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MP 이야기

선교사가 생각하는 좋은 선교의 모습 20가지

등불지기 2012. 3. 15. 03:41

 

 

선교사가 생각하는 좋은 선교의 모습 20가지

 

어떤 선교가 '좋은 선교'일까요?

이 말은 '나쁜 선교'가 있다는 것인가요? 불행하게도 '나쁜 선교'가 있습니다.

있으나 마나한 선교가 있습니다. 차라리 없는 것이 더 나은 그런 선교가 있습니다.

교회도 물론 그렇지요. 있으나 마나한 교회가 있고, 없는 것이 차라리 더 나은 그런 교회가 있듯이 선교도 그렇습니다.

많은 물질로 후원하는 한국교회 입장에서 "야, 굉장한 선교다!"라고 생각되는 선교가

실제 선교현장에서 바라볼 때는 말하기 부끄러운 '나쁜 선교'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기독교 방송을 타면서 소개되는데 현지에 있는 선교사로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는 그런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문제는 그럴 때 "이건 아니다!"라고 한국교회에다 이야기할 데가 없다는 것이고,

누워서 침 뱉는 격인 것 같아 그냥 꾹 눌러 참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역을 함부로 '좋다 나쁘다'라고 평가하는 것이 매우 위험한 줄 압니다.

하지만 최소한 '좋은 선교'에 대한 성경적인 기준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는 교회에서는 '나쁜 선교'가 되지 않는 기준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선교에 대해서 한국교회가 갖는 생각이 있겠지만

현장에서 사역하는 제가 생각하는 기준은 약간 다릅니다.

현지에서 살아보지 못하고, 사진으로만 판단하는 경우에 잘못된 인식을 갖기 쉽지요.

우선 여러 '시선'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자 합니다.

한국교회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있겠지요. 기도하고 물질로 후원하는 한국교회 입장에서 기대하는 선교의 그림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러한 그림이 선교현장에서는 굉장히 '나쁜 그림'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선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1. 후원자들의 눈

2. 선교사의 눈

3. 단기선교여행자의 눈

4. 현지 교민의 눈

5. 현지 지도자들의 눈

6. 매스컴의 눈

7. 하나님의 눈

이 있습니다.

제일 좋은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교회, 좋은 선교가 정말 좋은 것입니다.

선교사가 자평하기를 '정말 잘 했다'라고 생각하고 자랑하여도 주님이 보시기에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또 후원자들이 보기에 굉장하다고 생각되는 그런 선교가 현지인들의 눈에 비치기에는 굉장히 불편하고 화가 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 방송 등 매스컴에 비친 것과 현지에서 비친 모습이 사뭇 다를 수 있음을 또한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저는 열흘 혹은 한 달 정도 단기로 와서 머물며 가는 단기팀을 생각해봅니다.

단기팀이 와서 전도지를 많이 뿌리고 성경도 뿌리고 고국으로 돌아가서는 "큰 일을 해냈다"라고 자평하고 축하를 받을 지 모르지만

만일 단기팀이 돌아간 자리에 남아 있는 선교사가 계속 사역을 하는데 불편하다면 그래서 마음이 어렵다면 그래서 계속 단기팀을 부르기 곤란함을 느낀다면 그런 단기팀이 성공적인 사역을 했다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아프리카에는 잘 적용되지 않습니다만 이슬람 국가나 특히 중국의 경우 해당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단기팀을 데리고 중국 위구르 지역을 다녀온 적 있습니다.

단지 여행을 했을 뿐이고 그곳에 있는 가정교회를 방문하여 함께 예배드렸을 뿐입니다.

그런데 귀국하고 들리는 소식은 공안들에 의해 교회가 풍지박산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이나 이슬람 국가에서 기독교인들이 퍼레이드를 펼치면서 소위 땅밟기 기도를 하며 영적 전쟁을 한다고 할 때는 정말이지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입니다.

며칠 동안 멋지게 행진을 펼치며 손을 뻗어 기도를 했을지 모르지만 그곳에서 오래 살면서 장기적인 선교전략을 가지고 있는 장기선교사들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편하고 마음 어렵게 하는 일입니다.

제가 있는 아프리카를 예로 들어볼까요?

