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묵상

행복에 관하여

등불지기 2012. 8. 28. 17:45

 

 

행복에 관하여

 

행복happiness이란 무엇일까요? 행복하게 사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무엇이 사람으로 하여금 행복하게 느끼게 만드는 것일까요? 나는 행복한 사람일까요? 오늘 나의 삶은 행복한가요? 이런 물음에 관하여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행복의 정의

먼저 행복이 도대체 무엇인지 정의를 내려야겠지요. 제가 생각하는 행복happiness의 정의는 '자유에의 확신'conviction for freedom입니다. 내가 행복하다고 느낀다는 것은 내가 자유인이란 사실을 깨닫을 때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 무엇도 나를 얽어 맬 수 없는 존재, 나는 모든 속박에서 온전히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확신입니다. 온전히 자유로운 존재는 살아계신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당신의 이름을 밝히신 하나님 한 분만이 가장, 그리고 유일하게 행복한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적으로 자유로우시므로 절대적으로 행복한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유한한 자원을 가진 인간이, 여러 가지 속박을 떨쳐버릴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유한하기 때문에 인간은 불행할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 연결되어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은 처음부터 유한한 존재로 지음받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영적인 존재로 지으셨고, 하나님을 닮을 수 있는 가능성의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신성에 참여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사라져버리는 동식물과 달리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인류의 타락과 죄는 영생할 수 있는 인간의 무한한 잠재능력을 닫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죄는 인류에게불행을 가져다주는 근원적인 바이러스입니다. 죄는 무한하신 하나님과 단절시켜버리는 무서운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죄문제를 처리하지 않는 한 사람은 결코 참된 행복에 이를 수 없습니다. 자신이 행복하다고 말할지라도 그것은 거짓이요 위선이요 헛된 꿈과 같은 것입니다. 죄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가야 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문제를 처리하고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무한하신 하나님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원에 연결되어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존재만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사고방식까지 바뀌지 않는 한 우리는 참된 행복을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영적인 존재가 되어라.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고전3:4)"

신약성경에서 특히 바울의 서신에서 '영'과 '육신'이란 단어를 사용할 때는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살아가는 죄인들의 사고방식과 삶의 모습에서 구원받아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살아가는 자유인의 모습과 여전히 죄의 굴레에 속박당한 채로 살아가는 죄수의 모습을 대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는 것이 쉬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라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보다 지식과 구변과 은사에 있어 풍성한 교회였지만 사도 바울의 눈에 비친 고린도교회는 영적인 존재가 되지 못한 교회, 아직도 육신에 속한 교회, 육적인 굴레에 속박당하는 교회였습니다. 왜냐면 "나는 누구 편이다" "나는 아무게가 좋다, 싫다"는 식으로 말을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들은 영적인 지식과 은사가 풍성하고 영적인 것에 대해 유창하게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것들이 영적인 존재가 되었음을 증명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관점에서, 아니 하나님의 관점에서 영적인 존재는 온전히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그 풍성한 지식과 구변과 은사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자유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영적인 존재가 되는 것은 온전한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행복의 비결은 육의 사람에서 벗어나 영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육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영의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여전히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바둥거리는 사람의 모습을 벗어나 무한한 자원을 가지고 살아가는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죽음에 초연하여라.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1:21)"

