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여호와 전쟁의 종말론적 해석: 포로사건
구약성경은 여호와께서 전쟁의 하나님이심을 말해주고 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배적인 표현중의 하나가 용사의 하나님 (God as a Warrior)이다. 이와 같이 구약에 있어서의 여호와 전쟁 은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중요한 한 방편으로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들의 전 역사를 통하여 독특하고도 매우 중요한 영향을 주어왔다. 그러면 여호와 전쟁 개념이 이스라엘의 세계관과 가치관과 윤리의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면, 또 만일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전쟁의 신(神)으로 이해하였다면 자기들이 앗시리아와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끌려갈 때와 포로에서 다시 약속의 땅으로 귀환할 때에도 과연 그들은 하나님을 그와같이 이해하였을 것인가? 여호와 전쟁 개념은 포로 및 포로후기의 이스라엘에게 어떻게 이해되어졌으며 그 때의 그들은 어떠한 전쟁관을 가지게 되었는가?
특히 이 시기에 있어서의 여호와 전쟁 개념을 다루는 것이 매우 중요한 意味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그 이유는 신약의 靈的 여호와 전쟁 개념을 형성하게 한 과도기적 사상의 土臺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 시기의 이스라엘의 여호와 전쟁 혹은 언약의 주 여호와께서 전쟁의 하나님이시다라는 사상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서 근본적인 개념변화라 함은 이 시기에 있어 여호와 전쟁 개념이, 선지자들의 예언이 이스라엘의 포로사건 즉, 무정부 상태로 전락한 사건에서 입증되자, 하나님 자신이 자신의 나라를 수립하시기 위해 마지막 전쟁을 직접 수행하실 것이라는 생각으로 되돌아 갔다는 것과 그것이 임박했다는 급진적인 기대를 ▹리킨다. 여호와 전쟁 개념을 이해하는데 있어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에 민감하지 못할 경우 우리는 저 유대의 열심당이나 중세 기독교의 십자군 운동과 같은 오류를 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기독교의 전쟁개념에 대한 기초적인 윤리적 根據를 이 시기의 여호와 전쟁 개념이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시기의 여호와 전쟁 사상에 대한 신학적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먼저 신약성경의 종말론과 묵시문학에 나타난 종말론의 차이를 살피고나서, 이 시기에 여호와의 전쟁 이 어떻게 종말론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가를 살펴볼 것이다.
A. 묵시적 종말론과 성경적 종말론
종말론이란, 믿음을 가지 성도가 심각한 고난을 당하였을 때 그리고 그 믿음과 고난 둘다 거부하지 않으려고 할 때 발생한다. 이스라엘은 포로사건과 성전파괴를 목격하고서 자기들의 당한 경험을 어떻게든 설명하여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묵시적 종말론이 대두되었다. T.W. Manson은 종말론이란 현재 (What is)와 희망적 미래 (What aught to be)의 갈등을 해소하게 해주는 것이라 정의하였다. ▹즉, 현재(what is)는 단순 미래(what shall be)를 결정하지만, 희망적 미래(what ought to be)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이스라엘은 이 시기에 당하는 정치적 고난을 설명하기 위해 미래의 하나님의 행동을 그림언어로 묘사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묵시문학적 견지에서는 현재의 고난은 희망적 미래와는 깊고도 깊은 심연이 있다고 본다. 즉, 이 시기에 나타나는 종말론의 특성은 고난의 현실과 전혀 무관하며 그 고난의 현실을 제거하여줄 여호와의 전쟁 을 기대하였다는 점이다.
반면에, Manson에 의하면, 포로후기 시대의 예언자들과 ▹약에서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종말론은 苦難의 現實(what is)는 希望的 未來(what ought to be)의 實現에 있어 필수적인 단계로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즉, 현재의 고통은 새롭고 더 나은 시대를 해산하기 위한 고통이며, 그 고통은 모든 적대세력이 굴복되고야 마는 戰爭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신약에서의 종말전쟁관은 현실의 고난과 핍박 그 자체가 거룩한 전쟁의 본질적 부분에 속하며 따라서, 그 고난은 종말의 승리를 위한 필연관계라는 것이다. 묵시문학과 신약의 종말론 구조의 비교는 다음과 같이 도표화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what is란, 고난받는 현실을 가리킨다.)
