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너무 배가 고팠습니다. 집안에 먹거리라곤 하나도 없었습니다. 작은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그래서 나의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나의 필요를 아뢰며 간절히 기도하는 중 이런 작은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종이에다가 네가 필요로하는 것을 다 기록해보아라." 그래서 종이를 가져다가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다 적었습니다. 그랬더니 또 음성이 들려오기를 "가까운 수퍼마켓에 가서 트롤리에다가 그것을 가득 담아라." 일단 순종하여 매장에 들어가 트롤리에 물건을 담기 시작했으나 물건을 담을수록 불안과 걱정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돈은 한 푼도 없었고 누군가 대신하여 지불해줄 사람이 나타날 줄 기대했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트롤리에 식료품을 가득 실은 채로 속으로 다시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세미한 음성이 들려오기를 "7번 계산대로 가라." 순종하는 마음으로 7번 계산대로 갔습니다. 그리고 계산하기 위하여 물건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그때 안내방송이 나오기를 "고객 여러분, 오늘은 저희 가게가 오픈한지 7주년입니다. 그래서 깜짝기념 이벤트로서 방금 7번 계산대에 계신 고객분에게는 저희가 돈을 받지 않겠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이런 간증에 열광적으로 반응합니다. 교회들마다 이런 간증 하나에 분위기가 업Up되고 목회자는 이런 간증이야기에 교회가 부흥한다고 자랑합니다. 그래서 '기적'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선교할 때 이 문제와 관련하여 어떤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습니다.
1. 아프리카는 기적이 필요한 땅이다.
우선 아프리카에서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삶은 기적이 필요한 삶입니다. 극심한 가난으로 하루 하루 생존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에이즈가 창궐하여 사람들마다 생사의 기로에 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자연은 세계 최고의 자원을 자랑하고 있지만 아프리카의 삶은 기적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아프리카는 기적을 추구하는 신앙이 보편화되어 있다.
그래서 아프리카 흑인들은 자연스럽게 기적을 추구하는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단지 그들의 삶의 상황이나 환경만이 아니라 오래 세월 동안 그들은 마술과 주술에 노출되어 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프리카의 마을마다 '무당'(그들의 언어로는 쌍고마라고 부릅니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만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교회"는 말이 교회이지 실제로는 목회자가 무당 노릇을 하기도 합니다. 목사들의 설교는 더 이상 설교가 아니라 점쟁이의 그것가 같고, 예배는 더 이상 하나님을 높이는데 관심이 없고 자기들의 필요를 채우는 '기적'을 만들어내는데 관심이 있으며, 복음을 제시하는데는 무지하며 심지어 물이나 기름 혹은 손수건을 팔아서 돈을 벌기도 합니다. 그래도 "점잖은" 교회들임에도 불구하고 기도를 받기 위해 강단으로 초청하는 일은 보편화되어 있고, 아프리카 목회자들은 기도할 때 넘어뜨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밀어버리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심지어 한국 선교사들 중에서도 왜 자기들이 기도할 때는 현지인들이 뒤로 넘어지지 않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기도 합니다. 현지인들만 아니라 선교사들조차도 기적을 추구하는 경향이 두드러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그럼에도 말씀을 추구하는 신앙이 되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 저의 소신입니다. 비록 그들의 환경과 삶이 기적이 절실하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가진 신앙이 기적을 추구하는 신앙 miracle-oriented belief, 기적을 사모하는 삶 miracle-driven life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의 삶과 신앙을 말씀을 추구하는 신앙 message-oriented belief, 말씀을 묵상하는 삶으로 유도하며 격려해야한다고 믿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여전히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여전히 젖을 먹는 어린아이의 단계에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4. 기적을 추구하는 신앙은 '영적인 음란'이다.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할지라도 그 신앙의 동기가 기적을 체험하는 것이라면, 교회 다니는 목적이 내 필요를 채우시는 주님의 기적을 맛보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일종의 '음란'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마태12:39)"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많은 기적을 행하셨고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목격하기 위해 예수님을 따르셨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신 이유는 사람들이 기적을 보여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적을 추구하는 자들로부터 자신을 숨기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 우리의 목표와 목적은 기적이 아니라 말씀이다.
기적을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기적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아니 기적은 우리 삶에 일상적인 경험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기적을 추구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기적은 말씀에 단지 순종함으로써 따르는 열매여야 합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라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ㅈ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5-18)" 기적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하고 열어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기적을 추구하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뜻은 우리가 말씀을 전하는 것이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6. 어린아이로 내버려둘 것인가, 아니면 성장하게 할 것인가?
모태신앙으로 태어나고 자라났던 저는 14살때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신앙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기적을 체험했다는 간증을 들을 때마다 제 가슴은 뛰고 흥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적에 관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기도 했습니다. 제게 신앙의 멘토이셨던 외할머니께서는 수많은 기적과 신비를 체험한 분이셨지만 제가 듣기를 좋아하는 그런 이야기를 주저하셨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에서야 이해할 것 같습니다. 만일 제가 듣기를 좋아하는 기적 이야기만 들려주셨다면 저는 아직도 어린아이의 단계에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아프리카 선교사들의 도전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현지인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들이 추구하는 기적에 초점을 맞추어 사역을 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생각하는 그런 '부흥'을 가져올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그들을 어린아이의 상태로 머물러 두게 하는 것입니다.
7. 말씀을 묵상하게 해야 한다.
아프리카 선교에 있어 말씀묵상훈련은 앞으로 모든 선교사들에게 큰 숙제가 될 것입니다. 기적을 추구하는 현지인들의 수준에서 사역을 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 많은 이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함으로 실망하고 떠나갈 것을 각오하고(요6:66참조) 말씀훈련을 시킬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 말씀훈련사역은 분명 인기가 없는 사역입니다. 사람들은 실망하고 떠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아프리카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사역일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말씀을 연구하고 또 말씀을 묵상하게 해야 합니다. 말씀이 내면화되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신학교 사역이 전부란 말이 아닙니다. 신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이 바로 '묵상훈련'입니다. 신학을 가르치고 성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가르칠 수 있을지 몰라고 말씀을 어떻게 내면화할 것인가를 가르치고 훈련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요 과제인 것입니다. 오늘날 신학교 커리큘럼에서도 '묵상훈련'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묵상훈련'은 아프리카 선교의 과제challenge가 될 것입니다.
8. 고기를 줄 것인가, 고기잡는 법을 가르칠 것인가?
때로는 구제사역도 필요하고, 때로는 치유사역도 필요하고, 때로는 기적도 필요합니다. 아프리카의 상황에서는 그러한 필요가 전부인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필요와 요구에 맞추어서 사역하면 많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을지 몰라고 아프리카를 진정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지금까지의 아프리카 선교였다면 이제는 그들에게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고 훈련하는 것이 앞으로의 선교과업이 되어야 합니다. 아프리카에 수많은 현지인 교단이 있지만 어느 교단도 자체적으로 신학교를 가지고 있지 않고, 목회자를 말씀으로 훈련하는 시스템이 없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진정한 선교란 다름 아니라 신학적 자립을 돕는 사역입니다. 신학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을 모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진정한 사역도 선교도 아니라고 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출석하고, 얼마나 많은 헌금을 내는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관건은 교인들이 신학적으로 자립했는가인 것입니다. 목회자의 거룩한 의무는 주어진 교인들에게 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고기를 잡도록 가르치고 훈련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학적 자립이야 말로 모든 목회자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