아프리카에는 아직도 복음이 들어가지 못한 미전도 종족이 소수 남아 있습니다만 대부분은 복음이 들어갔습니다.

제가 나미비아와 앙골라 국경 사이에 있는 큰 미전도 종족을 찾아가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종족 안에서도 교회가 있었고, 그들은 스스로 전도하고 있었고, 그 종족 출신의 목회자들을 또한 직접 만나보기도 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은 4천만명이 넘는 흑인들이 사는데, 흑인 타운에 가면 양철로 지은 양철교회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골에 들어가서 벽돌로 예배당을 근사하게 지어주면 한국교회 입장에서는 참 좋은 선교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또 선교사가 직접 그 교회에서 매주 설교를 하고 목회를 한다면 더 멋진 선교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이 현지 지도자들, 그 지역에 있는 교회 지도자들의 눈에는 가시처럼 비쳐질 수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대외적으로는 큰 일을 하는 선교사라고 소문이 났는데 실제로 옆에서 지켜보면 실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것은 제 자신에게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저와 제가 하는 사역에 대해서 한국교회에서 너무 지나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기도 하고 또 너무 과장하고 부풀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분은 오히려 한국교회가 자신을 그렇게 지나치게 생각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런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자신이 한 일도 아닌데 자신이 해 낸 것처럼 자랑합니다. 이것은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있으나 마나한 선교사요, 차라리 없는 것이 나은 선교사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선교' '나쁜 선교'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은 한국교회가 서 있ㅇ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 물량주의 선교는 나쁜 선교입니다.

물량주의 선교의 대표적인 경우가 현지에 돈을 많이 뿌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주변에 다들 양철로 예배당을 짓고 목회하는데 한 사람에게 수 천 수 억의 경비를 지원하여 큰 건물을 지어준다면 그 지역의 목회자들이 그를 분명 시기하고 질투할 것입니다. 물량주의 선교는 가장 쉬운선교이면서 가장 위험한 선교입니다.

 

2. 좋은 선교는 좋은 선교 정책입니다.

초창기 한국교회가 복음을 잘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선교사들의 선교정책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각 교단들은 한국에 선교사를 보낼 때 서로 충돌되는 일 없이 협력을 했지요. 또한 자립, 자전, 자치라는 아주 훌륭한 선교정책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한국민이 스스로 일어서고, 스스로 다스리고 스스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3. 선교사가 직접 목회하는 경우는 주의해야 합니다.

이슬람 국가라든지 혹은 예배가 없는 대농장의 경우, 마을에 교회가 하나도 없고 믿는 자들이 없는 경우라면 선교사가 교회를 세우고 목회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경우도 선교사가 오래 있기보다 가능한 빨리--사도바울의 모범에 따르면 그 경우 3년을 넘지 않는것이 바람직합니다--현지인을 목회자로 키워서 맡기고 빠져나와야 합니다. 현지인만큼 현지인들의 마음을 만지고 효과적으로 목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서부 북부 아프리카, 그리고 몇개의 특수한 지역을 제외하고 남부 아프리카와 동부 아프리카에는 선교의 역사가 한국교회 역사보다 배는 더 있습니다. 이미 복음이 들어갔으나 자립, 자치, 자전이 이루어지지 않는 지역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 선교사가 목회를 하는 것은 '나쁜 선교'가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런 지역은 선교사가 신학교를 세우고, 현지인들을 제자훈련하여 하루 빨리 영적 지도자로 키워서 그들이 스스로 목회를 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4. 건물을 짓는 선교는 좋은 선교가 아닙니다.

