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설교

가상칠언 사경회(3)-고통, 성공, 위탁

등불지기 2012. 2. 19. 19:09

(3)셋째날: 요19:28~30, 눅23:46 [고통, 성공, 위탁]

 

환영 및 기원

(1)지금까지 우리는 십자가상에서 예수님께서 남기신 일곱 마디 중에 네 가지 말씀을 살펴보았다. 예수님은 자신을 못 박는 자들과 욕하는 자들에게 첫째와 둘째 말씀을 남기셨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두 분을 향해 셋째와 넷째 말씀을 남기셨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자신에 관해 남기신 말씀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넷째부터 일곱째까지는 운명하시기 직전에 한꺼번에 연속적으로 말씀하셨다고 했다.)

(2)자신을 못 박는 자들을 위해 용서를 비는 기도를 드리셨고, 아무리 자신을 욕한 강도라 할지라도 구원을 요청하는 자들에게 결코 거절하지 않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 자신이 가장 사랑하셨던 어머니를 위해 자신이 또한 가장 사랑하셨던 제자 요한에게 봉양을 부탁하였다. 그리고 영원 전부터 사랑을 나누었던 성부와 단절되고 버림받는 고통을 고백하셨다.

(3)이제 남은 것은 예수님 자신에 관계되는 일들에 대해 남기신 말씀들이다. 그것은 ‘고통(아픔), 성공(실패), 그리고 위탁(절망에 대해)’이라고 제목 붙일 수 있겠다. 하나씩 살펴보면서 우리 삶 속에 적용해보도록 하자.

 

다섯 번째 말씀: “내가 목마르다”

-이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고통에 관한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단지 목마르신 것이 아니다. 육체의 고통을 토해놓으시는 말씀이다. 사람은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울 때, 그 고통이 극에 다다를 때, 목이 타들어 가게 된다. 예수님은 지금 극도의 탈수현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겪으신 육체적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가?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겪으신 고통을 우리가 제대로 묵상하기 위해서 좀더 세부적으로 어떤 고통이었는지 생각해보자.

 

❋주님의 고통의 시작

(1)겟세마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 되더라”(눅22:44) §‘혈한증’(hematidrosis)-정신적 스트레스를 아주 심하게 받을 때 일어나는 육체적 현상으로서, 사람이 심하게 고민하면 땀샘에 있는 모세혈관을 파괴하는 화학 성분이 몸에서 나온다. 그 결과 땀샘으로 소량의 피가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땀을 흘릴 때 피가 섞여서 나오게 된다. 이렇게 혈한증이 일어나면 피부가 매우 약해지는데 다음날 로마군인들에게 채찍으로 맞으셨을 때 큰 상처를 입으셨을 것이다.

(2)가야바법정- 가야바의 종들 중에 하나가 뺨을 때리고, 성전 경비병들이 조롱하고 비웃고 침 뱉고 얼굴을 때렸다. 이것은 고통이라기보다 굉장한 모욕감을 주는 것이었다. 단순한 육체적 고통은 어쩌면 견디기 쉽다. 그러나 인격적 모욕은 정말 견디기 힘들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저 맞기만 하셨다.

(3)산헤드린 공회- 잠도 자지 못한 채 자정부터 이리저리 끌려 다니셔야 했다. 예수님의 몸은 지칠 대로 지쳐버리셨을 것이다.

(4)빌라도- 빌라도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예수님을 헤롯에게로 보냈다. 예수님은 마냥 이리저리 힘없이 끌려 다니는 어린양과도 같았다.

(5)헤롯- 헤롯의 군인들은 예수님을 때리고 희롱하였다.

(6)빌라도법정- 군중들의 야유를 받았고, 바라바를 달라는 함성을 들었다. 예수님은 유대의 왕으로 오셨지만 유대인들은 자기 왕을 버렸다. 예수님은 당신이 무척 사랑하셨던 백성들로부터 버림받는 고통을 겪으셔야 했다.

