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교리

Slain in the Spirit에 관한 교리적 적용

등불지기 2012. 10. 20. 03:03

 

 

저번에 올린 글은 Slain in the Spirit에 관한 교리적 평가였다면,

이번에는 Slain in the Spirit에 관한 교리적 적용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오늘날 '넘어뜨림'은 나름 성령사역을 한다고 하는 이들이 추구하는 부분이고

능력자됨을 입증하는 표지sign이 되어버린 듯 합니다.

 

제가 모든 선교사들과 교회 사역자들에게 드리는 말씀이 이것입니다.

 

"넘어뜨리는 사역"을 하지 마십시오! "넘어뜨리는 데" 관심을 끊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과 영광으로 죄인을 압도하여 죄인들 스스로가 그 영광에 사로잡혀 스스로 엎드러지고 facedown to the earth 혹은 그들 스스로 무릎을 꿇기 전까지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마십시오. 손을 얹거나 혹은 손을 내밀거나 혹은 손가락을 튕기거나 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처럼 행동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자신을 과시하려 하는 모든 시도,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모든 유혹은 하나님께로 온 것이 아닙니다."

 

 

1.사역의 목표와 목적이 무엇인가?

 

아프리카의 여러 지역과 흑인 교회들을 다녀보면 매우 특이한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집회에 참석한 흑인들은 '넘어지기'를 원하고 있고, 목사는 '넘어뜨리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선교사들'도 덩달아 춤을 추어서 되겠습니까? 흑인들은 넘어지기를 간절히 원하고, 목사들은 넘어뜨려야한다는 생각에 손을 얹고 밀기도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인위적으로 흉내내고 모방하려는 시도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복음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이 들어가겠습니까? 순종하지 않아도 치유되고, 순종하지 않아도 쉽게 복을 받고, 순종하지 않라도 쉽게 영혼이 깨끗하게 되는데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무서운 함정이요 계략인 것입니다. "넘어뜨림"을 시도하는 것과 경험하는 것이 우리의 시선과 관심을 어떻게 교묘하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돌리게 하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터치 한번에 '자빠져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의식을 잃고 잠을 자면서 환상을 보거나 치유를 받는 것도 아닙니다. 몸과 마음의 치유가 복음에 포함되어 있으나 복음의 전부도 목표도 내용도 아닙니다. 복음의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 것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선한 목적을 가진 것이라 할지라도 무서운 함정이요 계략인 것입니다. 낫게 하고 체험하게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낫지 않고 체험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붙드는 편이 훨씬 나은 것입니다.

 

 

2.무엇이 진정한 하나님의 능력인가?

 

그러나 만약 목사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고, 인본적인 방법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었다면,

혹은 최면술사의 그것과 같은 핸드액션hand action이나 휘파람소리를 시도하지 않았고, 오직 십자가의 말씀, 복음의 말씀 앞에 사람들이 스스로 무릎을 꿇거나 하나님의 임재에 압도당하여, 그래서 무의식으로가 결코 아닌 또렷한 의식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거나fell facedown to the earth 무릎을 꿇은 것이라면,

혹은 뒤로 자빠 넘어져 의식을 잃고 잠자는 것이 아니라 또렷하게 자신의 죄를 직시하고 죄를 뉘우치며 통회하며 자복하는 것이라면,

혹은 과도한 기쁨에 자지러지게 웃음보를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외에는 살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가슴을 두드리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절규하는 것이라면...

그런 것이라면..

예, 그렇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죄인을 변화시키는 참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3.복음사역자의 정체성을 확립하라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So then, men ought to regard us as servants of Christ and as those entrusted with the secret things of God. Now it is required that those who have been given a trust must prove faithful.(고전4:1,2)

 

 우리는 어떤 사역을 할 것인가 고민하기 전에 어떤 사역자로 부름을 받았는지, 사역자의 정체성, 사역자의 자기이해를 하나님의 관점으로, 성경적으로 분명히 해야 합니다. 사역의 형태는 사역자의 정체성이 결정하는 것이니까요..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는 '충성된 증인'으로 부름을 받은 자들이고,

우리는 '전파해야 할 말씀'을 맡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지 하나님을 흉내내는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이지 하나님의 능력을 모방하는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사이비 능력을 흉내내는데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무엇이 참 하나님의 능력인지 바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능력을 체험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들의 욕구에 맞추어서 춤을 출 자가 아니라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인도하여 온전히 순종하게 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의 삶속에 흘러들어오게 하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간절한 목표는 그들이 넘어져 자빠져서 깊은 잠에 빠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또렷한 의식을 가지고 자신들의 죄와 죄인됨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보좌를 바라보며, 두려워떠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역의 목표는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치유와 기적과 환상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진리의 말씀을 기쁘게 깨닫고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고, 참된 회개의 열매를 맺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어떤 모양으로 부르셨는지, 우리의 참된 정체성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최우선 관심은 내 손짓이나 터치 한번에 그들의 넘어져 자빠짐이 아니라 오직 순전한 진리의 말씀 앞에 그들의 부복과 엎드림이어야 합니다.

 

 

4.안수를 남용하지 말라.