죄는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죄문제를 극복한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습니다.죽음 앞에서도 초연할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자유인이요, 참된 행복을 맛보며 살 수 있습니다. 삶에 대한 집착이 근심 걱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참된 행복을 맛보려면 삶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계속 반복하여 말하는 것이지만 행복의 길은 자유인이 되는 데 있습니다. 자유인으로 살아갈 때 참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불행은 속박과 굴레입니다. 반대로 행복은 해방과 자유입니다. 사람이 갖고 있는 최고의 굴레가 있다면 단연 그것은 죽음의 굴레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죽음의 멍에를 깨뜨리지 못한 사람의 특징은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것입니다. 삶에 대한 집착과 애착이 강한 사람은 참된 행복을 갈망하지만 결코 맛보지 못할 것입니다. 삶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만 참된 행복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록 감옥에 갇혀 있을지라도 그는 진정한 자유인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그의 영혼을 속박할 수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행복은 틀림없이 빌립보 교회를 행복하게 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도 행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가 죽음에 대해 초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죽음에 초연할 수 있었던 것은, 삶에 대해 집착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사실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도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하는 인생은 필연적으로 삶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히게 되고, 나아가서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게 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온갖 걱정 근심에 사로잡히게 만듭니다. 나는 삶의 집착에서 자유로운 존재입니까? 나는 죽음도 유익하다고 여깁니까? "나는 이만하면 충분히 살았어!"I have lived through much라고 고백할 수 있나요? 진정한 행복을 맛보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죽음을 유익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떻게요?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는 진리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며 섬기며 살라.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1:23,24)"

행복은 내가 남보다 잘 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행복은 남보다 더 많이 가지는 데 있지 않습니다. 남보다 더 잘 되고, 더 많이 가질수록 또 다른 근심과 걱정이 방문하게 될 것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행복은 '영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고,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혼자서 산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남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렇게 설명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남에게 줌으로써 그 무엇인가에 얽매여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남을 섬김으로써 내가 자유인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기가 안 좋다, 궁핍하다, 어렵다고 할수록 남에게 베풂으로써 우리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사랑받음으로써 행복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참된 행복이 아닙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서 받음으로써 행복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참 행복이 아닙니다. 왜냐면 받을 때 잠시 기분이 좋겠지만 받는 순간에 앞으로 받지 못하게 되면 어떻하나? 라고 즉시 불안해지기 때문이니까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잠시 행복해질 수 있겠지만 사랑해주는 사람이 변심을 하면 어떡하나? 라고 즉시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반대로 사랑하고 베풀고 나눠줌으로써 우리는 자유인이 됩니다. 내가 사랑하고 섬김으로써 자유인이 되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제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예비 신랑신부는 행복감에 젖어 있을 것입니다. 가정을 이루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고 섬길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찾아옵니다. 나를 사랑해줄 사람 때문에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금세 실망과 분노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만일 결혼하지 않고 혼자서 살기로 했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하며 섬겨야 할 사람들 곁에서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하며 섬길 사람들 때문에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와 의미도 있음을 알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죽음도 유익하다'고 했지만 죽음만이  유익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살아 있음도 유익한데 단 사랑을 베풀고, 섬김을 베풀 수 있다는 점에서 살아있음이 유이하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야 하는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악착같이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사랑하고 섬겨야 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을 느끼며 살기 원한다면 사랑하며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자신을 고립시켜라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1:18)

모든 불행은 남들과 비교하고 경쟁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빌립보 교회 안에 사울 바울을 시기하고 경쟁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능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자신들이 바울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가진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바울의 태도와 관점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그들의 게임에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철저히 자신을 그들의 게임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저는 그렇게 자신을 철저히 고립시키는 바울의 모습에서 행복의 비결을 배웁니다. 남들이 자신을 비교하고 시기하고 경쟁대상으로 여길지 몰라도 우리는 그러한 게임의 틀속에 집어넣지 않도록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른 사람이 설정해놓은 게임의 틀 속에 자신을 집어넣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이길 것인가, 질 것인가, 누가 차지할 것인가, 빼앗길 것인가..자존심과 경쟁심과 싸우려는 욕망을 내려놓지 않으면 우리는 참된 행복의 길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역설적으로 행복의 길은 게임판에서 자기 자신을 탈출시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설정해놓은 게임의 룰에서 빠져나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입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남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지는 것이 싫어서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들어오시자 내 인생에서 게임의 룰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내가 1등을 하고 못하고는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더 이상 고민해야 할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공부하는 것을 통해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할 것인지가 목표와 목적이 되어버렸을 때 우등생 뱃지를 차지하려고 혹은 장학금을 받으려고 서로 경쟁하는 게임판에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공부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교수들이 성적을 잘 주던 잘 주지 않든 저는 공부하는 것이 무척 행복했습니다. 남들은 성적을 위해 영어단어를 외웠지만 저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영어단어를 외웠을 때 영어공부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행복해지려면 경쟁의 구도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는 게임판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자신을 고립시킬 때 행복은 시작합니다.

