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교리

Slain in the Spirit 에 관한 교리적 평가

등불지기 2012. 10. 19. 23:20

 

 

 

What is Slain in the Spirit?

 

이 주제는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이곳 아프리카에서도 매우 민감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입니다.

 

 

제가 오래 전부터 이 주제에 관해 교리적으로 정리를 하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이제야 글을 쓰게 됩니다. 첫째는 이 문제가 아프리카 독립교단에서 보편적인 현상practice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많은 아프리카 선교사들조차 이 문제에 관련하여 교리적으로 혼란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Slain in the Spirit이란 falling in the Spirit 혹은 resting in the Spirit이라고도 하는데 '성령 안에서 넘어짐'이라고 일반적으로 번역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그냥 '넘어뜨림'throwing down 혹은 getting down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20세기 후반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으로서 오순절은사주의 집회에서 자주 목격되는 현상입니다. (저는 어릴적(70년대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부흥집회를 많이도 쫓아다녔는데 한번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빈야드집회와 토론토집회를 통해 본격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1994년 1월에 시작하여 Holy Laughte로 널리 알려진 토론토 블레싱 집회Toronto Blessing meeting에서부터 본격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 이 현상은 미국의 신유사역자인 캐더린 쿨만, 케네스 해긴, 고든 린세이, 데릭 프린스, 베니 힌, 라인하르트 본케, 등 많은 '부흥사'들의 전매특허와 같은 사역으로 여겨졌으며 이들 부흥사들의 활동에 의해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고, 지금도 '능력있는 사역자'의 표지로 여겨질 정도로 널리 시행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흑인교회들은 대부분 율법주의적이거나 아니면 오순절주의적인데 오순절주의적 경향의 아프리카 독립교단의 경우 주일예배시에 일반적인 순서로 여겨지고 있을 정도입니다. (사실 흑인교회만 아니라 상당수 백인교회 역시 넘어짐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성령의 은사와 능력에 대해 열려있고, 또 그렇게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심지어 아프리카로 파송되기 전에 3년간 YWAM에서 전임간사로 섬기면서 이러한 현상을 수없이 보아왔는데, 이곳 아프리카에 와서는 아프리카 흑인교회에서는 거의 일상적인 의식practice임을 보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저는 이런 일을 전혀 시도하고 있지 않을뿐만 아니라 이런 일을 시도하는 것을 매우 혐오하는 사람입니다.

 

 

 

 

얼마전 어느 한인 선교사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내가 만일 손을 얹고 기도하는데 만일 넘어지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한인 선교사 역시 사역하면서 손을 얹고 기도할 때 현지인들이 마구 쓰러지는 것을 보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많은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이 이런 유혹을 받고 있으리라 봅니다.

 

 

 

 

이 현상에 대해 명확하게 교리적으로 정리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기도원이나 은사집회나 수련회 등에서 이런 현상과 사역이 많이 있습니다. 손으로 이마를 터치했는데 이렇게 벌러덩 넘어져서 깊은 잠에 빠져드는 현상에 대해 교리적으로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현상에서 출발하지 말고 성경에서 출발하는 것이 건강하고 바람직한 방법입니다. 신구약 성경을 보면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압도되어 쓰러지는 모습을 몇 군데 찾아볼 수 있습니다. 'slain in the Spirit'을 중요한 사역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주로 인용하는 대표적인 일곱 개의 성경구절에서부터 시작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1) 삼하 19:24-"그가 또 그의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누웠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

He stripped offhis robes and also prophesie in Samuel's presence He lay that way ll that day and night. This is why people say, "Is Saul also among the prophets?"

 

(2) 대하5:14-"제사장들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Then the temple of the LORD was filled with a cloud, and the priests could not perform their service because of the cloud, for theglory of the LORD fille the temple of God.

 

 

(3) 단10:8-10-"그러므로 나만 홀로 있어서 이 큰 환상을 볼 때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으나 내가 그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의 음성을 들을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깊이 잠들었느니라. 한 손이 있어 나를어루만지기로 내가 떨었더니 그가 내 무릎과 손바닥이 땅에 닿게 일으키고"

So I was left alone, gazing at this great vision; I had no strength left, my face turned deathly pale and I was helpless. Then I heard him speaking, and as I listened to him, I fell into a deep sleep, my face to the ground. A hand touched me and set me trembling on my hands and knees.

 

 

(4) 마17:5,6-"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While he was still speaking, a bright cloud enveloped them, and a voice from the cloud said, "This is my Son, whom I love; with him I am well pleased. Listen to him!" When the disciples heard this, they fell facedown to the ground, terrifed.

 

 

(5) 요18:6-"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When Jesus said, "I am he," they drew back and fell to the ground.

 

 

(6) 행9:3,4-"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As he neared Damascus on his journey, suddenly a light from heaven flashed around him. He fell to the ground and heard a voice say to him, "Saul, Saul, why do you persecute me?"