건물을 짓는 선교는 가능한 지양해야 합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선교사는 건물을 지으라고 보냄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세우라고 보냄을 받은 사람입니다. 선교사가 한국교회에 선교보고를 하기를 몇개의 예배당을 지었다고 할 때 같은 선교사로서 매우 주의깊게 살펴봅니다. 제가 가르치는 흑인 목회자들에게 "내가 건물을 짓겠다"라고 말하면 저는 수 백 명의 '헌신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길을 가로막는 중대한 실수입니다. 하나님께 의존해야 할 그들을 사람을 의존하게 만들어버리니 이것은 나쁜 선교입니다. 저는 몇 개의 예배당을 지었다고 자랑하는 분들을 보면 하나도 부럽지가 않습니다. 어떤 분은 한 마을에서만 열 개의 예배당을 지었다고 한국에 보고합니다. 그러나 실제 그 마을의 교회지도자들로부터는 존경을 받지 못합니다. 왜냐면 누구는 양철로 지어주고, 누구는 벽돌로 지어주고, 누구는 벽돌로 더 크게 지어주고 해서 서로 비교하고 서로 시기합니다. 그모든 불만과 불평은 지어준 선교사에게 고스란히 돌아갑니다. 참 아이러니하지요? 건물 지어주고, 자동차도 주고 했는데 그 마을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하고 초청도 받지 못하다니요! 그러나 아쉽게도 건물 짓는 것을 좋아하는 선교사들이 아프리카에 많습니다. 한국교회가 아프리카에 선교사를 보낸 것이 이제 갓 20년을 넘었을 뿐인데 말입니다. 선교사가 건물 짓는 사역을 중요한 사역으로 생각하는 이유가 한국교회가 건물 짓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큰 건물을 교회성장,좋은 교회,목회성공의 기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한국교회에서 자라고 파송받은 선교사 역시 건축 사역을 중요한 선교사역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건축사역은 현지에서 더이상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5. 지역을 살리는 선교는 좋은 선교이고, 지역을 파괴하는 선교는 나쁜 선교입니다.

좋은 선교는 그 지역 전체를 살리는 선교입니다. 나쁜 선교는 한 개인과만 손을 잡고 사역함으로써 손을 잡지 않은 다른 사람들이 시기하고 질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결국 지역에 있는 지도자들이 서로 연합하는 것은 좋은 선교이지만, 그 지역의 지도자들이 서로 시기하고 분쟁하고 경쟁하게 하는 선교라면 나쁜 선교입니다. 선교는 한 개인이나 한 교회하고 손을 잡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을 살리기 위해 그 지역에 있는 모든 지도자들을 살려야 하고 그들이 서로 연합하게 해야 합니다.

 

6. 교회 지도자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좋은 선교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이 나라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달리 백인정부가 흑인을 차별하여 나라를 다스린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독특한 시기를 거치면서(백인들은 전체 인구의 6%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대부분 영국계 백인이 아니라 아프리칸스를 쓰는 화란계 백인의 후손들입니다.) 다수의 흑인들은 교육의 혜택을 전혀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현지인들은 백인들로부터 성경을 전달받고 복음도 들었지만 제자훈련이나 깊은 신학적 훈련, 지도자 훈련 같은 것은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흑인들은 배우기를 갈망하고 있고 더 나은 영적 지도자가 되기 위해 훈련받기를 갈망합니다. 이것이 현지인 지도자들의 영적 필요입니다. 물론 그들은 빵도 원하고 벽돌도 원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진정한 필요, 영적인 필요는 배우고 훈련받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건 그 나라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이끌 현지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영적 필요가 무엇인지 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의 영적 필요를 채워주지 못하고 변죽만 올리고, 비용만 낭비하는 선교는 좋은 선교라고 할 수 없습니다.

 

7. 의존성을 낮추는 선교가 좋은 선교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선교는 현지인들의 의존성을 낮추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어떤 선교사는 현지인들이 자신을 의존하게 만들어버리고 그것을 '좋은 선교'인 양 자랑하고 또 그렇게 보고를 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돕는 것, 사람을 의지하지 않도록 하는 것, 사람을 의지하지 않게 만들고 사람을 바라보지 않게 만들고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의 집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서 풀을 깎는 일을 하게 해달라고 하는 흑인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한 두 번 일을 시켜본 적이 있습니다만 지금은 집 안 일을 저 혼자 합니다. 그들에게 일을 시키면 돈을 주는 한 열심히 일합니다. 그리고 돈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 음식도 요구하고 심지어 신발로 사달라고 합니다. 불행하게도 목회자들도 그렇습니다. 신학교 훈련을 받지 않고 목회활동하는 흑인 목회자들이 대다수(95%)입니다. 훈련이 없이 목회를 해서인지, 아니면 흑인들의 역사가 그래서인지, 틈만 나면 선교사에게 찾아와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늘 자신들의 필요를 이야기합니다. 강의 중간에 쉬거나 혹은 강의가 끝나면 저에게 찾아와서 배가 고프다, 아이들 학비가 없다,자동차가 필요하다, 등등 여러가지 필요를 이야기합니다. 같이 기도하자고만 이야기하고 도와줄 마음은 꾹 참습니다. 좀 잔인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내가 도와주면 나를 의지해버립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한국인의 경우 자존심이 있어서 문제가 생기고 필요가 생기면 하나님께 금식하며 매달리며 해결합니다. 사람에게 자신의 필요를 이야기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반면 흑인들은 사람에게 자신들의 필요를 이야기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일단 사람들이 선교사를 의존해버리면 그들 마음에 하나님이 개입할 여지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의존성을 높여버리면, 사람을 의지하게 만들어버리면 그것은 '나쁜 선교'입니다.