 

외로움을 즐겨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저는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 사도의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얼마나 고독하고 적적하고 심심했을까요? 아닙니다. 제가 그려보는 사도 바울의 모습은 '혼자서 잘 노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행복한 사람들은 혼자서 잘 노는 사람들입니다. 고득을 즐기는 사람,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 혼자 있을 때 더욱 신나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해보십시오. 혼자 있을 때 늘 불안해합니다. 고득을 견디지 못하여 합니다. 혼자 있을 때 힘들어 합니다. 선교지에서 살아가는 것은 참 외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외로움을 즐길 줄 안다면 선교지에서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굉장한 행복이 됩니다. 그러나 외로움을 즐길 줄 모르면 선교지에 나오는 것이 고통이요 불행이 될 것입니다. 선교사가 되려는 분들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신을 왕따시킬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혼자서 잘 놀 줄 알아야 합니다. 선교사게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정글속에서 살아가면서 행복을 누리려면 자신을 고립시키고, 자신을 고독하게 만들고, 외로움을 즐기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거니는 것이 처음에는 낯설고 힘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광야는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는 지성소입니다. 분주한 삶에서 벗어나 종종 적막하고 고독한 곳에 자신을 두어야 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혼자서 잘 노는 사람입니다.혼자서 잘 노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습니다. 혼자서 잘 지내는 사람이 아내나 남편이나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습니다. 혼자 있다는 것은 단지 공간적인 문제만이 아닙니다. 가장 자유로운 사람은 혼자 있을 때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의존성, 외로움 등은 우리 삶에 불행을 가져다줍니다. 옆에 누군가 없을 때 불안하고,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이 몰려온다면 아직도 참된 행복의 문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걱정 근심을 처리하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리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행복하다는 것은 걱정 근심에서 자유로운 상태를 의미합니다. 인생이란 바다에서는 걱정 근심의 파도는 항상 밀려옵니다. 근심과 걱정이 전혀 없이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정신병자에게 해당될 것입니다. 정신병자는 전혀 근심과 걱정이 없습니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자신을 닫아버린 것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근심 걱정에 자신의 눈과 귀를 닫아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 그때마다 밀려오는 근심 걱정의 파도를 처리해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의도적으로 무시해버립니다. 또 어떤 사람은 도피하여 도망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맡겨버리라"고 말합니다. 근심 걱정의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맡겨버리는 것입니다. 염려와 근심을 떠 안고, 붙들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은 근심 걱정이란 짐보따리를 무한대로 떠맡길 수 있는 구세주가 곁에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ㅓ면 어떻게 맡길 것인가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일단 염려하지 않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나의 문제로 떠안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결재해야 할 서류를 보류함에 넣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주님께 가는 것입니다.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가져갈 때는 내가 상사인 체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명령하듯이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겸손과 경외하는 마음을 유지해야 합니다. 마치 부하 직원이 결재서류를 상사의 책상에 집어던지듯이 기도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기도와" 기도는 인격적인 대화입니다. 인격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간구로" 때로는 호소할 때가 있습니다. 간절히 간청하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감사함으로" 우리는 모든 염려와 근심거리로 인해서 성장할 수 있고, 무엇인가 영적인 교훈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문제는 우리를 강하게 해주는 스승과 같은 것입니다. "너희 구할 것을" 우리가 정확히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겸손히 표현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필요로 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표현해야 합니다. 그러면 언제까지 기도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평강이 내 생각과 마음을 덮을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사람의 생각과 논리와 추론으로는 불가능한 하나님의 평강이 내 마음을 덮을 때까지 하나님 앞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제가 오래 전 신대원에 입학할 때가 생각납니다. 시험을 치고 면접을 할 때였는데 교수님이 입학금이나 학비를 어떻게 감당할거냐고 물으셨습니다. 면접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데 갑자기 근심과 걱정의 파도가 밀려오기 시작하더니 밥이 넘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걱정 근심에 눌리니 식욕이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자연스럽게 3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하나님께 아뢸 수 있었습니다. 3일째가 되는 날 주님의 평강이 내 마음을 덮게 되었습니다. 내 상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입학금을 낼 형편은 못되었습니다. 형편은 그대로인데 내 마음은 이상하게도 평온하였습니다. 이것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입니다. 은행계좌에 갑자기 돈이 들어와서 안심하고 안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은행계좌에는 입학금이 여전히 없었는데도 제 마음에 가득했던 불안과 초조는 온데 없이 사라졌고 풍랑은 잠잠해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근심 걱정의 파도를 잠잠하게 하실 분이 우리와 함께 항해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의 바다에서 걱정 근심의 격랑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풍랑을 늘 잠재우시는 주님이 함께 하신다면 풍랑 속에서도 우리는 안심할 수 있습니다. 웃을 수 있습니다. 풍랑이 이는 가운데서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극복하면서 소원의 항구로 전진해나가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일이 해야만 하는 일이 되게 하라