묵시문학가: what is ------> what shall be ------->what ought to be
신약의 저자: what is ------> what ought to be == what shall be
< 도 표 (5) >
B. 포로기 ( Yahweh's war in the exilic period )
앗시리아와 바벨론에 의해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멸망당하였다(B.C. 722--B.C. 586). 그리고 많은 백성들이 포로로 이방에 끌려가게 되었다. 멸망직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선민이요 또 다윗언약(Davidic Covenant)에 근거하여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포로사건은 소위 시온주의(Zionism; 하나님이 시온을 영원히 택하시고 보호하신다는 다윗언약에 근거한 유대주의 신학)가 잘못된 것임을 역사적으로 입증해 보여 주는 것이다. ▹, 포로사건은 하나님께서 시온을 택하셨음에도 다시 버릴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믿었기에 그 약속은 종말론적으로▹이해되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멸망당하고 이방에 의해 포로가 된 사실에서 여호와 전쟁 모티프는 무엇인가? 이스라엘은 전쟁에 패하였다. 그런데 무엇이 여호와 전쟁 인가? 우리는 그 적절한 답을 앞서 언급한 M.C.Lind의 견해로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친히 이스라엘과 싸우셨다 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원수 뿐 아니라 이스라엘과도 싸우신다. 후자의 경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어겼을 경우로서 (▹번에는 기적의 방법이 아니라) 외국 군대를 도구로써 싸우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범죄할 경우, 백성의 원수들과 원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백성들에게 직접 원수가 되신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패배하고 전쟁포로로 끌려가게 된 것도 여호와 전쟁 의 결과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앗시리아와 바벨론은 하나님의 전쟁도구(God's army)로서 성경에 묘사되고 있다.
예레미야 선지자나 에스겔 선지자가 강렬하게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묘사할 때,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전쟁을 선포하시는(선전포고) 하나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의를 위해 싸우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의를 위해 싸우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의를 열방에 증거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자신의 의와 자신의 나라의 도구로 사용하실 뿐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충성할 때만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보존하심과 강성케 하심의 은총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타락하여 언약을 어길 경우에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의를 위하여서 그들을 버리시고 이방 족속을 선택하시고 이방나라를 자신의 거룩한 전쟁도구(divine army)로 이스라엘과 싸우시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여호와 전쟁 개념과 선택 이라는 개념과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자신의 왕권을 위해 전쟁하게 하려고 선택하시는 분이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義의 전쟁을 위해 선택되었고 부르심을 입었다. ▹그러나 선택받은 그들이 언약을 어길 경우 그들은 더 이상 거룩한 도구 가 될 수 없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원수 로서 하나님께로부터 선전포고를 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어긴 이스라엘과 싸우심으로 자신의 신실하심(warrior-kingship)을 지키시려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이 시기에 외쳤던 선지자들의 심판의 메세지이다
C. 포로후기 ( Yahweh's war in the post-exilic period)
우리가 포로기와 포로후기를 나누는 것은 다소 인위적으로 보이지만 이해를 위해서 구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구분은 예언서의 기본 구조(심판과 회복)에 따른 것이다. 포로후기 시대는 다시 회복의 메세지가 들린 시대이다. 우리가 여기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선지자들이 외쳤던 회복의 메세지가 거룩한 전쟁 또는 여호와의 전쟁 에 대하여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의 바벨론에서의 귀환은 전쟁에 관련하여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을 바벨론에서의 노예생활에서부터 다시 돌이키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역활이 거룩한 용사 의 隱喩的용어로 묘사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즉, 여호와께서는 이제 이스라엘을 위해서 바벨론과 대항하여 싸우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메데(Medes)라는 또 다른 도구를 선택하여 자신의 나라를 회복할 계획을 실행하신다. ▹메데라는 나라는 하나님 자신의 의와 왕국을 입증하기 위한 대리자(agent)로 부름을 받았다. 앗수르와 바벨론은 이스라엘을 물리치는데 여호와의 전쟁도구(agents)의 역활을 각각 하였으나 이제 이스라엘의 회복시기에는 반대로 그들이 버림받게 되어진 것이다.
이사야 13--14 장은 바벨론의 운명에 관한 예언으로서 선지자는 여호와 언약의 하나님을 전쟁을 위하여 선택된 즉 전쟁을 위하여 거룩히 구별한 자를 부르시는 거룩한 용사 로서 묘사하고 있다. 즉, 용사이신 하나님은 자신의 의의 심판을 수행하시기 위해서 메데인들(the Medes)을 여호와 자신의 강력한 군사들 로서 부르신다는 것이다(13:17--19). ▹여호와를 바벨론에 대항하여 자신의 군대(the Medes)를 파견하여 파괴하게 하는 거룩한 용사 혹은 장군으로 묘사하는 이미지는 이사야 46--47 장과 예레미야 50--51 장에서 중요한 메세지의 주제를 형성하고 있다.
