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묵상

기도응답이 안 될 때 I

등불지기 2013. 1. 28. 01:51

 

 

 

기도응답이 안 될 때 (1)

 

어떤 분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왜 기도해도 안 들어주시는 걸까요?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했다고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제가 아는 그분은 기도응답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기도응답이 안 되는 것에 대해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7:7-11) 기도응답에 관한 유명한 약속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의 전후 문맥을 먼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이 본문은 71절부터 6절까지 말씀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76절 말씀은 이렇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안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이 말씀은 분별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지혜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런 다음에 구하라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1차적으로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겠다고 하신 것은 지식과 지혜의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기도응답의 약속을 재정이나 기타 다른 분야로 확대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응답은 지혜인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이 응답받기를 원하는 부분과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기를 원하는 부분이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말 주시고 싶어 하시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응답을 간절히 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또 한 가지 고려해야 할 문제는 결론과 같이 주어진 12절 말씀입니다. 기도응답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주시면서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이것은 기도응답의 조건에 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이 되기 위해서 응답이 된 줄로 믿고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데 그것이 응답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에게 먼저 대접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용서를 받으려면 먼저 용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재정의 공급을 받으려면 먼저 재정을 흘려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의 증거를 볼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응답을 안 하시는 것은 응답하기를 싫어하시거나 인색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응답을 받기를 바라는 우리보다 응답하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들으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응답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해주시기 위해서 간절히 바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보다 더 간절하게 우리에게 응답하기를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기도응답에 관해서 많은 분들이 한나의 기도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한나의 기도에 대해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셔서 사무엘을 주셨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잘 보면 한나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셨다는 것보다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한나의 기도를 이야기할 때 사무엘을 주신 것만 이야기하지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놓치고 있습니다. 한나는 매년 그 남편과 함께 하나님의 전으로 올라가서 예배드리고 기도했습니다. 그때마다 한나는 자녀를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매번 한나의 기도를 들으셨지만 응답해주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한나의 기도를 들으셨지만 응답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종종 우리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으셨다고 투덜거리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들으신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들으십니다. God hears!! 그리고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God gives!! 비록 우리의 기도에 당장 응답이 없을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들으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때를 기다리신다

 

종종 우리가 응답의 때를 결정하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응답이 안 되었다고 속단을 내리고 쉽게 낙심하기를 잘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진리는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최선으로 응답해주실 때를 친히 기다리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리신다고요? , 그렇습니다. 다시 한나의 이야기로 돌아가볼까요? 한나는 그 남편 엘가나와 함께 매년마다 성소로 올라가서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기도드렸습니다. 분명 한나는 매년 자신의 소원을 하나님께 말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아들 하나만 낳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들어주세요!” 하나님은 한나의 목소리를 분명히 들으셨습니다. 그러나 응답하실 때는 기다리셨습니다!! 어떤 때까지 기다리셨을까요? 기도해도 응답이 되지 않자 다른 부인인 브닌나가 한나를 격동시킵니다. provoke , 브닌나는 조롱하는 말로써 한나를 화나게 만들었습니다. 한나의 마음에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한나가 화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들을 낳지 못한 수치심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말 살아계시는 것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 분노가 최고조에 다다를 때까지 하나님은 기다리셨습니다. 그 분노가 너무 커서 그 남편의 지극한 사랑이 더 이상 그녀에게 위로가 되지 못할 그 때까지 하나님은 기다리셨습니다. 그녀의 분노가 더 이상 아들을 낳고 못 낳고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분노가 최고의 단계에 다다랐을 때 그녀의 기도는 더 이상 제게 아들을 주십시오가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기도는 아들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구하는 기도가 되었습니다. 아들을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 원하는 기도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아들을 갖게 해달라는 소원이었으나 그 분노가 극단에 다다르게 되었을 때는 하나님의 얼굴을 한번 보게 해달라는 소원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한나가 그 마음으로 기도할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그 믿음으로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녀의 태를 열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 원하는 그 소원으로 기도한 한나는 그 한 번의 기도로 더 이상 아들을 달라는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한나의 고백을 보십시오.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빛이 없더라.”(삼상1:18) 이 한 번의 결정적인 기도를 드린 이후에 한나의 얼굴빛은 달라져 있었습니다. 여전히 브닌나의 조롱과 힐난은 계속 되었지만 한나는 더 이상 예전에 보였던 그런 근심빛이 그녀의 얼굴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그녀는 믿음으로 이미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그녀는 이미 하나님의 얼굴빛으로 그녀의 얼굴에 비추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한나의 마음이 처음에는 시기심에서, 그 다음으로는 괴로움으로, 그 다음에는 분노로 가득차게 되어서 이제는 아들이 그녀에게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을 때 이제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 그녀에게 진정한 문제가 되었을 때 그래서 하나님의 얼굴빛을 비추임을 받고 브닌나의 계속된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얼굴빛이 달라졌을 때까지 하나님은 기다리셨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한나의 태에서 역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한나의 얼굴빛에 역사하신 후에 비로소 한나의 자궁에 역사하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절한 기도에도 응답하지 않는 이유이고 침묵하시는 것 같은 이유이고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간절히 기다리시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응답하시기 전에 마음을 준비시키신다