행복한 것은 다름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이란 생각이 들 때 우리는 불행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만 하는 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싶은 일로 바꾸려고 노력합니다. 행복이란 반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해야만 하는 일로 바꾸는데 있습니다. 먼저 자신이 진정 무엇을 하고 싶은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하고 싶은 일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서 어린 시절로 시간여행을 갈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이 어렸을 때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대부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셔들일 때 내 삶의 주인이 되신 그분이 하시는 일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내가 해야만 하는 일로 바꾸시는 일을 하십니다. 내가 어렸을 때 그토록 하고 싶었던 그 일을 주님은 아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일을 주님 나라 위하여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로 승화시켜주십니다. 저는 어릴 적 호기심이 많았던 아이였습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심으로 가득 찬 아이였습니다. 집을 나가면 늘 새로운 무엇인가를 찾아 길을 떠났다가 길을 잃어버리곤 하였습니다. 저의 어머님은 제가 길을 잃어버리고 집을 나갈까봐 늘 노심초사하셨습니다. 수 십 년의 세월이 흘러 선교사가 되었을 때 넓은 세상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해만 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내가 학 싶었던 일을 해야만 하는 일이 될 때 행복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가장 잘 하는 일이 되게 하라.

사람들이 불행을 느끼는 것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잘 하지 못하는 일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행복은 하고 싶은 일이 가장 잘 하는 일이 될 때입니다. 자신이 잘 못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자신이 무엇을 가장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 일 역시 주님이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일을 정말 잘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주님이 도와주셨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어쩌면 나이가 한참 들 때까지도 모를 수 있습니다. 왜냐면 배우고 익히고 연습하는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선교지에서 살면서 제가 가장 잘 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신학훈련을 받지 못한 현지인 목사들을 신학과 성경을 무료로 가르쳐주는 일입니다. 흑인 목회자들을 만나면 그냥 신이 납니다. 그들에게 무언가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납니다. 은과 금은 줄 수 없지만 주님이 거저 제게 주신 것을 거저 나눠줄 수 있다는 것에 신이 납니다. 제가 한국에서 20년간 교역자생활을 하면서 경혐했던 것, 사역하면서 배웠던 것을 현지인들과 나눌 때는 행복합니다. 왜냐면 제가 하고 싶은 일이 곧 이곳에서 가장 잘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현지인들에게 성경원어를 가르쳐주는 것을 정말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프리카에서 성경원어에 관심을 가지는 현지인을 만나는 것이란 정말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이 가장 잘 하는 일이 될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 일이 현지에서 꼭 필요한 일이고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정말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목회자들이 해야 할 일이 이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노래를 부르면서 행복함을 느낄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주일학교 교사를 시키면 불행을 느끼며 사역할 것입니다. 각 사람이 각자 받은 은사에 따라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의 비결입니다.

 

독서와 여행을 취미로 삼으라.