 

 

(7) 계1:17-"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When I saw him, I fell at his feet as though dead. Then he placed his right hand on me and said: "Do not be afraid. I am the First and the Last."

 

 

위 구절들은 '넘어뜨리는 사역'(저는 이렇게 표현하기를 좋아합니다. 영어표현은 좀 더 과격하지요? slain이란 표현을 씁니다.)을 중요한 사역으로 여기는 소위 '능력자'들이 자신들의 사역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용하는 구절들입니다. 저는 위 구절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실제로 제가 현장에서 관찰한 것을 종합적으로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범주로 나누어서 비교한 것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첫째, 인위적인 행위가 있는가?

 

위의 성경구절들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성경이 분명히 넘어지는 현상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성경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런 현상을 유도하거나 일으키려는 의도를 보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넘어뜨리는 사역'을 하는 사람들은 안수한다든지 혹은 손가락을 튀긴다든지 혹은 입김을 분다든지, 아니면 앞으로 손을 뻗거나 정수리, 이마나 가슴에 갖다 대는 행동을 취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에서 넘어짐의 현상이 있을 때는 어떠한 인위적인 행동이나 제스추어가 개입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만이 원인cause인 반면에 오순절은사주의집회에서는 마치 최면술사의 그것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손가락을 튕긴다든지, 손을 내민다든지, 손을 얹는다든지, 팔을 휘젓는 등의 행위가 이런 현상으로 인도하는 일종의 신호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 목적이 무엇인가?

 

은사주의 집회에서는 '넘어짐'이 성령의 충만 혹은 심리적 육체적 치유를 가져다주거나 혹은 특별한 은사를 가져다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넘어짐의 현상이 있었을 때는 치유의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거나 혹은 성경을 기록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엎드러진 사람들 이야기 중에 치유를 목적으로 한 경우가 하나도 없습니다.

 

 

셋째, 방법이 무엇인가?

 

성경에서 넘어짐이 있을 때는 언제나 앞으로face forward 넘어지는 반면, 은사주의 집회에서 넘어짐이 있을 때는 언제나 뒤로 backward 넘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울왕의 경우는 다윗을 죽이려는 발걸음을 성령께서 강제적으로 막으신 것이기에 넘어짐의 범주에 넣을 수 없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은 은사주의 집회에서는 반드시 뒤에서 넘어질 때 붙들어주는 사람이 한 두 사람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성을 위해서는 가릴 수 있는 천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영광 앞에 '엎드러진 사람들'은 어느 누구의 부축이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18장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사람들이 뒤로 넘어지는 장면(혹은 뒤로 물러가 엎어지는 장면일 수 있음)이 있는데 이때 넘어진 사람들은 예수님을 붙잡으러 온 사람들이었지 은사주의 집회에서처럼 은사를 받기 위해 온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넘어진 사람들을 잘 보십시오. 그들은 뒤로 자빠진 fell backward 사람들이 아니라 앞으로 엎드러진 사람faced to the earth들이며, 어느 누구도 손을 대거나 혹은 손을 내밀어서 넘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넷째, 의식이 있는가?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압도되어 넘어질 때 두드러진 특징이 대부분 "또렷한 의식"이거나 혹은 "두려움"입니다. 반면 은사주의 집회에서 넘어짐이 있을 때는 의식을 잃거나 즉, 심하게 웃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때로는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요엘2:32절 말씀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의식을 순간적으로 잃고서 깊이 잠드는 것이 아니라 또렷한 의식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고, 소리를 심하게 지르는 것이 아니라 침묵에 잠기는 것이고, 심하게 웃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심히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다섯째, 변화가 있는가?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서 '넘어짐'의 결과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입니다. 사울왕의 경우 성령으로 인해 누워서 예언을 하게 되었지만 그의 인격과 삶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고, 그의 심령은 다윗을 향한 증오심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넘어짐도 아니요 누움도 아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에 압도되어 '엎어짐'을 경험했던 신약의 사울은 그 삶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오늘날 은사주의 집회에서 한 번의 터치로 '넘어지고' '자빠지고' '눕게 되고' '깊은 잠'을 자게 된 이들이 그 삶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물어야 합니다. 쓰러지고 넘어지고 자빠졌는데도 아무런 변화도 없다면, 회개의 열매도 맺지 못한다면, 다윗을 죽이려고 했던 사울왕이 경험했던 그것과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저는 한번도 누군가를 넘어뜨린 적도, 또한 자빠진 적도 없는데 제가 넘어진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관찰한 결과 '뒤로 벌러덩 넘어짐'을 경험했다고 그 삶에 특별한 변화가 있다거나 인격이 달라졌다거나 한 증거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넘어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신기하게 넘어졌다는 것 그 자체에 대해 신기해할 뿐이었습니다. 넘어짐을 경험한 분들에게 제가 물어보니 이상하게 힘이 빠져서 뒤로 넘어진 것 빼고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관찰하고 내린 결론은 터치로 인해 뒤로 넘어져서 잠에 빠져든 사람들에게 삶의 변화가 있었다는 보고나 증거를 확보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상 비교한 결과를 도표로 정리해보았습니다.