(7)로마군인들의 채찍질- 로마의 태형은 가장 잔인한 형벌이었다. 채찍은 보통 39가닥의 가죽으로 엮어져 있었고, 가죽 안에는 쇠구슬이 박혀 있었고, 채찍의 끝에는 날카로운 뼛조각이나 쇳조각이 달려 있었는데 한번에 39번을 때린다. 채직질을 계속하게 되면 상처 난 곳이 벌어지기 시작하고, 살이 심하게 찢겨져 나간다. 등이 심하게 찢겨져 나가 심지어 척추의 일부가 드러나기도 한다. 채찍질은 어깨에서부터 정강이까지 계속된다. 태형이 계속되면, 피부 밑에 있는 골격 근육이 갈갈이 찢겨지게 되고 찢겨진 살은 피범벅이 된 채로 걸레처럼 덜렁덜렁 매달려 있게 된다. 어떤 경우는 내장까지 드러난다고 한다. 그야말로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는 것이다. / ❋이렇게 많은 피를 출혈하게 되면 hypovolemic shock(저혈양 쇼크) 상태에 빠지는데, 이렇게 되면, 혈압이 떨어지게 되고, 정신이 몽롱해지고, 몸은 자연스럽게 심한 갈증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중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넘어지신 것은 정확한 묘사이다.

(8)군인들의 희롱(장난)- 예수님의 어깨 위로 자색 옷을 입히고 그 손에 갈대를 쥐어 주고, 그 머리에 조롱의 표시로 가시로 만든 관을 씌운다. 그러면 머리에 난 수많은 모세혈관들이 터지고 많은 피가 얼굴을 적시고 흐르게 된다. 그리고 얼굴을 때리고 난 후 그 가시 면류관을 더 깊숙이 박기 위해서 손에서 갈대를 빼앗아 머리를 내리쳤다. 그런 다음 자색 옷을 잡아채고 나면 옷에 달라 붙어있는 살점들이 마구 뜯겨 나오게 된다.

(9)십자가를 지고 걸어감- 사형선고를 받은 두 강도와 함께 가로나무를 등에 지고서 600미터나 되는 기나긴 길을 천천히 걷게 한다. 걸을 때 거친 나무기둥은 예수님의 상처 난 등을 마구 건드리며 비벼댄다. 피를 많이 흘리신 예수님은 정신이 몽롱하기 때문에 자주 쓰러지게 된다. 빨리 십자가형을 집행하기 위해서 로마군인은 북아프리카에서 온 구레네 사람 시몬을 강제로 붙잡아 나무기둥을 매고 가게 한다.(§참고로, 시몬의 아내는 훗날 사도바울의 영적 어머니가 된다. 롬16장)

(10)십자가에 못박음- 가로나무를 내려놓으라는 명령에 구레네 시몬은 내려놓고, 놓자마자 로마군인들은 예수님의 연약한 두 어깨를 놓인 기둥에 눕힌다. 로마 군인은 예수님의 손목에 무겁고 네모난 철못을 사정없이 박아 버린다. 다른 한쪽의 팔도 같이 박아버린다. 그러면 손목을 지나는 중추신경이 완전히 파괴되고 만다. 치과에 가서 신경치료를 받아본 적이 있는가? 그러면 그 고통의 크기를 아마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신경을 뻰치로 마구 뒤틀 때의 느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가는 경험해보지 않은 한 아무도 모른다. (§이 못의 크기는 15cm가량 되며 두께는 1,5cm가량 되는 무거운 철못이다. 1968년 고고학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처형당한 유대인을 발굴해내었는데 1970년 로마에 대한 반란 때에 진압되어 처형된 36명 유대인 중의 한 유골에는 발에 15cm가 넘는 철못이 발에 꽂혀 있는 채로 발굴해내었다.)

