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보다 중요한 것은 설교자의 정체성이다!
흑인 목회자 학생들에게 늘 강조하는 주제입니다. 설교자의 정체성이 설교하는 행위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정체성identity이란 자기이해self-understanding을 뜻합니다. 설교자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하는 것은 설교에 매우 큰 영향을 줍니다. 설교하기 전에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고 늘 주문하지요. 설교원고를 준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준비인 '설교자의 자기이해'에 관해 한번 공부해볼까요?
제가 가르치면서 사용하는 4번 교재 27쪽에서는 설교자의 자기 이해에 관해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설교자는 말씀의 전령herald이다.(딤후1:11)
둘째, 설교자는 말씀의 종servant이다.(고전4:1; 고후4:5)
셋째, 설교자는 말씀의 대사ambassador이다.(고후5:18-20)
아주 좋은 설명입니다. 흑인 목회자들은 배우면서 다들 아멘으로 반응합니다. 그러나 저는 제 나름대로 설교자의 자기이해에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설교자는 '배달원'deliverer이다.
제가 흑인 목회자 학생들에게 자주 사용하는 비유는 피자 배달원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가난한 흑인이라고 해도 피자를 배달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입니다. 수많은 '개념'들을 나열하고 풀어서 '설명'하는 것보다 한 가지 비유를 가지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현지인들에게는 훨씬 강력하게 각인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종종 저는 가르치는 사역을 하면서 비유 혹은 이야기, 혹은 실례를 많이 들려고 애씁니다. 우리가 피자를 먹고 싶어서 전화를 걸어서 피자를 주문하는 일은 다들 경험해보았을 것입니다. 컴비네이션 Large size 두 판 주세요! 라고 주문합니다. 이때 설교자는 고객에게 스쿠터를 타고 피자를 배달하는 배달원과 같다고 이야기를 하면 다들 무슨 뜻인가 눈이 둥그래집니다. 가게에서 일하는 배달원은 직접 피자를 만들지 않습니다. 대신 주문받은 대로 전달만 할뿐입니다. 대부분 배달원이 직접 주문을 받기보다는 피자 가게 주인이 주문을 받지요. 가게 주인이 주문을 받으면 피자를 만들어서 배달원에게 주소를 주면서 어디로 배달하라고 시킵니다. 배달원은 스쿠터에 피자를 싣고 목적지에 도착하여 전달합니다. 주문한 사람이 피자를 받아들고서 피자 한 조각을 떼어서 맛을 보더니 맛에 대해 혹평을 내립니다. 이게 무슨 맛이야? 너무 맛이 없어요! 이렇게 반응한다고 가정해봅시다. 고객의 그런 반응에 배달원이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고백할까요? 혹은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면서 왜 피자를 맛없게 만들었지? 라고 자책할까요? 이렇게 물으면 흑인 목회자 학생들은 다들 고개를 저으며 배달원은 그렇게 반응하지 않는다고 대답합니다. 배달원이 고객의 반응에 대해 실망하거나 혹은 우쭐거리지 않는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제가 이렇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설교한 다음 청중이 여러분의 설교에 대해 부정적으로 피드백을 해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입니까? 그러면 당연히 실망하고 낙심할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반대로 여러분이 설교한 것에 대해 청중들이 모두 "목사님 감사합니다. 목사님의 설교에 큰 감동과 은혜를 받았습니다."라고 칭찬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입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그분들은 "기분이 좋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쭐해질 것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제가 이렇게 일어줍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반응한다면 여러분은 말씀의 참된 전달자deliverer가 아닌 것입니다."You'll never be called a true deliverer of the Word! 라고 말해줍니다. 그러면 학생들은 깜짝 놀라며 눈이 둥그래져서 저를 쳐다보지요..
만일 청중이 설교자의 설교를 듣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에 대해 설교자가 쉽게 다운이 되고 실망하고 낙담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반대로 청중이 설교자의 설교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칭찬하고 감사를 표현하고 큰 은혜를 받았다고 영광을 돌릴 때 설교자 자신이 우쭐하고 기쁘고 즐겁다면...내가 그렇게 반응한다면 나는 결코 말씀의 전달자(deliverer of the Word)가 아닌 것입니다. 적어도 나는 말씀을 전달하는 일에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이 많은 미숙한 설교자인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청중의 반응에 따라 내 감정이 결정된다면 설교자로서의 내 정체성이 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설교자로서의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은 청중의 그 어떤 반응에도, 그것이 부정적이든 혹은 긍정적이든 간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아야 정상적인 현상인 것입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도전합니다.
"여러분의 설교에 대해 청중이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고, 청중의 피드백에 대해 여러분의 감정이 쉽게 영향을 받는다면 여러분은 진정한 말씀의 전달자가 아직 아닌 것입니다. 혹은 여러분이 어떤 설교자가 진짜 설교자인지 아닌지 알고 싶다면 그가 설교한 직후 그에게 찾아가서 "오늘 당신의 설교는 정말 형편 없어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졸리기만 했어요!"라고 피드백을 주어보십시오. 그리고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관찰해보십시오. 그가 쉽게 낙담한다면 그는 참된 설교자가 아직 덜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식으로 그가 진짜 설교자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말씀의 전달자는 청중의 반응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왜냐면 전달자는 정확한 주소로, 정확한 내용을 전달했는가가 주된 관심사이기 때문입니다."
그제서야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를 합니다. 그리고 설교자의 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할 준비를 하게 됩니다.
설교자가 설교자로서의 자기 이해가 명확하지 않으면 청중의 반응과 피드백에 의해 쉽게 낙담하거나 혹은 쉽게 우쭐거리는 감정적 반응을 하게 됩니다. 설교자가 청중의 피드백에 의해 그렇게 감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십중팔구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을 뜻합니다. 왜냐면 맛이 없다고 할 때 피자를 만든 주인이 실망하고 낙담할 것이니까요. 배달한 사람은 고객의 평가에 결코 실망하지 않습니다. 배달원이 실망하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입니다. 주소를 잘못 찾아갔거나 혹은 주인이 배달하라고 시킨 내용이 아닌 다른 것을 가지고 배달했을 경우입니다. 설교자는 배달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자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의도, 본문이 말하려고 하는 본문의 의도를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했느냐에 있지, 자신의 메시지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을 보였는가에 있지 않아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에 감정적으로 업-다운 된다면 그것은 자신이 설교자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린다는 뜻이지요.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인지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자신의 메시지를 전했기 때문에 청중의 반응에 관심이 많은 것이고, 청중의 평가에 일희일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설교자의 정체성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설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설교자의 정체성입니다. 설교자로서 정체성은 '배달부'입니다. 설교자로서 고민해야 할 것은 청중의 반응과 평가가 어떤가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설교자로서 고민해야 하는 것은 주인의 의도대로 전했는지, 주인의 메시지를 얼마나 가감없이 전했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했는지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설교를 잘 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설교를 정확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정치가로서 연설을 할 때는 물론 잘 하려고 노력하겠지만, 그래서 청중의 반응을 주의깊게 살펴야 하겠지만, 설교자의 설교와 정치인의 연설은 정체성에 있어서 확연히 다른 것입니다. 설교자는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잘' 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정확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설교를 끝내고 나서 청중의 반응을 살피는 사람이 되지 말고, 주소를 제대로 찾아 갔는지, 하나님의 의도대로 전달했는지,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청중의 평가가 좋은 설교의 척도가 될 수 없습니다. 배달을 잘 했는지 여부는 주문을 받은 주인이 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나님의 말씀만이 좋은 설교의 평가 기준인 것입니다.
김광락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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