자신의 싸움을 위해 군대를 조직하시는 용사이신 하나님에 대해 좀 더 논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도록 하기 위해서 선택되었다. 즉, 그들은 여호와의 의를 만방에 증거하는 거룩한 싸움을 위해 군대로 부름받게 되었다는 말이다. ▹원어적으로 선택하다 의 의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 바 은 본래 모병하다 혹은 군사들을 소집하다 의 뜻으로서 전쟁의 상황에 많이 쓰이고 있다. ▹용사이신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자신의 군대로 무장시키시고 이방신을 대항하여 싸우시는 우주적인 구속 전쟁에 참여케 하신다. ▹그것은 재창조의 역사이다. 이스라엘은 이 싸움에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징병의무를 ▹래부터 갖고 있었다. 하나님의 부르심 혹은 선택은 반드시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는 용사로서 자신의 뜻을 행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을 선택하시기도 한다.
여기서 여호와께서 메데와 파사를 일으키신 것은 자신의 의를 이루기 위해 그▹을 자기의 군사로 부르셨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다시 여호와의 언약에 충성하도록 재선택되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들은 다시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은총을 받게 되었다. 그들은 다시 하나님의 언약을 위해 싸워야 했다. 그들이 싸워야 할 싸움은 바벨론이나 페르시아 제국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열방 가운데 율법을 지켜 거룩한 나라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었다. 이것이 이 시기의 선지자들이 외쳤던 회복의 메세지이다. 요컨데,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이스라엘과 싸우시고 그들을 포로되게 하셨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다시 그들을 회복시키심으로 다시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싸움을 싸우도록 은혜를 베푸셨던 것이다. ▹그럼으로 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신실함과 의로움을 입증해보이셨다.
또한 우리는 에스겔서 1 장에서 용사이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에스겔서 1 장은 에스겔서 전체를 요약하는 중요한 장으로서 전차를 타시고 임재하시는 여호와의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의미는 상당히 중요한 것이다. 그 배경은 포로된 바벨론 지경 안이다. ▹에스겔서 1 장에서 전차(chariot)를 타시고 무서운 위엄으로 임재하시는 것에 대한 묘사는 성전(Temple)에 관한 전통으로서 하나님이 언약의 성소에 임하시는 장면을 묘사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구약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드리는 제의행위를 전투적인 의미로 이해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즉, 구약 성소에서 드리는 제의(cult)는 용사이신 하나님의 전쟁을 기념하는 행위였다.
이러한 묘사는 유대 제사장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개념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임재가 유대인들이 포로된 그 이방 땅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새성전(New Temple)의 형성을 선포하는 것이다(겔 40:1--43:12). 이 성전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용사의 하나님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전투적인 표현으로 묘사한 것은 시편에도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임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신다는 의미이다. 강대국의 군사적 위협 앞에서 고통당할수 밖에 없었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 싸움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으며 단지 하나님의 전투를 대망하고 기다리고 의지할 뿐이었다. 이와 같이 이시에 선포된 여호와 전쟁 의 이미지는 순전히 예언적인 것이며 구속사적인 것이다.
이러한 메세지들은 특히 에스겔서와 다니엘서에서 풍부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원수를 파멸하시고 새로운 자신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실 것이다. ▹이 전쟁은 하나님의 임재와 관련하여 주로 사용되었으며 특히 포로이후 시기에는 종말론적으로 이해되었다. 여기서 종말론적인 이해는 급진적인 희망의 차원에서의 이해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마지막 전쟁(아마겟돈)은 인자 곧 메시야에 의해서 수행될 것이다. 이 시기에 있어서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은 인자에 의해 수행될 것이라는 종말론적 기대로 형성되었다. ▹이러한 여호와 전쟁 의 종말론적 이해는 성경의 예언서 외에 많은 유대 묵시문학에서도 적용되어 강▹국에 의해 압제당하고 고통당하는 백성들의 삶의 정황에 위로의 메세지로 이용되었다.