(11)십자가에 들림- 그런 다음에 가로들보를 높이 들어올린다.(유대인들에게 나무에 달려 들린다는 것은 하나님께 저주와 버림을 받았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유대지도자들은 사실 이것을 노렸기 때문에 자기들 손으로 예수님을 죽이지 못하고 로마군인들의 손을 빌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거짓선지자가 아니라 정치범으로 몰아가려고 했던 것이다.) 이렇게 높이 들린 다음에 예수님의 두 발에 못이 박혔다. 발에 있는 신경이 완전히 부서지게 되었다. 예수님에게 있어 육체적인 고통도 고통이겠지만 무엇보다 저주의 나무에 달렸다는 것이 가장 큰 심적 고통이었을 것이다.(ex. 저주를 받아 나무에 달린 사람: 하만, 사울)

(12)신체적인 현상-이골, 질식, 경련, 탈수증세를 보이는데 이렇게 십자가에 달리게 되면 맨 먼저 팔이 늘어나게 된다. (약 15cm정도) 그리고 양쪽 어깨가 탈골된다. 시편 22편에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다”고 한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는 것이다. 이렇게 일단 십자가에 수직으로 매달리게 되면 상체는 앞으로 축 처지게 되고 근육에 충격이 가해지면서 횡경막이 가슴을 들어올리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따라서 서서히 질식하게 된다. 온 몸은 경련을 일으키고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게 된다. 숨을 쉬려면 몸을 위로 밀어 올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다리에 힘을 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신경에 전해져오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게 된다. 호흡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면 ‘호흡 산독증’(형액 속에 있는 이산화탄소가 탄산으로 분해되면서 혈액의 산성이 증가하는 현상)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기 시작하다가 결국 심장이 멈추게 된다. 강도들의 다리뼈를 꺾었다고 한 것은 상체를 들어올리지 못하게 함으로 빨리 죽게 만드는 확실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창으로 (오른쪽)옆구리를 찔렀다.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물과 피가 나왔다고 했다. 창이 오른쪽 폐를 관통하고 심장을 꿰뚫고 나서 빼게 되면 물처럼 보이는 액체(심장과 폐에 고인 액체를 심낭삼출과 늑막삼출이라고 함)가 흘러나온다.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의사들은 잘 안다.

 

자, 이 고통이 얼마나 실제적인 고통인지 이제 알겠는가?

오전 아홉 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힌 채 세 시간이 지나자 대낮이 갑자기 어두움으로 덮이게 되었다. 이때 예수님은 자신을 실제로 버리신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어둠 속에서 세 시간이 지나자 심장박동을 급격히 빨라지고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예상하셨을 것이다. 이 6시간 동안 나무 위에서 예수님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관절과 중추신경을 통해 전달되는 고통, 계속되는 근육경련, 숨쉬기 어려운 질식상태, 숨을 쉬기 위해 몸을 들어올릴 때마다 이미 찢겨질 대로 찢겨진 등허리를 사정없이 비벼대는 거친 나무를 통해 전달되는 아픔, 손과 발에 전달되는 아픔, 그런 가운데서도 예수님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중요한 말씀을 남기시려고 애쓰고 계셨다. 최후에 남기는 말씀은 예수님 자신의 모든 생애와 가르침을 요약하기에 충분한 말씀이었다.

 

자, 예수님은 왜 이런 고통을 겪으셔야 했는가? 예수님은 무슨 죄 때문에 이런 고통을 당하셔야 했는가? 무슨 잘못을 범하셨는가?

-우선 예수님이 이런 고통을 당하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참 사람’이심을 사실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오, 참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시다. 예수님께서 인간이 겪는 모든 고통과 아픔을 겪으셔야 했는가? 우리를 진정으로 이해하시기 위해서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네가 안고 있는 고민과 문제들을 다 알고 있다. 나는 네가 어떤 고통을 가지고 있는지 다 이해한다. 고통받는 모든 인생들아, 다 내게로 오라.” 우리가 예수님께로 나아가면 예수님이 내 고통을 덜어주시는 것을 체험하는가? 아니다. 나를 대신하여, 나를 위하여, 나 때문에 고통 당하신 예수님 자신의 상처난 자국들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몸에 난 수많은 상처들을 바라보면서 차마 눈을 뜨지 못하게 될 것이다. // 그리고 내가 당하고 있는 상처와 아픔과 고통들은 면류관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나의 상처와 나의 고통만이 아닌 주님의 상처와 주님의 고통으로 여겨질 것이며, 이것은 무한한 영광으로 여겨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주님의 방법이다. (ex. 산헤드린 공회에서 매를 맞고 나오는 사도들의 표정을 본적이 있는가? 그들은 매우 황홀한 표정이었다.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는 자만이 가지는 체험인 것이다.)

