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신앙이 무엇입니까?
질문:
기복신앙에 대해서 알고 싶거든요,,,, 전 진정한 신앙생활과 기복신앙과의 차이점 모르겠어요,,,,,, 목사님 답변 부탁드립니다...
답변: 좋은 질문입니다.
기복신앙과 올바른 신앙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그 차이란 한 마디로 "마음의 차이"랍니다.
기복신앙은 '복'을 추구하는 신앙이란 뜻이죠.
그런데 그 '복'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해서
기복신앙과 올바른 신앙, 이 둘로 나뉘게 된답니다.
자, 무엇이 참된 축복일까요?
기복신앙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서 축복을 찾습니다.
예를 들어, 건강의 복, 물질의 복, 사업의 복, 형통의 복, 등등이죠.
반면, 올바른 신앙은 하나님 자신에게서 축복을 찾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즐거워하는 것이죠.
올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은 물질이나 사람이나 건강이나 사업의 형통에서
'축복'을 찾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에게서 기쁨을 얻으려 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분만으로 기뻐하고자 하지요.
다시 말해서 기복신앙이란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으면서
실제 마음으로는 세상의 형통과 부귀, 성공, 명예, 건강 등을 하나님보다 더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사실 그런 것들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한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이것이 기복신앙의 정체랍니다.
그래서 기복신앙을 소유한 사람은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하지만 자기가 원했던 것을 얻지 못하거나 빼앗기게 되면 금방 정체가 탄로나게 되지요. 금방 하나님을 불평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올바른 신앙이란 그러한 환경에 따라 좌우되지 않지요.
건강을 잃어도 하나님을 기뻐하고,
사업에 실패하여도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자신의 이익이 오지 않아도 하나님만으로 만족한답니다.
자,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나는 내 마음으로 진정 무엇을 기뻐하고 있는가? 라고.
나는 하나님보다 세상이나 자신의 이익이 되는 것을 더 기뻐하는가?
그것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나는 진정 그분 자신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있는가?
올바른 신앙은 항상 그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진실함이 있지요.
결단코 환경에 따라 마음이 변덕스럽지 않지요.
오히려 거꾸로 환경이 안 좋아지고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건강을 잃고,
사업에 실패하고, 그럴지라도 더욱더 하나님을 즐거워하지요.
올바른 신앙과 기복신앙의 차이는 그 마음에 있답니다.
그 마음에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기억하세요. 꼭...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의 명령을 따르고, 그분 자신을 기뻐하는 것이지
우리의 유익을 위해 그분을 이용하는 것이 결코 아니에요.
심지어, 우리가 천국가기 위해 그분을 믿는 것이 결코 아니랍니다.
천국의 복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 결코 아니랍니다.
그것이 기복신앙의 가장 고상한 형태랍니다.
그러나 올바른 신앙은 그분 자신을 천국으로 삼는 겁니다.
이렇듯, 우리 마음속에 가장 귀한 것이 하나님인지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인지 우리는 냉철하게 분별해보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보다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나 은사에 더 마음을 두고 있다면 우리는 분명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을 이용하려하고 있다고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을겁니다.
올바른 신앙은 그 마음에 있지요.
그 마음의 진실함이랍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실함이죠
술과 담배?
질문:
수련회에 갔을 때 서기부 샘께 궁금한 것을 물어보던 중, '그리스도인으로서 술과 담배
를 하는 사람들은 문제가 있지 않는가?' 에 대해서 여쭤보다가 선생님께서 술과 담배는
구원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로 그런가요? 제가 알고
있기론 술은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절제해야 해야 하는 것이지 꼭 금기시 하는 것은 아니라고도
하던데요, 이 세 가지 의견 중에 정답은 어떤 것이지요?
답변: 좋습니다.
이 문제는 예민한 문제이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만 하는 문젭니다.
다음과 같은 원칙을 기억하십시오.
(1)술은 구원문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2)구원은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의 하신 일의 유일성에 달려 있습니다.
(3)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술은 금기해야 할 것입니다. 그가 술을 마신다면 그가 과연 그리스도인인지 의심됩니다.
(4)술은 절대로 절제될 수 없습니다. 술 그 자체가 절제와 정 반대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술을 절제한다는 말 그 자체가 모순이죠. 어떻게 술을 마시면서 절제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술은 절대로 절제가 안 됩니다. 술의 성격상 절제를 못하게 만드는 것이 술이기 때문입니다.
(5)술은 성령의 소욕을 거스린다고 분명이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술취함과 방탕함은 결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절대로 술취하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얘기합니다만 술취한 사람은 다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술은 한 방울이 들어가더라도 취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술을 먹으면서 안취할 수 있다는 말 자체가 모순입니다.
(6)성경은 술취하지 말고 성령으로 취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음주는 성령을 거스리는 행위입니다.
(7)불신자들이 술을 마신다고 반대할 성격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인이라고 스스로 말하는 자가 술을 마신다면 그는 분명히 성령을 반대하며, 성령을 슬프게 하며 사는 것이 분명합니다.
(8)술을 마시는 자는 교회에서 직분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집사나 장로는 술을 마셔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일반 교인들 중에 술을 마신다고 해서 정죄할 필요는 없습니다. 계속 권면하여 성령으로 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직분자라고 하는 사람이 술을 마신다면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더럽히는 행위이기 때문에 분명히 책망하고 권고해야 하며 만약 이 문제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직분을 취소해야 합니다.
