나님
그런데 제가 볼 때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온다고 하면서 첫 번 째의 경우처럼 생각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
솔직히 세상 사람들이나 신자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어려울 때 '신'을 찾습니다. 자기 힘과 의지로 해보다가 안 되는 경우에 '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제서야 도와달라고, 해결해달라고 '신'을 찾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신'은 자기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그런 '신'이지 마음과 감정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친한 친구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다시 말해서 전지전능한 로보트, 혹은
만능 로보캅 정도로만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개념이 있는데,
그것은 그분이 '인격'을 갖고 계시다는 겁니다.
그분은 전지전능하신 분일뿐만 아니라
지,정,의를 소유하고 계시며, 우리보다 더 예민하고 깊은
감성과 감정을 소유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너무나도 신사적이고 인격적이며 부드러우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분과 교제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분을 이용하려고 하지 그분과 교제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신'개념에 치명적인 독입니다.
그들은 단지 필요할 때, 어려울 때만 도움을 간청합니다.
그러나 평소에 인격이신 하나님. 인자하시고 신사적이며 부드러우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용 대상이 아닙니다.
그분은 교제의 대상이며, 예배의 대상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하기를 원하시고 함께 마음을 교류하기를 진정 원하십니다.
물론 내 고통에도 반응하기를 원하시지만 그러나 친구랑 교제하듯이 교제를 나누기를 사실은 더 원하십니다. 그분은 인격이십니다.
그런데 세상은 친구에게 대하는 정성과 따뜻함의 천분의 일정도라도
하나님께 드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단지 이용하려고 할 뿐입니다.
자기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만능기계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과 생각과 계획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분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단지 필요한 경우에만 찾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비전을 갖는다는 것은?
질문:
목사님...근데여...하나님 안에 살려면...꼭 꿈이 필요해여???만약 꿈이 없다면...
솔직히 전 제 꿈에 대해 확신이 안 서서 그런지 몰라두...꿈...어쩌다가 있고 확신이 안
서면 꿈을 마음대로 없애구...이런 일이 반복이 되네여...참 하나님의 자녀로 산다는 건
너무 어려운 것 같아여...사실은 교회의 유혹 보다도 세상의 유혹이 제겐 너무 많아여...
그래서 그런지...교회두 자주 빠지게 되구...근데 세상유혹에는 넘어 가지 않지만......
교회 가지 말라는 유혹은 자꾸 넘어 가네여...누군가 그러더군여...꿈이 없는 사람한테...
꿈이 있는 사람보다 유혹이 더 많다구여...그래서 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봤지만......
별다른 생각은 못 했어여....제 친구 중에 한 애가 저 한테 이렇게 말하더군여...........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꿈만 있으면 그걸 이루기 위해 다들 열심히 산다구여...최소한..
저 처럼은 안 산데여...저보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두...최소한 저보다 더 낯게 살아가고
있다구여...그러면서 이젠...어디두 오라구하구(어디가 어딜까...비밀^^;; *건전한 곳*)
그리고 이젠 교회도 가라구여...암튼 하나님 안에 사는 사람은 전부 꿈을 가져야 하나여??
답변:
꿈은 하나님이 주시는 거예요.
내가 가지고 싶다고 가지는 것이 아니에요.
여기서 말하는 꿈이란 잠을 자다가 꾸는 그런 생리적인 것이 아니구요...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에요.
이 꿈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겠다, 혹은 하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위해, 나를 통해서 무엇을 하실 것이라는 전체적인 청사진을 의미하는 겁니다.
이 꿈은 하나님의 성령을 받을 때 동시에 받게 되는 은총입니다.
이 꿈을 가진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그를 통해 당신 자신의 일을 해나가신답니다.
물론 이 꿈이 있는 자는 어떤 유혹에도 넘어지지 않지요.
잠간 실패하는 일은 있을지 몰라도 패배하는 일은 없지요.
전투에는 패할지 몰라도 전쟁에는 반드시 이기지요.
작은 일, 사소한 일에 넘어질지 몰라도 큰 일, 중요한 일엔 절대로 넘어지지 않지요. 이 꿈을 가지고 산다는 것 자체로도 굉장한 은총이요 축복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 이 꿈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다 이 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왜냐면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거룩한 영이 그 마음 안에 임재하여 계시기 때문이예요. 그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깊은 것(계획과 뜻)을 알고 계시고 그에게 그것을 가르쳐주시고 인도하신답니다. "너희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신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스스로 버리운 자니라"고 바울 사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 내주하고 계심을 알지 못하면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거하는 사람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목적과 계획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꿈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꿈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자기 의지나 노력이나 힘으로 절대로 되지 않구요, 오직 하나님의 성령이 주시는 은총임을 명심하세요.
내가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물어보지 말고,
내가 정말 그리스도의 사람인가?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래요.
그리고 내 안에 그분의 영이 살아 임재하고 계시는가? 라고 물어보기 바래요.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비전을 볼 것이며"(요엘2:28)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꿈을 가지세요. 그러나 내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됩니다.
오직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영접하여 모셔 들이듯이, 오직 믿음으로 꿈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삶과 마음속에 걸어들어오셔서 나를 다스리기 시작하시는 첫날부터 주님은 나에게 비전을 보여주신답니다. 나를 통해 어떤 일을 하시기 원하시는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사용하실 것인지에 대해서 그림을 보여주신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실 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듯이 말입니다.
내가 구원받았음을 알긴 아는데 왜, 어떤 목적으로 구원받았는지를 모른다면 내가 구원을 받지 못했거나 아니면 온전한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쓰레기장에서 자신이 건짐 받았는데 왜 건짐받았는지 모르는 어떤 그릇과 같습니다. 자신이 건짐 받은 목적을 모른다는 것은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모른다는 뜻이고, 그것은 세상을 살 때 나를 세상에서 건져주신 주님의 의도를 무시하고 내 마음대로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내가 세상에서 의미 있고 정말 복된 삶을 살기 원한다면, 진정 성공하는 인생으로 살기 원한다면 주님이 나를 왜, 어떤 목적으로 죄와 사망과 사단의 권세에서부터 건져주셨는지를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승리(성공)하는 삶의 비결은 구원의 목적을 아는 데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에서 머물러 있지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린 구원의 확신에서 구원의 목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 죽어도 천국 갈 수 있다는 확신에서 머물러 있지 말고, 내가 지금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저는 청년들에게 종종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른다면 죽어야 한다고. 하나님이 나를 왜 살려 주셨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빨리 주님 앞으로 가야 한다고... 그렇지 않습니까? 세상에서 살아갈 이유를 모른다면 세상에서 살 필요가 없지요. 따라서 세상을 빨리 떠나서 주님 곁으로 가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는 것이 세상에서 죄와 더러움에 오염되면서 주님의 이름에 먹칠하면서 사는 것보다 훨씬 낫지요.
그러므로 기도하세요. 삶의 이유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기도하세요.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엡1:18절)
이 삶의 이유, 구원의 목적을 발견하기 전까진 무릎을 펴고 일어서지 않기를 바랍니다. 진지하게 이 문제를 두고서 주님 앞에 금식하며 철야하며 기도해볼 생각은 없습니까?
(그럴 필요까지는 못 느낀다고 말한다면 할 수 없지만 저는 분명히 철야, 금식하면서 주님께 매달려 응답받을 충분한 기도제목이라고 확신합니다.)
부르심의 소망을 아는 지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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