 

-예수님이 이런 고통을 겪으신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다.

오늘 본문 28절에,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라고 했다. 시편69:21에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으니”라고 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창세 전에 작정하신 온 인류를 위한 대 구속의 계획을 이루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고통스렀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에 기꺼이 따르신 것이었다.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이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좋고 싫음에 따라서 행동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에 따라서 행동해야 한다. 호(好)-불호(不好)가 아닌 의(義)-불의(不義)여야 한다. 설령 그것이 고통스럽더라도 주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따르기를 원하는가? 지금 십자가에서 주님은 참된 제자도의 본질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런 고통을 당하신 이유는 목마른 모든 사람들의 갈증을 채워주시기 위해서다.

눅16장에 나오는 지옥의 고통: 목마름의 고통.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소생하는 샘물이 되리라”(요4:13,14)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계22:17)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55:1)

- 오직 예수님만이 내 마음의 고통과 삶의 문제를 완벽하게 이해해주신다. 왜냐면 예수님께서 미리 경험해보셨기 때문이다.

ex.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토크쇼 진행자인 오프라 윈프리의 장점은 바로 이것이다. 문제를 지닌 자들을 진심으로 공감해준다는 것이다. 상담의 은사와 능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고통에서 나온다. 헨리 나우웬이 말한 대로 우리는 상처받은 그곳에서 ‘치유자’(wounded healer)로 부름 받는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후1:3~5)

- 이 시간도 십자가의 주님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부단히 애쓰는 수많은 현대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해, 배부르지 못할 것을 위해, 헛된 것을 위해 수고하는가?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사55:2,3)

 

※이유 없는 고통을 당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이 되면 고통이 사라지는가?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뜻 모를 고통을 당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1)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낮추어라. (2)그리스도의 고통을 묵상하라. (3)그리스도의 고통에 참여하는 것으로 믿고 참으면 나중에 하늘의 상급이 클 것이다. (4)고통 배후에 하나님의 선한 뜻과 섭리가 있다는 사실을 믿으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여섯 번째 말씀: “다 이루었다.”

-예수님의 삶은 성취, 성공의 삶: “(드디어 다) 끝냈다” “(이제 다) 해냈다”

※성공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무엇이 참된 성공이라고 생각하는가?

요17:4에,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라고 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 하라고 각자에게 주신 일을 이해하고 그 일을 이루어드리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다시 말해서 참된 소명이 참된 성공을 보장한다. 소명 없는 성공은 참된 성공이 아니다. 세상은 항상 남들과 비교해서 성공유무를 따진다. 그러나 참된 성공은 하나님의 소명과 비교해서 따져보아야 한다. 성공하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나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의 소망을 발견해야 한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 오셨는가? 예수님의 소명이 무엇인가?

(1)우선, 기록된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는 것이다:

1.여자의 후손으로, 2.베들레헴에서, 3.임마누엘이라, 4.애굽에서 피난살이를 하심, 5.나귀새끼를 타고 입성, 6.나무에 달리게 될 것을, 7.범죄자 중 하나로 간주될 것을, 8.죄인들을 위해 용서를 빌 것을, 9.“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칠 것을, 10.우슬초로 마실 것을, 11.부자의 무덤에 들어갈 것을, 12.그 몸이 썩지 않고 다시 살아날 것을(시16:10;118:17), 13.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될 것을, 등등. 구약성경은 예수님의 출생장소, 출생시기, 출생가계, 출생방식, 삶의 방식, 죽음의 방식, 부활 등에 대해 48개 이상의 중요한 예언들을 가지고 있다. 구약성경과 예수님의 삶을 진지하게 비교해보면서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하는 유대인들이 지금도 많이 있다.