(9)잠언서를 보면 왕으로서 술을 가까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면 판단을 그르치기 때문입니다. 술은 사람으로 하여금 판단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절제해야 할 것이 아니라 금기해야 합니다.
(10)세상 사람들이 볼 때 그리스도인이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서 그들은 속으로 그리스도를 욕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금기해야 합니다.
(11)저는 술 마신다고 천국 못간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 말하는 사람이 술 마신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거나 성령을 슬프게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서슴지 않고 말합니다.
(12)덕이 되지 않는 것은 절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금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술을 가까이 하는 것은 결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해 덕이 되지 않습니다.
(13)술을 즐기는 사람이 그 양심의 가책을 벗어나기 위해 여러 가지로 변명하는 말에 속지 마십시오. 술을 즐기는 사람이 하나님을 즐기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14)만약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술을 마신다고 한다면 그는 분명히 하나님을 즐거워하지 않는 인생이라고 단정 짓습니다.
(15)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했습니다. 술을 마시는 그리스도인에게 물어보세요. "당신이 술을 마시는 것이 그리스도의 영광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예를 들어 밥을 먹는 것도 분명한 목적이 없다면, 밥을 먹고 그 힘을 가지고 자기 욕심대로 살고 죄를 살찌우며 산다면 밥을 먹는 것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술은 더욱 그렇지 않겠습니까? 술을 마시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하는 사람을 보았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그것이 밥을 먹는 것이든 무엇이든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만약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없다면 우리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16)선을 행할 줄 알되 행치 아니하면 그 자체가 되가 됩니다.
(17)술을 먹는 것에 낭비되는 돈과 시간에 대해서 우리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18)술을 마시는 것을 교회 안에서 부끄러워한다면 천상의 주님 앞에서 내가 술을 가까이 한 것을 크게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당당하게 술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이라면 예배드리면서 해보십시오. 예배드릴 때 술을 얼마나 부적절합니까? 우리의 모든 삶이 예배적으로 살아야 한다면 술을 마시는 것이 얼마나 예배적 삶에 부적절하며 치명적입니까?
(19)술을 마시는 사람은 제가 볼 때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단정합니다. 어떻게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말은 하면서 술을 마실 수 있단 말입니까?
(20)술을 마시는 데 들어가는 돈과 시간이 얼마나 낭비입니까? 세계에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분명히 죄입니다. 교회에 헌금 드리는 것은 쥐꼬리만큼도 안 되면서 술을 마시는 데는 수만원, 수십만원 아깝지 않게 펑펑 쓰는 것이 죄가 아닙니까?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인생결산을 할 때 어떤 책망을 받으려고 합니까?
(21)그러므로 세상을 본받지 말고, 세상풍속을 따르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무엇이 선한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십시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것이 얼마나 큰 죄가 되는 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22)세상사람들의 삶을 본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라고 우리르 부르셨지 세상과 동화되라고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23)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다니엘서 1장을 보세요. 음식문제 관련하여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자신의 원칙을 굳게 지켰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시험"해보라고 자신있게 환관장에게 말하지 않습니까? 왜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당당하지 못합니까? 왜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몰래 술을 마십니까? 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지 못합니까? 그 답은 그 양심이 주님 앞에서 증거할 것입니다.
성경통독의 방법?
저는 이번 수련회에서 주님의 말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주님의 말씀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나가려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답변:
할렐루야!!
성경을 읽으려고 결심했다니 듣던 중 반가운 소립니다.
성경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제가 중3때부터 성경을 읽는 일에 재미를 들이기 시작했는데 참 쉽지 않았습니다. 88기차를 타보았으면 알겠지만 올라갈 때는 천천히 힘들게 올라가지만 한번 내려오기 시작하면 쏜살같이 내려오죠? 처음에는 쉽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한번 몸에 배이면 너무 재미있고 쉬운 것이 성경읽기예요. 다음과 같은 원칙들을 한번 염두에 두고 도전해보시기를 바랍니다.
(1)성경개관을 먼저 공부하세요. 예를 들어 창세기를 읽기 전에 창세기에 대한 개요를 먼저 공부하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개론에 관한 책들을 한 권 정도 사서 성경을 보기 전에 개요를 먼저 살펴보고 읽고 하면 좋습니다.
(2)매일 규칙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내게 적당한 분량과 시간을 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습관이 되도록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경 읽는 것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도우심을 구하면서 읽는다면 아마 너무 쉽게 될 것입니다. 하루에 3장씩, 주일에는 5장씩 읽으면 일 년에 한 독을 하게 됩니다. 고등부의 성경읽기표대로 한다면 3년에 2독을 하게 되어 있지요. 하루 세끼씩 꼬박꼬박 규칙적으로 먹어야 건강을 유지하듯이 성경도 한꺼번에 왕창 읽으면 안 됩니다. 밥을 먹듯이 성경도 규칙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하루에 20page씩 읽었습니다. 그러면 일 년에 3독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분량을 정하고 어기지 않고 그 분량을 꾸준히 읽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3)성경을 펼치기 전에 반드시 "성령의 조명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당신의 말씀을 읽고자 합니다. 저를 가르쳐 주세요. 읽을 때 깨닫게 해주세요. 이 말씀이 저의 영혼에 생명과 능력과 축복이 되게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드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성경을 읽기 전에 꼭 이렇게 기도합니다. 저의 지성으로는 주의 말씀을 제대로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거든요. 혹시 시간이 된다면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는 등, 예배분위기 속에서 성경을 읽는 것이 매우 좋습니다.
