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설교

성막론 강해(3)

등불지기 2012. 4. 4. 23:33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과 믿음이 더욱 깊어지기를 소원하는,

김광락 선교사 올림.

 

성막론(3)

번제단과 물두멍

본문:출27:1-8; 30:17-21

 

오늘 새벽에는 성소의 뜰에 있는 두가지 번제단과 물두멍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성막은 흰세마포로 둘려쌓여 있는데 가로 45m 세로 22.5m의 크기(1규빗을 45cm로 계산했을 경우)입니다. 이 흰세마포는 의로움과 정결을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이 흰세마포는 모든 사람이 죄인임을 증거합니다. 그런데 이 성막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오직 하나뿐입니다. 이 입구는 동편에 나있는데, 너비가 약 9m 정도되는 문입니다. 이 입구로 들어가고 이 입구로 나옵니다. 그리고 이 문의 특징은 항상 열려져 있다는 겁니다. 자물쇠로 걸어잠그는 그런 대문이 없습니다. 항상 열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하나님은 언제든지 우리르 맞이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문은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나타냅니다. 요한사도는 예수님을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보도합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요14:6)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로 나아갈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참되신 하나님을 만날수도 체험할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 하나님을 만날려고 하는 사람은 다 절도요 강도입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양의 문이 되십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이렇게 체험했다고 하고 또는 저렇게 체험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상관이 없으면 다 절도요 강도라고 했습니다. 우리 신앙 체험 속에 예수님이 빠져있지는 않는지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이 문을 통과하면 제일 먼저 번제단이 있고, 그 다음에 물두멍이 있고, 그 다음에 성막이 있는데 오늘은 번제단과 물두멍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번제단과 물두멍은 성소의 뜰에 놓여져 있는 두 성물입니다.

 

첫째, 번제단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번제단의 역할은 속죄제물을 가져와서 그 피는 제단에 쏟아붓고 그 나머지 몸은 완전히 불살라 태우는 곳입니다. 이 번제단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장 첫 번째 과정인데,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바로 피의 역할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가장 먼저 대속의 보혈을 체험해야만 합니다.

레17:11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아니고서는 우리 죄를 씻을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존전으로 나아갈수도 없습니다.

히9:22에,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문을 지나 번제단을 만나는 것은 중요한 교리를 가르쳐줍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깨달은 자는 예수의 보혈로 죄사함을 얻고 성령의 불로 거듭나게 되는 은총을 입게 됩니다.

딛3:5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막의 입구에서 지성소까지 나아가는 과정은 우리가 하나님을 마나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첫 걸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예수그리스도를 깨닫고 난 다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씻음과 성령의 중생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레6:13을 보니까, “불은 끊이지 말고 단위에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항상 제단위의 불을 피워두라는 말은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예수 보혈에 대한 믿음을 항상 간직하고 있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우리 마음이 보혈에 젖어 있을 때 우리는 참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는 매년 속죄일마다 피를 흘려야 했지만 이미 2000년 전에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단번에 보혈을 흘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이 갈보리 언덕에 흘려주신 보혈은 아직도 강력한 효력이 있습니다. 그 피는 아직도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 피를 믿음으로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 피를 믿음으로 우리는 성령으로 계속 충만하게 됩니다. 이 피를 믿는 자는 원수마귀가 건드리지 못합니다. 이 피를 믿음으로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수 있는 특권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의 귀하신 피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그 보혈이 저와 여러분을 보호해줍니다.

 

둘째, 물두멍입니다.

우리는 번제단에서 바로 성소로 들어갈수 없습니다.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어야 합니다. 성막의 여러 기구 중에서 다른 것들은 정확한 치수가 정해져 있는데 이 물두멍만큼은 치수나 무게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물두멍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 저는 이 물두멍은 성령으로 중생한 사람이진리의 말씀으로 조명을 받아 그 숨겨진 허물을 낱낱이 자백하는 단계라고 볼수 있습니다.

요13:1이하에 보시면 주님이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8절)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10절에,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또 요일1:8에도, “만일 우리가 죄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했고, 9절에도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렇게 숨은 허물을 자백하는 것은 우리가 중생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더 깊은 교제의 단계에 들어가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한번 회개하고 회심하여 예수님을 영접하고 중생하지만 그 이후에 우리는 계속해서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 우리 안에 감추어 있는 온갖 허물과 죄를 계속적으로 자백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중생 이후에 계속 성화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렇게 자백하지 않으면 우리는 성소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 없게 됩니다.

 

1907년 1월 초순에 평양 장대현교회에 큰 부흥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온 교인들이 합심하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계속적으로 기도하고 집회를 여는데 하나님의 은혜는 주어지지 않고 가슴만 답답할 뿐이었습니다. 이때 당시 장대현교회의 장로이자 전도사님이셨던 길선주 장로님이 벌떡 일어나서 자신이 친구의 돈을 떼먹은 것을 자백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자백하지 않기 때문에 하늘문이 막혀 있는 것이라고 고백한것입니다. 길선주 장로님이 자신의 숨은 허물을 여러 회중 앞에서 자백하고 고백하게 될 때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자백하기 시작했고 그러자 막혀있던 하늘문이 열리게 되고 성령의 폭포수같은 은혜가 부어지게 되었고 이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흩어져서 부흥의 씨앗이 되었던 역사를 우리는 한국교회사를 통해 볼수 있습니다. 이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일제시대라는 암울한 시대를 잘 극복해나갈수 있었고, 이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625 전쟁을 잘 극복할수 있었으며, 이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보릿고개를 잘 넘어서 산업화를 이룰수 있었던 것입니다. 길선주 장로님의 진실한 자백--이것이 한국교회가 이만큼 성장하게 된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문을 통과하여 예수의 보혈로 중생의 씻음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해서 자백함으로 성소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폭포수같은 은혜와 복을 우리에게 내려주지 못하시는 이유가 사실은 우리 안에 가로막는 담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자백하면 이 장애물은 걷혀지고 하나님의 예비한 은혜를 충만히 받을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은혜와 축복을 예비하시고 그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언제든지 부어주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폭포수같은 은혜가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가? 번제단의 불이 꺼지지는 않았습니까? 아니면 숨은 허물을 자백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까?

 

숨은 죄를 낱낱이 자백할수 있도록 성령의 조명하심을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죄와 증오심이 막힌 담이 되어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가로막고 있지는 않는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주여 성령으로 조명하여 주시고 용감하게 자백할수 있도록 깨닫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존전으로 나아갈수 있도록 은혜베풀어 주옵소서.”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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