D. 메시야 대망사상과 여호와 전쟁 ( Messianism and Yahweh's war )
포로 후기 시대의 여호와 전쟁 개념은 점차적으로 묵시문학적인 경향을 띄게 된다. 묵시문학적 경향이란 이미지 혹은 비유형식을 빌어서 모종의 메세지를 은폐하여 나타내는 문학적 표현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향은 이스라엘에 정부가 없고 강대국에 의해서 지배를 당하고 있을 경우 특히 두드러지게 되었다. 강대국의 세력에 의해 압제당하는 상황에서 선민들의 신앙적 저항이 묵시적인 경향을 띄게 되는 것은 당연했다. 이스라엘에 강력한 정부가 형성되었던 모세, 여호수아, 다윗 등의 시대에는 이러한 형식이 필요없었다. ▹왜냐하면 전쟁 그 자체(materialistic war)가 그들에게 중요했으며 전쟁에서의 승리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여전히 왕으로서 함께 계신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은 고대 근동 아시아의 전쟁개념이 지니는 것과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조상들에게 주어진 약속이 있었기에, 앗시리아나 바벨론 제국과 같은 이방나라의 지배 아래 있을 때에도 이러한 비유적인 문학형식을 통하여 그들의 신앙--하나님께서 여전히 자기들과 함께 하시며 제국은 종국에 가서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패배하고 하나님은 자기들에게 승리를 안겨다 주실 것이라는 기대--을 나타낼 수 있었다. ▹그것은 자기들의 압제자에 대한 강한 시위이기도 한 것이다. 그들은 이미지를 통해서 그들 자신이 지배받는 민족이 아니라 위대한 민족이며 앞으로 곧 승리할 것이며 압제자들은 자기들의 앞에서 결국 패할 것이라는 강력한 소먕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점은 이스라엘의 여호와 전쟁 이 아랍국가의 전쟁개념과 다른 점이며 후에 신약의 세계관에 큰 영향을 주었다.
여호와의 전쟁 모티프들은, 역사적 상황 아래에서는, 고대 근동 지역의 聖戰 개념과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군사 및 정치력이 부패하였던 포로 및 포로 후기 시대에서의 전쟁개념들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왜냐면 이스라엘에게 더 이상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선지자적 정부가 없었기 때문이다. ▹라서 그들은 象徵的 이미지로서 자기들에게 왕이 있음을 표현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그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삼하 7:12 이하). 그러므로 여기서 여호와의 전쟁 모티프들은 역사적인 차원을 넘어서 자연스럽게 종말론적이고(eschatological), 묵시적인(apocalyptical) 차원을 띄게되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눈에 보기에 구약 성경에서 여호와 전쟁 개념이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차원에서부터 신약의 상징적 혹은 영적 인 차원으로 전환하게 되는 것은 첫째로, 이스라엘 국가의 정부형태가 고대 근동 지역에서 지배적인 왕정형태에서 피지배적인 무정부 형태에로 전환되는 정부형태의 변환 때문이며, (그것은 옛언약에 속한 모든 요소들이 무의미한 것이라는 신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둘째로, 여호와의 날과 같이 최종전쟁을 예언한 선지자들의 예언사역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포로사건은 선지자들의 선포가 옳음을 증명해주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이러한 변환은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갈 때 갑작스럽게 되어진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의 포로 사건 이후부터 점차적으로 되어진 것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정부형태의 변환과 함께 여호와 전쟁 개념에 대한 중요한 변환 (역사적인 것에서부터 묵시적이고 종말론적인 것으로)이 일어났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와 같은 종말론적인 혹은 묵시문학적인 경향이 ▹나님 나라를 중심한 메시야니즘이다. 앗시리아와 바벨론에 의해 재난이 이스라엘과 유다에 밀어닥친 결과 이스라엘 왕국에 대한 유다의 교만한 편견은 산산조각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심판을 예고한 선지자들에 의해서 역사 안에서 용사로서 적극 개입하시고 활동하시는 거룩한 왕에 대한 사상을 고취시켰다. ▹심지어 예루살렘이 파괴되기 이전에도 미래에 거룩한 왕국이 세워질 것이라는 기대가 다윗의 자손(후손) 이라는 지상에서의 한 왕적 대리자의 사명과 연관되어 있었다. ▹여기서 미래적으로 기대되고 대망되는 하나님 나라는 상당히 好戰的인 용어로 묘사되고 있다. 예수님 자신도 천국은 침노 한다, 혹은 결박한다 혹은 빼앗는다 불을 던진다 는 묵시적인 표현을 왕국의 도래에 관한 가르침에 적용하셨다. 결국 이 시기에 있어 전쟁개념은 미래의 메시야 왕국의 도래를 갈망하고 기다리는 신앙적 문학에 주된 사상의 뼈대가 되었다.