(4)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성경을 펼치십시오. 기대하는 마음으로 보십시오. 숲을 보고 나무를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대충 빠르게 읽으십시오. 눈으로 대충 수십 번 훓어 보십시오. 읽으면서 전체 스토리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다음, 다시 천천히 읽으면서 정독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은 영문을 독해하는 데도 매우 중요합니다!!) 정독하면서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읽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단순한 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5)성경본문을 볼 때 먼저 관찰하십시오. 본문의 흐름을 구조적으로 살펴서 시각화하십시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본문에 던지면서 관찰해보세요.
1-반복되는 단어나 구, 표현들이 무엇인가? 반복되는 것에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2-대조되거나 대비되는 단어나 구, 표현들이 있는가?
3-저자가 특히 강조하려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4-발견한 것들은 표시하거나 따로 기록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성경 혹은 노트를
활용합니다. 필기구를 가지고 성경을 읽으십시오.
(6)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묵상하는 단계로 접어들게 됩니다. 묵상은 먼저 하나님에 대해서 그 다음 나 자신(인간됨)에 대해서 그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렇게 3단계의 순서대로 하십시오. 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점입니다. 성경을 읽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발견하기 위해서입니다.
1-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은 본문에서 어떤 분으로 나타나시는가? 하나님의 성품과 뜻?
하나님은 사람들과 사건들 배후에 어떤 일을 행하고 계시는가?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시는가? 왜 그런가?
2-사람에 대해서
나는 누군가? 어떤 사람인가?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나는 왜 은혜가 필요한가?
나는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세상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3-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본문과 예수님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본문과 관련하여 예수님은 어떤 사역(말씀)을 하셨는가?
예수님은 왜 오셔야 했는가?
(7)여기까지가 묵상한 내용입니다. 이렇게 묵상한 다음에는 "나는 오늘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스스로 물어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적용단계라고 합니다.
1-내가 감사하고 찬양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
2-자백하고 회개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
3-교정하고 실천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
(8)성경을 읽으면서 '발견하여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발견이 하나님에 대한 발견이죠. 그리고 발견한 것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반드시 메모해두십시오. 훗날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기억을 믿지 말고 기록을 믿으세요.
(9)발견하고 깨달은 것이 있다면 혼자서 간직하지 말고 다른 사람과 나누어 보세요. 그러면 확실하게 마음에 새겨질 뿐만 아니라 더 풍성하게 되며,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나누면 갑절로 풍성해집니다. 이것이 복의 근원으로 살아가는 삶이죠.
(10)위의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 성경을 규칙적으로 읽을 것(자신에게 맞는 분량을 스스로 정할 것), 둘째, 성경읽기 전에 반드시 기도할 것, 셋째,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찾을 것. 입니다.
성경을 얼마나 많이 읽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먼저 습관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밥을 먹는 것이 습관이 된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이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그래서 은혜가 필요합니다. 습관을 따라 규칙적으로 읽기 위해서는 첫째, 그렇게 하도록 도움을 간구하는 기도를 하여야 하며, 둘째, 내게 적당한 분량을 내가 스스로 정하는 것이며, 셋째, 매일 (가능하면 아침이면 더 좋음) 읽을 때 반드시 기도하십시오.
읽어가는 중에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먼저 그것을 가르쳐달라고 기도하세요.
그런 다음에도 잘 안되면 선생님이나 저에게 물어보세요.
묻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표시를 반드시 해 두세요.
그리고 깨달은 부분이 있으면 반드시 메모를 해 두세요.
그리고 가능하면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보세요.
부디, 주께서 질문한 형제에게 주의 말씀을 열어 그 맛을 보게 하시고,
주의 말씀이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는 것을 체험하도록 도우소서. 아멘.
세상의 유혹에 대한 고민?
질문:
저는 주님을 만나려고 기도하구 또 성경도 매일 읽으며 주님을 알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가운데 서도 주님의 자식이나
음란한 사이트에 자주 가구 또 대중가요를 많이 듣습니다.
아마 제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을 많은 이가 알면 저를 비난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이런 세상 적인 유혹에서 헤쳐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주님이 보시기에 정말루 쓰임 받을 수 있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답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음란 방탕했던 어거스틴도 하나님의 은혜로 크게 쓰임받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죄인도 하나님이 쓰시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용서받은 감격이 클수록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되는 법입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날 쓰실 수 없다고
절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의인을 위해 오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죄인을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이 된다면
이제는 주님께 나아갈 시간입니다. 더 이상 소돔과 고모라에 머물지 마시기 바랍니다.
음란한 소돔과 고모라가 어떻게 멸망했는지 보세요.
음란한 세상(바벨론)이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는지 보세요.
자, 이 음란한 세상 속에서 우리 자신을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나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저는 이것이 세상 속에서 승리하도록 주님이 예비해주신 무기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힘들어하는 이유는 무기를 사용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검을 휘두르는 법을 배우세요.