 

-잘 생각해 보라. 역사상 예수님과 같은 분이 또 있는가?

자신의 출생과 삶과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많은 예언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이 또 있단 말인가? 예수님이 다른 어떤 인간과 달랐던 독특한 점이 바로 이 점이다. 그 어느 누가 이러한 독특성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그 어느 누가 이런 삶을 살았는가? 그 어느 누가 과연 자신이 예언을 성취하기 온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갔단 말인가? 그 어느 누가 이런 독특한 자의식을 가지고 살았단 말인가? 예수 그리스도 말고 또 있단 말인가? 없다!!

 

(2) 예수님이 오신 것은 율법을 성취하기 위함이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가지 말라. 폐하러 온 것 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5:17)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갈4:4,5)

율법을 범하고, 율법에 의해 저주받았고, 진노 아래 있던 자들을 대신하여 율법을 지키고, 율법에 의한 저주를 대신 받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심, 즉, 우리의 부채를 주님이 대신 떠맡으시고 다 지불하신 것이다.

 

(3)예수님이 오신 것은 구원계획을 성취하기 위함이다

주님이 다 이루신 구원에 내가 더 보탤 것이 있는가? 없다. 우리는 주님이 다 이루신 구원의 은혜를 거저 받을 뿐이다. 믿음으로 갈보리 언덕으로 올라가서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된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오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구원은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사로서, 그 앞에 아무도 자랑할 수 없다.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도무지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다.

 

-자, 참된 성공을 생각해보자.

예수님은 참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선언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만인이 저주를 퍼붓는 십자가상에서 이것을 선언하신다는 것이다. 이런 역설적인 삶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가장 실패한 듯한 삶의 현장 속에서 예수님은 가장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선언하시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성공적인 삶을 살고자 한다. 최소한 안정적인 삶을 살고자 한다. 그러나 진정한 성공은 무엇을 더 가지거나 남보다 더 이루었다는 데 있지 않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요17:4-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이루어 내가 이 땅에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매순간마다 따르며 사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실패했다고 자괴감에 빠져 있는 지체들이 여기 있는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외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담대한 선언을 곰곰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여러분이 만일 그분의 뜻을 따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면 여러분은 지금 세상 사람들이 저주를 퍼붓는 현장 속에 있다 할지라도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면 여러분 자신을 향한 주님의 뜻을 이루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성공하기 원한다면, 십자가에서 들리는 주님의 음성을 잘 들으라.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에 서서 요단강을 건너야 할 시점에 있을 때 “이제 끝났다”(It is finished),라고 선언하는 성공적인 인생들이 다 되기를 축원한다.

❋상황이나 감정을 생각하지 말라. 오직 하나님의 뜻만 생각하라!

 

일곱 번째 말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사람은 언제 어떻게 죽을 지 모른다. 그리고 죽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한번 정해진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 후에는 심판이 있을 것이다. 죽음을 잘 준비하는 인생이 참으로 멋있는 인생이다.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인생이 정말 멋있는 인생이다.

ex.여러 사람의 임종장면을 지켜보면서 나는 신앙의 위대한 힘을 느꼈다.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죽음을 두렴 없이 맞이한다는 것이다. 죽음을 겁내지 않는다고 말하더라도 신앙이 없으면 죽음 앞에서 천하장사라도 다들 벌벌 떨게 된다.

-예수님은 자신의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박동하고 있음을 느끼시면서 죽음의 그림자가 눈앞에 다가왔음을 직감하셨다. 보통 사람들은 죽음의 그림자가 눈앞에 드리울 때 절망의 늪지대로 한없이 빠져 들어가게 마련이다. 자, 죽음의 그림자가 바로 코앞에 이르렀을 때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남기신 위대한 말씀은 우리에게 이 절대적인 평안을 주는 참된 비결을 말해주고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절대적인 평안을 보여주신다.