 

그러므로 사역자는 안수를 남발하지 말아야 합니다. 안수는 신중해야 합니다. 왜냐면 그것이 우리 사역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Do not be hasty in the laying on of hands..(1Tim.5:22)

 

제가 어릴 적 저의 신앙의 멘토이셨던 분은 신유의 능력이 있으셨던 분이셨습니다.

저는 어릴 적 부흥회를 수없이 쫓아다녔습니다.

저를 지도해준 멘토에게서나, 제가 직접 쫓아다녔던 그 어떤 부흥회에서도 넘어뜨리는 현상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80년대 후반에 들어서 조금씩 그런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아예 모든 부흥집회나 은사집회에 빠지면 안되는 일practice가 되어버렸고,

어느새 안수하거나 혹은 손을 내밀거나 혹은 입김을 훅 불어서 넘어뜨리는 것이 능력있는 사역자의 트레이드마크인 것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지 사람들을 넘어뜨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순종의 길보다는 단 한 번의 터치로 대박이 터지는 것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특히 말씀에 기반이 없거나 감정적인 분들이 넘어짐을 경험하기 위해 간절히 사모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5.음란한 세대를 위하여 춤추지 말라.

 

이곳 아프리카는 아예 넘어뜨림이 주일예배에 일상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거의 모든 흑인 목사들이 기적에 열광하고 기적을 추구하고miracle-oriented 있습니다.

사람들마다 넘어지고 자빠지고 자지러지게 웃는 그런 현상phenomenon이 넘치는 그런 집회를 쫓아다니며 열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말씀은 점점 소외되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귀는 점점 가려워서 심지어는 복음의 말씀에 귀를 막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표적과 기적을 추구하는 이 시대를 "음란한 세대"adulterous generation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음란한 사역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바울의 고백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

 

 

6.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경험하신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라는 정체성을 확실히 하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들어가셔서 사단에게 세 번 시험을 받으시면서 그 정체성을 확인하고 증명하신 일입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시험 중에 두 번째 시험이 무엇이었습니까?

수 많은 사람들이 엎드려 '와, 이분이 우리가 오래토록 기다려왔던 그 메시아시다'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성전 꼭대기에서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뛰어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많은 사역자들이 성전 꼭대기에 서서 이같은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한 번의 터치로 사람들을 넘어뜨림으로 자신의 능력을 사람들에게 입증하고 싶은 충동을 직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수는 교묘하게도 예수님이 그토록 사랑하던 성경말씀을 가지고 유혹합니다.

"봐라!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는가? 너의 뛰어내림은 성경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히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기록되었다"고 외치시며 원수의 유혹을 보기좋게 물리치셨습니다.

기도를 받으러 앞으로 나온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넘어뜨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나 넘어뜨리는 시도를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자신에게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사람들이 자신을 인정하게끔 유도하는 것이며

인간적인 행위로 자신을 입증하려는 시도이며, 그래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받으러 나왔으면 동성의 경우 손을 꼭 잡고 기도하거나 꼭 껴안고 기도하면 어떨까요?

그냥 함께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어떨까요?

안수해야 한다면 안수해야 하는지 주님께 여쭈어보아야 하고(성경이 함부로 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밀거나 때리는 방식이 아니라 인격적인 터치로 간결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7.무엇을 보기 원하는가?

 

내게 맡기신 양떼들을 먹이면서 양떼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나의 메시지를 듣는 그들에게서 무엇을 보기를 원합니까?

 

1.체험보다는 말씀을,

2.넘어짐보다는 엎어짐을,

3.벌러덩 뒤로 자빠져서 다른 사람들이 붙잡아주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영광 앞에 깊숙히 부복하거나 무릎꿇는 것을, 

4.의식을 잃고 잠을 자는 것보다는 명료한 의식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5.누워서 깔깔대며 웃는 것보다는 죄를 깨닫고 자복하고 통회하는 것을,

6.누워서 환상을 바라보는 것보다는 눈을 들어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을,

7.의식을 잃는 것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에 계시된 하나님의 의를 선명하게 인식하는 것을,

8.비몽사몽보다는 십자가의 복음에 감격하는 것을,

9.이상한 비명소리, 동물소리로 꽥꽥 거리는 것보다는 은혜와 긍휼이 절실한 죄인의 절규하는 것을,

10.누워서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보다는 깨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은혜의 죄사함을 부르짖는 것을,

11.많은 사람들이 나의 손짓 한 번에 바람에 낙엽 쓸려가듯이 쓰러지고 자빠지고 넘어지는 것보다는 진실한 회개를, 회개에 합당한 열매 맺는 것을,

12. 하나님의 능력이 내 손짓과 제스추어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선포되는 복음의 메시지 안에 있다는 것을 설교자와 회중이 모두 함께 보기를,

13. 설교자는 설교의 내용이며 주인공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높아지는 것을

14. 표적과 기사가 사람들의 마음을 흥분시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말씀이, 십자가의 도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을,

15. 기적과 이사를 보고 사람들이 야단법석을 떠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고요히 주장하며 인도하는 것을,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성령사역은 사람을 넘어뜨리는 사역이 아니라 복음의 말씀 앞에 부복하게 하는 사역입니다.

사람을 치유하는 것이 능력이 아니라, 복음 앞에 엎드리게 하는 것이 능력입니다.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