먼저, 성경을 규칙적으로 읽는 습관을 몸에 가지도록 하세요. 밥을 먹는 것만큼
익숙한 것이 되도록 하세요. 밥을 먹지 않으면 힘이 없는 것처럼 우리가 말씀을
먹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 속에서 싸울 힘이 없는 겁니다.
둘째, 성경암송카드를 작성하세요. 그리고 규칙적으로 암송하세요.
셋째, 자신에게 적용하세요. 이렇게 해보세요. 음란에 대해 경고하는 말씀들을
여러 구절 암송한 다음 그것들을 큰 소리로 외쳐보세요. 자신에게 말입니다.
넷째, 그 말씀들을 책상이나, 특히 컴퓨터 모니터 위에 보이기 좋은 곳에 써서 붙이세요.
다섯째, 컴퓨터를 켜기 전에 그 말씀들을 큰 소리로 암송하세요.
여섯째, 그 말씀을 가지고 자신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일곱째, 하나님께서 그 말씀으로 역사해주실 것은 믿으세요.
하나님 말씀으로 자신을 큰 소리로 책망해보세요. 그 말씀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두고 보세요. 아마 굉장히 놀랄 겁니다.
앞에서 이성교제로 고민하는 고2 지체에 비슷한 얘기를 했어요. 꼭 읽어보세요.
부디 말씀의 검을 휘두르세요.
결코 자기 노력이나 의지력으로 싸우려고 하지 마세요.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날 대신 하여 싸우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읽고 암송하고 묵상하고 자신에게 적용함으로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힘들다고 말하지 마세요.
휘두를 수 있는 무기가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이 예비해주신 것이 바로 옆에 있는데 왜 힘들다고 합니까?
진정 싸워 이기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이것을 꼭 기억하세요.
주의 말씀에 승리의 비결이 있습니다.
내가 싸워 이기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주의 말씀에 아무리 힘이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이기고야 말겠다고 강하게 결심하십시오.
그런 다음에 하나님이 주신 성령의 검을 휘두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손이 날 대신하여 싸워주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묵상합니까?
질문:
> 물어볼 것은 성경묵상 하는데 깊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하는데 무슨 이유에서 인지요. 그러면 어떻게 파고들어야 하는지요. 글구 묵상은 성경에 있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라 했는데 저는 하나님이 보이기도하구 보이지 않기두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변:
성경에 깊이 들어가지 말라고 누가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성경을 묵상할 때 깊이 들어가지 말라는 말은 없습니다.
오히려 깊이 들어갈수록 더 좋습니다.
아마도 그 말은 처음부터 너무 깊이 들어가려고 하지 말라는 뜻일겁니다.
저는 성경을 읽을 때 먼저 전체개관을 합니다. 그런 다음에 자세히 하나씩 하나씩
뜯어가는 마음으로 보려고 합니다. 먼저 망원경을 가지고 본 다음 현미경을 가지고
살펴보는 거지요.
저는 성경을 처음에 읽을 때 숲을 보고 나무를 보는 식으로 보라는 말이지
언제나 깊이 보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통독과 묵상에 관해서 제가 쓴 글을 찬찬히 한번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처음에 성경을 볼 때는 개관적으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불충분하지요. 그 다음으론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깊은 곳에서 생수를 퍼내야 합니다. 깊이 파야 광석을 캐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전체적으로 보고, 그 다음에는 부분적으로 세부적으로 깊이 보는 겁니다.
묵상은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꼭 기억하세요.
내 노력과 의지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어요.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께서 도와주셔야 가능한 겁니다.
지혜와 계시의 성령이 도와주시지 않으시면 우리 눈으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어요.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성경을 묵상하기 전에, 그리고 묵상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도와주심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발견하도록 도우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내 힘으로 묵상하려고 하지 마세요.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세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발견했으면 그것은 내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것임을 알고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세요.
주께서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아요...
질문:
> 안녕 하세요
> 요즘 부모님과의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 만나기만 하면 말다툼 있고여
> 글구 부모님 께선 교회에 관련된 일을 나갈때 마다 > 꾸짖으심니다.
> 저도 그래서 고민을 많이 합니다. 주님의 성전에 나가서 제가 하구 싶은 일을
> 할것인지 아니면 부모님의 말씀을 듣을 것 인지 고민이 됍니다.
> 어떻게 해야 됄까요?
> 글구 부모님과 충돌이 생길때 어떻게 대처 할까요?
> 부모님이 두 분다 크리스챤이신데요 어떻게 설득 하지요?
> 그리구 저에게 바라는 것이 열심히 공부 하는 것 인데
> 주님의 지식을 먼저 해야 할까요
> 아니면 부모님의 의견을 따라 세상적 지식에 대하여 해야 할까요?
답변:
중요한 질문이군요.
그리고 매우 어렵구요.
저도 그랬지만 학창시절 때 부모님과의 관계문제는 사실 쉽지 않습니다.
왜냐면 지금 가치관이 정립되어 홀로서기하는 과정에서 부모님의 가치관과 충돌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이런 경우는 [모 아니면 도]식으로 나가면 안 됩니다. 지혜를 배워야 하며 지혜를 간구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대처해나가는 법을 습득해나가는 것이 최선입니다. 저의 경험과 또 심방하면서 느낀 것, 책을 보면서, 혹은 상담을 통해서 느낀 것을 함께 나누고 싶군요.