 

8. 현지인들이 스스로 선교하게 해야 합니다.

흑인들에게 제일 큰 도전 중에 하나가 '선교하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들은 재정적인 어려움에 마음이 묶여 있습니다. 선교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돈이 많이 듭니다만 적어도 돈이 있어야 선교한다는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문제입니다. 제가 중국교회를 좀 압니다. 열심히 중국어 회화도 공부하고 중국에도 몇 번 전도여행을 해보았고 중국교회 지도자들도 만나 교제해보았습니다. 제 아는 분 중에 중국선교에 헌신한 분도 많고 정기적으로 중국에 드나들며 복음을 전하는 친구분들도 있습니다. 중국은 최대 기독교 국가입니다. 어느 통계에 의하면 기독교인들이 1억이 넘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선교를 하고 싶어하고 선교를 해야 하는 당위성도 이해하고 있지만 선뜻 선교에 나서기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중국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때문이기도 합니다. 지배민족인 한족이 55개의 소수민족에게 다가가서 복음을 전하지 못합니다. 왜냐면 한족은 지배민족이고 다른 소수민족은 피지배민족입니다. 이미 동화된 소수민족의 경우는 예외이겠지만 한족이 장족이나 위구르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일본인이 한국인에게 접근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선교란 현지인들이 그들 스스로의 언어 문화 정치 이념의 경계를 넘어 그들을 경계하는 다른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도전하고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입니다. 한국이 복음을 빨리 받아들이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여 있는 물리적 장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경을 넘어가는 일에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다른 민족을 지배하고 식민지로 삼고 그 위에 군림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선교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것입니다.

 

9. 돈을 주는 선교는 나쁜 선교입니다.

저는 가르치는 현지인들에게 책은 주어도 절대로 현찰을 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어떤 선교사님은 예배당을 건축하라고 모금한 돈 수 천 만원을 신뢰하고 믿었던 흑인에게 주었는데 그 흑인은 돈을 받자마자 이제부터 목사노릇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돈만 갖고 도망갔습니다. 흑인들에게 신학과 성경을 가르치면서 가장 중요한 과목은 그들에게 재정원칙을 가르치고 훈련하는 것입니다. 헌금, 구제, 봉사, 선교, 등 돈 문제에 관련한 가르침보다 더 강력한 가르침은 없습니다. 돈을 주면 그때는 좋으나 금방 사람을 잃어버립니다. 이것이 아프리카 선교의 문제입니다. 돈을 준다고 하면 사람들이 줄을 섭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나쁜 선교가 되어버립니다. 아프리카 선교에서 금기와도 같은 것은 돈을 주는 것입니다.

 

10. 자립 자전 자치를 위해 배움과 훈련을 주어야 좋은 선교입니다.