 

성경은 이런 하나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고아와 압제 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시리이다.”(10:17,18) 하나님은 응답의 때를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먼저 우리 마음이 충분히 낮아질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우리의 소원이 더 이상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이 될 그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먼저 낮추시고 또 낮추시면서 기다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준비시키시며 응답을 보류하십니다. 드디어 때가 되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를 하는 그 순간까지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결정적인 때에 결정적인 기도를 하는 그 순간까지 응답하지 않고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결정적인 기도를 하는 그 순간에 하나님은 귀를 쫑긋 세우시고 경청하십니다. 그 전에도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셨지만 이번에는 전혀 다르게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드디어 죽은 태속에서 일하시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제야 비로소 사망의 태속에서 생명의 기적을 일으키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기다리시는 이유는 우리의 믿음을 보기 원하시기 때문이고, 또한 우리를 대적하고 비난하는 자들의 입을 다물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응답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많은 분들이 자신이 기도한 것이 응답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거절감을 느끼곤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에 대해서 실망하기도 합니다. 그분들은 다음의 성경구절을 잘 알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15:7) 중요한 것은 앞의 구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는 삶인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뒤의 구절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는 말씀을 더 좋아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와의 연합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연합보다는 응답을 더 원합니다. 문제는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과 내가 받기를 진정 원하는 것이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기도응답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도열납입니다. 우리가 기도한 것을 받아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기도하는 우리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것, 즉 열납되는 것입니다. 내가 받기를 바라는 것, 내가 보기를 원하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과 나의 기도가 하나님께 열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응답받기를 바라고 기도합니다. 응답을 기대하지 않고 기도하는 분들도 많지만 대부분 응답을 간절히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응답에 대한 기대를 갖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응답의 유무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제가 조언하는 바는 응답이 되었느냐 응답이 되지 않았느냐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하나님께서 응답을 해주신다면 왜 응답을 해주시는지 하나님의 마음과 목적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인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14:13,14) 여기서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요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의미인지 깨달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어떻게든 응답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간구에 대해 책임을 지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간구한 것이 응답되지 않았다고 보여지는 순간에 하나님의 응답의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일하기 시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만으로 우리는 이미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 이루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냉철하게 물어야 합니다. 나의 기도로 말미암아 누가 영광을 받으실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런 기도는 응답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할 때 따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의 간구가 이루어진다면 그 유익은 누구에게로 돌아갈 것인가?