(1)주 안에서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님의 권위는 하나님이 주신 권위입니다. 부모님께 기쁨으로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지혜입니다. 그것이 기분이 상하고 자존심 상하더라도 기쁘게 하십시오. 하나님께 하듯이 하십시오. 그것이 자신에게 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단, 그것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경우라면 예외입니다. 예를 들어 우상숭배하라는 등, 십계명을 어기는 경우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 부모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대개 보면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부모는 자식을 이기려고 하고 자식은 부모를 이기려고 하는 경우가 참 많지요. 부모님이 이기도록 해드리세요. 자식은 기쁘게 져드려야 합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땅에서 잘 되고 복을 받는 지름길이죠.
(2)내가 하고 싶은 것과 부모님이 하기를 원하시는 것과의 차이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다고 솔직히 말씀드리세요. 말씀드릴 때는 항상 겸손하게 공손하게 말씀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부모님이 어떻게 말씀하실 겁니다. 그럴 때 반발하려고 하지 말고 그 말씀을 잘 경청하세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모님을 설득하려고 하지 말고 부모님의 마음에 확신과 평강을 심어드리는 겁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해요.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세요. 내가 무엇을 하든지 나를 신뢰하시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답니다. 저는 학창시절 때 산기도나 철야기도를 갈 때 주일은 하루 종일 교회에서 봉사할 때 저의 부모님이 저를 믿으시도록 노력했습니다. 엉뚱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나머지 시간에는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했지요. 부모님께 신뢰를 심어드리세요. 그러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실 겁니다. 우선 말씀이라도 공손하게 부드럽게 자신을 믿으실 수 있도록 해드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생활로써 자신을 신뢰하실 수 있도록 보여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볼 때 평소 생활을 게으르게 하고 엉뚱한 일을 하는데 주일을 교회에서 잘 보내겠다고 하면 부모님이 믿고 인정해주시겠습니까? 6일 동안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진정으로 보여드렸기 때문에 주일에는 교회에서 마음껏 봉사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실 뿐 아니라 하루 정도는 그렇게 쉬어라고 오히려 말씀하실 수 있도록 해 보세요. 기억하세요. 주일을 기쁘게 지킬 수 있도록 6일간에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6일간 열심히 일한 사람이 7일째 안식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 아닙니까? 6일 동안 게을렀다면 7일째 안식할 자격도 없지요. 안식일은 일한 사람에게 축복이지요. 만약 6일 동안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드렸는데도 주일날 교회 나가지 말고 공부하라고 말씀하실까요? 저는 양심이 있는 부모님이라면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실 거라고 봅니다. 안식을 누리려면 먼저 일해야 합니다. 저는 학창시절 주일날에는 학교도 책상에도 안가고 온종일 교회에만 붙어있었어도 저를 책망하지 않으시도록 6일 동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렸다고 믿습니다. 실제로 저는 하고 싶은 교회봉사 실컷 할 수 있었답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게으르지 않고 최선을 다해 성실한 모습을 보여드리세요. 그런 다음 지혜롭게 자신의 원하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억지로 부모님을 이기려고 하지 마세요. 그것은 자신의 장래에 결코 좋지 않습니다.
(3)공부와 주님을 아는 지식과 전혀 다르지 않아요. 저는 학교 다닐 때 최선을 다해서 공부에 임했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공부와 성경 그리고 기도 외에는 딴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저는 하루에 한 시간씩 성경보고 기도하였지만 나머지 시간에는 놀고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공부할 때 이 공부를 통해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까 고민해보세요. 그러면 공부하는 것 역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알아가는 것은 반드시 성경책을 읽어야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만드신 자연만물 속에서도 우리는 주님이 어떤 분인지 생각할 수 있는 거에요. 저는 성경을 진지하게 읽는 학생이 공부에 게으르거나 교과서를 무시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생물학이나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대해서 더 깊이 공부할 수 있다고 봅니다. 국어나 영어를 통해서 우리는 언어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배우게 되지요. 성경지식과 세상지식을 서로 나누지 말고 같은 시각에서 보세요. 왜냐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잖아요? 하나님을 진정 사랑한다면 세상학문도 새로운 관점에서 대할 수 있을 겁니다. 공부가 예배가 되도록 하십시오. 저는 영어로 복음을 전하고 설교하고 싶어서 열심히 영어과목을 공부했습니다. 목적이 뚜렷한 공부를 하십시오. 저는 영어과목을 공부하면서 적어도 예배드렸다고 믿습니다. 단어를 외우고 숙어를 외우고 문제를 풀수록 저에겐 흥분과 기쁨이 가득 찼거든요. 세상공부와 성경공부를 나눌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을 읽는 것이 기본이지만 그러나 성경만 보면 우리가 어떻게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겠습니까? 성경만 보면 누가 법관이 되고 누가 변호사가 되고 누가 세상을 변화시키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에도 능통해야 하고 동시에 세상 어느 분야에도 전문가여야 합니다. 성경만 안다면 무능한 그리스도인이라 비웃음 받을 것입니다. 시간을 아끼고 잘 계획하여 보내십시오. 충분히 공부할 수도 있고 충분히 성경 볼 시간이 있습니다. 텔레비전 볼 것을 다 보고 놀 것은 다 놀고 나서 성경을 보겠다고 하니 부모님이 인정해주시겠습니까? 공부와 성경은 같이 가야 합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보고 학문을 하고, 학문을 하면서 성경을 배워야 합니다.