앞에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절규하시던 때와는 정반대이다. 지금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시는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절대적인 신뢰와 확신을 보여주시는 말씀이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앞에서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절망적으로 부르짖을 수밖에 없으셨는데, 이제는 자신을 전적으로 위탁하는 절대적인 평안을 보여주신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만들었을까? 왜 앞에서는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하셨는데, 이제는 “부탁하나이다”라고 하실 수 있었는가? 앞에서는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지만 이제는 담대하게 “아버지”라 부르고 계시는가?

“다 이루었다”는 말씀 때문에 가능하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다 만족시키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순종하셨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는 맡기는 것만 남았다. 다 이루셨기 때문에 이제는 “나의 하나님”이 아니라 “아버지여”라고 담대히 부를 수 있었다.

 

-예수님의 삶은 전적으로 위탁하는 삶이었다. 예수님은 “아버지”에 대한 신뢰를 가지셨다.

ex.풍랑 속에서 주님이 편히 주무실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오직 아버지를 전적으로 신뢰하셨기 때문이다.

ex.광야에서 사단의 시험을 이기신 비결이 무엇인가? 오직 아버지를 전적으로 신뢰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언제나” 아버지를 신뢰하셨다.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가운데서도 아버지를 신뢰하신다. 예수님의 삶의 가장 큰 특징은 아버지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나아가는 것이었다. 힘들 때나, 문제를 만날 때나, 고통을 당할 때에도, 예수님은 언제나 아버지를 신뢰하셨다. 아버지의 약속과 능력과 성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내게 어떤 분인지 아는 지식만큼 그분을 신뢰할 수 있게 된다. ex. 다윗: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주께서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구체적으로 예수님은 아버지의 약속을 신뢰하였다.

영원 전부터 가지신 구속의 언약을 신뢰하심

※신앙생활하다가 잘 흔들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말씀이 아니라 감정이나 자신의 생각에 닻을 내리기 때문이다. 감정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성경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

ex. 어떤 청년이 무디 목사님을 찾아왔다. “목사님, 저는 확신이 없습니다. 도와주세요” 요5:24을 읽어주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자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습니까? yes. “그런데 영생을 얻은 것을 확신합니까?” well “다시 읽어보세요” well “지금 누가 약속하고 있지요?” God! “그런데 확신이 없어요?” well “청년, 당신이 뭐야. 하나님이 하신다면 하는 거지” 청년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이제 알겠어요. 하나님이 영생을 얻었다고 말씀하시니까 제가 얻었군요” “맞았어 청년” 이 청년이 나중에 무디 목사님의 후계자가 되었고 무디신학교의 교장이 된 윌버 체프먼이란 목사님의 간증이다.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할 때 삶은 흔들린다. 좌초된다.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 때 믿음의 닻을 감정이나 상황이 아니라 영원히 신실하신 그분의 말씀에 내려야 한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보호를 신뢰하셨다.

ex.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한 사단의 말을 기억하는가? “기록되었으되,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였느니라”

ex.복음 들고 세상으로 파송되는 제자들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아신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기억하는가?

“너희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10:29,31)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마10:28)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절망의 나락 끝자리에 섰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감정과 상황을 넘어 하나님을 신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➀먼저, 자신의 지혜와 명철을 버려라.

➁죽기 아니면 살기로 주님을 붙잡으라. 죽으면 죽으리라는 용기를 가져라.

➂하나님의 섭리와 지혜를 믿으라.

➃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으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지 말라.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잠3:5,7,8)

하나님 앞에서 자기 지혜를 버리고 미련하게 되는 것이 지혜를 얻는 비결이다.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고전3:18)

 

-삶이 절망의 늪에 빠져서 헤매고 있는가?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 함께 할 것이며, 네가 강을 건널 때 함께 할 것”이란 복된 말씀을 믿는가?