 

 

     행    위

     목    적

     방     법

     의     식

     변     화

     성     경

인위적 행위 일체 없음

 계시, 사명

 앞으로 엎어짐,

 부축 불필요

 명료, 두려움

 순종의 삶

     현     장

whistle이나 hand action 있음

 치유, 환상

 뒤로 자빠짐,

 부축 필요함

 불명, 웃음

 변화에 대한 보고와 증거 없음

 

 

이와같이 비교하여 보았을 때 오늘날 은사주의 집회에서 능력있는 사역자의 전매특허patent처럼 여겨지고 또 시행되어지는 '넘어짐 현상'은 '성령 안에서 넘어짐'falling in the Spirit이라기보다는 '최면술에 의한 넘어뜨림'pull down in tricks라고 보여집니다.

 

(또한, Slain in the Spirit을 직역하면 '성령 안에서 죽임 당함'인데, 아마도 넘어질 때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기 때문에 붙여진 듯 합니다. 하지만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실 때 의식을 잃었다는 기록이 성경에 찾아볼 수 없고, 또한 성령의 인격성에 비추어 볼 때에도 '의식을 잃고 뒤로 쓰러지는 것'이 성령론적인 관점에서도 합당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담대히 주장하는 이유는 앞에서 살펴본 대로 '사이비성''인본성' 때문입니다.

첫째로, 그것은 성경에서 기록된 '넘어짐'과 언뜻 비슷한 것 같아보이나 완전히 다르다는 사이비성 때문이고,

둘째는, 그것은 성령의 능력을 모방하나 성령의 능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능력은 사람들을 회개하게 하고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그러나 넘어진 사람들이 회개의 열매를 맺고 삶의 변화를 보였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성령의 인격성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즉 성령의 인격성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순간적을 의식을 잃고 뒤로 자빠져서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이것은 인격성이 아니라 폭력성에 가까운 것입니다.)

셋째로,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보다는 사역자의 능력을 강조하는 인위성과 인본성 때문입니다.

 

제가 질문하고 싶은 것은

첫째, 이교도나 타종교의 의식ritual에서도 이와 비슷한 의식practice을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인데 무엇이 다른가 하는 것입니다.

둘째, 최면술사들이 사람을 깊은 잠에 빠뜨리는 의식practice과 어떤 차이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셋째, 이러한 '의식을 잃고 뒤로 자빠져서 깊은 잠에 빠짐'이 과연 성령의 인격적인 성품과 양립consistent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넷째,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체험을 한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된 삶을 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말씀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고, 죄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갖게 되었는가?)

 

 

이 문제에 관해 교리적으로 종합해서 제가 내린 결론은 이것입니다.

"넘어뜨림 의식 practice of pulling down in the tricks은 오컬트occult일뿐 진정한 기독교 정신과 의식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는 것입니다.

 

 

이 의식practice의 위험성은

첫째, 사역자를 교주화하고 우상화하는 위험성이 있으며(사역자는 우쭐하게 되며 쉽게 교만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체험주의와 신비주의에 초점을 맞추게 하여 복음의 메시지에 순종하는 삶을 도외시하게 되며,

셋째, 성령이 아닌 잘못된 영을 접하게 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무의식 상태로 들어가는 의식practice'에 대해서 경고를 해야 합니다. 힌두교나 이슬람의 신비주의 분파에서는 무의식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강조하는데 사실상 이는 신접행위인 것입니다. 성령충만이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주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과도 맞지 않고, 또한 성경적인 교리라고 볼 수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성령충만은 언제나 명료한 의식 가운데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의식을 잃은 상태에 들어가는 것은 영적으로 매우 위험한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상태를 '입신'이라고 하는데 '깊은 잠에 빠져 드는 것'일뿐입니다.)

 

 

딤전4장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그리고 요일4: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또한 벧전1:22절은 우리에게 참된 신앙의 본질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우리 영혼이 깨끗하게 되는 길은 넘어지는데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말씀, 진리의 말씀을 즉시 온전히 기쁘게 순종하는데 달려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넘어뜨림 사역은 '성령충만'을 가장한 것이며, 참 능력을 가장한 것이며, 복음의 말씀에 순종하는데서 신비주의와 체험주의 영성으로 관심을 돌리려는 무서운 음모가 있습니다.

 

 

참된 변화는 순간의 터치로 자빠지고 넘어지는 데서 올 수 없습니다.

오직 진리의 말씀을 듣고 온전히 순종할 때 오는 것입니다.

참된 성령충만 역시 넘어짐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 앞에 엎어지고 무릎을 꿇고 순종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