(4)부모님과 충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십계명을 어기는 경우가 아니라면 져드리세요.) 대게 충돌하게 되는 이유는 대화의 훈련을 받지 못해서 그래요. 공손하게 말씀드리는 법을 베우세요. 부모님께 확신을 심어드리는 대화법을 익히세요. 부모님보다 더 자제하면서 말씀드리세요. 부모님보다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드리세요. 여기서 대화의 원칙 한 가지를 말씀드릴게요. 승-승 원칙입니다. 부모님도 이기고 나도 이기는 거지요. 그런데 대부분 학생들은 내가 이기고 부모님이 지는 것을 원하는 것 같아요. 아닙니다. 부모님도 이기고 나도 이기는 길을 모색하세요. 그럴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모님과 대화하기 전에 먼저 기도해야합니다. 주님께 지혜를 구하세요. 그런 다음 생각하세요. 대화의 전략과 전술을 생각하세요. 어떻게 말씀드리면 부모님의 마음도 흡족하게 해드리고 내가 원하는 것도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말이지요. 그리고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세요. 내 감정과 생각을 소중히 여기듯 부모님의 감정과 생각을 소중히 여기세요. 부모님을 꺾으려고 하지 마세요. 결코...그리고 내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세요. 내가졌다고 생각하면 나중에 나 자신에 대해 환멸감을 느끼게 되고 더 안 좋게 됩니다. 부모님도 이기고, 나도 이겼다고 생각들 수 있도록 지혜를 짜내세요.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5)저는 어릴 적 진로문제를 두고 아버님과 많은 충돌을 겪었습니다. 저는 신학교에 가기 원했고, 아버님은 엄청 반대하셨지요. 저는 제 신념이 하나님이 주신 소명임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기다리면서 저의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처음에 무조건 반대하시던 아버지께서 차츰 차츰 저를 신뢰하시게 되셨습니다. 제가 더 열심히 공부했고 기도와 성경읽기도 더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달라진 내 생활, 거듭난 생활을 보여드리도록 노력한 겁니다. 부모님은 저의 생활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계셨지요. 저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생활로 제 신념을 보여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수년 후 부모님은 기쁜 마음으로 저를 축복해주셨습니다. 부모님도 이기고 저도 이겼습니다. 기억하세요. 승-승!! Win and Win입니다. 이기려고 하지 마시고 함께 이기는 길을 찾아보세요. 기도하면서 함께 이기는 길을 찾는다면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할렐루야.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부모님도 이기실수 있도록 해드리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읽어 드려보세요. 그러면 부모님이 나를 지지해주시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실 것입니다.
주일에 시험을 쳐야 한다면?
질문:
> 안녕하세요? 저는 세고 3학년 중 한명입니다.
> 다른 게 아니라 요즘이 한창 대학교 입학 시험시기 입니다.
> 하지만 제가 지원하고자 하는 대학은 주일 오전에 시험을 봅니다.
> 전 정말 고등부 예배를 빠지기 싫습니다. 하지만 대학도 중요합니다.
> 그렇다고 새벽예배 드리고 시험보기도 싫습니다.
>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변:
음...아주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 같으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1)대학에 가는 것이 주님을 위한 것이고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 먼저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비전에 부합되는지 말입니다.
(2)만약 그것이 맞다면 (그런 확신이 든다면) 저는 주일날 시험을 보는 것도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된다고 봅니다.
(3)주일예배의 목적이 예배에 참석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니까요.
(4)그러나 그런 핑계로 주일예배를 빼먹는 것은 주님께서 그 중심의 진실함을
아시리라 믿습니다. 만약 말로만 하고 행함이 따르지 않는다면 스스로 속는 거지요
(5)대학시험을 보는 것이 주님을 위한 것인지 분명히 할 수만 있다는 조건 하에서만
우리는 주일날 시험을 보는 것에서 자유할 수 있다고 봅니다.
(6)우리 양심을 위해서만 그렇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책임감 있게
대학생활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잘 계획하고 보내야 합니다.
(7)안식일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주일날 예배드리는 대상도 우리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8)그러나 대학시험 보는 것에서 목적과 이유를 분명히 발견할 수 없다면 차라리
주일날 예배드리십시오. 그것이 주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9)마지막으로, 만약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실 것 같습니까? 안식일의 주인 되신
예수님이 안식일에 안식하지 않으시고 많은 병자를 고치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10)다니엘과 세 친구가 한 일을 기억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세 친구가 하나님의 법을 지키면서 하나님은 보고 계셨습니다.
"질문한 지체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시고,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소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도록 진리의 성령이여 도우소서"
나를 싫어하는 친구에게는 어떻게?
질문:
저는 세고의 지체입니다. 근데 세고의 형제들 중 정말이지 저를 싫어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그 친구와 친해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죠? 그 친구에게 일부러 친한 척도 해보고 그냥 무시하기도 해보고... 정말이지 성경에 나온 대로 원수도 사랑해야지만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저 어쩌면 좋죠?
>
답변: 좋습니다.
나를 싫어하는 친구랑 친해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먼저 묻고 싶습니다.
왜 그 친구랑 친해지고 싶은가요? 그 친구랑 좋은 관계를 가지고 싶은 이유가 뭐지요?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네요.