※요즘 취업난과 실업률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대학생들 중에서 노이로제와 우울증으로 고생하면서 정신과를 찾아 상담을 받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점점 커져만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내일일에 대해 걱정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기억하기 바란다. 그런 다음에, 여러분이 겪는 그 어떤 절망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겪으신 절망보다 크지 않을 것이다. 에수님의 말씀을 자세히 들어 보라. 그러면 아버지를 신뢰할 힘을 얻을 것이다. 나보다 훨씬 크시고 힘이 많으시고 지혜가 높으신 그분께 내 영혼을 부탁하라.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인터넷 조사에 의하면, 가장 행복한 세대가 10대, 가장 불안을 느끼는 세대가 20대,라고 한다. 여러분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온갖 염려와 근심이 여러분을 엄습해올 것이다. 그때를 위해 지금 십자가의 말씀으로 자신을 든든히 무장하라!

결론

 

우리 자신과 관계된 큰 문제들이 세 가지 있다.

(1)내가 지금 겪는 이 뜻 모를 고통이 왜 내게 와서 나를 힘들게 하는가?

아무도 내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 현실, 왜 당하는 지도 잘 모르고 당하는 이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고통들.... 아무리 크고 힘들더라도 그것을 가지고 갈보리로 나아오기 바란다. 십자가 앞에 내려놓기 바란다. 그리고 “내가 목마르다”고 절규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자세히 들어 보라. 그분의 음성을 듣는 순간 여러분의 슬픔과 고통은 환희의 면류관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2)내가 지금 실패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나는 과연 성공할 것인가? 성공 실패의 노이로제에 힘들어하는 자들이 있는가?

역시 십자가 앞에 와서 주님의 음성을 들어 보라. 내가 해야 할 일을 주님이 다 이루셨다! 그분의 음성을 자세히 들어 보라. 그러면 내가 어떤 자리에 있더라도 “나는 성공자다” “나는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게 될 것이다.

 

(3)내가 지금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으며 이제 숨이 막 넘어갈 시점에 와 있는가?

그렇다면 역시 갈보리 언덕으로 올라 오라. 와서 못 박히신 주님 발 앞에 엎드려 주님의 음성을 들어 보라. 하나님 아버지를 전적으로 신뢰하신 주님의 마지막 외침소리를 들어 보라. 그러면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며 그분께 자신의 온 몸과 영혼을 맡길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고백할 것이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ex. 1704년 독일 벤자민 슈몰크 목사님의 삶 속에서 일어났던 일을 소개하고 마치고자 한다. 지방으로 순회전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집은 불타서 잿더미가 되고 말았고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은 불에 타 죽고 말았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 앞에서 슈몰크 목사님은 다음과 같은 시로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한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인도 하시고 날 주관 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찬송431장)

 

이 모든 일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이방인 백부장의 고백을 듣는가?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다른 복음서에는 “진실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했다. 십자가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것이다. 당신이 하나님의 예정하신 백성, 염소가 아닌 양이라면 그렇게 만응할 것이다.

구경군들의 반응을 보는가? “다 가슴을 두드리며 돌아가고”(눅23:48)

십자가를 지켜본 여러분의 반응은 무엇인가?

요약

<첫째날>

①용서하라: 비웃는 자들, 못박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자신에게 상처 주는 사람들과의 관계

②구원 받으라: 욕하는 강도, 회개하는 강도 ==낙원(주님)과의 관계

<둘째날>

③부모를 섬겨라: 어머니 ==부모님과의 관계

④하늘의 부모를 섬겨라: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영의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아픔 ==하나님과의 관계

<셋째날>

⑤고통을 참으라: 목마르다! ==내 자신의 문제와 고통과의 관계

⑥성공하라: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라. ==참된 성공과 삶의 목표와의 관계

⑦절망의 나락 끝에 섰을 때 맡겨라: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절망 속에서 믿음을 가지는 비결

가상칠언의 음성들이 나와 여러분의 마음속에 평생토록 메아리쳐오기를 진심으로 축원한다.

 

찬송하기

①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② 141장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기도하기

(1) 주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사, 주의 나라 임할 때 나를 기억하소서.

(2)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내 고통, 내 삶, 내 문제를 아버지 손에 위탁하는 기도를 드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