그들 스스로 일어서게 하고, 그들 스스로 헌금하게 하고, 그들 스스로 선교하게 하고, 그들 스스로 다스리게 해야 합니다. 선교사가 대신 일으켜주고, 선교사가 대신 목회를 하고, 선교사가 대신 다스리고 이끌면 나쁜 선교입니다. 대신 그들이 스스로 일어서고 전도하고 다스릴 수 있도록 지식을 주고, 배움의 기회를 주고, 훈련의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한국 초대교회 때 선교사가 직접 목회하는 일을 하기보다는 병원을 짓고 학교를 짓고 신학교를 짓고 말씀을 가르치고 강의를 하고 훈련받을 기회를 주었던 것처럼 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받은 대로 주면 되는데 이상하게도 많은 선교사들이 한국교회의 역사를, 100년 채 지난 교회사를 잊어버린 것처럼 보입니다. 건물을 지어주고, 현지인에게 돈을 주어 부교역자로 부리고, 그 건물에서 설교하고 다스리고 목회를 해 주는 것을 좋은 선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국교회가 무엇을 주고 있는지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11. 단기팀 사역은 장기선교사의 권위 아래 있어야만 좋은 선교가 될 수 있습니다.

장기선교사의 권위가 단기팀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장기선교사가 허락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믿음과 기도로 막무가내로 해내는 것은 질서에도 위배되고 모양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습니다. 실크로드 땅밟기 전도여행이라든지, 예루살렘대행진이라든지, 무슬림 사원을 향한 땅밟기 전도같은 예들은 장기선교사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물량선교의 경우 이런 우를 많이 범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요..마다가스카르라는 큰 섬나라가 옆에 있습니다. 케이프타운에 사시는 어떤 선교사님이 비행기를 타고 마다가스카르로 가서 어느 예배당에서 사람을 불러모았습니다. 그 모임에 그 선교사님이 미국한인교회 목사님과 집사님들을 초청하여 사역하게 했습니다. 많은 예산이 들어갔습니다. 마다가스카르에 큰 집회가 열렸다고 한국에 보고하기에는 좋습니다만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장기선교사들의 마음은 심히 불편하고 화가 나있습니다. 많은 예산을 가지고 잠시 치고 빠지기 식의 단기팀 사역의 경우 절대적으로 장기선교사의 허락과 지도와 권위 아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질서를 어기게 되면 이것은 전형적인 나쁜 선교가 됩니다. 제가 강의를 위해 여러 지역을 다니지만 처음 들어가는 나라나 지역이 있다면 먼저 그곳에서 장기사역하는 선교사님이 있는지 항상 살펴봅니다. 그리고 그분의 지도와 권위 아래 움직여야 합니다.

 

12. 비전트립(선교여행)은 좋은 선교가 되기 어렵습니다.

선교여행은 말 그대로 여행입니다. 그 땅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두루 다니며 경험하는 것입니다. 선교여행을 단기선교라고 할수 없습니다. 단기선교는 최소한 6개월 이상 머물며 현지언어를 배우고 현지언어를 사용하면서 현지인들과 장기적으로 접촉을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단기팀이 며칠 혹은 고작 몇 주 있으면서 좋은 영향력을 주는 선교사역을 하려면 장기선교사와 단기선교사의 안내와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비전트립팀이 선교사역을 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우 나쁜 선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13. 사람을 세우고 위임하는 것은 좋은 선교입니다.

저는 선교를 위임의 기술이라고 정의합니다. 선교란 위임하는 것입니다. 많은 선교사들이 지도자를 세우려고 하지만 위임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세우고 돈을 주고 부교역자처럼 부리는 것은 아주 나쁜 선교입니다. 사람을 가르치고 훈련하여 지도자로 세웠다면 맡기도 떠나야 합니다. 간섭하지 말아야 합니다. 현지인 지도자들을 세우고 떠나되 정기적으로 만나서 격려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부교역자로 부리는 선교사는 한국교회에 보고하기는 쉬울 것이지만 선교사가 보기에 좋은 선교사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떠날 때는 항상 사람을 세우고 떠났습니다. 떠난 후에는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지속적으로 중보기도해주고, 때로는 디모데와 같은 목회자를 파견하여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바울이 보여준 모범은 위임의 기술을 잘 보여줍니다. 좋은 선교는 위임, 혹은 위탁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14. 현지인들 스스로 자신들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좋은 선교입니다.

