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름에 관하여 (1)
인생이 경험하는 목마름에 대해서 요한복음 4장을 중심으로 묵상해보았습니다.
(글이 길다고 생각되어 두 번에 걸쳐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홍수가 날수록 생수는 귀하다
살아가면서 영혼에 갈증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목마름, 갈급함, 또는 갈망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 영혼에 찾아올 때 사람들은 목마름을 해소시켜주는 ‘생수’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시지프스의 신화에 나오는 거인과 같이 ‘생수’를 찾았다고 외치는 순간, 더 깊은 갈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마치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인생과 같아서 목마름 때문에 바닷물을 들이키지만 그럴수록 목마름은 더욱 심해지게 됩니다. 결국은 바닷물이 우리를 죽게 만들 것입니다. 홍수가 날수록 생수는 귀한 법입니다. 오락거리가 많은데 영혼의 즐거움은 없고 물은 많은데 마실 물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서 생수를 얻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인생이 겪는 목마름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요?
갈증은 고통과 비례한다
햇볕이 따가울수록 갈증도 심해지듯이 살아가면서 무언가에 대한 갈망이 커져가는 것은 남모르는 고통에 대한 반증입니다. 고통이란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일이 일어날 때 혹은 일어나야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때 겪는 감정인데요.. 고통이 클수록 목마름도 커지게 됩니다. 우리는 갈증을 해소하기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게 되는데 여기서 더 깊은 갈증을 유발하는 고통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아니면 다행히도 영원히 샘솟는 생수의 근원으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요4:14
우물을 찾은 사마리아 여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한낮에 우물가를 찾은 사마리아 여인을 남자를 밝히는 부도덕하며 음탕한 여인으로 비난하는 것은 당시 문화적인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편견으로 부당합니다.(2005년도에 이스라엘을 여행할 때 확인한 바 있습니다) 그녀에겐 기구한 삶이 있었고 큰 고통이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드리워진 고통의 그림자로 인해 하나님이 계신 곳이 있다면 찾아가서 하소연이라도 하고픈 목마름으로 방황하던 가련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생명수샘이신 예수님은 찾아가셨던 것입니다.-요4:4,16
목마름을 가진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요4:4)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회피하였습니다. 사마리아인들과는 상종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마리아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그곳에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사슴과 같이 목마름으로 방황하는 한 영혼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가지고 있었던 목마름은 이성에 대한 목마름이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목마름은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찾는 자에게는 반드시 만나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녀가 있는 사마리아에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들이신 예수님은 아버지의 마음이 향하는 곳을 알아차리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을 가진 한 영혼에 대해 하나님은 큰 부담감으로 반응하고 계십니다.
사마리아는 어떤 곳인가
여기서 잠시 사마리아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하겠습니다. 원래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였으며 종종 북이스라엘 왕국과 동일시되기도 했습니다. 주전 622년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할 때 앗시리아의 강제이주정책에 의해 북이스라엘은 이방인들에 의해 피도 섞이고 종교도 섞이게 되었습니다. 일종의 ‘혼혈 이스라엘’이 되어버린 것입니다.(왕하17장 참조) 그런 사마리아인들을 유대인들이 매우 경멸히 여기고 무시하였던 것입니다. 제가 이스라엘을 여행하면서 확인한 것은 지금도 사마리아인들이 살고 있고 (2005년 당시 약 80여명 정도) 세계에서 제일 작은 미전도종족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자기들의 문화와 풍습을 보전하기 위해 가족과 형제끼리 결혼하는 일이 많아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장애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편견과 차별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요4:9)
이런 저런 이유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차별하고 또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현대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진 자는 가지지 못한 자를 차별하고 무시합니다. 상류층은 얼마나 없는 사람과는 상종하지 않으려고 하는지 모릅니다. 배운 자는 배우지 못한 자와 상종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신체 건강한 자는 장애인들과 상종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에 장애인을 입학시켜주는 것에 대해 얼마나 반대하는지 보십시오. 또 영남은 호남을, 호남은 영남사람과 상종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요즘은 다문화 가정에 대한 차별도 많습니다. 제가 어릴적 혼혈아에 대한 차별이 아주 심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노골적인 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로 유명합니다. 백인은 내심 흑인들을 얼마나 무시하는지 모릅니다. 백인촌이 따로 있고 흑인촌이 따로 있습니다. 그리고 인디언촌이 따로 있고 칼라드(흑인과 말레이 종족 사이에 생긴 종족)만 모여 사는 마을이 따로 있습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얼마 전만 해도 계단이나 화장실도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에게 그러했듯이 지금 백인은 절대로 흑인 마을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것이 요한복음 4장의 배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사마리아에 들어가셨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삶을 뒤트는 목마름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요4:6)
