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설교

성막론 강해(10)

등불지기 2012. 4. 4. 23:57

 

성막론(10)

지성소(III): 싹난 지팡이의 비밀

본문:민17:1~11

 

오늘은 아론의 싹난 지팡이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싹난 지팡이는 언약궤 안에 들어있었습니다.

 

민수기16장부터 읽어보시면 당시 광야 이스라엘에 어떤 상황이 생겼는지 알수 있습니다. 당시 고라, 다단, 아비람, 온 네사람이 250여 족장들과 당을 짓고서 모세를 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명분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불러내어 주셨는데 모세와 아론이 지나치게 하나님을 섬기는 권한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다 구원해주셨고, 다 거룩한 자들인데 왜 너희들만 특별히 더 거룩한 자들인양 행사하려고 하느냐? 왜 우리는 세마포 울타리만 지키고 너희들만 성소와 지성소에 들어가려고 하느냐? 왜 너희들만 성막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섬기는 특권을 행사하려고 하는가? 이거 너무 불공평한 일이 아니냐?” 이때 모세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결정해주실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허락하신 자가 누구인지 그분이 직접 보여주실 것이다” 그래서 이튿날 고라당이 모세와 아론을 대적할 때 하나님께서 불을 내려 250여 족장을 불살라 버리시고, 땅이 갈라져서 고라당의 모든 가족과 재산을 삼켜버리게 하십니다.

 

이 일로 이스라엘백성들이 깨닫기는커녕 또 다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 시작할 때 전염병이 시작되어 14,700명이 죽는 일이 생깁니다. (여기서 한가지 우리가 깨닫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더욱더 꼬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설상가상의 일들이 마구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 이런 순간에는 최선인데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는커녕 계속적으로 인본적인 생각을 고수하는 자들은 설상가상의 저주의 늪에 빠져들어가게 될것입니다.) 그후에 하나님께서 각 지파별로 대표자를 선정하고 지팡이 하나씩 거두게 하셨는데 이튿날 하나님이 아론의 지팡이에만 싹이나고 꽃이 피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 지팡이를 언약궤와 함께 항상 보관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중요한 두 번째 특성을 보여줍니다. 즉, 언약이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아무아무개를 선택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신자가 아니고서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수도, 그분을 섬길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부르시는 일이 불공평하게 보일지라도 결코 불평하거나 원망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즉,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하나님의 일방적으로 부르시고 선택하시고 세우시는 은혜를 증거해줍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요지입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부르심에 대해 몇가지로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불평,원망해서는 결코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불공평하게 보일지라도 원망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는 자를 하나님이 선택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불평해서는 안됩니다. 왜 저 사람만 저렇게도 하나님의 은총을 많이 받는 것처럼 보이느냐고 비교해서도, 불평해서도, 원망해서도 안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절대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자를 대적하는 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불러주실 때 거역하는 것은 큰 불순종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일해야지 내 의지와 내 노력과 내 능력으로 일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목회자도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목회하는 사람이 있고, 자기의 노력과 재능과 열심만으로 목회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 안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항상 그를 어떻게 사용하실지 먼저 보여주시고 나서(비젼) 그 다음에 길을 열어주십니다. 어떤 길로 불러주신 하나님의 목적을 내가 이해하지 못하거든 그 길로 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어떤 길로 가려는데 하나님이 길을 안열어주신다든지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를 안주신다든지 하면 그 길로 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하나님의 부르심이 먼저이고 그것이 확실하다면 하나님께서 끝까지 지키시고 붙들어주시고 필요한 것으로 채워주실 것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자의대로 하나님을 택하여 믿음생활하고 있다면 언제 어떻게 우리 믿음이 파산할지 모릅니다. 언젠가는 우리 믿음이 박살나고 말것입니다. 왜냐면 우리 편에서 먼저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약 하나님이 강권하셔서 우리로 믿음생활하게 하셨다면그 하나님께서 끝까지 우리를 부르신 당신의 계획을 이루시고야 말것입니다. 여기서 구원의 확신의 교리가 나옵니다. 빌1:6에,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싲가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시작하셨다면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어내실것입니다. 성도의 확신은 항상 하나님편에서 먼저 시작하는 것을 확인할 때 찾아옵니다.

 

다섯째로,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표적이 항상 따릅니다. 하나님은 불러주실 때 부르심에 대한 증거를 주십니다. 확신을 가지고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새애의 사역을 시작하실 때 요한에게 세례받으실 때 성령강림을 체험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예수님께서도 확인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성령충만과 권능주심을 확인하기 전에는 선교할수 없었습니다. 성령의 권능을 주신다음에 세계로 보내시는 것입니다.

 

다시,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적용해봅시다. 비록 나같이 쓸데없고 보잘것없는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정말 나를 어떤 일에 불러주셨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이 확실하다면, 하나님께서 그 어떤 방법으로든 반드시 당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부르심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부족과 연약함만 자꾸 생각하는 것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중대한 불신앙의 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는데, 즉, 하나님이 불러주시지 않았는데도 이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 온 그리고 250여 족장들처럼 함부로 나서는 것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신앙의 죄입니다. 그들은 대게 레위인으로서 회막봉사의 일을 맡았는데 왜 성막안에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느냐고 원망한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는 그들의 원망은 정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들의 생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된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망각하고 무시할 때 우리는 패역한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하고 그 부르심을 알 때 우리는 승리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에베소교회를 위해 중보기도할 때 “부르심의 소망”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것, 부름받지 않은 자가 부름받은 자처럼 나서는 것--이것이 바로 교만인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삶을 선택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반드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받는 은혜를 사모해야 할것입니다. “주님, 나를 무엇으로 불러주셨는지 나를 왜 불러주셨는지, 나를 어떤일로 불러주셨는지 알게 하소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하는데서부터 항상 모든 일을 시작해야 할줄 믿습니다. 이것이 승리와 축복의 비결인줄 믿습니다. 이 은혜가 바로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언약의 비밀인줄 믿습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이 음성이 바로 언약궤에서 들리는 음성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지명하여 부르셨다면 반드시 그 증거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마음속에 그 증거를 깨닫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오늘도 우리를 불러주셨기 때문에 이렇게 이 새벽에 주님앞에 나오게 된줄 믿습니다. 주님이 불러주셨다면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예비하신 은혜가 반드시 있는줄 믿습니다. 주여, 우리의 정신을 맑게 하여 주셔서 주님의 부르심을 잘 알게 하옵소서. 주님이 왜 나를 이 모양으로 불러주셨는지 주님의 듯을 잘 알게 도와주시옵소서. 부르심의 비밀을 깨닫는 축복을 허락해 주시고 부르심의 소망을 알게 되는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왜 내게 굳센 믿음과 또 복음주셔서 내 맘이 항상 편한지 난 알 수 없도다

왜 내게 성령주셔서 내 맘을 감동해 주 예수 믿게 하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주 언제 강림하실지 혹 밤에 혹 낮에 또 주님 만날 그곳도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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