아프리카 선교는 한국교회 역사보다 훨씬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지요. 그러나 서구선교신학계에서 아프리카를 복음화되었다고 자평하는 분위기가 있는데요..사실 백인선교학회에서 아프리카선교를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 백인들은 아프리카 선교에 나름 성공했다고 자평할런지 모르겠지만 흑인 현지인 지도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백인들은 지식은 있으나 열정은 없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백인들은 아프리카에 와서 성경을 갖다주고 대신 보물(황금, 다이아몬드, 등)을 가져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백인선교사들이 흑인 지역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한 일도 있었고, 특이하게도 선교공동체도 시작한 일도 제법 있었지만 흑인들이 가진 잠재력을 일깨우고 흑인들이 자신들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활용하도록 도와주었느냐는 점에서는 실패했다고 봅니다. 백인 선교사들은 흑인들에게 성경을 전하고 복음을 전했을런지 모르나 흑인들의 세계관을 바꾸고 흑인들을 지도자로 키워내는데 어떤 열매를 맺었습니까? 아프리카 선교는 백인들의 선교역사에 있어서 식민지배와 함께 큰 오점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흑인들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이용하는 것과 그것을 일깨우는 것은 별개인 것입니다.

 

15. 지도자를 세우는 것은 좋은 선교입니다.

어떤 선교사님은 현지인들에게 목회를 하게 하면서 월급을 지급합니다. 선교사가 현지인들에게 주는 월급은 원화로 약 15만원에서 20만원 정도, 많으면 30만원 정도됩니다. 교회에 보고하기에는 자신이 세운 지도자라고 말하겠지만 선교지에서 볼 때는 지도자가 아니라 또 하나의 종일 뿐입니다. 서구교회와 백인 교회는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의존성을 높여왔던 것입니다. 백인들은 흑인들을 위해 건물도 지어주고 도로로 깔아주면서 정작 그들을 종으로 부린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복을 받은 것은 초기 선교사들이 지도자를 세우는 것에 대한 바른 비전과 마인드를 가지고 사역을 했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선교든, 중동선교든, 중국선교든, 선교의 핵심은 최대한 빨리 지도자를 세우고 위임하는 것입니다. 리더십을 높이고, 지도력을 배가시키고, 지도자를 일으키고 세워가는 것, 그들이 리더십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 좋은 선교입니다.

여기서 교회 지도자가 매우 중요하지만 전부가 아닙니다. 가정을 세우는 것도 중요한 선교사역입니다.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부분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고 영향력을 끼칠 지도자들을 일으키는 것도 중요한 사역이니다. 교회가 그 일을 하게 해야 합니다. 교회 지도자가 가정의 지도력(부모의 지도력)과 세상의 지도력(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대해 책임지는 마음으로 사역하게 해야 합니다.

 

16. 세계관을 바꾸는 것이 궁극적으로 좋은 선교입니다.

선교는 결국 사고방식을 바꾸고 세계관을 바꾸는 사역입니다. 흑인들의 세계관은 애니미즘적이고 현실지향적입니다. 그들의 세계관, 시간관, 가치관, 인생관 등을 성경말씀에 비추어 스스로 개혁하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선교의 핵심입니다. 선교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가르친다는 것은 온전한 교리, 체계적인 말씀을 가르친다는 것이고, 말씀에 대한 눈을 열어줌으로써 그 눈으로 자신들의 세계를 열어서 보게 하는 것입니다. 세계관을 바꾸는 것은 모든 선교사들이 바라보아야 하는 선교의 방향입니다.

 

17. 신학적 자립을 도모하는 것이 좋은 선교입니다.