(1)하나님과의 친분관계를 돈독하게 하십시오.
우리가 정말 친해지고 싶어 해야 할 친구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라고...
이게 무슨 말이냐구요?
저는 사람을 대할 때 균형 있게 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사람은 친하게 잘 대해주면서 어떤 사람은 그렇게 대해 주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답니다. 자기에게 잘 해주는 사람만 잘 해주고 잘 못하는 사람은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요. 반대로, 사람을 억지로 자기를 사랑하게 좋아하게 만드는 헛된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도 많지요. 그건 사라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하려는 것이지요. 그런데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사귀는 기쁨을 안다면 다른 모든 사람도 균형 있게 사귈 수 있다고 봅니다. 친구와의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요지입니다.
(2)억지로 그 친구로 하여금 나를 좋아하게 만들려고 하지 마세요.
그 친구랑 사귀고 싶어 하는 욕구가 어디에서 부터 나오는지 살펴보세요. 그것이 나의 욕심 때문이 아니라면 그 친구가 자신을 싫어해도 그 친구를 변함없는 태도로 대해주기만 하면 됩니다. 사랑은 받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주는 것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죠. 진정 그 친구랑 잘 사귀고 싶다면 그 친구 앞에서 억지로 잘 하려고 노력하는 시도를 중단해야 합니다.
(3)하나님께 기도하세요.
그 친구에게 접근할 수 있는 좋은 길을 열어달라고 기도하기 바랍니다. 로마서 1장을 보면 바울사도가 로마교회를 위해 이런 기도를 한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친구를 보내달라고 기도하세요. 꼭 그 친구가 내 절친한 친구가 반드시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안 주시면 안 받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가 아닙니까? 그래서 부디 기도응답에 의한 친구를 사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요나단을 친구로 주셨듯이 말이죠.
우리의 참 친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아멘.
친구를 미워하게 되었을 때?
질문:
> 안냐세여..제가 요즘 친구를 미워하게 됐어요.
> 음...그 친굴 오랫동안 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져, 그 친구랑 정말 가깝다고 느꼈는데요...
> 다른 사람들한테 그 친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식적이고 배타적이고 이기주의적인 그 친구의 뒷모습을 말이져...믿기 싫었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그 친구의 모습을 알고 있고, 언제가 봐왔기 때문에 확실하게 그럴 아이가 아니라는 말을 하지 못했어요. 사람들이 느끼는 그 친구의 모습을 조금은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 가식적인 웃음과 눈물...그 친구의 그런 모습이 조금씩 눈에 띄기 시작해서 마음이 언짢아요.제가 이런 말 할 입장은 아니지만, 모든 것, 그 친구의 믿음까지 의심이 가네요...
답변:
사람을 사랑했다가 실망하게 되는 이유는 그 사람을 올바른 태도로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런 사랑으로 사람을 사랑하도록 하십시오. 주님은 당신이 사랑하셨던 제자들이 자기를 배반하고 부인하고 도망가는 것을 아셨지만 낙심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 새롭게 만나서 새롭게 시작할 것을 생각하셨습니다. 사람을 믿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 친구를 향해 실망하게 되고 그 친구를 미워하게 되었다면 잘 된 겁니다. 이제부터 사람의 본성에 대해서 하나하나씩 깨달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세요. 나는 혹시 다른 사람에게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나는 과연 얼마나 진실했는가? 나는 과연 얼마나 신실한 믿음을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단 말인가? 저는 제가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혹, 친구들)이 저를 낙심하게 만들고 실망하게 만들고 분노하게 만들고 미워하게 만든다면 반드시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발견하게 됩니다. 제 안에 더 큰 들보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리고 나서 다시 그 사람을 보게 되면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바라보면 주의 은혜가 절대로 필요한 죄인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제 자신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너는 그 친구를 미워할 자격이 있니?" "너는 그 친구에 대해 실망할 자격이 있니?" "너는 그 친구를 진정으로 사랑했니?" "너의 예수님을 생각해봐라. 그분은 네가 마음에 안 들고 네가 그분을 늘 실망시켜드리고 할 때조차도 너를 변함없이 사랑하셨다" "너는 너에게 실망시키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하나님도 너를 그렇게 하실 것이다" "먼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느냐?" "주여 저에게 사람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시오." "심지어 저를 실망시키고 분노하게 만드는 사람조차도 긍휼히 여기며 사랑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십시오." "그 친구가 너를 미워하게 만들었다면 나도 남에게 나를 미워하도록 만든 적이 얼마나 많이 있었겠는가?" "나는 그 친구보다 더 나은가?" "그 친구가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다면 나보다 더욱 의로우신 주님이 불꽃같으신 눈으로 나를 보실 때 얼마나 나를 바라보고 화를 내셨을까?"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사람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길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경우에 제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회개하는 기회로 삼아야 그 친구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됨을 압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미워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투기하지 않습니다." 묵상할 말씀으로 고린도전서 13장, 마태복음 7장을 묵상해보기 바랍니다. 주님의 은혜가 질문한 지체에게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안락사에 대한 기독교의 관점?
질문:
> 안락사에 대한 기독교계의 관점이 궁금합니다.
> 머 개인적으로도 알고 싶고요
> 학교숙제 때문이라도 알아야 합니다-_-;;
> 그래서 안락사에 대한 기독교계의 관점을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 부탁드립니다.