성경에서 말하는 히브리 시간대는 6을 더하면 현재 우리의 시간대가 됩니다. 그러니까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나온 시각은 정오 12시쯤 된 것입니다. 아프리카나 중동지방을 여행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이 시간대가 얼마나 곤혹스러운지 잘 알 것입니다. 중동지방에서는 햇볕이 너무 강렬하고 더워서 12시부터 2시까지는 문을 닫고 낮잠을 자는 시간입니다. 보통 물을 긷는 시간은 오전과 오후인데 대낮에 물 길으러 나왔다는 것은 분명 사연이 있는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어려워하거나 혹은 사람들의 시선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삶의 목마름이 크면 클수록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삶,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목마름은 삶을 뒤틀리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로움, 고독, 따돌림, 무시당함에 대한 두려움, 비난과 비웃음에 대한 상처,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것에 대한 두려움, 상처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소심함, 등등...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또 다른 고통을 낳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어떻게 유대인인 줄을 알았을까?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요4:9)
그러면 지나가는 이야기입니다만 사마리아 여인은 어떻게 예수님이 유대인이란 사실을 알아차렸을까요? 예수님은 그녀에게 “물 좀 달라”Will you give me a drink? 라고 물었을 뿐인데 말입니다. 아프리카 흑인들은 저와 같은 아시아사람들을 보면 다들 ‘중국인’인 줄 압니다. 흑인들은 아시아인들을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 반대로 아시아 사람들은 흑인들을 서로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한국사람은 다른 아시아인들을 나름 잘 구분합니다. 조선족인지,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 동남아인인지 잘 구분하지요. 반대로 흑인들은 흑인들을 나름대로 잘 구분합니다. 줄루족인지, 수투족인지, 코사족인지, 벤다족인지, 쯔와나족인지, 아니면 스와지족인지, 아니면 모잠비크 흑인인지, 아니면 나미비아 흑인인지..잘도 구분합니다. 그래서 어느날 저는 흑인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네들은 어떻게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냐고 말입니다. 다들 대답하는 것이 ‘말투’accent로 구분한다고 대답합니다. 외모로 구분하는 것은 힘들고 어투로 구분합니다. 한국사람은 어투로 경상도사람인지 전라도사람인지 서울사람인지 강원도 혹은 제주사람인지 아니면 조선족인지 구분합니다. 외모로 구분하는 것보다 어투로 구분하는 것이 제일 확실합니다. 분명히 사마리아 여인도 어투로 예수님이 유대인이란 사실을 단번에 알아챘을 것입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을 알았더라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요4:10)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 여인에게 보내신 하나님의 선물임을 잘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에게 주신 최고 최대의 선물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선물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빛이 비취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선물과 대면하고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여인은 그분이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인 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목마른 인생이 겪는 문제는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놀라운 선물을 주셨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고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는 것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목마름의 해갈은 오직 예수님께 달려 있다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요4:10)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수를 주시기를 원하고 계시지만 우리가 그것을 구하지 않음으로 받지 못하고 있고 또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갈증의 해결, 목마름의 해갈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혼 깊은 곳에 목마름을 안고 살아가고 있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다가가셔서 “물 좀 달라”고 하시지만 사실은 그 여인이 예수님께 그와같이 구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것저것을 요구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께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4:2,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고 싶어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구해야 합니다. 구하지 않기 때문에 받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구하지 않고서 ‘왜 내게 안 주시는 걸까?’라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도 많습니다. 구하였는데도 안 주신다고요?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을 달라고 간구해보셨습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고 갈급해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생수였습니까? 생수는 원하지 않고 나의 욕구를 채워달라고 떼를 쓰는 것은 아닙니까?
호기심의 발동
“여자가 이르되 주여 (당신은)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요4:11)
우리의 생각에서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뀌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에게 있는 영적 호기심을 자극하십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자신의 문제에서 예수님의 정체성을 향한 호기심이 발동되어야 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의 정체identity에 대한 호기심이 일어났습니다. 두레박도 갖고 있지 않으면서 어떻게 내게 생수를 주겠다고 하시는 거지? 게다가 이 우물은 아주 깊은데? 우리가 우리의 정욕을 위해 간구하는 데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을 따라 구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이길래? 라는 호기심이 반드시 발동되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아는 지식에서 생수가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호기심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요4:12)
사마리아 여인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성경적인 지식을 갖고 있었고 또 그 우물에 관한 배경도 알고 있었으며 전통에 대한 나름대로의 자부심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이 야곱보다 더 위대합니까?”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던 야곱, 존경하던 야곱,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야곱이란 인물보다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예수님이란 분이 더 위대한 인물일지 모른다는 호기심을 갖는 것..이러한 호기심은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정체성을 알게 되는 참 지식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는 참된 은혜를 간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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