 

기도응답을 경험하려면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며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받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3:2,3) 기도응답이 안 되는 이유는 대게 우리의 욕심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욕심을 온갖 성경구절을 갖다 대며 미화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의한 기도라고 스스로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배우고 똑똑한 그리스도인일수록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아니 그것이 욕심이라니요? 욕심이 아니라니까요! 이렇게 항변하겠지만 그것이 솔직히 내 욕심이 아닌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그것이 욕심이라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그것이 욕심이라는 증거를 몇 가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증오심입니다. “살인하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 시기심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데서 비롯된 마음입니다. 셋째, 경쟁심입니다. “다투고 싸우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넷째, 자기 욕심입니다. “정욕으로 쓰려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자기 만족을 위해 간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달라고, 혹은 이루어주시기를 간절히 구할 때 우리 마음을 조사해야 합니다. 증오심, 시기심, 경쟁심, 자기만족, 비교의식 등이 있지 않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때 우리의 기도는 응답이 될 것입니다.

 

군대 면제시켜 주십시오

 

부끄러운 고백입니다만 이것은 실제로 제가 예전에 기도했던 것입니다. 저는 실로 몇 년 동안 이 기도제목을 가지고 간절히 그 누구보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할수록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고 있다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저는 제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의한 기도임을 확신케 하는 여러 가지 명분과 성경구절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첫째는 군대생활은 정말 시간 낭비라고 믿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에게도 시간낭비라고 믿어졌습니다. 둘째는 성경에서도 세월을 아끼라고 했습니다. 저는 성경구절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셋째 저에게는 하나님을 섬기려는 진실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제가 보았을 때에 군대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넷째 저의 집은 정말 가난했고 아버님은 노동력을 상실한 장애인이셨습니다. 그래서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다섯째 저는 군대에 갈 기회에 교회와 학교를 섬기는 등 학창시절을 바쁘게 지냈습니다. 저는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한다는 확신이 들었고 응답해주실 줄로 믿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하나님께 어떻게 응답해주셨을까요? 저는 최전방의 부대에 현역으로 배치되었습니다. 온갖 힘든 훈련은 다 받았습니다. 훈련보다 더 힘든 것은 내무반 생활이었습니다. 저는 저의 소박한’(?) 기도에 응답해주지 않으신 하나님께 단단히 토라졌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미워하신다고까지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었던 군종도 자리가 없어서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힘든 훈련과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시간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렇게 2년 정도 시간이 흘러 전역할 시간이 다 되었을 때 신기하게도 하나님께서 낮아질 대로 낮아진 저를 친히 찾아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만나주시고 만져주시는 신기한 은혜가 있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찾은 것도 아닌데 하나님이 저를 먼저 찾아주셨습니다. 기도의 문이 열리고 주님과의 깊은 기도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늘 병치레를 잘하고 편식도 심하고 음식을 잘 가리고 소화도 잘 못시키는 제 몸이 달라졌습니다. 지금 아프리카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어떤 음식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50kg 중반에 머물렀던 체중도 불어서 70kg까지 나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최선으로 응답해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제 기도에 응답해주지 않으신 것 같지만 하나님은 제 삶에서 일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기도에 침묵하신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은 제 삶속에 부지런히 역사하고 게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거절하신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은 제게 최선의 은혜와 응답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와 비슷한 일이 제 삶에 한 둘이 아닙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까지 4-5년 정도 신학교에 입학하기를 위해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는데 결국 일반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 그 실망감이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대학 다닐 때 거의 3년 동안 원하지 않은 대학을 다녀야 한다는 실망감이 매우 컸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뒤늦게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내 기도를 거절하신 것이 아니라 내 생각보다 더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응답이 안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내 기도가 응답이 안 되었다고 낙심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실망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제게 신실하셨고 언제나 최선으로 응답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이런 일이 제 삶에 많습니다.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기도에 최선으로 응답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지금은 응답이 안 되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일하기 시작하신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열납하신다는 사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일하신다는 사실, 나의 하나님은 언제나 내 생각을 뛰어넘는 최선으로 응답해주신다는 사실, 그 사실은 변함이 없는 진리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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