답변:
상당히 민감한 질문입니다.
음...저는 안락사에 대해서 자세히 연구하지는 않았지만 성경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제가 아는 대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생명에 관하여 성경은 세 가지 진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모든 생명은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작품이지요.
(2)모든 생명을 거두어 가심도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지요.
(3)모든 생명을 유지하고 지탱하게 함도 하나님이 하십니다.
이러한 진리를 가지고 안락사를 한번 살펴볼까요?
자, 안락사란 무엇입니까? 가망이 전혀 없다고 판단되는 환자를 더 이상 고통을 겪지 못하게끔 고통을 겪지 않는 방식으로 죽이는 것이지요. 이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다시 살아날 기회가 만분의 일이라도 있는 것을 사람이 임의대로 박탈할 수 없습니다. 과연 사람이 '가망이 전혀 없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2)생명을 거두어 가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부인합니다.
생명을 주심도, 거두어 가심도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결정하십니다. 그것을 사람이 결정하려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월권행위입니다.
(3)생명을 유지하고 지탱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생명이 유지되고 있다면 그것도 역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움이 안된다고 생명을 임의적인 수단으로 단절시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도전입니다.
안락사에 대한 기독교의 관점은 철저히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모든 생명체에 대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것입니다. 그분은 모든 생명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생명의 창조자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생명을 주심과 거두어 가심의 주권자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생명의 유지자이십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태복음 10장 28,29절 말씀)
물론 이 문제에 관해서 논의해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1)생명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사고는 중단되었고 심장만 움직이고 있다면 죽었다고 할 것인가 살았다고 할 것인가?하는 문제죠. 제 생각에는 움직이는 것 자체가 생명이라고 봅니다. 뇌는 중단되었고 심장ㅁ나 움직이고 있다면 그것 역시 생명이라고 봅니다.
(2)죽음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이 문제가 앞의 문제와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3)생명은 언제부터 시작되는 것인가?
정자와 난자가 결합된 순간부터 생명이 시작되는 것인가? 아니면 정자와 난자가 결합되기 이전부터 생명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정자와 난자가 결합된 이후 어느 시점에서 생명이 시작되는것인가? 이 문제는 매우 복잡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고의낙태(abortion)는 중대한 살인행위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절행위는 제6계명을 분명히 범하는 죄가 됩니다. 살인하는 것은 그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안락사 역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피조물의 존엄성에 대한 도전이자 그를 지고한 존재로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라고 봅니다.
모든 생명을 창조하셨고 섭리하시고 지탱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호흡할 수 있는 힘을 주신 분께 찬송과 영광을!!!
UFO는 있습니까?
질문:
> 요즘 호기심천국을 보면 외계인에 대한 것들이 나오는데요..
> 그러니까..뭐라고 해야할지..
> 외계인의 기독교적 관점에 대해 알구 싶습니다..
> 외계인은 과연 있는 걸까요..
> 이런 질문을 올려서 죄송하지만..
> 전 꼭 알구 싶습니다..
답변:
UFO는 unidentified foreign object(미확인 비행물체)의 이니셜을 딴 단업니다.
UFO에 대한 묘사가 많은 대중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의 실체를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UFO는 (1)천사의 모습 (2)사단의 모습 (3)실제 비행체 (4)자연현상에 의한 착시현상,
위에 네 가지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성경에도 그룹의 형상과 모양을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현상들을 우리가 안다고 달라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한 현상들은 우리의 눈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떼어놓으려는 사단의 계략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명감, 삶의 목적들에 집중하지 못하게 관심사를 흐트려놓으려는 사단의 교묘한 술책입니다.
외계인인 존재할까요?
외계인은 없습니다.
외계인의 존재를 운운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과 그 존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있습니다.
어둠의 영과 정사와 권세와 세상 주관자인 악한 영들은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고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우리를 미혹하게 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미혹하게 하는 영들에게 끌려가지 말기를...
오직 창조주 하나님과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충성하시기를...
차례나 제사 문제?
질문:
> 저희 집엔 저밖에 교회에 다니지 않습니다.
> 그래서 제사 때나 차례를 지낼 때 전 매우 곤란합니다...
> 어떻게 해야 하죠?
답변: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애굽기 20:1-6절 말씀)
(2)"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 아니냐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고린도전서10:14-21절 말씀)
천사와 악마의 모습?
답변:
우리가 상상하는 악마나 천사의 모습은 상당히 왜곡된 부분이 많습니다.
잘못된 이미지들은 대게 중세시대 카톨릭 교회에서 만들어낸 것입니다.
카톨릭 교회는 그러한 그림들을 많이 그려내어서 교인들로 하여금
인위적인 신앙심을 유발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그림들은 우리로 하여금 잘못된 이미지를 가지게 만들 때가 많죠.
예를 들어, 하나님보다 악마의 존재를 더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나
하나님의 말씀보다 천사의 활동을 연구하고 집중하는 것은 분명한 오륩니다.
이러한 잘못된 이미지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많이, 그리고 정독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그려주는 대로 마음에 이미지들을 담아가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예를 들어, 천사들의 이미지는 성경에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지요.
그리고 천사들의 활동에 강조점을 두지 않고 그들은 단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도구로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히브리서1: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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