흑인들은 지식은 없으나 열정은 있습니다. 열정이 뜨거워서 하나님이 자신을 목사로 부르셨다는 확신이 들기라도 하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나 목사요!'라고 선언해버리고 곧바로 목회활동에 뛰어듭니다. 가정에서 예배드리기도 하고, 길거리에 나가서 설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목회활동을 하면서 점점 말씀에 대해 갈급해하게 됩니다. 자신들이 지식이 없음을 깨닫게 되고, 훈련이 부족함을 인지하게 됩니다. 제가 사는 이 나라에 신학교가 많습니다. 현지인 목사들은 신학교에 들어갈 생각도 않하는데 기 이유는 1. 너무 학비가 비싸고(한달 월급이 2-30만원인데 신학교 한 학기 등록금은 4-500만원이 넘습니다.) 2. 시간이 없고(일찍 결혼하는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을 해야 합니다.) 3.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주로 합리주의, 실증주의, 비평주의에 근거한 것으로 흑인들의 정서에 맞지 않습니다.  4.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에 대한 반감, 백인정부, 백인신학교 등에 대한 거부감도 있습니다. 여기에 이 나라의 영적 현실이 있습니다. 대다수 흑인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영적 필요를 알고 있는데 아무도 그 필요에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백인들은 흑인들의 마을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꺼립니다. 누가 그들에게 달려가겠습니까? 그러니까 현지인들이 스스로 신학을 배우고 가르치고 할 수 있도록, 흑인 신학자들을 많이 배출하도록, 그들이 신학적으로 자립하도록 돕는 것이 좋은 선교입니다. 신학적 자립은 재정적인 자립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신학적 자립은 현지인 스스로 말씀을 읽고 해석하고 분별하고 또 올바른 교리를 다른 이들에게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능력을 말합니다. 아프리카 흑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신학적 자립입니다. 많은 분들이 신학교가 많은데 왜 이 신학교 훈련사역을 하느냐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은 이 나라의 현실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18. 현지인의 언어로 선교하는 것이 좋은 선교입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현지인 말을 못하는 선교사님들이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 영어조차도 어려워하는 선교사님들이 많이 있습니다. 언어에 자신감이 없으니 건물을 지어주고 돈을 주고 물질을 퍼주고 또 사람을 부리는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현지인들의 마음을 열고, 그들의 마음을 만지는 데는 현지인의 언어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줄루어를 배웠고, 또 지금은 츠와나 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학교에 들어가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흑인 목사님들에게 조금씩 물어서 배웁니다. 선교지에서 현지인들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사역입니다. 많은 분들이 언어를 배우는 것을 사역 그 자체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언어를 배우는 것은 사역 그 자체입니다. 현지인들에게 다가가 언어를 배울테니 가르쳐달라고 하면 금방 마음을 열어줍니다. 선교는 화분에 담긴 꽃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꽃씨를 심어주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좋은 선교는 현지인들의 언어, 문화, 사고방식의 토양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저와 비슷한 시기에 파송받아 이 나라에 온 어느 선교사님은 아직까지 학교에서 ELS를 하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저의 집에 찾아와서 고민을 털어놓으실 때 저는 ELS 10년을 해도 선교현장에서는 새롭게 배워야 할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ELS에서 백인들이 가르치는 영어와 흑인들이 사용하는 영어는 조금 다릅니다. 흑인들은 틈만 나면 자기들끼리 영어가 아니라 부족어를 사용합니다. 현지인들의 언어를 사용할 줄 모르면서 선교를 잘 할 수 없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세계에서 공식언어를 11개나 가진 독특한 나라입니다. 보통 2-3개 정도인데 반해 무려 11개나 되기 때문에 부족어를 배우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제가 프레토리아에 있었을 때는 줄루족 언어를 배웠는데 2시간 떨어진 곳에 이사오니 줄루어를 사용할 일이 없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에는 쯔와나와 수투어를 섞어서 사용합니다. 쯔와나를 배우는 것도 힘든데 또 수투어를 해야 합니다. 사역의 특성상 여러 지역을 다니며 강의를 하는데 그때마다 다른 언어 부족을 만납니다. 그래서 부족어를 배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인삿말 정도라도 배워야 합니다. 10개 정도의 표현만 익혀서 강의 중간에 사용하더라도 강의에 매우 효과적입니다. 좋은 선교는 현지인 언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19. 좋은 선교는 좋은 성품입니다.