독서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생각과 경험을 엿보는 것입니다. 독서를 즐기는 것은 남의 생각과 경험을 엿보는 것을 즐기는 것입니다. 독서를 함으로써 우리의 생각에서 벗어나 남의 생각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독서를 통하여 우리의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돕니다. 자기만의 생각과 관점에 묶여 있을 때 우리는 '행복'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행복은 자유에 대한 확신입니다. 남의 생각을 엿보고, 남의 경험을 구경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어느 정도 자유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가까이 하고 책 읽기를 즐기는 것은 행복한 삶을 위해 아주 좋은 연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독서가 사람에게 해로운 것도 있는데 그것은 남의 생각이 자신의 생각인 양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남의 경험이 자신의 경험인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 것입니다. 독서가 좋은 취미이긴 하지만 때로운 절제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독서와 비슷한 것이 여행입니다. 우리가 여행을 하면 다른 사람, 낯선 문화, 낯선 지역을 엿보는 경험을 통해 내가 자유인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독서와 여행은 행복을 느끼려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괜찮은 취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선교지에 나오기 전에 3천 여 권의 소장도서를 다 기증하였습니다. 선교지에서 그렇게 독서를 많이 하는 편지 못됩ㄴ다만 여행을 자주 할 기회가 많습니다. 사역을 위해 종종 수 백 키로를 운전해가야 하는 일이 많습니다. 여행을 하면 내가 자유인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다른 사람의 삶과 문화에 들어갔다 나오는 경험은 언제나 제게 행복감을 줍니다. 우리는 비록 돈과 시간의 제약으로 인해 자주 여행을 하지 못할지라도 언제나 세계를 가슴에 품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틈만 나면 지구촌 소식에 눈과 귀를 집중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사를 우리의 문제와 시야에 한정시키지 말고 온 세상을 다 품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시야를 넓히면 넓힐수록 우리는 더 행복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자유로워질수록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가진 것에 자족하며, 나누어라.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6:6-8)"

자족하는 마음이란 주어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불행은 더 가지려고 하는 욕심 때문에 생깁니다.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 진정한 행복의 문에 이를 수 있습니다. [소유나 존재냐]라는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소유지향적인 사람은 결코 행복의 맛을 알 수 없습니다. 행복은 존재재향적인 사람의 몫입니다. 소유의 문제에 대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행복한 신앙생활의 기초가 되는 말씀입니다.

첫째,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입니다.(대상29:11)

둘째, 내가 가진 것은 다 주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셋째, 내가 가진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것입니다.

넷째, 내가 가진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져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섯째,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것은 모든 것을 갖고 계시는 주님께 연결되어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자족하는 마음이란 무한하신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다는 부요한 마음입니다.

일곱째, 내가 가진 것은 일시적인 것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덟째,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베풀고 줌으로써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아홉째, 내가 가진 것을 줌으로써 우리는 영원한 것을 얻는 것입니다.

열째, 내가 가진 것은 씨앗과 같은 것으로 심어야 하는 것이지 쌓아두어야 할 것아 아닙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자원을 소유한 마음, 소유가 아닌 존재로 기뻐할 줄 아는 마음, 남과 비교하지 않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기뻐할 줄 아는 마음,  주어진 것이 아무리 작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적더라도 주님께 감사할 줄 아는 마음, 아무리 적더라도 큰 열매를 바라보며 즐거운 마음으로 심을 줄 아는 농부의 마음, 사라질 것을 가지고 사라지지 않을 친구를 얻는 즐거움, 사랑하고 섬김으로서 자신이 자유인이란 사실을 만끽할 줄 아는 마음, 나눔으로써 더 풍성해지는 삶의 비결을 발견한 즐거움...행복한 사람이 발견한 비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ㅇ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어디서 살든, 어떤 모양으로 살든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이 아니라 자유인으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무슨 수를 쓰든 우리가 받은 자유를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행복이란 자유에의 확신입니다.

Happiness lies in conviction for freedom!!

행복은 자유를 위해 분투할 때 찾아오는 손님이요 선물입니다.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삶!! 그것이 행복한 삶입니다.

다들 행복하세요! ^^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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