그러나 신약의 저자들은 선지자들이 그 왕의 전투는 물리적인 방법이 아니라 ▹희생적인 봉사 일 것임을 예언 하였다(사 53; 단 9:26)고 재해석하게 되었다. 인간 역사에 침투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울 그 기름부은 왕 의 승리는 더이상 유대 승리주의자의 ▹습과는 정반대의 양상을 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예기치 않는 비범한 방식(unusual way)으로 전쟁을 수행하실 것이다. ▹이사야의 종의 노래가 그것을 가장 잘 말하고 있다. ▹이방인들은 더이상 칼과 창으로 정복되어야 할 적이 아니다. 그들 역시 하나님의 통치가 필요한 백성들로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샬롬의 왕국을 설립하기 위한 이스라엘의 물리적인 무력의 싸움은 종결되었다고 선지자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왕으로서 이 땅에 임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용사로서 이 땅에 임하여 인간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 자신의 방식으로 이스라엘의 원수를 퇴치하고 샬롬의 나라를 세울 것이다. 인자 가 그 종말의 전쟁을 수행할 것이다. ▹그 날이 곧 메시야의 날임을 선지자들은 예고한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이 희구해왔던 하나님의 샬롬의 나라(Kingdom of Shalom)는 이스라엘의 武力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기이힌 이적의 방법(Yahweh's Eschatological War)으로 세워질 것이라는 것이 이 시기에 선포된 성경적 종말사상이다.
하나님 자신이 용사로서 원수들을 파하고 자신의 나라를 친히 이 땅에 세우실 것이다. 스가랴서는 종말에 일어날 구원자를 용사이신 여호와 의 이미지로서 그리고 있다. ▹또한, 에스겔서의 곡과 마곡의 전쟁(38--39)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 자신의 최종적인 전쟁을 묘사한 것이다. ▹결국 최후의 전쟁( 아마겟돈 전쟁 )은 하나님 자신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한 終末論的 전쟁으로서 메시야 대망 사상의 핵심을 이룬다.
E. 이 시기의 여호와 전쟁개념이 지니는 신학적 윤리적 중요성
우리는 간략하게 그리고 다소 포괄적으로 성경에 나타난 포로 및 포로 후기 시대의 여호와 전쟁 개념을 검토해보았다. 이 시기에 있어(중간사 시대를 포함하여) 전쟁개념의 변천을 살펴보는 것은 신약의 계시를 이해하기 위해서 상당히 중요하다. 그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몇가지로 요약해보고자 한다.
이 시기에 있어 이스라엘 정부 형태의 변환과 ▹께 여호와의 전쟁개념(conception of divine war)에 있어서도 역사적인 상황에서 종말론적이고 묵시적인 개념으로 변화하게 되는 중요한 시기이다.
물리적이고 역사적 차원을 벗어버리게 되는 이러한 전쟁개념의 변화는 ▹직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구속사적인 안목에 의해서만 감지될 수 있다.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무력전쟁에 의한 하나님 나라 건설의지에 대하여 무효화를 선언하였고, 포로사건은 그것을 역사적으로 입증해보여준 사건이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반응으로 여러가지 당파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예; 쿰란 공동체, 사두개파, 바리새파, 열심당원, 헤롯당원 등) 그들은 다윗언약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며 그들 나름대로 전쟁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 시기는 기독교 윤리의 중요한 배경을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공관복은 및 요한계시록, 바울서신등의 종말론적 세계관에 중요한 해석학적 열쇠를 제공한다.
이 시기의 전쟁개념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의 대망 사상으로 집약될 수 있다. 메시야 대망사상 역시 여호와 전쟁 이 핵심이다. 그것은 메시야 대망사상과 근본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즉, 종말의 때에(in the last days) 하나님께서 원수들과 마지막 전쟁을 하시고 최종 승리를 거두심으로 하나님 왕국을 건설하실 것이라는 기대이다. 따라서 종말의 여호와 전쟁은 결국 이스라엘의 재조직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전쟁개념은 포로사건 이후 이스라엘의 왕정이 무너지자 제국에 의해서 압박받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선언하여 결국에는 자기들이 승리한게 될 것이라는 저항정신 이 담겨 있다. 이 시기의 남은 자들 은 우상숭배를 강요하는 제국의 압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향한 신뢰를 끝까지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이와같이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전쟁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을 압제하는 세력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전쟁을 선언하여 경고하였다. 하나님의 최종승리에 대한 강력한 확신은 그들을 환란 속에서 인내하게 해주었다.
이 시기의 전쟁개념은 구약 중간기의 메시야 사상 또는 하나님 나라 사상 뿐만 아니라 신약 전반에 걸친 세계관과 삶에 있어서도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제 이스라엘이 기대했던 戰士이신 하나님 에 대한 구약의 사상이 신약에 이르러서 어떻게 예수그리스도에게 성취되었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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