사역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성품입니다. 특히 선교사역은 더욱 더 그렇습니다. 건물을 지어주고 자동차를 주어도 '군림하는 태도'로 주면 받을 때는 웃으며 받지만 속으로는 미워합니다. 선교사에게 가장 위험한 것이 군림하는 태도, 가르치려는 태도, 무식하다고 생각하며 접근하는 태도, 비난하고 정죄하려는 태도입니다. 가르치는 사역은 귀하지만 선생의 모습과 태도는 빼야 합니다. 설교하는 것은 귀하지만 판단하고 정죄하는 판사의 모습은 빼야 합니다. 현지인들에게는 사역보다 성품이 훨씬 중요합니다. 겸손함과 온유함 인내와 사랑으로 다가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지인들에게 다가갈 때는 가르치려는 태도보다는 배우려는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르치는 사역을 할 때에도 배우려는 태도를 가지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지인들에게 배울 것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무엇인가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에게 배우는 즐거움이 있다면 선교사역이 즐거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선교사님은 10여년 신학교 사역을 했는데 결국 현지인들에게 대한 실망과 상처만 안고 선교지를 철수한 경우를 보았습니다. 가르치려고만 하면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배우려고 하면 사역이 즐거울 수 있습니다. 흑인들을 보면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배울 것이 있다고 여기고 다가가면 최소한 반면 교사라도 배울 것이 있습니다. 가르치는 일을 하되 가르치려는 태도는 버리고, 아무리 무지하고 돈앞에 배반을 밥먹듯이 하여도 배우려는 태도로 다가간다면,무엇인가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다가가면 상처받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20. 좋은 선교는 전략적, 전방위적, 입체적 선교입니다.

10/20 창에 대한 강조가 한 때 유행했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선교는 어느 한 지역을 강조할 수 없습니다. 10/20창을 강조한 나머지 아프리카와 남미선교같은 경우 많이 소외되었지요. 그 결과 무슬림이 급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전도종족에 대한 최우선적인 관심은 환영하나 어느 한쪽을 강조함으로써 다른 한쪽이 소외된다면 원수는 그 다른 한쪽에 공격을 퍼부어서 견고한 요새를 만들 것입니다. 10/20창에 대한 선교가 진보를 보이지 않고 답보를 계속 하는 동안 원수는 예상치 못한 곳에 견고한 요새를 새워서 반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전방위적인 선교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선교는 전략적이어야 합니다. 옛날에는 시골에 들어가 교회를 세우고 목회를 하는 선교가 통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선교의 효과는 매우 제한적입니다. 왜냐면 전세계적으로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저마다 도시로 몰려옵니다. 최소한 도시와 자주 왕래를 합니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시골에까지 TV와 휴대폰이 보급됩니다. 전화보급보다 휴대폰 보급히 훨씬 빠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방법이 좋다고 단정하기 쉽지 않습니다. 선교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하고, 전방위적으로 접근해야 하며, 전방 후방 가릴 것 없이 입체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선교지에서 사역한지 얼마 되지 않은 초년병과 같은 제가 그간 보고 느낀 것을 올린 글입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기분 나쁘게 할 수 있겠지요..

어떤 부분에 관해서는 극단적인 표현을 쓴 것도 인정합니다.

그것은 많은 건물, 큰 건물, 많은 물량투입을 선교사역의 성공인 것처럼 보고하고 자랑하는 몇몇 극소수 분들에 대한 반감때문이고

또 그러한 선교를 '위대한 선교'인 것처럼 믿고 더 크게 지원하는 몇몇 한국교회에 대한 제 개인감정이 많이 반영된 것입니다.

사역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것은 '충성된 자들'에게는 맞지 않는 것임을 잘 압니다(고전4장)

하지만 이제 선교대국의 반열에 올라 온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지원하는 한국교회로서

서구교회가 남긴 실패와 실수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나름대로의 '기준'과 '원칙'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열심히 선교하는 것보다는 한번은 돌아보면서 올바른 방향과 정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봅니다.

제가 굳게 믿는 것은 방향성없는 열심은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쁘다는 것입니다.

선교가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무작정 열심을 내고 달려왔다면 이제부터는 누군가 올바른 방향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합니다.

방향은 방법에 선행해야 합니다. 정책은 열심에 우선되어야 합니다.

올바른 방향과 정책이 제시된 다음

현장의 특수한 필요와 요청에 따라 유동적으로flexible 적용하는 지혜가 뒤따라야 하겠지요..

지역에 전체적으로 미치는 영향, 한 세대 이후에 생길 변화를 예측하면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일들이 선교사들만이 아니라 선교사를 파송하고 지원하는 한국교회 안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면 합니다..

 

나름대로 선교한다고 하는 분이나 교회가 있다면

선교사역에 관심이 많은 교회가 있다면

선교사역을 하는 분이 계시다면

선교사역을 위해 준비하는 분이 계시다면

도움이 되길 바라며,

 

김광락 선교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